아컴 호러 : 카드 게임 리뷰

21,026 조회

2017.10.27 11:26

아컴 호러 : 카드 게임(이하 ‘아컴 카드’)은 현재 보드게임긱 순위 19위(2017년 10월 27일 기준)에 육박한 게임입니다. FFG발 LCG 게임에서 이 정도의 선전은 지금은 33위로 내려온 넷러너의 경우가 있겠는데요. 사실 넷러너는 한 번쯤 정점을 찍기는 했으나 유저의 유입이 고정적으로 이어지지 못하면 장수가 어려운 LCG 게임의 속성을 그대로 타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반면 저는 아컴 카드가 19위에서 더 치고 올라갈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하겠지만 아마 꽤 오랫동안 30위권 안에서 머무를 거라고 조심스럽게 예상을 해 보는데요. 특히 25위부터 멈춰 있던 게임이 미소스팩이 출시될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상승해서 마침내 20위권에 진입했다는 점을 인상적으로 봅니다. ‘던위치 레거시’를 플레이하고 나서 이 게임을 최고의 게임으로 꼽게 되었다는 긱 리뷰는 이러한 조류에 대한 긍정적인 방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것들은 아직 보드게임에 대한 경험이 미숙한 사람의 헛배부른 짐작이기는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게임만을 가지고 한 번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카드로 하는 게임으로서의 정체성

아컴 카드는 카드 게임이라는 이름으로서의 정체성을 강하게 표방하고자 합니다. FFG발 LCG 게임들은 카드를 사용해서 모든 것을 구현하겠다는 욕망을 언제나 어느 정도 어필했는데, 아컴 카드는 그런 맥락을 계승합니다. 그런데 아컴 카드에서는 이런 카드로 보드를 구성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장소 카드를 배치하고 서로 연결된 장소를 구성하게끔 하는 것이죠. A라는 카드는 B와 C 카드와 연결되어 있고, C는 D와 A카드와 연결되어 있어서 이 카드들 사이에는 서로 이동이 가능합니다. 카드로 되어 있다 보니 연결선이 없어서 눈에 명확히 보이지 않는 단점이 처음에는 있지만,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카드로 구성된 맵의 구조가 머릿속에 들어오기 때문에 큰 어려움이 없이 플레이할 수 있게 됩니다.

카드로 보드를 구성하는 것은 모듈맵과 특징이 비슷합니다. ‘광기의 저택 2판’에서 맵을 떼어내는 전개가 가능했던 것처럼, 아컴 카드에서도 카드 한 장을 제거하기만 하면 맵이 변형됩니다. 이러한 맵의 변형을 이 게임에서는 스토리텔링과 리플레이성을 위해 적극 활용합니다. 게임 준비 과정에서 서로 능력이 다른 장소 카드 두 장 중 한 장만을 골라서 플레이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새 게임을 하면 세팅이 유사하면서도 게임 진행이 달라지는 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스토리텔링과 결합해서 카드 매커니즘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는 점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보드에 얽매여서 제한된 공간에서만 진행되는 게임이 연극적이라고 한다면, 카드를 붙이거나 떼는 것만으로 장소 여기저기를 옮겨갈 수 있는 아컴 카드는 영화적인 게임이죠. 이야기의 폭이 넓어지고 동적인 면모를 갖게 됩니다. 최근에 나온 ‘카르코사로 가는 길’에서는 카드의 특성을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인물 카드를 교체함으로서 인물의 변화를 표현하는 방식이죠. 이 게임이 갖고 있는 호러의 테마 역시 이 방식을 통한 구현이 가능합니다.

물론 그렇다 보니 카드가 과하게 많아지기는 합니다. 아컴 호러 카드 게임 한 팩 안에 들어 있는 카드들 중 절반 이상이 오로지 한 시나리오에서만 사용되는 카드들이니까요.

2. 치밀한 스토리텔링

아마 이 점에 대해서는 아컴 카드 기본판에 있는 ‘광신도의 밤’ 캠페인만 플레이해본 사람들은 그다지 좋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광신도의 밤’ 캠페인은 3개의 시나리오로 이루어진 단순한 구성입니다. 말 그대로 튜토리얼 캠페인에 해당하죠. 전개상의 전환점은 크지 않으며, 처음 플레이했을 때에만 충격적일 수 있는 정도입니다.

‘던위치 레거시’로 가서는 이야기가 달라졌습니다. 총 8개 시나리오를 플레이하는데, 첫 시나리오에서 한 행동이 8번 시나리오에서 특정한 결과를 낳기까지 합니다. 하나의 시나리오를 끝낼 때마다 나의 선택 또는 행위에 따라 자발적 혹은 필연적으로 주어지는 선택의 결과는 다가오는 시나리오에서 묵직하게 적용됩니다. 이야기적으로 좋아 보이는 선택은 게임 진행을 어렵게 만들곤 하며, 위험해 보이는 선택이 그만큼 큰 보상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완벽한 선택지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입니다. 이것을 스토리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고심한 흔적들이 보입니다.

특히나 ‘던위치 레거시’는 러브크래프트의 원작 ‘던위치 호러’의 뒷이야기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래 던위치 호러에 나왔던 인물들이 하나하나 등장합니다. 디자이너 팀이 ‘던위치 호러’를 꼼꼼히 읽고 그 안에 등장하는 인물과 공간을 ‘던위치 레거시’ 안에서 살아 움직이게 만들고자 여러 모로 고심했다는 흔적이 곳곳에서 엿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게임은 ‘던위치 호러’를 먼저 읽고 했을 때 최대의 경험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이 게임이 가진 스토리텔링으로서의 특성을 극대화하는 또 다른 방법은 액트나 아젠다, 장소 카드에 있는 플레이버 텍스트를 하나하나 꼼꼼히 다 읽는 것입니다. 조우카드까지는 꼭 그렇게 안 해도 될지라도, 저 위에서 언급한 세 종류의 카드는 곳곳에 러브크래프트식 호러 묘사나 몰입을 강화시켜줄 스토리를 담고 있습니다. 게임의 진행이 조금 더뎌진다고는 해도 그것들을 하나하나 읽으며 상황에 빠져들면 단순한 전략 게임 이상의 게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3. 덱 구성은 강한가?

LCG 게임이지만 덱 구성의 속성은 다소 약합니다. 미소스팩에 포함된 플레이어 카드들을 보아도, 다섯 가지 캐릭터 팩션의 각 특성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카드들이 구성되어 있지 이 캐릭터를 다양하게 사용하는 방향으로 설정되지는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구도자는 이동 및 조사 위주, 수호자는 전투 및 팀 보호 위주, 생존자는 회피 및 임기응변 위주, 무법자는 자원과 턴을 활용하는 부자 플레이(ㅋ), 비술사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만능 플레이 형태로 카드들이 구성됩니다. 한 팩션 안에 있는 카드들은 이러한 특징을 어떤 조합으로 살리냐가 중요하지 이 팩션으로 어떤 식으로 서로 다른 플레이 조합이 나올까 쪽은 아닙니다.

다만 이러한 조합의 변화를 주는 것은 캐릭터입니다. 일례로 구도자 캐릭터인 민 치 판과 데이지 워커를 비교해 보면, 데이지는 구도자와 비술사로 덱을 구성합니다. 그러다 보니 덱 구성에서 조사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덱을 짜게 됩니다. 반면 민 치 판은 구도자와 생존자의 조합입니다. 조사와 임기응변이 결합되는 꽤 재미있는 덱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덱빌딩을 위한 조합은 어떤 캐릭터를 선택하느냐에 따라가게 되며, 그렇기 때문에 아컴 카드에서 덱빌딩의 즐거움을 느끼려면 캐릭터가 추가되는 팩들을 구매할 필요가 따릅니다.

이 게임에서는 업그레이드의 개념이 있습니다. 한 개 시나리오를 플레이하고 난 다음에는 경험치를 받으며 이를 통해 카드 업그레이드가 가능합니다. 이 게임에서 덱빌딩은 이렇듯 최선의 전략을 구축하기 위함 이상으로 게임의 RPG적 요소를 강화하기 위함의 목적이 있습니다. 아쉬운 점은 이 업그레이드가 던위치 레거시의 모든 확장팩까지 다 모은 시점에서도 그렇게 생동감 있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를테면 같은 이름의 업그레이드 카드는 낮은 레벨 카드와 높은 레벨 카드 사이의 경험치 차이를 지불하고 업그레이드를 하는 게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2중 업그레이드가 있을 때에만 가능한 이야기이죠. 대부분은 기본 카드와 업그레이드 카드가 한 쌍씩밖에 없어서 그냥 카드를 경험치를 지불하고 사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게다가, 한 카드의 업그레이드 카드로 3레벨과 5레벨 카드가 각각 있다면 3레벨 카드를 먼저 사야 한다는 제약도 따르지 않기 때문에 구태여 어정쩡한 3레벨을 꼭 사야 하는 이유도 별로 없습니다.

4. 리플레이와 공략

이렇게 시나리오성이 강한 게임들은 리플레이성이 부족한 법입니다. 한 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파악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미리 알고 대응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독립 시나리오인 ‘루가루의 저주’나 ‘공포의 사육제’에서는 특히 도드라집니다. 한 번 플레이해본 사람은 절대로 두 번째 게임을 첫 번째 게임과 같게 진행하지 않을 겁니다. 어떻게 하면 ‘공략’이 되는지를 알게 되었으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리플레이성이 현저하게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두 번째 플레이에서는 어떻게 덱을 새롭게 구성하고 대응해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에 대한 전략적인 플레이로 전환이 가능하니까요. 물론 이는 독립 시나리오팩의 경우에 그러한 편이고, ‘던위치 레거시’만 해도 안 해본 선택지가 파생시킬 결과가 꽤 궁금하기 때문에 새로 플레이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사실 ‘던위치 레거시’는 한 번 풀 클리어를 위해서 15시간쯤 걸렸던 기억이기 때문에 너댓 번씩 리플레이를 한다면 그 사람이 더 대단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던위치 레거시’에서는 총 8개의 시나리오가 있고, 각 시나리오별로 요구하는 조건이 서로 차이가 납니다. 처절한 전투가 필요한 시나리오가 있는가 하면 조사에 많은 것이 걸려 있는 시나리오도 있고, 전투는 전투인데 총칼이 먹히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어떠한 캐릭터도 끝까지 가면서 완벽하게 하드캐리로 플레이할 수 있는 경우는 없다고 봐야 합니다. 두 가지 상황에 대비했다 한들 세 번째 상황에서는 엉망진창으로 만신창이가 되어서 넘어가는 경우가 한두 번쯤 꼭 터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상 1인플은 크게 추천하지 않는 편입니다. 최적의 플레이 인원수는 2인플이라고 생각합니다만, 3인플까지도 할만은 합니다. 4인플은 가장 비추천인데, 인원수가 올라갈 때마다 게임의 총체적인 난이도가 대폭으로 상향되는 만큼 적어도 2명이 특정 상황에서 다른 캐릭터의 몫까지 2배를 해낼 수 없다면 매번 절망적인 상황에 놓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5. 결국은 운빨게임?

이건 어쩔 수 없는 단점이라고 하겠네요. LCG가 피해갈 수 없는 비판이기도 하지만, 이 게임은 좀 더 심한 것이, 토큰 뽑기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즉 2중으로 운이 작용하는 게임인 셈이죠. 그래서 플레이어 카드는 대체로 비교적 강력한 편입니다. 카드가 상황에 맞게 완벽하게 손에 들어온다면 게임을 수월하게 진행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집니다. 하지만 토큰빨이 안 받아서 자동실패를 계속 뽑아댄다면 답이 없죠. 그래서 비술사의 경우에는 정신력을 지불해 가면서 토큰을 새로 뽑는 카드도 있을 정도입니다.

손에 들 수 있는 카드도, 덱에 넣을 수 있는 카드도 장수 한정이 있기 때문에 연속적으로 체크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결국에는 토큰 뽑기에 심하게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토큰 주머니에 있는 16개 토큰 중에서 4개만 성공인 상황이 종종 닥쳐옵니다. 확률로 따지면 아컴 호러 게임에서 1/3 확률로 성공인 것보다 좀 더 낮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능하면 게임을 편안한 스토리로 즐길 수 있는 쉬움 모드로 플레이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보통 난이도만 해도 여러 번 멘붕이 오는 경험을 하게 되실 겁니다. 뭐 게임은 어려운 것이 좋다고 하신다면야... ㅎ

6. 미소스팩 구매의 필요성 – 코어셋은 꼭 두 개가 필요한가?

만약 현재까지 나온 모든 미소스팩까지를 다 구매할 생각이시면, 코어셋은 꼭 두 개가 아니어도 된다고 봅니다. 물론 모든 카드의 전략적 베리에이션을 다 갖겠다면 두말 할 나위 없이 코어셋은 두 개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미소스팩에서 추가되는 플레이어 카드들이 다 두 장씩이고, 지금은 미소스팩 여섯 개에 디럭스팩 두 개가 출시되었기 때문에 이런 확장팩들에서 추가된 플레이어 카드들만으로도 덱 구성이 가능합니다. 심지어 확장팩의 카드들이 성능도 다 뛰어납니다. 지금 이 카드들로 ‘광신도의 밤’ 캠페인을 플레이한다면, 원래 기본판에 있었던 카드들로는 가능하지 않았던 플레이들이 수월하게 가능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코어셋을 한 세트 더 사야 하는 이유가 만약 존재한다면, 그건 토큰 때문이겠죠. 아컴 카드에 있는 혼돈 토큰들을 주머니에 넣고 섞었다가 빼기를 수차례 반복하다 보면 토큰 겉면이 허옇게 닳습니다. 차라리 엘드리치 호러 토큰들 말고 이 혼돈 토큰들이 아크릴 제품이 나와야 할텐데 말입니다. 사실상 아컴 호러 카드 게임의 최악의 단점은 이 토큰의 내구도라고 하겠습니다.

던위치 레거시를 플레이하고 나서의 만족도는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물론 후반부에 가서 체력이 급격히 하락하는 경험을 했지만, 같이 플레이한 이들이 다들 너무 힘들었지만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는 소감을 밝혔습니다(쉬움 난이도였습니다만...). 그리고 지금까지 번역해본 바 카르코사로 가는 길 확장은 던위치 레거시와는 또 완전히 다른 새로운 이야기 구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스토리텔링의 액티브한 성격은 광기의 저택 2판을 능가한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입니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그 이야기를 또 어떻게 카드로 기가 막히게 구성할지가 계속계속 궁금해지는 대단한 게임이라는 말로 평가를 마치겠습니다.

이 글이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을 눌러주세요!

내용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