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1989

Dr. KOSin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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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31 오전 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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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1989 번역을 다시 진행했습니다. 황혼의 투쟁 스핀오프로서 나온 지가 어언 7년인데 (정식 발매는 약 2년) 아직 아무런 자료도 없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저도 자료 아직 완성하려면 멀었지만요.

50년 냉전 전체를 관통하는 황혼의 투쟁 시스템의 많은 부분을 이어받고, 시간과 장소를 1989년 동유럽으로 옮긴 게임입니다. 소련에게 버림받고 무너져가는 권력을 겨우 유지하던 동구 공산당과, 자유를 쟁취하고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동유럽 민주화 운동가들의 싸움을 다뤘죠.

자유의 여명 게임의 큰 줄기는 황혼의 투쟁과 비슷합니다만 몇 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우선 각 진영을 상징하는 단일 행위자가 없습니다. 황혼의 투쟁에는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양대 초강대국이 있고, 그 모습이 지도에도 번듯하게 나와 있습니다. 카드 사건도 "미국이 어디에 뭘 한다", "소련이 쿠바에 핵미사일을 배치해서 세계를 멸망 직전으로 몰고간다" 등등 그 주체가 명확합니다.

자유의 여명 게임의 행위자는 동유럽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입니다. 동유럽 각국 공산당 정권을 한데 묶어 "더 코뮤니스트(The Communist)"로 표현하고, 바웬사/하벨/그 외 민주화 인사들을 묶어 "더 데모크랏(The Democrat)"으로 표현합니다. 지도에는 투쟁 무대가 되는 동유럽 국가들이 의미있게 나오고, 일종의 세계적 긴장관계를 표현한 데프콘은 없습니다. 7년 전 PnP (print & play) 판으로 나왔을 땐 소련 안정도가 데프콘 역할을 했지만, 정식 발매될 때는 그 역할이 사라졌습니다. 소련 안정도가 떨어져서 발트 연안국이 독립하고 고르비가 거리에 나앉아도 게임이 종료되진 않습니다.

즉, 황혼의 투쟁은 두 거인이 여러 장소에서 싸우는 양상이고, 자유의 여명은 개별 국가마다 따로 일어나는 싸움을 게임 플레이어가 한꺼번에 관장하는 양상입니다.

또한 황혼의 투쟁에서는 정치외교적 영향력 외에 군사 행동(전쟁, 쿠데타, 군사작전점수, 데프콘 등)도 큰 비중을 차지했습니다만, 행위자가 각국 정치인사들 묶음(?)으로 바뀐 자유의 여명에서는 각 나라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헤게모니 변화가 주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그래서 승리 조건도 (New Year’s Eve Party 사건 발생을 빼면) 승점 획득에 모든 게 달려있습니다. 턴 끝날 때 승점 카드를 들고 있으면 패배하긴 하지만 그건 반칙패니까요... 승점 카드를 썼을 때 공산당이 권좌에서 쫓겨난 국가에서는 (헤게모니 교체가 일어났으므로) 더이상 승점을 계산하지도 않습니다. 코뮤니스트 플레이어는 게임 끝날 때 여전히 공산당이 권력을 유지하는 국가가 있으면 그 숫자만큼 보너스를 받습니다.

군사 행동이 없어진 대신 각국의 정치싸움이 더 치밀하게 표현됐습니다. 그 중 하나가 "권력투쟁(power struggle)"입니다. 승점 카드가 사용되면 승점 계산 전에 우선 권력투쟁이 벌어집니다. 동독 승점 계산 카드를 쓰면 동독 권력투쟁이 일어나는 식입니다.

권력투쟁에 쓰는 카드 덱이 따로 있고, 그 국가에 퍼져있는 지지도(support)에 따라 양측이 쓸 수 있는 권력투쟁 카드가 달라집니다. 권력투쟁 결과에 따라 그 나라 지지도 판세가 출렁이는데, 이는 이어지는 승점 계산과 추후 게임에도 영향을 줍니다.

권력투쟁에서 코뮤니스트 플레이어가 이기거나 데모크랏 플레이어가 근소하게 이기면, 아직 그 나라에선 공산당이 권력을 잡고 있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만약 데모크랏 플레이어가 크게 이긴다면 공산당이 붕괴하고 민주화에 성공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럼 그 나라 승점 카드는 제거되며, 10턴 후 최종 승점 계산 전까지는 승점을 계산하지 않게 됩니다. 그럼 싸움은 공산당이 아직 버티고 있는 나라들로 집중되겠지요.

이걸 이용해서 코뮤니스트는 권력투쟁에서 패배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권력을 민간에 이양할 수도 있습니다. 나중에 승점 계산에서 크게 털리겠다 싶거나, 또는 어느 정도 지지도를 확보해두었고 이걸 유지할 생각이면, 자발적으로 권력 양도하는 것도 괜찮은 전략일 수 있겠습니다.

배경이 동유럽이라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낯설지만 게임성은 (충분히 보장된 게임에서 물려받았으니) 정말 가치 있는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세밀한 영향력 싸움뿐 아니라 공산주의가 와르륵 무너지는 과정도 다루고 있으므로 "지구상 마지막 냉전지대"라 불리는 우리나라 형편을 보는 데 시야를 넓혀주기도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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