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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게임 클론 배경이야기-01. 끝으로 향하는 시작(1/2)

828 조회

2019.09.20 11:24

트레비 작가 세하입니다.

일전에 말씀드린 보드게임 클론의 배경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소설형식으로 남깁니다. 여기에 나오는 설정들은 실제 게임에서 부분적으로 녹아있습니다.

나중에 출판이 되면 그런 부분을 찾는 것도 재미요소가 될 수 있으려나요? ^^

참고로 문단을 정확히 나누어야 하나 그러면 읽기에 불편을 초래할 것 같아서,

임의적으로 단락을 한 문장마다 넘겨 작성했습니다.

총 5개의 에피소드를 소개할 건데, 분량이 너무 길지 않도록 각 에피소드마다 두 부분으로 나누어 올릴까 합니다.

혹 분량이 넘 짧다 싶으시면 댓글로 한 번에 올려달라고 요청하시면, 나누지 않고 에피소드 별로 올리겠습니다.

그럼 즐거운 보드라이프 되시길~

프롤로그-01. 끝으로 향하는 시작(1/2)

[2039년 4월 21일 01시-상업지구 내 나이트 파티 작전 지역]

부서진 벽 사이로 길게 늘어진 검은 인영이 마치 바람에 놓인 촛불처럼 흔들거렸다.

"이건... 이건 아니잖아! 아니야! 아니라고! 왜 기억이 안 나는 거야?"

당혹감이 깊게 물들었지만, 절규에 가까운 외침이 고요한 밤의 정적을 찢겨 발리고 있었다.

절규가 들려온 곳에서 NBSA 지급용 단말기 화면의 조명이 환하게 빛났다.

떨림이 멈추지 않은 가운데에서도 바쁘게 손을 움직이던 남자는 전송완료 버튼을 누르고는 옆으로 내던졌다.

분명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라고. 분명 감정이 복잡하고 생각이 많아진다고 느꼈다...고.

분명 당혹감도, 두려움도 느끼고 있다...라고 생각했다.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 듯 스스로 가슴을 헤집었다. 살가죽이 뜯어져 나가자 단말기 화면에 비쳐 반짝거리는 무언가가 보였다.

"이건 뭐야? 난 도대체... 코드넘버는 왜?"

혼자서 중얼거리던 인영은 주저 없이 아직 총열이 식지 않은 트리플 샷건을 들어 턱 밑으로 갖다 대었다.

"투캉-"

말랑한 물풍선 같은 무언가가 터져나갔다. 하지만 밤의 눈가리개에 덮여져 어떤 상황인지 정확히 알기는 누구라도 어려웠을 것이었다.

[2039년 4월 21일 16시 42분-NBSA본부 내 출동 대기실]

"삐비빅- 우웅- 치익"

처참한 폐허가 되어버린, 붉게 물든 도심의 화려한 풍경.

그런 아이러니를 여과 없이 비춰주는 커다란 창이 인상적인 NBSA(무국경특수요원) 출동 대기실의 문이 열렸다.

대기실 안의 요원들은 편안하게 걸터앉은 채로 잇달아 들어선 검은색의 양복을 걸친 4명의 남성들을 맞이했다.

모두가 같은 복장인데다가 한결같이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그런 탓에 아무런 자세를 취하지 않았는데도 보는 이로 하여금 위압감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다만 그 중 제일 뒤에 선 중년의 남성은 검은 정장에 베레모를 쓰고 있어서 묘한 위화감을 조성하고 있었다.

저마다 자리에 앉아있거나 창가에 서 있던 7명의 요원들이 잡담을 멈추고 그들을 응시했다.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를 직감한 요원들은 저도 모르게 근육을 긴장시키며 흐트러진 실내의 공기를 가라앉혔다.

그들 중 제일 뒤에 있던 베레모의 남자가 단호하고도 절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코드네임 포션, 도리안 드미트리!"

드미트리는 그들이 들어섰을 때에도 대기실 창문에 기대어 바깥 풍경에만 시선을 던지고 있던 금빛 장발에 키가 큰 요원이었다.

포션이라는 코드네임은 동료들을 치료해주는 위생병의 위치를 자처한 이유로 스스로 제안해서 사용해왔다.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그제야 고개를 돌리고 대답했다.

"무슨 용건입니까, 스티븐 상사님?"

다소 건방질 수 있는 태도와 대답이었지만, 특유의 차분하고 느린 억양의 말투로 인해 별다른 거부감은 주지 않는 듯 했다.

"코드넘버를 말하라!"

그 순간, 대기실의 분위기가 가볍지 않은 어색함으로 갑작스럽게 뒤덮였다.

대다수의 요원들의 얼굴에는 의문이 가득한 눈빛으로 베레모의 신사를 쳐다보았다.

'코드넘버라고? 개개인에게 주어지는 비밀암호 같은 것이어서 직속상관 외에는 절대 밝혀서는 안 되는 거 아닌가?'

다들 이러한 생각이 기계적으로 떠오를 때, 아까보다 더욱 딱딱한 어조의 목소리가 반복되었다.

"코드넘버를 말하라!"

"참~ 나, 지금 농담할 분위기는 아닌 것 같은데요, 스티븐 상사님?"

드미트리는 살포시 냉소를 머금은 표정으로 창가로 기대었던 몸을 일으켜 자세를 바꾸었다.

"마지막이다. 코드넘버를 말하라!"

이 말을 끝으로 베레모를 쓴 스티븐 상사 주변의 정장 요원 중 한 명이 품에서 권총을 꺼내었다.

자가유도탄환이 장착된 최신 기종의 '사일런서 PK-5'였다.

"코드넘버는 직속상관 체제가 아니었.."

"펠츠 중령으로부터 허가 받은 사항이다. 빨리 말하라!"

드미트리는 난감하다는 몸짓으로 양 어깨를 올리며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도록 살짝 들어올렸다.

"뭐, 뒷일은 책임지시겠지요. 코드넘버 2094……. 어?"

드미트리는 코드넘버를 외치다 말고, 갑작스런 떨림이 온 신경을 지배하는 걸 느끼고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쿠쿰~ 쿠쿰~"

주변의 모든 시간이 느려지며, 드미트리는 일정하면서도 거대한 심장의 고동이 고막을 강하게 때리고 있다고 느낀다.

내부에서 비롯된 엄청난 소리는 의지와는 상관이 없었고, 가슴 부근에서 시작된 뜨거운 열기를 견디지 못한 신체가 새빨갛게 익어가고 있다.

피부가 타들어가면서 고통이 강하게 찾아올 것이라 여겼는데... 아니었다.

아프다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변화하고 있는 자신의 신체가 이상하다고만 느끼고 있다.

시선을 아래로 두니 타들어가는 듯 녹아가는 피부 아래엔 사람의 신체구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차가운 금속의 일부가 보인다.

"뭐지? 이게? 내 몸 속에...? 코드넘버 2094... 어... 뭐였더라? 어... 어? 코드넘버 2094..."

눈 앞이 새빨갛게 변해간다.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 일그러지듯 변형을 일으킨다. 아니, 드미트리의 눈이 녹아내리는 것일게다.

"아! 코드넘버 20943...7!"

그 순간 갑자기 드미트리의 몸에서 '삐삐삐-'하는 신호음이 나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점점 빨라지고 커지고 있었다.

드미트리의 가슴팍 부근이 눈에도 확연히 드러나게 녹아내리며 붉은 빛이 점멸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모두 피햇!"

스티븐 상사는 소리를 치며, 대기실 문에 손을 갖다 대어 재빨리 개방하였다.

그와 동시에 고도의 훈련을 받은 요원들답게 신속한 판단을 내린 일부 요원들은 문 밖으로 몸을 움직였다.

아니 움직이려고 시도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순식간에 대기실의 온도가 상승한 듯 후끈한 열기로 휩싸임과 동시에, 이제는 그것이라고 불러야 할 드미트리의 몸이 부풀어 올랐다.

"콰콰콰-푸콰앙"

미처 문으로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동료였던 요원들의 신체가 붉은 물감을 뿌리며 분리되었다.

대기실의 자랑이었던 커다란 전망 창은 붉은 가루가 되어 건물 아래로 비산하며 떨어졌다.

커다란 폭발음 외에 어떠한 비명소리도 없는 진기한 살상 풍경이 내부를 가득히 채우고 있었다.

스티븐 상사를 보호하듯 등을 돌린 검은 정장의 사내 중 한 명은 자신의 뒤통수에 다른 요원의 손가락 일부가 박힘을 느꼈다.

또한 자신의 허리 아래가 바스러지며 분리되는 광경을 눈으로 보게 되는 낯선 경험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훈련의 결과인지 그 와중에도 대기실 내부에 장착된 비상차폐 장치에 손을 넣고 당겼다.

짐작도 못할 만큼 빠른 속도로 차폐벽이 내려왔다.

"쿵~ 푸쿰- 푸확-끄가가각"

탱크의 포탄도 견딘다는 두꺼운 차폐문이 고무처럼 심하게 우그러졌다. 그리고 우그러진 틈 사이로 초록의 불길이 우악스럽게 새어나왔다.

"뚜다다다당, 따당, 틱, 티딕."

그리고 이내 예기치 않은 소나기처럼 차폐문을 두드리는 쇳소리가 뒤따랐다.

정적과 함께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왼쪽 뺨에 작은 쇳조각이 여러 개 박힌 채, 스티븐 상사는 몸을 일으켰다.

당황과 분노로 흥분한 탓일까? 아니면 동료의 비명처럼 내질러진 핏물에 물든 탓일까?

붉은 얼굴의 스티븐 상사는 비틀거리며 대기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폭발이 있기 조금 전, 검은 정장 사내가 뽑아든 PK-5의 총열만이 차폐문의 일부를 뚫고 박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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