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이번 사태가 코보게의 묘수일 수도 있다는데
네, 저는 십 여년이라는 시간동안 코보게 게임을 유달리 사랑해왔던 1인이었습니다.
비록 커뮤생활이 익숙치 않아 보드라이프는 눈팅족으로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1분만에 매진 됐던 창고개방전 1조는 또 호다닥 달려가서 40만원을 긁고 왔던 소비자죠.
일각에서는 "어차피 게이머스 게임은 돈이 안된다는데, 큰 착각이다. 아주 혼쭐을 내줍시다." 하시고,
또 어떤 분은 "이참에 돈 안되는 게이머 다 털어낼 심산인가보다. 어쩌면 묘수일 수도 있다." 하시더라고요.
두 관점 모두 굉장히 흥미롭고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사견을 좀만 덧붙여보고자 글을 써봅니다.
게이머스 게임은 돈이 안된다? 맞습니다.
실질적으로 보드게임 유통사 매출의 대부분은 학교/보드게임카페에서 나옵니다.
즉, 불특정 다수가 사용해서 마모되는 속도가 빠른 파티게임이나,
아이들 교구로 사용돼서 한 번에 여러 개가 필요한 게임,
진입장벽이 낮아 보드게임을 즐기지 않는 사람도 사볼법한 게임들이죠.
대량구매/재구매는 결코 기업이 무시할 수 없는 영역이고,
게이머스 게임들이 실질적으로 판매가 부진한 경우에는 창고를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이 안되는 게이머스 게임을 왜 자꾸 사올까요?
1. 충성고객을 모으기가 쉽습니다.
돈이 되는 게임들은 게임 자체의 인지도나 판매량은 뛰어날 지 몰라도,
그 게임을 통해 보통 '코보게'를 찾아보진 않으니까요.
2. 비수기 매출을 견인합니다.
안정적인 매출파이를 가져가기 위해서는, 수요가 예측되는 상품이 있어야합니다.
교구는 학교 예산 시즌이나 가정의달 시즌에 매출이 몰리는 경향이 있고,
보드게임카페는 기존에 구매한 보드게임이 소모될 때까지 재주문이 없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공백기에 매출을 견인할 제품이 필요한데, 그게 바로 시즌을 타지 않는 게이머스 게임입니다.
게이머스 게임은 객단가가 높아서 수량대비 매출 규모가 크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매출 규모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유통사가 드라이브하는 매출 규모가 클 수록 외부 영업 시에 유리하고, 기업 재무상에 도움도 되고요.
3. 보드게임 유통사에 모여있는 직원들의 성격도 한 몫 할 겁니다.
유통사의 규모와 추진력, 직원들의 적극적인 태도와 보드게임에 대한 지식 수준, 소식 속도 등에 따라
세계 여러국가에서 출시되는 보드게임들의 라이센스를 누가 따오는지가 달라집니다.
오랫동안 사랑받은 유통사들은 모두 기업의 특색을 잘 살려서 좋은 게임들을 섭렵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과정에서 직원들은 성취감과 직업만족도를 느끼고,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계기가 되죠.
그런데 이번 사태로 인해, 게이머스 게임이 외면받게 된다면,
내부에서 정말 게이머스 보드게임을 좋아하는 직원들의 사기 또한 저하되면서 능률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단기적으로는 관성으로 업무를 계속해서 처리하는 직원들 덕에 티는 나지 않더라도,
장기적으로 이는 보드게임 유통사로써의 커다란 손실이라고 봅니다.
결국엔 그냥 보드게임을 단순히 '상품'으로만 보는 직원들만 남게 될 테니까요.
저희는 그 날을 위해서라도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정말 보드게임을 좋아하는 기업들이 조금이나마 라이센스를 따오기가 더 수월해지잖아요.
사실 저 또한 대표 개인의 사상이나 정치 성향에는 전혀 관심 없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그것을 선택할 자유와 권리가 있으니까요.
그저 제가 그들의 사상과 성향을 존중하는 것처럼, 그들 또한 저희의 사상과 성향을 존중하길 바라는 것 뿐이죠.
완곡한 표현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더군요.
어머니를 숭고하게 높이고자 함이라면 이해했고, 아름다운 일이죠.
다만, 어떤 표현을 공개적으로 쓸 때에는 그게 어떤 영향을 줄 지도 생각했어야 하는 게 당연하고,
그것이 주로 어떤 집단에서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 지도 충분히 검토했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백 번 양보했을 때에야 이런 시시비비를 가리는 거고,
페미냐 아니냐를 다 떠나서,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매지 말라는 말이 있지요.
본인들이 '충분한 검토를 하지 못했다'며 오해의 소지를 제공했음을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완곡한 표현'이 낯선 사람까지 모두 매도하는 발언이라뇨.
애정이 컸던 만큼 감정적인 판단과 대처를 피하려 최대한 오랜 시간 관망해왔습니다.
하지만 이젠 정말 보내줄 때가 됐나봅니다.
저 하나가 차지하는 비중이 물론 코보게 전체 매출 크기에 비해 턱없이 작겠지만,
많은 분들과 함께 뜻을 모아 불매, 탈퇴에 참여합니다.
그리고, 아직 위 사태를 모르고 있는 게이머들이 많이 있습니다.
부정적인 글들로 에너지가 많이들 소모되고 계시겠지만,
꾸준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언급하면서 오랜 시간 경각심을 잃지 않기를 바래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