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전 보드게임 잡담 #53
안녕하세요, 이것 저것 하고있는 양서류, 개굴이입니다.
열흘 정도 되었나요? 2024년 11월, 한국 보드게임 커뮤니티에는 무거운 공기가 가득하네요.
저는 가끔 내킬 때 제가 별 영양가 없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요,
종종 재미있게 즐겼던 게임에 대해 이런 저런 수다를 떠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며,
가뭄에 콩나듯 그리고 싶은 그림이 생기면 그림도 그리고,
직업으로서가 아니라 취미로서 누군가에게 규칙을 설명하는걸 좋아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어디에서 크리에이터라고 스스로를 칭할때마다 마음 한 켠이 괜히 부끄러운, 그런 작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어요.
고작 내가 이런 글을 쓰는 것이 자의식 과잉이 아닌가?
"그래서 너 누구신데 이런 글을 쓰세요" 라는 분이 계시지 않을까? 라고 말이에요.
이렇게 얘기하면 괜히 오버한다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지난 열흘은 저에게 기나긴 잠수같은 시간이었어요.
저에게 마냥 즐거웠던, 그리고 자랑스러웠던 취미는 지금 저를 가둬놓고 있는 수조가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제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어요. 숨을 뱉어내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다는 마음에 늦은 시간에 컴퓨터 앞에 앉습니다.
평소의 그런 글이에요. 별 쓸데 없고요, 제 생각을 일방적으로 주절주절 늘어놓는.
1.
직장생활을 하는 대다수의 분들이 그렇지만 저 역시 사회 구성원들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에게는 그게 같은 부서의 후배 직원일테고, 저에게는 그게 학생들이라는 차이가 있죠.
그거 아세요? 요즘 아이들은 정말로 무섭습니다.
- 어쩌면 20년전 저의 선생님도 저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셨을지도 모르겠지만요.
미디어가 범람하고 있는 2020년대, 아이들은 그만큼 위험하고 자극적인 컨텐츠에 많이 노출이 되어있습니다.
여러분의 주변에는 말끝에 "노"를 붙이는 분들이 얼마나 계신가요?
저는 하루에도 수십번 듣습니다. 친구들끼리 "한남새끼야" 라고 하는 것도 종종 들었고요,
"수학여행가서 창타고 옆 방 가다가 운지하면 개 재밌겠노" 라는 말도 들어봤죠.
참 놀랍죠? 물론 모든 친구들이 저렇게 이야기하는건 아니지만, 반대로 생각보다 많은 친구들이 저런 식의 소통을 합니다.
2.
그런 친구들이 자신들만의 확고한 사상이 있어서 저런 말을 쓰냐, 그건 또 아니에요.
그 친구들에게는 저게 그냥 요즘 유행하는 말투일 뿐이거든요.
제가 학생시절 "니똥칼라다" 하던게 지금은 "알빠노"가 되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직업 윤리상 저런걸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으니 지속적으로 생활지도를 해야 합니다. 그러라고 받는 월급인걸요.
그럼 저런 친구들을 불러모아서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 할까요?
일베나 급진적 여성인권운동은 나쁘다? 그럼 그게 왜 나쁜것인지에 대한 이야기까지 해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아이들에게 이런 정치와 이념이 들어간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입장이죠. 엄연히 복무규정 위반이거든요.
3.
그래서 제가 어느정도 저 친구들, 그리고 저 스스로하고 타협아닌 타협점을 찾은게 있는데요,
그건 "이념을 밖으로 드러낼 때에는 항상 때와 장소, 그리고 주변을 살펴라" 라는 합의점입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는게 확 와닿을 것 같은데요,
학급 마켓에서 마카롱을 파는데, 팜플렛 디자인을 맡은 친구가 "노무노무맛있노 마코알롱" 이라는 문구를 사용했다면
그 친구를 불러 이렇게 지도를 할거에요.
쌤 : 야, 노무노무 맛있노 마코알롱이 말이야 방구야 ㅋㅋㅋㅋㅋ
학생 : 왜요 쌤 ㅋㅋㅋ 안돼요?
쌤 : 너 이놈의 시키 일베하는게 자랑스러워?
학생 : 쪽팔린것도 아니죠
쌤 : 그래 그거에 대해서는 선생님이 뭐라 할 건 아니지. 너의 이념과 사고방식은 온전히 너의 것이니까.
근데 그걸 학급 마켓의 홍보물에 박아넣는건 얘기가 다르잖아? 우리 학교 애들이 다 너같은 생각을 해?
학생 : 그건 아닐거에요
쌤 : 그럼 우리 팜플렛 보고 기분나빠하는 애도 있겠네?
학생 : 네
쌤 : 그럼 안쓰는게 맞지. 학급의 평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학생 : ....
쌤 : 그리고 쌤은 이런 일이 아니더라도 학급에선 안썼으면 좋겠어.
속으로야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어. 그리고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얼마든지 그런 대화를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적절치 않은 자리에서 밖으로 드러나는 너의 말과 행동은 너의 평판에 그대로 반영될거야.
4.
하여, 이번 일에 대해서도 저는 동일한 생각입니다.
저 용어를 최초로 사용한 번역가는 저런 사상을 표현하고 싶을 수 있습니다.
저희 아이들이 감출 수 없는 재채기처럼 노노거리듯이 말이죠.
하지만 그걸 공식적인 석상에 올리냐 마냐는, 오롯이 관리자의 책임입니다.
저희 아이들을 공식 석상에 올릴 때 언어를 정련시키는 것이 저의 책임이듯이 말이죠.
번역의 검수자는 해당 표현을 정확하게 캐치했어야 했고요, 그걸 교정하라고 지시했어야 했습니다.
개념에 문제가 없다고 할지라도 개념을 담는 그릇이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저게 그대로 나왔다? 그럼 100%로 검수에서 놓친거에요. 저걸 봤다면 안바꿨을리가 없으니까요.
그럼 남은건 하나죠. 검수에서 놓쳤음을 인정하고, 일반적이지 않은 표현을 사용하였음에 대해 유감을 표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며, 후속조치를 해주면 끝입니다. 깔끔하지 않나요?
그래서 최초 이야기가 언급되었던 시점에서 지금까지 쭉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무릇 관리자에겐 행동 전에는 침착하고 꼼꼼하게 검토하고, 행동 후에는 기민하고 빠르게 대처할 책임이 있잖아요?
곧 그 책임을 이행할테니까요.
5.
그런데 오늘로 열흘 가까이 흘렀네요. 이젠 더 기다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오늘도 회사의 많은 분들은 가정의 생계를 그 어깨위에 얹고 불철주야 땀을 흘리셨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업무를 보시면서도 단 하나의 업무에서는 눈을 돌리고 계시더라구요.
어찌보면 현 상황에 가장 시급한 일일텐데 말이에요.
저는 정말 많이 놀랐습니다. 상식적이지 않잖아요? 시간을 굳이 끌 필요가 있나요?
이렇게 되기 전에 충분히 "사회인처럼", "유연하게" 넘어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어요.
하지만 이젠 그런 걸 기대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6.
서론이 길었습니다.
하여, 저는 2024년 11월 11일 22:10 시점부터 코리아보드게임즈로부터 이번 일에 대한 공식적 언급이 나올 때 까지
코리아보드게임즈의 모든 게임에 대한 컨텐츠 제작을 중단하려고 합니다.
다른 분들처럼 확고한 신념과 행동력을 지니고 드리는 이야기는 아니고,
새로 올리는 컨텐츠를 통해 다른 분들의 지갑을 털지 않겠다... 요 정도로 이해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럼 야밤에 꿉꿉한 이야기는 요정도로 마칠까요?
다음번에는 좀 더 재미있고 웃으면서 보실 수 있는 얘기로 찾아오겠습니다 :D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