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말2초 워게임 모임들의 후기 (2)
3. 2월 2일 금요일 - 스코틀랜드의 망치, 파이어 앤 스톤
장소: 서울 곰곰이 보드게임
이날은 제이제이님과 만나서 2인용 워게임을 가볍게(?) 즐겼습니다. 중간에 제가 약속 장소를 착각해서 한강을 한번 건너는 해프닝이 있었지만(교훈1: 남의 말을 잘 귀기울여 듣자;) 무사히 시작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네요.
첫 게임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투쟁을 다룬 'Hammer of the Scots'입니다. 배경을 간략하게 설명해보자면, '스코틀랜드의 망치'는 스코틀랜드를 격파하고 '스코틀랜드의 수호자' 호칭을 받았던 윌리엄 월레스를 붙잡아 죽인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1세의 별명입니다.
스코틀랜드의 던켈드 왕조의 국왕 알렉산더 3세가 후계자를 남기지 못하고 사망하면서 알렉산더 3세의 손녀 마거릿과 에드워드 1세의 아들 간의 약혼이 성립되는데, 마거릿이 사망하면서 모계 쪽으로 던켈드 가문의 혈통을 물려받은 존 베일리얼과 로버트 브루스가 왕위 경쟁을 하게 됩니다. 에드워드 1세는 베일리얼의 손을 들어주고 베일리얼은 스코틀랜드 왕이 되었지만 잉글랜드 왕의 봉신이 되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꼭두각시였죠. 잉글랜드의 간섭을 참아내지 못한 베일리얼이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전쟁을 틈타 전쟁을 일으키자, 에드워드는 봉신의 의무를 지킬 것을 강요하며 스코틀랜드군을 격파하고 베일리얼을 잉글랜드 런던탑에 가둡니다.
이렇게 국왕의 자리가 비게 되고 에드워드가 임명한 성직자와 재무관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면서 스코틀랜드인들이 집단적으로 봉기하게 되는데, 이 봉기의 중심인물이 바로 윌리엄 월레스입니다. 영화 '브레이브하트'의 영향과 현재까지의 역사 내러티브 때문에 '잉글랜드의 압제에 저항한 스코틀랜드'라는 이미지가 무척 강합니다만, 실상은 '우리 좀 가만히 내버려둬라'라는 스코틀랜드인의 집단적 저항에 가깝지 당시에 무슨 일본 식민 치하에 항거하는 한국 이런 느낌으로 민족주의적 의식이 형성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아무튼, 월레스는 스털링 다리 전투에서 잉글랜드군을 격파하고 '스코틀랜드의 수호자'로 선출되었지만, 에드워드 1세가 돌아와 폴커크에서 월레스와 그의 정예 보병대를 박살낸 이후, 여러 차례 스코틀랜드 남부를 공격하고 끝내는 월레스를 잡아죽이는 데도 성공합니다. (1305) 하지만 월레스의 사망이 곧 잉글랜드의 스코틀랜드 정복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는데요, 로버트 브루스가 그 동안 갈등을 겪었던 동료 귀족 존 코민을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올라 브루스 1세가 되고, 에드워드 1세의 사망을 틈타 스코틀랜드 대부분의 통제력을 회복하는 데 성공합니다. 마지막으로 1314년 브루스가 배녹번에서 에드워드 2세의 군대를 크게 격파한 이후, 1328년 에든버러 조약에서 잉글랜드가 스코틀랜드 왕국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하면서 이 갈등은 일단 막을 내리게 됩니다.
제이제이님이 잉글랜드, 제가 스코틀랜드 진영을 맡았습니다. 게임의 승리 조건은 '시나리오 종료 시점까지 더 많은 귀족을 배신시킬 것'입니다. 특별한 문장이 그려져있는 블록들은 귀족이고, 잉글랜드 및 스코틀랜드의 국기가 그려져있는 블록들은 그냥 일반 병종입니다. 잉글랜드군은 기사/보병/궁병 세 가지 병종이 있으며 추가로 웨일스와 얼스터의 군대를 동원할 수 있습니다. (단 얘들은 전투에서 도망가기도 합니다) 스코틀랜드군은 단일 병종이지만 게임에서 '쉴트롬'이라는 옵션을 사용하면 잉글랜드 궁병이 없을 때 추가로 +1 명중 보정치를 받을 수 있습니다.
게임은 기본적으로 서로 5장의 카드를 들고 1장씩 내려가며 진행하고요, 평범한 1/2/3 카드(지역 활성화 수치)와 이벤트 카드가 있어 5장을 서로 다 쓰거나 동시에 이벤트 카드를 사용하면 턴이 종료되고 겨울이 됩니다. 귀족은 전투에서 격파당하면 곧장 상대 진영으로 넘어가고, 겨울에 상대가 자신의 홈그라운드를 밟고 있으면 역시 배신합니다. 따라서 전투 이후의 재배치와 후퇴 역시 신중하게 해야 하는 것이 이 게임의 묘미입니다.
북부를 어느 정도 정리했지만 잉글랜드군이 무섭게 몰려오는 모습입니다. 에드워드 1세의 겨울 숙영(잉글랜드는 원래 귀족을 제외한 자기 병력을 겨울마다 잉글랜드로 되돌려보내야 하지만, 에드워드 1세가 겨울나기를 하기로 결정하면 그 턴에는 다음 턴의 보충을 받지 않고 머무를 수 있습니다)을 써서 병력이 무지막지해졌군요.
이런 상황에서는 자존심을 챙기지 않고 도망가는 것이 이득입니다. 월레스가 A3로 주사위 4개를 굴려 선공하기는 하지만 B4로 주사위 1~4까지 명중하는 에드워드 1세의 능력치 역시 흉악합니다.
열심히 도망 중인 모습입니다.
중간에 잉글랜드군을 거의 격파해서 대승했던 때의 사진입니다. 에드워드 1세를 제외하고 전원을 전멸시킬 정도로 막강했는데 이때의 기세를 이어가지 못해서 아쉽네요.
지도가 뒤집혀져있어서 보기 어렵지만, 중간에 Fife(왕관 있는 곳)와 Mentieth를 점령하는 것이 스코틀랜드로서는 매우 중요합니다. 겨울에 병력을 보충할 수 있는 포인트가 가장 많이 나오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게임은 월레스의 사망, 모레이의 해체 (사실 에러플이었는데 모레이가 겨울에 자기 땅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걸 깜빡했네요...), 그리고 장시간의 게임 끝에 집중력이 풀려 귀족 둘을 일시에 상실하는 바보같은 수를 둔 저의 압도적인 패배로 끝이 났습니다. 역시 처음 플레이하더라도 워게임 경험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수 놓기는 상당히 다르구나 하는 교훈을 얻었네요.
다음에는 오스만 제국의 제2차 빈 포위를 다룬 'Fire & Stone - Siege of Vienna 1683'입니다. 제가 아직 룰을 자유자재로 설명할 수준은 아니라서 룰북을 참조해가면서 진행했네요.
초기 세팅의 모습입니다. 오스만 제국은 맨 마지막 헥스 (제일 반대편에 있는 헥스)를 점령하거나 정 가운데 요새 그리고 좌상단의 요새를 한꺼번에 점령하면 승리하고, 합스부르크는 그냥 버티면 이깁니다 (..) 그 외 조건으로는 상대의 사기가 0이 되거나 상대의 부대 덱이 다 떨어지면 승리합니다.
제가 가운데 요새까지는 뚫고 갔지만 마지막 라운드에서 2장 안에 그 다음 요새를 점령할 방법이 도저히 없어서 GG를 쳤습니다. 마침 업장 영업시간이 끝나기도 했고요.
하면서 몇 가지 익숙하지 않았던 상황을 확실히 숙지하게 되어서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거 같네요. 오스만의 경우에는 참호 파는 행동을 소홀히 하면 안 되고, 특히 대포를 잃지 않도록 하는 게 무척 중요했습니다. 합스부르크는 맵에 있는 모든 대포를 가지고 주사위를 굴리는 반면 오스만은 자신이 전투하는 헥스와 인접한 헥스의 대포만 가지고 주사위를 굴리기 때문에 대포가 적절한 위치에 있는 것도 중요하고, 또 대포를 상실할 경우 이 게임에서 회복할 방법이 거의 없기 때문에 늘 바리케이트로 교두보를 만들면서 진출해야겠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플레이하는 두 게이머가 비슷한 실력이라면 오스만이 조금 더 유리하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4. 2월 3일 토요일 - 1775 레벨리언, 에이지 오브 르네상스(AoR)
장소: 인천 플레이이너프
워게임 캠프에서 처음으로 인천 모임이 열렸네요. 그 전까지 주로 서울 동북권이나 동남권에서 모임이 열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모임 장소의 다변화를 고민하던 차에 캠프에 참여하고 계신 페튼님이 적극적으로 주도해주셔서 인천 모임이 성사될 수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립니다.
본 게임은 13시였지만 진님과 따로 볼 일이 있어 11시까지 플레이이너프에 도착하기로 약속했는데 전날 아시안컵 때문에 잠을 설쳐서 늦잠 자서(정확히는 제 시간에 일어났지만 중간에 다시 잠들어버려서) 택시를 탔습니다. 보고 자기라도 했으면 덜 억울했을 텐데 대표팀의 선전에 신난 이웃 국민들의 함성에 잠을 못 이룬 거라 많이 억울하더라고요. 택시 트렁크에 카트가 잘 안 실려서 꽝꽝 치면서 넣었는데 집에 와서 확인해보니까 애지중지하던 보드게임 케이스에 기스도 나고 안에 든 구성물들이 샐러드처럼 잘 섞여서 슬펐습니다.
첫 게임은 미국 독립전쟁을 다룬 1775:레벨리온이었습니다. 진님이 룰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기본적으로 미국 세력 두 가지, 영국 세력 두 가지(레드 코트와 민병대)를 가지고 전투를 벌이게 됩니다. 2인용으로도 4인용으로도 즐길 수 있는데 카드로 큐브를 움직일 때 자신의 세력만 움직이는 게 아니라는 점 (빨강색 영국 레드 코트 차례에 노란색 영국 민병대까지 같이 움직일 수 있음), 그리고 전투 주사위에 '도주'가 있다는 점이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이 게임도 많이 들어봤지만 별달리 기대는 안했는데 4인으로 하면 더 재밌을 것 같더군요. 특히 자잘한 규칙이 거의 없다시피 한 수준이라 초급 전략게임 혹은 파티게임 레벨의 난이도여서 4명이서 하면 정말 재밌는 상황이 많이 나올 듯 합니다.
게임할 때는 영국 민병대가 너무 많이 도망가서 웃기면서도 괴로웠네요. 그리고 역시 게임은 해봐야 진가를 파악할 수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14시에 모든 인원이 모여서 이 날의 메인 게임이었던 '에이지 오브 르네상스(Age of Renaissance)'를 진행하기로 합니다. 진영은 자신이 가진 초기 자금에서 입찰을 통해 골랐는데 제가 의외로 1등이 되었습니다만 진님과 거만이님이 게임 설명을 해주시면서 '프랑스는 유리하지만 무조건 얻어맞고 시작한다' '함부르크가 가장 불리하다'는 얘기를 듣고 안전하게 베니스를 골랐습니다.
에이지 오브 르네상스는 아발론 힐에서 1996년 발매한 게임인데, 1999년에 Descartes Editeur라는 프랑스 회사에서 독일어/프랑스어 버전을 새로 냈더군요. 이날 게임은 후자의 독일어 버전으로 진행하려다가, 마침 거만이님이 공구하신 AoR 초판을 제가 들고 와서 게임판을 그걸로 바꾸기로 합니다.
재판의 게임판은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예전에 독일어를 배운 적은 있지만 'Stein' 'Or' 'Pelze'를 보면서 게임하고 싶진 않아서...
아발론 힐 초판의 경우 이렇게 'Stone' 'Cloth' 'Grain' 하는 식으로 영어로 적혀있어서 조금 더 편하게 게임할 수 있습니다.
기본 게임 구도는 플레이어 6명이 바르셀로나, 파리, 런던, 제노아, 베니스, 함부르크 6개 세력 중 하나를 골라 문화 기술을 올리면서 자신의 상권을 확장해나가는 게임입니다. 5인으로 할 경우 함부르크, 4인으로 할 경우 런던까지 빼고 플레이한다는군요. 제가 베니스를, 거만이님이 바르셀로나를, 페튼님이 파리를, 로얄님이 런던을, 진님이 함부르크를, 디토님이 제노아를 선택하셨습니다. 룰 설명은 1시간 정도 걸렸는데 처음에는 못 알아들어서 '하다 보면 알겠지...' 하는 마음으로 임했습니다. 처음 해보는 게임에서 바로 캐치하지 못하는 규칙이 있다고 너무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게 좋더라고요. 캠프에서 여러 번 게임해본 결과 게임이 아무리 어렵게 들려도 결국 한 턴을 돌리다 보면 다 감을 잡게 되기도 하고요. 규칙서가 깔끔하진 않아서 각지에서 고스톱 (..) 형식으로 보완 규칙을 만들어서 서로 알고 있는 규칙이 다를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재미있었습니다.
게임 단계는 대략적으로 수입을 받은 다음, 자신의 세력을 확장할 토큰 갯수를 입찰하고 (토큰이 적은 사람이 먼저 턴을 고를 수 있는데, 보통 선턴을 잡습니다), 손에 들고 있는 카드를 사용하고, 배를 구입하고 (더 좋은 배를 살수록 더 먼 바다까지 갈 수 있습니다), 기술을 개발하고, 토큰을 놓고 땅따먹기를 하는 식으로 진행됩니다.
초판의 박스를 찍어보았습니다.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기술을 개발하고 다른 사람이 무엇을 개발했는지 볼 수 있도록 보조 시트가 필요했습니다. 일부 기술은 선결 조건이 필요한데, 예를 들어서 상업 카테고리의 기술들은 앞선 기술을 개발해야 무조건 다음 기술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반면 과학 카테고리의 기술은 앞선 기술을 개발하지 않아도 마지막 '물질법칙'이나 '계몽'을 찍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앞선 기술을 개발할수록 다음 기술을 개발할 때 할인이 붙기 때문에 (예시: '천문학'을 개발하면 Cr 20에 따라 '인체연구'를 개발할 때 내야 하는 비용 Dkt 60에서 20이 차감되어 40만 내고도 개발 가능, '천문학'과 '인체연구'가 모두 있으면 Cr 20+20으로 '물질법칙' Dkt 90에서 40을 할인받을 수 있음) 가급적이면 앞 기술을 개발하고 다음 기술로 넘어가는 게 유리합니다. 또한 기술의 개발비용(Dkt)이 곧 게임 종료 시의 점수로 들어가기 때문에 기술을 잘 개발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카드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자원 카드의 경우 차지하고 있는 땅마다 수입을 주는데 내가 목재 1칸만 차지하고 있는데 남이 5칸 차지하고 있으면 재가 3원 먹으려고 남에게 75원을 상납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제가 맨 처음 뽑았던 카드들입니다. 교황칙령은 일찍 털었는데 조금 더 나중에 쓸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 게임은 핸드 제한이 0(!)이기 때문에 손에 카드를 들고 있는 대로 유지비를 내야 합니다. 유지비는 1장에 1, 2장에 3, 3장에 6, 10, 15, 21... 이렇게 수열로 나갑니다.
포커칩을 사용해서 수입을 계산하고 있습니다.
제가 맡은 베니스로 레반트에서 세력을 확장하는 중입니다. 게임 시작하자마자 디토님이 같은 이탈리아 상인들끼리 잘해보자고 하셔서 음 그것 나쁘지 않지 하고 동방으로 진출 방향을 잡았는데 결국에는 맞부딪치게 되더군요.
제노아가 북아프리카로 확장했고, 함부르크는 큰 견제 없이 흑해 연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파리는 흑사병을 맞은 데다가 '면죄부' (면죄부를 개발하지 않은 플레이어에게 무조건 토큰 2개씩을 뺏어옴) 크리를 맞아서 확장이 어려웠네요.
게임은 주로 화려한 언변으로 사람들의 혼을 뒤흔들어놓으신 디토님의 제노아가 온갖 어그로를 다 끄는 가운데 각자 차분하게 세력을 확장하는 식으로 흘러갔습니다. 레반트의 향신료 지역을 욕심내시길래 예루살렘 기준으로 반씩 갈라먹자고 이야기했는데 끝내 들어오셔서 저도 응징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 외에는 큰 충돌없이 진행했는데 확실히 이런 게임은 말빨이 좋으신 분이 있으면 더 재밌게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향신료(Spice) 있는 지역을 직물(cloth)인 줄 알았다는 거짓말을 표정변화도 없이 하실 때는 순간 2초 정도 정말인 줄 알고 속을 뻔 했습니다.
네모난 토큰을 몇 개 쓸지 정하고 그 지역의 가치만큼 토큰을 올려놓았다면 동그란 디스크를 올려서 자신이 그 지역을 차지했다는 걸 표시합니다. 당연히 지역을 많이 차지할수록 수입이 많이 들어오기 때문에 확장을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하고요, 남의 지역을 공격하고 싶으면 그 지역 가치의 2배만큼 토큰을 내야 합니다.
게임의 점수 얻는 메커니즘을 자세히 알지 못해 상업 게임을 워게임처럼 플레이해서 점수가 다소 낮았네요. 기술 개발을 좀더 열심히 했어야 하는데... 1위인 진님이 함부르크로 1600점을, 거만이님과 로얄님이 1000점을 넘기고 디토님과 제가 800점대를 얻었습니다. 페튼님은 흑사병으로 끝내 회복하지 못해 100점 미만의 아쉬운 점수를 기록했네요. 초반의 흑사병이 그렇게 무서운 것인 줄 처음 알았습니다.
마지막에는 그래도 돈이 많아져서 얼마 쓸지 걱정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마지막 턴이 다 돌고 수입을 계산한 다음 종료하는 시점에는 들고 있는 카드를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했는데 제가 마침 기근 카드가 있어서 모든 비극 지수(게임판 우중간의 Misery Index)를 4칸 올리게 되었네요. 단 곡물 산지를 차지하고 있으면 차지하고 있는 영토당 피해를 1 줄일 수 있어서 거만이님이 기근 카드가 나오기 전에 카드를 대략 세어보시고는 누군가가 기근 카드를 들고 있다! 라고 눈치를 채셨는데 저는 아무 말도 안하고 열심히 남의 곡물 산지를 뺏어먹었습니다.
최종적인 판세의 모습입니다. 저는 과학과 종교 카테고리의 모든 기술을 개발하여 500점, 나머지 기술에서 100점? 가량 얻고 현찰로 230점 정도를 얻었지만 가운데의 Misery Index 수치로 점수가 까여서 840점대를 획득했네요. 게임이 끝나고 돌아보니까 '기술은 개발해도 뺏기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는 진님과 거만이님의 설명이 그제서야 무슨 뜻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영토를 뺏기면 수입이 줄어들긴 하지만 영토 한두 개보다는 기술 한두 개 획득하는 게 점수가 더 크니까 그쪽에 좀더 중점을 두고 게임을 했어야 하는데... 약간 아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만 전체적으로 큰 재미를 느껴서 만족했네요. 다음에 또 AoR을 돌리는 파티가 결성된다면 꼭 참여하고 싶습니다.
거만이님은 프랑스에 흑사병을 너무 일찍 쓴 것과 면죄부에 어그로가 몰리게 한 것(토큰을 뺏어가는 흉악함을 보고 다들 거기로 신경이 쏠렸네요) 항해 카테고리 기술 개발이 미진했던 것을 아쉬워하셨는데 저도 돌이켜보니 게임에서 항해 카테고리를 열심히 개발한 사람이 거의 없어서 이쪽을 먼저 장악해야 했구나! 느꼈습니다. 재미와 아쉬움이 적절한 비율로 느껴져야 다음 게임을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룰 설명을 빼고 3시에 시작한 게임이 9시에 끝났는데 새로 게임을 돌리기는 애매해서 다들 앉아서 이런저런 보드게임 이야기를 가볍게 나누었네요. 이전 게임과 요즘 게임의 재미포인트가 다르다는 것 (이전 게임은 느끼는 재미가 어떤 날은 1일 수도 있지만 어떤 날은 9일 수도 있고, 반면 요즘 게임은 기본적으로 7 정도는 보장해주지만 거기서 벗어나진 않는다 / 요즘 게임은 어떻게든 뒤처지는 플레이어라도 살아돌아올 수 있는 기반을 주지만 이전 게임은 죽든 말든 가차없다)을 비롯해서 COIN 시리즈나 18XX, 로마 공화국, 몇몇 나폴레옹 관련 게임, 최근의 펀딩 등이 대화 주제였습니다.
집에 들어와보니 12시가 넘어서 정말 긴 하루였네요. 늦잠 자고 (다시한번 아시안컵을 원망해봅니다) 먹은 것도 없이 커피랑 쿠키로 칼로리 보충해가면서 10시간 게임하고 앉아있어서 등짝을 맞았습니다만... 야식을 잔뜩 차려서 (평소 끼니의 2배 정도 되었음) 순조롭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늦잠을 잤습니다.
다들 귀한 시간 내서 와주신 것도 감사했고, 새로 좋은 아지트를 발견하게 된 점도 좋았고, 캠프에서 이렇게 긴 시간 게임을 한 것도 오랜만이라 좋았고, 그 동안 식어있던 구매 욕구도 새로 여러 게임을 접하게 되면서 다시 서서히 불이 붙기 시작하네요 (..) 하필 잔고가 텅텅 빈 기간이라 일단은 리스트로 만족해야겠지만요 (ㅠㅠ) 올해는 책장에 잠들어있는 게임들도 반드시 모두 돌리리라 다짐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