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스펜스 없는 머더 미스터리, 모텔 노바디 리뷰 (강 스포)
※ 본 리뷰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감상평이며, 게임의 재미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모텔 노바디를 플레이했습니다.
메타 픽션이라는 특이한 컨셉과 숙련자용이라는 소개에 큰 기대를 품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 기대는 처참하게 무너졌습니다..
포장지는 그럴싸했으나 그 알맹이는 속 빈 강정이었습니다.
무엇이 그리 실망스러웠는지 살펴보기 전에 그래도 게임의 장점부터 살펴보겠습니다.
!! 스포일러 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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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도입부와 반전의 임팩트
룰북에서부터 4의벽을 넘는 여러 요소들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게임을 시작하고 서로 추궁하고 단서를 모아도 오히려 의문이 쌓이면서 '와... 대체 스토리가 어덯게 전개될까..'라는 기대감이 생겼죠. 그렇게 게임이 끝나고 반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약 1시간 동안 했던 게임이 극 중 상황이었고 모두 거짓이었다는 내용이 밝혀지면서 기대는 최고치를 찍었습니다. '진짜 게임'이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추리 게임이 시작된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본 게임의 장점은 여기까지였습니다... 이제부터 본 게임의 치명적인 결점들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유기된 1부
앞서 플레이했던 1시간의 내용이 거짓임이 밝혀진 후에도, 앞서 얻은 단서들과 정보들이 쓸모없이 버려질 것이라고 생각은 못했습니다. 1부의 결과가 본 게임에 영향을 준다던가, '진짜 게임'과 유기적으로 엮이며 1부 자체가 하나의 단서로 사용될 것이라 기대했었죠. 하지만 1부는 과감하게 버려졌습니다. 총 플레이타임이 3시간 정도 되는데 1/3 정도 날라간거죠. 이 게임에서는 범인을 찾는 것 외에도 악마의 정체를 밝혀야 한다는 주요 목적이 있었는데, 1부에서 얻은 악마에 대한 단서가 2부에서 해석되어 그대로 제시되기 때문에 1부 컴포넌츠는 더더욱 쓸모가 없어집니다...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과감한만큼 임팩트는 제대로 챙겼으니까요. 이제 본편이 알차면 참신한 시도의 수작으로 남을뻔 했습니다.
따로 노는 설정
모텔 노바디의 주요 테마 중 하나는 '악마'입니다. 게임에서 계속 강조되고 있으며 본 게임 자체가 '악마가 플레이어를 농락하며 즐기는 게임'이라는 컨셉입니다. 그런데 정작 게임 내에서 그 테마가 따로놉니다. 메타 픽션 장르인만큼 초월적 존재인 악마가 스토리에 밀접하게 관여해도 괜찮았을텐데요. 범인의 동기나 살해 수법 그 무엇도 악마와 상관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범인 찾기'와 '악마 찾기'가 완전히 별개로 돌아갑니다. 마치 물과 기름같아요.
이게 더 문제가 되는 건 악마를 찾을 때 범인도 동참해야만 하는 구조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범인이 누구냐 토의할때는 3:1구조가 되었다가, 악마에 대해 토의할때는 4명이 같은 팀인거에요. 적과의 동침이라고 하니 재밌게 들리겠지만 두 파트가 맞물리지 않고 그저 나란히 나열된채 따로 진행되니까 어느 한쪽도 제대로 몰입이 안됩니다.
얕은 스토리
그럼 게임 내부의 스토리인 추리물은 퀄리티가 괜찮냐라고 하면, 아닙니다. 치밀한 살인 트릭이나 비극적인 비하인드 스토리가 없습니다. 게임의 컨셉과 진행 특성상 중간에 흐름이 강제적으로 끊기는데 스토리에 깊이감이 적어서 몰입도 잘 안됩니다.
무너진 밸런스
가장 치명적인 단점인데 범인이 누구인지 너무 티가 난다는 겁니다. 게임 내 단서가 너무 적나라해서 소거법으로 범인을 확실하게 유추할 수 있어요. - 살해현장에 갔었던 인물이 범인 후보인데, 범인은 현장에 갔던 것이 다른 캐릭터에게 목격되었음 - 모델건이 버려져 있던 뒤통로가 연결된 3개의 방에 혼자 있던 인물이 범인 후보인데, 범인이 해당됨. - 기침을 했던 사람이 범인이라는 유력 증거가 있는데, 범인이 기침했던 것이 다른 캐릭터에게 목격되었음. 이토록 너무 대놓고 범인이라고 하니 숙련자용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추리하는 맛이 없습니다. 너무 대놓고 범인을 알려줘서 메타 픽션이라는 컨셉답게 마지막 반전이 또 있을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문제는 또 있습니다. '진짜 게임(2부)'이 시작되기 전까지 범인은 스스로도 범인인지 모르는 상황인데요. 1부에 주어졌던 역할지에 "다른 플레이어들을 혼란시켜라"라고 되어 있어요,. 그래서 혼란을 주기 위해 거짓말을 하면, 2부가 시작되면서 1부 단서가 전부 까발려지기 때문에 거짓말이 들통납니다. 의심받으면서 2부를 시작하게 되는겁니다. 자신이 범인인지지도 몰랐고 2부가 있을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기에 제시된 롤에 충실했을 뿐인데 오히려 불리해지는 어이없는 상황이 펼쳐집니다. 범인에 걸린 것만으로 부담이 생기는 머더 미스터리 게임에서 이러한 전개는 부조리하게 느껴졌습니다.
머더 미스터리에서 범인은 이미 진상을 알고 있기 때문에 추리하는 재미를 느낄 수 없게 됩니다. 그렇기에 남을 속이고 이기는 게임적인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범인이 살짝 유리한 정도의 밸런스가 중요해요. 범인도 플레이어로서 같이 노는 입장인데 범인역에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재미를 박탈당하면 안되니까요. 밸런스가 무너진 머더 미스터리는 스토리가 훌륭하고 컴포 퀄리티가 좋아도 나쁜 평가를 받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 게임은 제가 그동안 플레이해본 머더 미스터리 중 손에 꼽을 정도로 밸런스가 나쁩니다.
허술한 룰과 시스템
스토리가 얕아서 서스펜스가 살아나지 않으면 룰으로라도 텐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슬프게도 이 게임의 룰과 진행방식은 테스트를 하긴 해봤나 싶을 정도로 허술합니다. 모든 단서가 공유되기 때문입니다. 단서가 모두 공유되는 게임은 본 게임만 있는게 아니지만, 그런 게임은 스토리를 복잡하게 꼬아서 범인을 유추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든 이 게임의 스토리는 너무나도 빈약해서 단서가 모두 공개되는 순간 범인이 바로 추려진다는 게 문제죠.
제가 다른 리뷰에서 서스펙트 게임을 굉장히 고평가하곤 하는데 그 이유는 범인의 부담을 줄여주는 시스템 때문입니다. 모두에게 숨겨야 하는 비밀을 배치함으로써 범인도 추리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으며, 동시에 모두가 거짓말을 해야만 해서 범인이 거짓말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줄여줍니다. 그런데 이 게임은 이런 시스템적 단계에서의 고려가 전혀 없습니다. 단서가 공유되니 거짓말의 리스크가 높아서 개인의 능력(거짓말)으로 해결하기에 한계가 있습니다. 범인역 플레이어가 뭔가 저항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놨어야 하는데 말이죠.
결론적으로, 그럴싸한 도입부를 제외하면 머더 미스터리로써 최소한 챙겨야 할 요소들을 모두 놓쳤습니다. 스토리, 단서 배치, 룰, 시스템 모든 것이 범인을 보호하지 않으니 게임적인 밸런스가 무너져서 긴장감이 유지되지 못해요. 1인용 추리게임이나 협동 추리게임에서도 긴장감이 없으면 재미없는데, 컨셉에 취해 본질을 잊었다는 평이 적절할 겁니다.
그러면 도입부의 참신함과 임팩트만으로 고평가를 줄 수 있느냐? 당연히 아니죠. 애초게 게임 내에서 스스로 그 도입부를 버렸어요. 그렇다보니 게임을 진행하면서 앞부분의 임팩트가 기억에서 점점 흐려집니다. 진행에 딱히 필요가 없거든요. 마치 아시발꿈 엔딩을 맞이한 느낌이었습니다. 꿈엔딩이라고 다 나쁜건 아니죠. 그런데 꿈엔딩으로 인해 앞부분의 내용이 전부 삭제되어도 상관없는 지경이 되면 "그럼 뭣하러 앞부분을 봤냐"라는 말이 나옵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사실 그 정도로 참신한 아이디어도 아니라는 거에요. 극 중 극, 서술트릭, 범인 스스로도 범인인지 모르는 설정은 추리물에서 이미 흔하게 쓰인 설정이에요. 이런 아이디어를 머더 미스터리에 녹이겠다는 시도는 좋지만, 머더 미스터리 자체의 재미를 유지하면서 아이디어를 녹여야 가치가 있는거죠. 아이디어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친구와 그럴싸한 사업 아이디어라며 상상하면서 이야기했던 경험 한번씩은 있을겁니다. 아이디어를 현실에 구체화하고 상품적인 가치를 지닐정도로 디벨롭하는게 어려운거지. 그저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거면 쉽습니다. 본 게임은 딱 아이디어를 구현화 해보는 것에서 머무른 정도라고 여겨집니다.
서스펜스를 잃은 게임을 과연 머더 미스터리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최소한 머더 미스터리 숙련자나 추리물 마니아들은 아니라고 말하지 않을까요? 숙련자용을 표방했다면 그에 맞춰 무언가를 준비했어야만 합니다. 하지만 이 게임은 그 이름처럼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함께 플레이한 팀 멤버 분들의 의견으로 본 리뷰를 마칩니다.
"그래도 참신은 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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