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신 라 구매를 실패한 이야기
쓰잘 데 없는 이야기를 길게 늘여서 해보고자 합니다.
지난 해부터 잔뜩 뽐을 극대화해온 다양한 게임 출시 소식이 지난 봄을 잔뜩 기대하게 했지만
그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기대했던 게임 출시 소식은 함흥차사였고,
기대했던 퍼블리셔는 돌연 사업 철수를 선언해버렸죠.
그러나 신은 시련만을 안겨주지는 않았기에,
못다 펼친 열정의 도화선은 면면이 이어져
급기야 여름, 가을 기대작 출시에 대한 희소식이 연일 팡팡!!!
하지만 야속한 일정은 줄줄이 기대작 출시 일정을 미뤄버렸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눈치없이 강림하던 지름신도 점차 뜸해지자
그 사이에 제 지갑은 살이 도톰하게 차오르고 있었습니다.
보드게임에 입문한 이래
나잇살이 아니라 덕망의 체현이라고 주장해온 저의 체중이 그려온 상승 곡선과는 반대로
연일 하한가를 치며 홀쭉해져만 가다가
급기야 피골이 상접하는 기적을 보여온 그 지갑이...
돈맛을 보며 배추잎으로 채워진 살진 퍼런 속살을 드러낼 때 통탄해 마지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아, 그래서 유황숙은 형주성 어느 뒷간에서 그토록 비육지탄을 연발했던 것인가!!!
새로 산 보드게임과 조심스레 박스를 열어 상견례하던 날....
투명한 아스테이지 고이접어 얇은 테이프로 단단히 붙여 두고
안성맞춤 핏을 잡아 엄선한 플텍으로 한 장 한 장 끼어 덱박스에 분류하여 갈무리하고
정성껏 인터넷과 다이소 매장을 돌며 준비한 정리함으로 컴포넌트를 요리조리 정리한 뒤에
책장 한 켠을 차지하고 웅크릴 보드게임 박스를
언젠가 기다리던 임들과 다시 열 날을 고대하던
코로나 시대 저의 보드라이프는 그야말로 박제화된 취미.
지갑이 웅장해지던 차에
보드게임은 구매가 콘텐츠라던 주옥같은 사계의 격언이
주체 못할 저의 소비 욕구 불만을 강하게 자극할 때,
그놈은 누런 빛 가득한 아우라로 제 눈에 들어오고 말았습니다.
당장 해볼 일 없는 게임에 대한 저의 구매 기준이란,
1인플이 아니고선 플레이는 먼훗날의 일이기에 매카니즘은 사치였고
테마와 비쥬얼이 7할이라 믿던 지독한 테마충으로서
마음에 맞는 현질처를 못찾아 헛헛하던 마음에 든 클래식.
'보기에 좋았더라'는 성경 창세기 속 말씀마냥
수천 권 책 속에서 한 켠에 꽂아두어도 전혀 이질감없을 책박스 시리즈는
아내에게 들킬 일 없는 완전 범죄의 서막이던가.....
꼴에 경매는 싫다고 쳐다도 보지 않던 저에게 하루 하루를 보내며
더디고 더딘 시간을 원망하게 하는 활력소가 되었습니다.
이윽고 출시 일정이 공개되었을 때 별다른 위화감 없이 장전한 탄알을 세어가며 여유를 부리던 저는...
출시 하루 전이 되어서야 예기치 못한 상황에 봉착했습니다.
누군가는 내 인생에 군대의 덕택을 볼 줄이야라며 탄식하게 했던 얀센 백신 접종.
분명 3~4일만 잘 버티면 2주 후에는 안심과 자유를 주리라 믿었던 그 백신....
근육통과 무기력감과 오한은 출시일 새벽 5시부터 시작되어....
정신없이 고달팠던 한나절을 보낸 뒤에
정신을 차리고 핸드폰을 든 저는 카톡으로 날라온 알림을 보고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아차.........................................................~~~~!!!!!!
시간은 15시 하고도 3분.....
구매창을 열고 급히 구매하기 버튼을 누른 순간
어이없이 뜨는 구매할 수 없는 상품이라는 안내......
단말마의 탄성과,
분명 취소하는 사람이 나오리라며 밤새도록 다시 열리지 않을 알림을 들락날락하며 가진 덧없는 한 줌의 희망과,
시간을 거듭할수록 가슴 속에서 터져 나오는 순화된 욕지거리와 (아이들이 보고 있기에....ㅠㅠ)
그리고 아내에게 들통나서 웃음거리로 전락하는 참혹한 지경을 피하고 싶어 못내 속으로만 삭히며 더친 울화가
하루를 묵히고 묵히어 얻은 깨달음....
이렇게 나는 지갑을 지켰고,
앞으로 있을 미래의 N분컷 대전을 준비할 마음가짐을 가다듬고
무한한 기대작 출시에 반하는 유한한 지갑의 사정에 따라
기회비용 계산으로 고민거리를 안겨주었던 기대작을 조금은 부담없이 지를 수 있게 되었다는 안도감에서
성취한 내면의 평화....
아~~~ 운명이어라,
억겁의 인연이 쌓고 쌓여야 얻을 수 있는 옷깃을 스치는 인연조차 허락되지 않은...
아니, 구매하기 버튼을 눌러 카드 결제조차 시도해볼 기회조차 주지 않았던 그 태양신 라,
차라리 내 미련과 희망을 스스로 끊어 내어
하릴 없는 정신 승리로 지켜낸 내 멘탈에 치얼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