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글] 2012 푸에르토 리코 두 달 동안의 리그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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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25 16:24

2012년 즈음에 다이브다이스에 걸어뒀던 글인데, 문득 떠올라서 찾아 읽다가 가독성의 개선 및 약간의 야부리(...)를 첨가해 올립니다.

이 글 볼때마다 푸코 하고싶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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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작

때는 바야흐로 2012년 노량진에서 자취하던 때, 대한민국의 어느 자취생이 안그러겠냐마는 당연하게도 제 집은 친구들의 아지트가 되어버립니다.

일주일에 세 번을 모여서 술을 마시던 네 얼간이(...)들은 너무나 이빨을 털어댄 나머지 서로의 충치 개수까지 파악할 정도가 되었고,

먹이를 찾아 헤매이는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제 방을 스캔하던 친구 하나가 당시 슬금슬금 사모으던 보드게임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아그리콜라나 팬데믹, 어콰이어를 몇 판 정도 해 보았는데, 재미는 있지만 너무 호흡이 길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라는 갤러리들의 피드백을 받아 새 게임 구매를 결심하게 되죠.

그 때 찾던게 바로 푸에르토 리코입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죄다 품절이라 구할 수가 없는데, 강동 쪽 토이저러스에서 39800원에 판매하던 글을 보고 홀린 듯 가서 구매해옵니다.

2. 적응기
사실 아콜이랑 어콰이어에서 큰 호응을 못 본 터라 조금 걱정했는데,

친구 한명은 원래부터 좋아하던 게임이었고(이후 안경으로 칭합니다)
다른 친구 한명이 쪼끔 시큰둥하긴 했지만(이후 과대로 칭합니다)
나머지 한명이 안경따라 쿨 OK를 때립니다.(이후 구걸로 칭합니다. 아콜만 하면 구걸이거든요)

며칠의 게임 후,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습니다.

이러한 갓겜을 왜 이제야 사왔느냐, 저기 쌓여있는 저 보드게임같이 생긴 쓰레기들은 뭐냐, 침대에 너 대신 푸코를 재워라 등등의 찬사 가 끊임없이 이어졌죠.

1등은 인디고 타일을 안준다거나, 시청 보너스를 전체 점수에 먹인다거나 하는 괴랄맞은 에러플을 겪으며 게임에 슬슬 적응 될 무렵,

...제가 독보적으로 뒤쳐지게 됩니다.
보통 3등 아니면 4등을 했는데, 네명이 하면 4등, 세명이 하면 3등을 하더군요. (2021의 아줄3의 평행우주인가 싶습니다.)

그리고 만나기만 하면 "야 넌 연습좀 했냐?" 부터 "이럴시간에 가서 연습이나 해" 등등의 주인으로서 견디기 힘든 치욕의 나날을 보내던 중 참지 못한 제가 일을 저지르고 맙니다.
"이 잡것들아 너네가 그렇게 겜잘알임? 우리 이제 레이팅을 도입하자. 나보다 점수가 낮은 놈은 단언컨대 나에게 죽빵을 날리게 될 것이야. 내가 치욕과 모욕과 수치를 세트로 안겨줄테니까."

그리고 협의 후에 구체적인 레이팅제도를 도입합니다.
100점 기준 등수 순서대로 4인플시 +2, +1, 0, -1점을, 3인플시 +1, 0, -1 이렇게 하기로요.
자리배치는 가위바위보 승 순서대로 앉으며 가위바위보 승자가 자신의 희망 차례를 정한다.
즉 가위바위보 우승자가 자신은 꼴찌를 하겠다고 선언한다면 우측 사람이 선이 된다.

그리고 그들의 푸에르토 리코 초대 리그가 드디어 열리게 됩니다.

3. Early War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삼일 후 제 레이팅은 97... 바로 위였던 안경과 과대가 101.5와 102로 투닥거리는데.. (당시 구걸은 기상천외하게도 106을 달립니다. 미스테리에요.)
치욕을 되갚고자 저질렀던 리그는 저에게 조마무, 풀어서 조공하는 마이너스 무한대 라는 새로운 별명을 안겨주었고,

스스로 불러온 재앙인 이 빌어먹을 레이팅 시스템에 온갖 저주를 퍼부으며 심지어 몰래 팔아버리려는 생각을 하기까지 이르릅니다.

그리고 다이브 다이스 중고 장터에 글을 올리려고 로긴 한 순간 머릿속에 회의감이 들더군요.

'마지막으로 다다 유저분들께 훈수를 부탁드리자, 지금 남에게 머리를 숙이기 싫다는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그냥 팔아버린다면 난 최소 3년간 본명 대신 조마무라고 불리울 것이다.'

그리하여 다다에 글을 올리고(아직도 자게에 저의 절박함이 묻어나는 글이 살아있습니다)
이를 빠득빠득 갈며 많은 조언들을 탐독하게 됩니다.

4. Middle War
이 시기동안 모두들의 플레이 스타일이 확정됩니다.
안경은 특출난 가위바위보 실력으로 항상 3~4등을 차지하여 이를 토대로 콘을 확보해서 수출해나가는 플레이를
구걸은 뭘 하는지 모르겠지만 끝나면 1등인 신의 기적같은 빌드를,
저역시 뭘 하는지 모르겠지만 반대로 끝나면 꼴찌하는 정석적인 빌드를
그리고 과대는 게임종료를 끌어당겨서 남들 발목잡는 플레이를.

안경과 구걸의 플레이 스타일은 이 후에도 바뀌지 않고 저는 다른 분들의 조언을 보고 선적은 자신없다 란 생각 끝에
멤버 내에서 공장제 수공업 건물을 이용, 여러종류의 작물을 생산해 돈을 땡기는 빌드를 선보이며 레이팅을 천천히 끌어올립니다.
-이 전에는 주로 대규모농장/영업소를 통해 생산을 끌어올리고 어거지로 팔아제끼는 플레이가 성행했어요.

그리고 3인플을 하던 어느날 ,과대가 갑자기 숙박소/대학을 이용해 이주민을 억지로 땡겨오고 요새로 득점하는 인신매매 빌드를 도입합니다.
그날, 우리시대 구직난을 보는듯한 과대의 보드 위의 수많은 이주민들과 그에 반비례해순식간에 바닥나 버리는 이주민 풀을 보면서 경악에 찬 저와 안경을 비웃으며
과대는 1점이라도 더 높게 이겨보겠다며 시장을 안고르다가 꼴찌를 해버립니다.

5. Late War
안타깝게도 이날 이후 과대는 쇠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우리는 인신매매의 말로는 정의구현이다는 평가를 내렸습니다.)
항상 압도적으로 치고나가지만, 끝내는 타이밍을 못맞춰서 저순위에서 벗어나질 못하던 과대는
드디어 저에게 점수 조공을 하고 98점의 레이팅으로 좌천됩니다. 그리고 새로운 마이너스 무한대가 되지요.

한편 구걸은 여전히 109점대의 레이팅을 유지하며 심해에서 아옹다옹거리는 미천한 것들을 바라보고 102~103점대에서 저와 안경의 피튀기는 혈전이 벌어집니다.
어느날은 구걸이 "난 오늘은 점수 조공좀 할래." 라면서 진짜 대충 했는데 끝나고 나니까 1등이더군요.

아무튼 Late war 말기이자 우리만의 푸코리그 시즌1이 끝나가는 지금
구걸(111)-안경(104)-저(102.5)-과대(98)로 여전히 재밌게 놀고 있습니다.
아마 일이주 내로 시즌1 명예의 전당에 구걸이 올라가겠네요.
이놈은 아그리콜라만 하면 구걸카드 두장은 기본으로 챙기면서 이건 왜 이렇게 잘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희들 사이에선 손은 정말 눈보다 빠른가 라는 주제에 대한 이야기가 흉흉하게 돌고 있어요.

6. 푸에르토 리코
하면 할수록 느끼는데 정말 재밌네요.
보통 웬만한 게임은 하다보면 슬슬 지겨운데, 오히려 하면 할수록 불이 붙습니다.
인원수에 따른 플레이스타일이 전혀 다른것도 신선하고, 매 게임 상황이 항상 달라진다는것도 대단하며
적절한 전략, 전술, 견제, 성취감을 두루 갖추고 있으면서도, 플레이타임은 40분 남짓이며 룰을 익히기도 어렵지 않은 게임이더군요.

학생시절에 멋모르고 했을땐 몰랐는데 어느정도 많은 보드게임을 구매해보고 플레이 해본 지금 다시한번 푸코의 대단함을 느껴봅니다.
...덕분에 푸코를 이은 다음 게임의 구매에 매우 난항을 겪고있지만요.
곧이어 시즌2에는 저도 110점 가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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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저 시점으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도, 저희 멤버에서 가장 모욕적인 언사는 "이런 채석장같이 생긴 놈" 입니다. 나름 네 명의 청춘에 한 획을 그은 게임이 되어버렸네요. ㅋㅋㅋ

그래서 그런지 제 게임중 유일하게 새거를 샀음에도 플텍 없이 라면국물 및 과자 부스러기 자국 막 물들어가며 너덜너덜해졌음에도 절대 팔고싶지 않은 게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