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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게임은 첫째도, 둘째도 무조건 첫 인상이 제일 중요한것같습니다.

1,738 조회

2015.09.09 16:06

<내가 첫 인상을 구겨, 지금까지도 플레이하기 꺼려하는 하나비>

물론 어지간한 보드게이머분들 대부분 사람좋아하고 어울리는것 좋아하고 밝은분들이란걸 알고있지만,

아주 오래전, 보드게임 번개모임 몇번 나갔었을때 거기 유난히 신경질을 많이 내는 분이 한분 있었습니다.

뭐 너무 오래전일이라 기억도 잘 안나는데, 그때는 사실 제가 보드게임에 입문한지도 얼마 안됬고

모임에 나가본적도 없어서 긴장을 많이 하고 있는 와중에 누군가가 가져온 하나비라는 보드게임을 돌렸었죠.

근데 제가 처음이라 너무 서툴고 룰도 잘 몰라서 그리고 막 카드도 이상하게 알려주고 하튼 협력이 안되는 일이 있었는데,

그분이 유난히 한숨을 푹푹 쉬고 신경질적으로 "어차피 이 판 망했는데요 뭐. 빨리 엎고 가죠." 라거나,

저에게 "아 진짜 협력게임에선 이러면 안 되면 모르세요? 이러면 게임 다 망치잖아요." 이런식으로 계속 쏘아대서 처음엔 저도 죄송하다 미안하다,

제가 보드게임 완전 생 초짜라 메커닉도 잘 모른다 미안하다 어쩌고 저쩌고 최대한 정중히 변명아닌 변명을 하다가

나중엔 슬슬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고, 결국 그 뒤로 보드게임 번개를 안나갔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하나비는 그때 첫 인상을 너무 망쳐서 그런지, 아직까지도 누가 하자고 하면 절대 안하는 게임이 됬습니다.

그 신경질적이었던 그분의 공격적인 잔소리가 벌써부터 들리는듯한 기분이라서 몸서리부터 쳐집니다.

전 보드게임을 하면서 그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고싶지는 않았습니다.

일에 치이고 일상에 치이는 와중에 제 유일한 취미에서까지 스트레스 느낄 필요따위가 어딨겠습니까만은..

시간이 오래 흐르고, 제가 누군가에게 보드게임을 가르쳐줄정도의 실력이 되었을때 저도 한번 무심코 답답함에 신경질을 좀 낸 적이 있습니다.

아그리콜라라는 게임이었는데, 그때 그 친구가 룰을 확실히 이해하지못한채로 자꾸 실수를 너무 많이 남발하길래

제가 "야, 너 왜 이렇게 룰 이해를 못 하냐, 입 아퍼 죽겠다."라고 핀잔을 준거죠. 어차피 실수하는건 제가 아니라 그 친구였는데,

어려운 룰에 자신의 농장을 엉망진창으로 꾸미는게 답답해서 말했던겁니다. 그리고 그 친구는 그 다음 액션부터 제 눈치를 보기 시작했죠.

이거 이렇게 하면 좋은거지? 지금은 소가 아니라 양을 가져오는게 더 낫겠지? 이런식으로 물으면 제가 "거기서 그걸 왜 가져오냐" 라고

답답한 마음에 말을 하니, 친구는 또 기가 죽어버려서 제 말대로 하게되고..

경쟁게임인데, 협력처럼 보이는 이런 말도안되는 게임으로 흘러가버렸죠..

뭐 어찌저찌해서 게임은 끝났고, 저는 제 나름대로 나쁘지 않은 게임을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에는 말이죠."

그리고 또 오래 시간이 흐르고, 제가 그 친구에게 아그리콜라를 하자고했는데 그 친구가 기겁을 하는겁니다. 절대 싫다고.

그 친구와 아그리콜라보다 더 어려운 보드게임들도 소화했는데, 왜 이거는 하기 싫냐. 예전에 우리 이거 같이 했잖느냐라며 물었지만

처음에는 싫다싫다 내빼다가 나중에는 저에게 "어차피 너가 하라는대로만 하게할거잖아" 라고 말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제서야 생각났죠, 아 내가 이 친구에게 아그리콜라에대한 이미지를 망치게해버렸구나.

저는 그때 그걸 화낸거라고 생각도 안했고 그냥 답답한마음에 으이고~ 하면서 장난식으로 넘어간것같았는데

그 친구는 그때부터 그 게임을 플레이하는데 스트레스를 느꼈던겁니다. 전혀 제가 몰랐었던거죠.

보드게임은 보드게임 그 자체로 즐거워야되는데, 제가 그 친구에게 무심코 스트레스를 주면서 플레이를 했으니

그 친구가 아그리콜라를 기겁하며 싫어했던건 어찌보면 당연했던겁니다.

참 그때 많은걸 느꼈었네요, 저도 하나비를 플레이하면서 계속 그분의 눈치를 살폈고 식은땀까지 흐르면서 또 방해가 되는건 아닌가 하며

마음졸이면서 플레이하다보니 게임이 재밌지가않고 제발 좀 빨리 끝나라, 아니면 강풍이라도 갑자기 풀어서 판이 엎어져버려라 이런식으로

마음속으로 읊으며 플레이 했었으니까요.

그 일이 있고난 뒤, 저는 보드게임을 할때, 혹은 누군가에게 설명하는 위치에 와 있을때는 철저하게 상대에 맞추어드리려고 노력하게 바뀌었습니다.

저때문에 이 게임에 트라우마를 심고싶지는 않았거든요. 어차피 제가 A라는 게임을 100판 돌려봐서 룰을 달달 외우고 있다손치면

이 게임에 입문하는 사람이랑은 200판이상의 실력차이가 나기 마련입니다. 당연히 그 갭에서 답답함은 물론이고, 나아가 신경질적인

짜증도 날 수 있지만 그래도 보드게임을 하는 그 상황 자체를 즐기기로 바뀌었었죠.

저는 보드게임을 할때 이기면 승패에 그닥 연연하지 않습니다. 원래는 승부욕이 정말 쓸데없이 강했었지만, 그래도 그때 그 일이 저에겐 꽤 충격이었거든요.

그러다보니 언제부터인가 승부욕은 거의 없어지고, 보드게임을 사람들과 웃으면서 할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재밌다라는걸 느끼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입문자에 대한 이기적인 기대치도 줄였습니다.

말 그대로 그 사람 액션때는 그 사람에게 온전히 맡기게 하는거죠. 악 수를 두었다해도 허허 웃으며 넘어 갈 수 있고,

협력게임때 모두에게 피해를 주었다해도 "아 방금 그 액션은 잘 하시긴 했는데, 지금같은 상황에선 ~가 조금 더 나은데 다음엔

이렇게 하는건 어때요?" 이런식으로, You must가 아니라 Would you kindly? 식으로 설명하는 버릇도 기르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특히나 시간이 가면 갈 수록 같이 플레이 할 사람 한명한명이 천금처럼 귀해지는 시기라 더더욱..? ㅎㅎ..

보드게임은 언제나 첫 인상이 최고인것 같네요.

첫 인상이 망쳐지면 자칫, 보드게임 입문자들에게 보드게임은 정말 두번 다시 상상하기싫은 최악의 놀이로 바뀔 수 있을테니까요.

그리고 그 사건은 저에게 있어 아직도 최악의 실수로 남아있습니다.

여러분도 모임같은데서 느낀 불쾌감같은게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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