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단상 "벚꽃과 함께 찾아든 택배 3개"
1.
올봄은 다소 따뜻하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개화도 일러서 지난주에는 벌써 동네 여기저기에 매화, 목련, 진달래, 개나리가 피었더군요.
며칠 전에 이미 강 건너 남쪽에는 만발한 벚꽃 소식이 화제였지만
북한산 아래인 이곳은 나뭇가지마다 달린 봉오리로 기대감만 고조할 뿐이었습니다.
분명 금요일 아침나절에는 양지바른 곳에 자리잡은 운 좋은 몇몇 나무만 벚꽃이 반개했고
대다수는 여전히 꽃망울마다 분홍빛을 배시시 언뜻 보일 뿐이었습니다.
한낮의 햇볕이 제법 따갑더니
금요일 늦은 오후 무렵에 조금 일찍 나선 퇴근길에는
회사 앞길을 따라, 실개천변을 따라 늘어선 벚나무가 흐드러지게 피었더군요.
해마다 벚꽃이 만개할 때면
봄의 절정을 맞이하는 듯하여 설레면서도
금새 꽃비를 나리며 지고말 터이니 한편으론 아쉽습니다.
조금 들뜬 마음으로 집에 와보니,
저에게 택배 3개가 왔더라는 아내의 말에 쎄한 느낌을 받은 것은...
누구나 그렇듯이 여기서 입을 함부로 놀렸다가는 아내의 여래장이 등짝을 얼얼하게 달구는 아찔한 경험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대문간을 지나 현관 앞에 고이 놓인 3개의 택배....
아마도 받으신 분들이 있겠지만 홀라 플레이 코인과,
엊그제 중고로 구매한 아그리콜라 구판 벨기에 덱, 프랑스 덱,
그리고 해외 직구를 위한 페이팔 가입을 이끌어낸 명나라의 항해.
하필 이 셋이 한날에 동시 도착할 게 뭐람......
하긴 한날 한시에 시킨 물건을 다른날 따로따로 받아볼 때도 있고
여러날 다른 때에 시킨 물건을 한날 한시에 동시에 받아볼 때도 있겠죠.
천우신조인지 하나같이 자잘한 박스 사이즈라서
아내는 대수롭지 않다는듯 무슨 카드슬리브 몇 개 샀나보네 하며 2층으로 올라가버렸고
저는 조용히 택배를 챙겨 책상 위에 올려두고
별관심 없는 것마냥 아이들을 챙기고 열심히 아내의 장단에 맞장구를 치며 비위를 맞추었습니다.
2.
아내와 아이가 잠들고 잠잠해진 집안에서
조심스레 침실을 나와 한밤중에 뜯어본 택배들...
홀라 플레이 코인은 기대보다 쓰기에 간편해 보여서 만족스럽네요.
다만 코인이 잠시 머문 자리에 남은 쇳가루는 아무래도 도금이 살짝 벗겨지는 모양이고,
꼬릿한 향이 미세하게 나서 간간이 펼쳐두고 냄새를 흩어야 겠습니다.
AS 문제로 우려되었던 1원짜리의 음영 문제는 그다지 눈에 거슬리지 않았지만 앵콜 펀딩 때 더 준다니....
아그리콜라 구판 덱 확장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건만
견물생심이라....
중고 게시판에 오른 매물을 보고는 즉흥적으로 구매해버렸네요.
부족한 언어 능력으로 시일을 두고 한글화 작업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겠지만
받아보니 상태도 너무 좋고(판매자분께 너무 감사합니다.)
일러스트나 문구도 재미있어서 보는 맛이 있습니다.
명나라의 항해.....
기껏해야 조그만 보드판에 카드 몇 장과 목재 컴포넌트 조금으로 구성된 단촐한 게임입니다.
하지만 보드게임이 주는 간접 경험을 중시하고
보드게임이 다루고 있는 주제가 구매 기준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이 큰 저로서는
역사 테마의 이 게임은 거르고 갈 수 없는 무언가였죠.
명작도 아니고 아는 분도 몇 없을 그런 게임을
우연히 '토트넘정말싫어'님이 남긴 짧은 후기를 보다가 꽂혀버려서
1년 넘게 찾아다녔네요.
우리말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하찮은 언어능력이라서...
개인정보 유출과 금융 사고에 민감한 디지털 사회 부적응자로서
해구는 안하겠다, 페이팔은 가입 안하겠다는 신조를 저버리고,
심지어 해구 방법까지 묻는 글을 남기면서까지 기어코 구한....
긱마켓을 통해 영국의 한 판매자에게 산 밀봉품이 불과 2주만에 도착했네요.
감회가 새롭습니다.
풀려버린 빗장 탓에 해구의 문이 열려
그 사이에 벌써 외국사이트에서 상트, 마폴, 브뤼헤의 미니확장을 사들였는데...
너무나 저렴한 상품 가격에 비해 중량감 웃도는 배송비에 절망하면서도 해외 사이트를 뒤지는 제 모습이 두려워지네요.
아직 이 길에 들어서지 않으셨다면 오지 마세요(돔황챠).....ㅠㅠ
3.
며칠전이었다면 이걸 또 어디에 수납하지 하는 고민이 뒤따랐을 테지만,
그래도 마음이 푸진 것은
엊그제 우연히 당근마켓을 통해 산 조그만 책장이 있어서
욕망의 결과물을 담아낼 공간이 좀 더 여유로워진 덕분 입니다.
앞으로 있을 파주슈필, 보드게임콘을 위한 (지갑) 준비도 좀 해둬야 겠네요.
신사임당, 세종대왕, 율곡 이이, 퇴계 이황님....환영합니다. 제발 제게 와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