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가지 후기 + 밴쿠버 라이프 (스압)

1,219 조회

2018.05.30 08:13

생각나는대로 적는 여러가지 이야기 입니다. 시간도 뒤죽박죽. 내용도 생각나는대로. 그냥 물 흐르듯 생각의 흐름에 따라 썼으니 가볍게 읽으시길.

최근 구작을 하나하나 천천히 해보고 있습니다. 새로운 게임만 보느라 옛 게임을 등한시 하기도 했고... 매번 새로운 게임의 룰북을 읽어야 하는게 꽤 피곤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모임원들과 여러가지 클래식 게임을 해보았는데 그 중에 가장 인기가 높은건 테라 미스티카 입니다. 호불호가 강한 게임이라 생각했는데 다행히 모임원 중 절반에 가까운 사람이 테라 미스티카에 큰 호감을 나타내더군요. 저는 테라를 혼돈술사로 배웠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가장 피토하게 어려운 종족이 이 녀석이라고 하더군요. 자연스레 종족간의 밸런스에 대해 의구심을 품게 되었고, 테라에 대한 인상이 꽤나 나쁘게 박혔죠. 그러나 다양한 종족을 해보니 고유한 개성이 잘 살아있는데다 운의 개념이 없어 실력을 갈고 닦을 수 있는 점이 좋더군요. 지금까진 3~4인플만 했는데 이제는 다들 5인플을 기대하는 눈치예요. (이제보니 마지막 라운드에 가림 토큰을 엉뚱한데 올려놨군요. 실제론 게임을 진행할 때 라운드별로 점수 조건을 다 설명했습니다. 누군가 우측에 있는건 뭐지.. 하고 옮겼다가 그대로 방치했나봐요 ㅋㅋ)

제 모임은 13명의 정규멤버가 있습니다. 다들 바쁘다보니 (그리고 후술할 밴쿠버의 봄 때문에) 현재 참석률은 약 40% 정도 되네요. 4~6명이 꾸준히 모이기 때문에 때로는 같이, 때로는 반으로 나누어 취향에 따라 파티/유로 게임을 즐깁니다. 그리고 모임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1~2명의 게스트를 초대하는 방식으로 모임을 운영하고 있지요. 게스트의 경우 제가 직접 담당하며 하나비, 스플렌더, 카탄 등을 시작으로 취향을 세밀하게 살피며 적합한 게임을 소개해줍니다. 신경을 많이 쓰는데다 모임원들 모두 게스트를 살뜰히 챙겨주어 그런지 모임에 대한 평은 대단히 좋은 편입니다. 모임 첫 참가 당일 정규 멤버로 들어가고 싶다고 어필하는 분도 계시거든요.

다만 그 절차란게 여간 쉽지 않은게 단점 입니다. 모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조화이거든요. 괜찮은 멤버가 될거라는 생각이 들면 누구나 추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함께 토론을 하고 무기명 온라인 투표를 통해 반대 의견은 없는지 확인합니다. 1명이라도 불편해 하는 사람이 있다면 좀 더 지켜보지요. 이 규칙은 가족에도 적용 됩니다. 당연히 모임장인 제 자신에게도 적용되는 규칙입니다. 멤버의 가족을 다 받아주면 제 통솔 가능 범위를 벗어나거든요.

"게임 모임치곤 너무 빡빡하다" 싶을지 모르지만, 수 많은 사람이 오고 떠나는 밴쿠버의 특성상 가능한 오래도록 긴 인연을 만들고 싶다는 모두의 바람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모임에 들어오게 되면 서로 정말 잘 챙겨줍니다. 모임의 막내의 경우 평소 굶지 말라고 형/누나들이 식사를 챙겨주거나, 체력이 부족하면 함께 운동을 하거나, 모임원끼리 서로 스터디 그룹을 만들거나, 비슷한 전공끼린 정보를 공유하고, 안좋은 일이 생기면 서로 알아봐주고 경험담을 공유하는 등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거든요.

덕분에 지난 1년 반동안 단 한번의 작은 다툼이 있었을 뿐 멤버간의 내부분열은 전혀 없었습니다.

최근 와이프와 페이퍼백이란 덱빌딩 카드 게임을 열심히 즐기고 있습니다. 알파벳 카드를 이용하여 단어를 만들고, 그렇게 만든 단어로 뽑아낸 점수를 가지고 새로운 알파벳 카드를 사오는 방식인데요. 경험이 풍부한 제가 단어를 보여주며 간접적으로 단어를 익히게 도와주고, 아내의 뜬금 조합은 이의제기(...)와 함께 사전을 살펴보는 식으로 게임을 진행합니다. 뜬금없는 단어가 사전에 등록 되어있는 경우도 많아 저 또한 단어를 배우게 되더라고요.

아내 : "흠... Ma...ser!"
너굴 : "그게 뭐야 ㅋㅋㅋㅋ 메이저(major)는 jor 이야. 그런 단어가 어딨어"

아내 : "나도 몰랔ㅋㅋㅋㅋ"
너굴 : (검색 중) "......분자증폭기 라는데?"

아내 : "거봐 단어 맞네! 인정하지?"
너굴 : "...인정. 그치만 좀 더 평범한 단어를 만들어 봐 ㅋㅋㅋㅋㅋ"

어휘량이 있다보니 언제나 제가 승리하긴 합니다만 점차 점수가 높아지는 아내를 보면 확실히 단어 습득량이 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좋은 게임이예요. 가지고 있는 도미니언 시리즈를 팔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상술했 듯 밴쿠버엔 봄이 찾아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터에 나와 뛰어놀고 캠핑을 즐기지요. 공원 여기저기에 설치된 분수에는 아이들이 모여 꺄륵꺄륵 거리며 뛰어놉니다.

맛있는 바베큐는 기본!

이렇게 여러 야외활동이 가능해지는 시즌이기 때문에 모임 참석률이 제법 떨어지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모임에 오지 않는다고 해서 참석을 장려하진 않습니다. 단체로서의 삶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삶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모임의 조화를 깨뜨리는 사유(험담 및 내부분열 조장)가 아니고선 특별한 이유 없이 1년 가까이 잠수를 타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되려 매주 모임에 참석하는 사람들에게 "야외에 나가서 놀아요. 나야 모임장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왜 계속 모임에 오는거야." 라며 개인의 삶에 더 신경을 쓰라고 압박을 줍니다. "원하면 말해요. 카지노처럼 입장 금지 걸어줄테니까." 하고 장난을 치고요.

둘이 함께 퍼즐을 맞추는 협력게임 라보카군요. 이 게임을 3~4년전에 산거 같은데... 타이머의 배터리가 아직도 살아있습니다 -_-; 진짜 오래가네요.

최근 모임에서 핫한 게임을 하나 고르라면 인디언서머가 아닐까 싶어요. 게임의 난이도, 퍼즐의 복잡성, 얕은 인터랙션 등 제겐 아쉬운 점이 제법 있는 게임이었으나... 공격적인 멤버들과 함께 하니 게임의 분위기가 크게 달라지더군요. 도토리를 10개 가까이 모아 한번에 다람쥐를 추가해버리는 독특한 전략, 틈만 나면 남의 블럭을 뺏어오는 버섯 러쉬, ㅗ 타일을 두개 들고 다른 플레이어들을 향해 ㅗ-_-ㅗ 하고 뽀큐(...)를 날리는 멘탈 공격 등 다양한 양상이 나오더라고요. 제겐 나쁘지 않은 정도의 게임이었으나, 무언가 알 수 없는 매력이 조금씩 커지고 있는 느낌 입니다.

봄이 찾아온 만큼 회사에서도 다양한 야외 활동을 장려합니다. 옥상에다가 식물(허브, 채소, 과일, 꽃)을 심어서 정원을 꾸며요. 이렇게 키운 작물은 매달 1번씩 있는 BBQ겸 전체 회의에서 식재료로 소비 됩니다.

약 1달전에 찍은 사진이라 흙을 고르게 뒤섞는 모습인데요. 지금은 작물이 상당히 많이 자랐답니다.

밴쿠버는 흔히 '지루한 도시' 라는 평이 많은 편입니다. 한국과는 달리 트렌드에도 늦는데다 유흥거리가 크게 부족하기 때문인데요. 잘 살펴보면 정말 다양한 활동을 즐길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밴쿠버 선런(10km 달리기)가 있네요. 매년 약 4만명이 참가하는 이 대형 이벤트에 아내와 함께 참가 했습니다. 평발이다보니 40분쯤 뛰니까 발바닥이 불이 나더군요. 그래도 중간중간 밴드가 음악을 연주하는걸 구경하거나, 관객이 낚시줄에 매달아 흔드는 슈퍼마리오 박스를 점프해서 쳐보는 등 고통을 잊을 수 있는 요소가 많아서 재밌어요. 내년에도 참가할 생각입니다.

마라톤이 끝나고 난 뒤 귀가하다가 발견한, 흔하디 흔한 공룡 2마리 입니다. 저걸 입고 마라톤을 뛰었나봐요.

절대로 귀찮아져서 사진을 넘긴게 아닙니다. 그냥 모임원들 + 게스트들과 어떤 게임을 즐기는지 묶어서 보여드리는 거예요(진짜로!).

사실 이런 게임은 클래식을 돌아보려는 저 스스로를 위한거기도 하였지만 게임에 익숙치 않은 게스트를 위함이기도 했습니다. 모임원들은 어쩌다 끌려들어와 함께 하는 일이 왕왕 있는데... 경력이 제법 쌓인 모임원들에겐 안먹힐 줄 알았어요. 그러나 이게 웬걸. 의외로 호응이 좋더군요. 다들 참 좋아하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클래식보다 신작이 낫다'는 고정관념 같은게 있었나 봅니다.

이런 게임들은 너무나 클래식 하다는 이유로 등한시 되는 경우가 많은데... 신작 홍수에 지칠 때, 열정이 사그라들 때, 무엇을 해도 재미가 없을 때 한번쯤 다시 해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보드게임을 막 접했을 때의 열정 + 흥미 + 재미가 새록새록 떠오르거든요.

마지막 사진은 친구들과 열심히 카약을 즐기고 있는 아내 시점의 사진입니다. 전 열심히 일하고 있었지만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