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의 지적재산권에 관해 (3) 판례 등 최근 동향
7년 전에 보드게임의 저작권을 포함한 지적재산권에 관한 글을 썼었는데요. 그간 나온 판례도 있고 해서 추가로 작성해봅니다.
보드게임도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규칙서의 텍스트, 보드와 카드의 일러스트 등은 각각 어문저작물, 미술저작물로 인정받습니다. 하지만 아이디어와 표현의 이분법에 따라 저작권은 표현에만 적용되며, 게임 규칙과 같은 아이디어는 저작권법으로 보호되지 않습니다.
이는 <뱅!> 퍼블리셔가 <삼국살>을 만든 중국 게임사와 미국 유통사를 상대로 낸 소송의 판결(DaVinci Editrice S.R.L. v. Ziko Games, LLC)에서도 드러난 바 있습니다. 법원이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고 판단한 이유는 규칙이 유사함에도 캐릭터 이름과 일러스트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한편 작년 게임메카에 "실물 보드게임 규칙도 개성 있다면 저작권 인정"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는데 명백한 오보였습니다. 이 기사는 <라온>을 만든 젬블로가 <나랏말싸미>를 만든 팝콘에듀를 상대로 낸 소송(2022.4.28. 선고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2020가합411119 판결)을 다루고 있습니다.
여기서 짚어야 할 점 하나는 재판부가 게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언론이 사건을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두 게임의 유사성은 한글 자모 타일과 모래시계로 된 구성물에 있는데, 정작 게임 규칙이 달랐습니다. 라온은 제한된 자모로 단어를 조합하는 게임이고, 나랏말싸미는 서로 보이지 않게 조합한 단어를 추측하는 게임입니다.
두 게임이 표현 형식이 같기 때문에 저작권 침해에 해당한다는 것인데, 정작 게임의 중요한 내용인 규칙은 달랐다는 점이 아이러니입니다. 재판부는 규칙에 대해 오히려 "원고와 피고의 보드게임상 규칙을 비교해보았을 때 일부 요소 외에는 게임 진행 방식에 있어서의 차이가 있어 동일하거나 유사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게임 규칙이 저작권법상 보호된다'는 오해는 모바일 게임 분야에서 <팜 히어로 사가>를 만든 킹 닷컴이 <포레스트 매니아>를 만든 아보카도를 상대로 낸 소송(서울중앙지방법원 2015. 10. 30. 선고 2014가합567553 판결, 대법원 2019. 6. 27. 선고 2017다212095 판결)에서 비롯된 듯합니다.
원고가 "게임 규칙의 조합, 게임 규칙들의 선택과 배열 및 신규 규칙을 소개하는 단계의 선택, 게임의 시각적 디자인과 각 구성요소의 조합, 게임 보드 구성과 배치 등은 창작물로서 저작권법의 보호 대상인 ‘표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였으나 법원은 1심부터 일관적으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대법원은 단지 "피고 게임물은 원고 게임물의 제작 의도와 시나리오가 기술적으로 구현된 주요한 구성요소들의 선택과 배열 및 유기적인 조합에 따른 창작적인 표현 형식을 그대로 포함하고 있어 실질적으로 유사하다"고 판단하여 원고 승소를 판결했는데, 이를 가지고 원고 측이 멋대로 자기네 변론이 옳다고 언론 플레이한 것을 언론사들이 그대로 받아 쓴 것이 문제로 보입니다.
비즈한국의 기사 "[알쓸비법] '게임의 규칙'은 어떻게 저작권 보호 대상이 되었나"도 "대법원은 게임 규칙이 저작권법상 보호대상이 된다고 명시적으로 판단하지는 않았다"면서 이 판결에 대해 "게임의 규칙을 저작권법의 보호대상으로 인정한 것이라는 견해"와 "게임의 규칙은 보호대상이 될 수 없고, 위 판결은 매치 3 게임이라는 단순한 게임(캐주얼) 간의 분쟁사안에서 규칙과 표현형식이 밀접하게 결합된 특수한 사안에 불과하다는 견해"가 있다고 소개합니다.
요컨대 게임 '규칙'은 여전히 저작권법에 의해서는 보호되지 않으며 지난 글에서 언급했듯 특허법이나 부정경쟁방지법상의 보호를 받을 뿐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게임을 비롯한 저작물의 창작이 가능한 한 법에 의해 규제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표절에 대한 도덕적 처벌은 게이머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