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에르토리코의 짚고 긴한 향기. 커피 트레이더스
여러분은 푸에르토리코라는 게임을 해보신적이 있습니까? 2002년에 출시가 되어서, 수년간 보드게임긱 랭킹 1위를 차지했던 당시에는 초신성 같은 작품 이였습니다. 이 게임의 깔끔한 엔진빌딩과 눈치싸움이 필요한 점수테크, 그리고 액션을 다 같이 한다는 혁신적인 진행 방식은 이 게임을 아직도 살아있게 만드는 주요한 요소들입니다. 이번에 새로나온 ‘커피 트레이더스’라는 게임은 저 세 요소를 따른다는 점에서 푸에르토리코의 정신적인 계승작이라고 생각합니다. 푸에르토리코 역시 나름 커피가 유명한 곳이기도 하구요.
이 게임은 긱 웨이팅 4.2점을 자랑하는 엄청 무거운 유로전략게임입니다. 하지만 규칙이 많고 규칙서의 문제로 복잡하게 느껴질 뿐, 플레이 경험은 굉장히 유쾌합니다. 점수를 쥐어 짜내기 위해 수많은 변수들을 고려해야 하지만, 게임 자체는 우호적인 인터액션으로 가득 차있고, 그 때문에 전략을 시시때때로 수정하는 전술적인 플레이가 요구되죠.
개인판에서는 여섯 페이즈로 진행단계를 구분하고 있지만, 사실 플레이어가 실제로 플레이를 하는 구간은 세 페이즈라고 보시면 됩니다. Work Phase, Trader&Constructor Phase, 그리고 Harvest Phase/Contract Phase 이렇게 세 구간으로 크게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각 페이즈에는 할 수 있는 액션들이 정해져있기 때문에, 머리가 아플 일이 없습니다.
Work Phase는 이 게임의 근간인 커피원두를 직접 재배하기 위해 플랜테이션을 만들고, 농부를 분배하는 등의 행동을 하게 됩니다. 일꾼을 돌아가면서 배치하고 액션을 하지만, 액션 선택에 있어서 선점이라는 개념은 없습니다. 그냥 이 때 할 수 있는 네 가지 액션 중에 원하는 것을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대부분의 액션에는 비용의 소모가 없기 때문에, 부담 없이 하고 싶은 액션을 다 할 수 있죠.
흥미로운 규칙이 있는데, 이 플랜테이션에는 농부가 존재해야만 자원을 생산하고, 그 지점에서 플레이어의 영향력을 높여준다는 것입니다. 이 농부는 어떻게 분배할까요? 농부 분배 액션을 통해서 ‘비어있는 플랜테이션 색깔마다 하나씩’ 농부를 배분하는 겁니다. 그리고 다른 플레이어의 플랜테이션에 농부를 배분해주면서, 그 지역에 대한 지식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이득을 얻게 됩니다.
그 외에도 고지대에 플랜테이션을 건설하기 위해 필요한 당나귀를 얻거나, 돈이나 조커로 사용될 루왁 커피를 생산하는 사향고양이를 배치하는 등의 액션들도 존재하는 Work Phase가 끝이 나면, 이제 이 게임에서 가장 유쾌한 Trader&Constructor Phase로 진입하게 됩니다.
이때는 자신의 색깔을 가진 별도의 일꾼을 메인보드에 배치하는 액션을 하게 됩니다. 이 페이즈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일꾼들은 두 가지 역할중 하나를 담당하게 되고요. 앞에서 열심히 일궈놓은 플랜테이션에서 생산되는 커피원두를 구입하거나, 혹은 그 지역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 건물을 짓는 것이죠.
그러나 그걸 평범하게 진행하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특정 지역의 커피원두를 사기위해 돈을 내고 자신의 일꾼을 배치합니다. 그럼 순서대로, 그곳에 ‘공짜로, 같이’ 자신의 일꾼을 배치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만일 앞에서 공간이 다 차서 못 들어가게 된 플레이어는 대신 돈을 받습니다. 만일 건물을 짓기 위해서 돈을 내고 건물을 지었다면, 역시 다른 플레이어들도 순서대로 원하는 곳에 원하는 건물을 건설할 수 있습니다. 대신, 그때는 처음 건설액션을 발동시킨 플레이어에게 커피원두 하나를 주어야합니다.
둘 다 진행방식이 같아 보이지만, 결과는 정 반대로 나타납니다. 커피원두 거래의 경우 따라 들어오는 플레이어가 적을수록 유리합니다. 그곳에서 생산되는 원두를 따라 들어온 플레이어들과 나눠서 가져가거든요. 하지만 건물 건설의 경우엔 건설을 선택한 플레이어는 따라 들어온 플레이어들에게서 커피원두를 받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 거래나 건설을 판단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심지어 자신의 차례가 되었는데 돈이 없다면, 아무런 액션도 선택하지 못하고 패스를 해야 합니다. 물론 패스를 했다고 이번 페이즈에서 완전 빠지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가 연달아 패스를 하게되면 해당 페이즈는 종료됩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둘만 남은 상태에서 서로 돈이 없다면 눈물을 머금고 남아있는 일꾼을 그냥 버려야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죠. 마찬가지로, 다른 플레이어의 액션을 공짜라고 그저 따라가기만 하면, 그 역시 일꾼을 소모하는 액션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나에게 진짜 필요한 액션을 못하게 될 수 있습니다.
Harvest Phase/Contract Phase에서는 이렇게 열심히 구입하고 건물을 통해 받아온 커피원두들을 직접 시장에 팔거나, 혹은 계약을 달성하게 됩니다. 계약서는 처음에 주어지고 시작하므로 각자가 알아서 하면 될 일이지만, 시장은 그렇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해당하는 자리에 먼저 커피원두를 납품하면 닫혀버리는 구조죠. 시장은 적은 커피원두로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는 수단이 되며 또한 해당 지역에 가장 많이 납품하면 추가 점수도 있습니다만, 계약서는 대신 더 큰 점수와 장기적인 혜택을 줍니다.
이렇게 3 라운드가 끝나면 게임이 종료되고 최종점수를 계산합니다. 점수는 아주 여러 가지가 있지만, 크게는 마일스톤, 각 지역별 영향력 점수와 건물 점수, 그리고 계약서와 시장 영향력 점수가 그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다른 플레이어와 경쟁을 하면 할수록 불리해지므로, 적당히 눈치껏 경쟁이 없는곳을 찾아서 점수를 뽑기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다시 푸에르토리코 얘기를 좀 해보죠. 저는 이 게임의 시스템들이 굉장히 유쾌하고 즐겁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후에 제작되는 게임들은 점차적으로 상호 배타적인 인터액션으로 변하거나, 심지어 인터액션이 점점 사라지는 방향으로 나아갔죠. 상대방의 핵심 액션을 짜르기 위해서 특정 액션을 선점하면서 불유쾌한 공격성을 드러내거나, 다른 플레이어가 뭘 하는지 관심도 없이 개인판만 바라보는 것이 현대 전략 유로게임들의 대표적 특징이 아니겠습니까.
이해는 갑니다. 게임의 시스템이 점점 복잡해짐에 따라 인터액션에 비례해서 밸런스를 잡기 힘들어지고, 플레이어들은 점차적으로 자신의 계획이 달성되는 퍼즐 자체를 즐기게 되었으니까요. 그럼에도 이런 방향이 보드게임이라는 구조물의 특성과 잘 맞아 떨어지지는 않거든요. 혼자할거면 컴퓨터게임을 하죠.
그런 지점에서 커피 트레이더스는 푸에르토리코의 정신적 계승작이라고 느꼈습니다. 복잡한 퍼즐을 풀어가면서 엔진빌딩을 할 필요 없는 직관적인 시스템과 점수체계, 상대방이 뭘 하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지켜봐야하는 강력하지만 나에게 이득이 되는 인터액션, 그리고 그런 것을 구현할 수 있게 만든 다같이 액션을 따를 수 있는 방식까지 말이죠. 이런 유로전략게임이 앞으로도 더 많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이 리뷰는 MTS의 시연 체험회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이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들의 출처는 boardgamegeek.com 에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