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과 사람을 잇다 1탄 - 블랙 포레스트
안녕하세요 라마나타 입니다.
행복한 보드게임 이야기를 보드게임 커뮤니티에서 나누고 싶어서 오랜만에 글로 후기를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깊이 다루지 못했거나 지나쳤던 게임들을 다시 조명하려 합니다.
(지나쳤던) 보드게임과 (보드게이머인) 사람을 다시 이어보고자 시리즈 이름을 붙여 보았습니다.
그동안의 후기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 하려고 합니다.
단순히 재미있었는가 없었는가 에 대해서 감상평을 쓰는 것이 아니라
보드게임의 여러가지 요소를 하나하나 분석하며 재미 이외의 요소들에 접근해보려 합니다.
제가 보드게임을 하며 들었던 의문과 생각들에 답을 찾아가는 느낌이라고 생각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재미있었어 없었어?" 를 이야기하는 글이 아니니, 그러한 해답은 글의 끝까지 나오지 않는 것을 미리 말씀 드립니다.
본문에서 제가 '디자이너가 이것을 의도했다'는 어조로 작성한 부분은 팩트를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제가 스스로 내린 결론임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그 첫번째 게임, 블랙 포레스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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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검은 숲의 안내자, 우베 로젠버그
게임을 자세하게 살펴보기 앞서, 우리가 앞으로 소개받을 검은 숲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검은 숲(Black Forest)의 안내자가 누구인가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우베 로젠버그의 게임을 논할 때 의외로 의견이 엇갈리는 지점은 테마 구현성입니다.
꽤나 건조한 유로 게임을 만드는 분이기 때문에 약간의 편견도 있을 순 있고
유로 게임 외에도 추상전략 게임에도 손을 많이 대기 때문에 더더욱 테마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많이 받습니다.
하지만 해외 유튜버인 Rahdo의 경우 우베 로젠버그나, 더 심하게 테마성이 떨어지는 스테판 펠트의 게임에도
상상력의 문제일뿐, 테마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라고 주장하곤 합니다.
모든 게임이 그렇다곤 할 수 없지만, 의외로 우리는 알게 모르게 우베의 테마 구현력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밥먹이기 뭐 같네! 라는 말이 어디서 시작되었을까요?
우베 로젠버그의 아그리콜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우베는 밥먹이기 라는 메커니즘으로 17세기 유럽 농업 사회의 척박함을 담백하면서 강렬하게 풀어냅니다.
사람을 밥을 먹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생계의 문제는 이 게임 속에서 어렵고도 중요한 문제다. 말하고 있습니다.
낚시하기, 지붕만들기, 소키우기, 자식만들.... 같은 반복적인 일상을 테마적으로 녹여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베의 성향은 최근 게임인 아티와(Atiwa) 에서도 드러납니다.
박쥐와 같은 야생 동물이 자연과 공동체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숲의 생태계에 기여하는 모습을 통해 자원의 지속 가능한 순환을 표현합니다.
아직 못해보신 분들이 계시다면 꼭 해보시라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그의 게임 속에 녹아있는 테마 구현도는 단순하게 추상화되어 건조하게 드러날 뿐,
어쩌면 그는 누구보다도 테마의 핵심을 담백하게 담아 전달하는 디자이너일지도 모릅니다.
자 그럼 우리의 가이드, 우베로젠버그의 소개를 마쳤으니, 본격적으로 검은 숲으로 들어가볼까 합니다.
- 1. 숲의 입구 (룰북 테마 설명에서 발췌)
블랙 포레스트(Black Forest)에서 가장 오래된 '유리 오두막'이라는 유리 제작 용광로는 서기 1218년에 세워졌습니다.
"유리 오두막" 주변에는 유리 공예가들과 그 가족들을 위한 작은 마을이 형성되었고, 이후 숯 제조업자와 포타쉬 제조업자가 등장하여 유리 제작에 중요한 기초 재료를 공급했습니다.
수확된 나무의 일부는 숯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으며, 나머지 90% 이상은 석영 모래의 용융점을 낮추고 유리에 더 빛나는 광택을 주는 포타쉬를 만드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이처럼 유리 제작에 있어 나무는 필수적인 자원이었으며, 숲 속에 위치한 "유리 오두막"에서 생산된 유리는 종종 철 산화물에 노출되어 특유의 녹색 빛을 띠게 되었습니다.
숲에서 나무를 거의 무한정 공급할 수 있던 덕분에 유리 제작자들은 몇 년마다 작업장을 옮길 수 있었습니다.
가족들은 버려진 "유리 오두막"을 농가로 개조하여 생활을 이어갔고, 농업과 가축 사육을 통해 생계와 수입을 얻었습니다.
이렇게 검은 숲 전역에는 수많은 농장이 세워졌으며, 그중 다수가 마을과 도시로 성장하게 되었고, 이 시기는 역사적으로 블랙 포레스트의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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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검은 숲의 초입
숲의 초입은 평화로우면서도 자연이 간직한 고유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듯합니다.
숲의 토양에는 사람이 오갔음을 암시하듯 작은 길이 나 있으며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숲 속 거주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듯합니다.
어쩌면 '유리 오두막'의 역사가 끝난 지금, 중세 시절 활발히 운영되던 시기의 흔적이 사라지고 사람의 발길이 뜸해진 숲길을 표현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차분한 표지는 우리에게 검은 숲의 이야기를 직접 목도하라는 초대처럼 느껴집니다.
과감히 축소된 제목은 오히려 숲의 깊이를 더 두드러지게 하며, 숲이 품고 있는 무언가를 더 가까이 들여다보게 만듭니다.
우베는 숲의 조용한 생명력과 그 안에 숨은 인간의 이야기를 느끼게 하려는 것이 아닐까요?
그 길을 따라가면 사람이 사는 풍경이 컴포넌트를 통해 우리 눈앞에 펼쳐집니다.
특유의 녹색 빛을 띈 유리 컴포넌트와 섬세하게 표현된 유리 공장과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영역"이 플레이어들에게 주어집니다.
자원의 그려져 있는 보드판과 수많은 건물 타일들이 배치됩니다.
소와 돼지 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나무 토큰들이 깔립니다.
그리고 정중앙에는 숲 그 자체를 담은 메인 보드판이 우리를 반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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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숲 속의 사람들
메인 보드판은 숲을 가로지르는 길과 그 길목마다 자리한 작은 마을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 마을에서는 다양한 장인들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검은 숲을 돌아다니며 마을에서 장인을 고용하고, 새로운 건물을 건설하고, 땅을 일구며, 가축을 기르게 될 겁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유리 오두막"을 발전시키고 새로운 건물을 지을 공간도 확보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여정을 마쳤을 때, 가장 많은 점수를 얻은 분이 승리하게 되실 겁니다.
플레이어가 할 수 있는 행동은 어찌 보면 단조롭습니다.
우베는 여전히 덤덤 하게 당시의 삶을 추상적인 행동으로 녹여내고 있습니다.
새벽에 재료를 구해 점심을 준비하고 손님을 맞이하듯,
숯을 구하고, 가축을 키우고, 건물을 짓는 일상적인 행동을 효율적으로 해내며 최고의 "유리 오두막"을 일궈 나가야 할겁니다.
깊은 숲 곳곳에 자리한 작업장을 바쁘게 오가는 유리 장인들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집니다
4. 숲의 유리 오두막 (자원과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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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포레스트의 자원 휠은 이전 작품들과 다른 독특한 결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리 자원 휠은 여전히 숯이 불을 지피고, 모래와 물이 유리를 만들어내며 자원의 순환을 이어갑니다.
하지만 다른 쪽의 자원 휠은 식량과 상품이라는 생소한 자원으로 대체되어, 새로운 메커니즘과 긴밀히 연결됩니다.
이 부분에서 블렉 포레스트는 이미 다른 작품들과 결을 달리 합니다.
플레이어는 마을과 마을 사이를 이동할 때 식량을 소비하고,
상품 자원을 활용해 행상인과 장인들의 위치를 조정하며 전략적으로 교류를 이어갑니다.
숲 속에서 식량을 통해 여정을 이어가고, 매력적인 상품을 만들어 다른 마을의 장인들을 불러내며 교류를 이어갑니다.
두 자원의 지속적인 생산은 결국 우리에게 게임 종료시에 큰 점수를 제공해주며
기존 자원의 활용법과 다른 문법을 가진 두 상위 자원은, 블랙 포레스트 속 삶을 단순히 생산과 판매로 제한하지 않습니다.
이 자원들은 마을과 마을을 오가며 장인들과 교류하고 상호작용하는 숲 속 삶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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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포레스트에서 플레이어에게 주어지는 건물은 익숙하면서도 신선합니다.
우베는 게임의 무게감에 따라 주어지는 정보를 정교하게 통제하는 작가입니다.
글래스로드에서는 12~15개의 건물 타일만 공개되었고,
누스피요르드에서는 특정 덱을 사용해 수를 통제했고,
카베르나에서는 모든 건물이 처음부터 공개되었습니다.
블랙 포레스트는 처음부터 플레이어에게 공개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랜덤하게 선택된 건물들이 배치된 후, 플레이어는 필요한 자원과 건물의 효과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빠르게 가치를 평가하고 전략을 세우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밸런스를 고려했는지, 건물 간 효과 차이가 크지 않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아니, 아예 건물을 무시하고도 게임은 진행하는데 무리가 없도록 짜여져 있습니다.
정보를 모두 공개하면서도, '보고 싶으면 보고, 무시해도 상관없다'는 과감한 설계는 우베에게선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접근 방식입니다.
이러한 정보 공개의 컨트롤은 게임의 난이도와 무게감에도 상당히 어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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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숲의 끝자락
우베 로젠버그가 테마 구현도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처럼, 블랙 포레스트도 자칫 오해받기 쉬운 게임입니다.
게임의 태생부터 언급된 다른 게임의 잔상이 남아 있으며
메커니즘적으로 새롭지 못한 결과물이 나왔기에 자가복제 전문가 라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블랙 포레스트는 우리가 흔히 지나쳐가는 일상을 담아낸 담담한 "일상 속의 퍼즐" 같은 게임입니다.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우리는 크고 작은 선택과 고민이라는 퍼즐을 풀어내야 합니다.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오늘은 버스를 탈까, 지하철을 탈까? 조금 늦었는데 택시를 타야하지 않을까?
블랙 포레스트 속에서 플레이어들은 가축을 키우고, 나무와 숯을 모으고, 유리를 만들고, 건물을 짓는 검은 숲 사람들의 일상을 따라갑니다.
그들은 매일같이 이러한 선택과 고민을 통해 하루하루를 살아갔습니다.
저는 블랙 포레스트는 '모호함이 적은 게임' 이라고 생각합니다.
테마를 위해 메커니즘을 극단적으로 부풀리거나, 덧칠하지도 않았으며
메커니즘을 위해 테마를 극단적으로 무시하거나, 제거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게임은 테마와 메커니즘 사이의 균형을 통해, 우리가 게임 속에서 완성도 있는 퍼즐을 즐길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조금은 심심한 능력의 건물들은 플레이어가 장기적으로 전략을 세우기 충분한 메커니즘적 명확성을 제공해주고
아티와 때와 같이 자원의 순환적인 모습을 담은 휠 매커니즘은 여전히 게임 진행을 직관적이고 명확하게 해줍니다.
블랙 포레스트의 행동의 선택지는 단순하지만, 그 안에서 플레이어가 능동적으로 자주 결정을 내리게 만듭니다.
모든 행동과 선택이 명확히 정의되어 있어 여러분이 숲 속에서 길을 잃은 일을 없게 만들어 줍니다.
블랙 포레스트의 배경이 되는 슈바르츠발트의 자연은 여전히 아름답지만, 그 안에 담긴 역사의 흔적은 희미해졌습니다.
과거의 번영과는 다른 형태로 존재하지만, 여전히 그 안에는 잔잔한 생명력이 흐르고 있습니다.
우베 로젠버그의 게임 역시 과거의 혁신에서 조금 멀어졌다고 평가받지만, 적어도 "블랙 포레스트" 속에는 여전히 게임의 본질을 탐구하며 소박하게 담아내려는 그의 진심이 담겨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지나치셨을지도 모르는 블랙 포레스트지만
그곳의 사는 숲의 안내자, 우베 로젠버그는 여전히 많은 이야기를 품고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검은 숲과 우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시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