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워마 비참한 죽음에 대하여. (스토리 각색 단편)
실제 플레이를 기반으로 각색해 보았습니다.
일부 내용에 대한 스포가 있습니다.
#1
국내에서 가장 성공한 스포츠 선수를 인터뷰하고 마무리멘트를 하던 중이었다. 스포츠 TV쇼의 진행자인 브루노는 현재 가장 잘나가는 축구선수 파블에게 간단한 음식을 직접 해주며 소소한 이야기로 편안한 식사시간의 대화를 컨셉으로 한 방송을 촬영 중이었다.
그때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굉음이 들렸다. 무언가 잘못되었을때만 들릴 수 있는 소리였다.
지난 몇 주간 브루노는 친한 방송국 관계자들의 수많은 전화에 시달렸다. 시위대가 문 바로 앞에 있다는 둥, 주위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짐을 싸서 사라졌다는 둥 흉흉한 소문을 듣고 불안해져서 마음의 위안을 얻고자 전화하는 것이었다. 브루노는 냉철하고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현실에 대해 자신만의 시각으로 판단했고, 위험은 있지만 주위 강대국들과 세계평화기구에서 이 나라를 무시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때문에 그들을 안심시켰고, 브루노의 유려한 말솜씨는 그들을 이 나라에 머물게 했다.
그들은 대부분 죽어버렸다. 이것은 브루노의 탓일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위에서 파블이 바닥에 웅크려 신음하고 있었다. 다행히 상처를 입지는 않아 보였다.
#2
방송국을 빠져나오는 중에 사지가 멀쩡하여 같이 대피할 수 있는 사람을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전기가 끊겼는지 방송국내부는 한밤중인 것 처럼 어두웠고 자세히 살피지 못한 탓도 있다.
방송국 바로 앞의 정비소 주인인 마린은 항상 출근길에 가볍게 인사를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파블과 함께 달려오는 브루노를 보고도 못 본 채 했다.
"오 마린. 당신이 얼마나 반가운지."
"아.. 브루노. 좀 도와주시오. 저 안쪽에 생수들만 좀 챙겨주시오 어서 달아나야지."
#3
그들은 한적한 건물에 도착했다.
이미 포격을 여러번 당했는지 입구 주위를 제외하곤 전부 돌더미나 잡다한 더미들로 막혀있어 제대로 이동할 수 없었다.
마린은 차를 숨겨야 한다며 짐을 내리고 어딘가로 갔다가 잠시 후에 돌아왔다.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하루치 음식과 물 그리고 잡동사니 들 뿐이었다.
가장 먼저 저택을 수색하기로 했다.
#4
축구선수인 파블은 여러모로 다재다능한 사람이었다. 몸이 재빠르고 단련된 육체를 가지고 있던 그는 야심한 밤을 틈타 바깥에서 여러가지 유용한 것들을 많이 가져오곤 했다. 다만 전쟁의 잔혹함이 그의 정신력까지 지켜주지는 못했었던 것 같다.
어느날은 브루노가 경계를 서게 되었다.
새벽이 되어 수집을 나간 파블이 저택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나라가 파괴되어 버리기 바로 전, 간단한 파스타를 먹으며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부푼 마음으로 말하던 그 표정으로 파블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무엇이 그리 좋으냐 물어봤더니 그는 다음날 아침 말해 줄 터이니 오늘은 우선 잠깜이라도 자고 보자고 했다.
다음날 파블이 저장고에서 한참을 올라오지 않기에 마린과 브루노는 그를 찾아 내려갔다.
그는 저장고 귀퉁이에서 머리를 감싸안고 쭈그려 앉아 있었다. 그가 되내이던 중얼거림이 저장고에 가득 울려 퍼졌다.
"분명히.. 채소..신선한 채소들을 많이 가져왔는데... 도대체 그건 다 뭐였지.. 부모님이 남긴 귀중품까지 팔아서 바꿔온 거였는데.. 도대체...."
저장고의 귀퉁이에는 쥐 몇마리가 죽어있었다. 수십 수백의 쥐들에게 밟힌 모양이었다.
#5
총성이 잦아들고 이 생활이 어느정도 안정되기 시작했다. 파블은 그 후로 말을 잃었지만 꾸준히 높은 성과를 보였다. 어느날엔 통조림을 잔뜩 가져와서 우리가 먹기에도 많았기에 거리의 부랑자를 조금 도와주었더니 그 사람들이 집에 빗물 채집기를 만들어 주고 갔다. 초등학교 과학 교사라던 그 거지는 고맙다는 말을 연신 해대며 우리의 식수를 해결해 주고 떠나갔다. 그 후로 다시는 보지 못했지만.
목재가 귀해서 난로를 만들지 못했다. 가림판을 만들어 이곳 저곳을 빈틈 없이 막았지만 어느 날은 불어오는 바람이 너무 거세서 찬 바람이 조금 들어온 모양이다. 처음 감기에 걸린 사람은 마린이었다.
허나 그 좁은 저택에서 한 사람의 질병은 급속도로 주위에 퍼졌다. 결국 모두가 질병에 걸렸을 때 그들은 이렇게는 안된다고 생각이 들었다.
파블은 낮에는 병의 고통으로 아무것도 못했지만 밤에는 그래도 움직일 수 있다며 밖으로 나가 수집을 다녀오겠다 했다. 이미 그는 브루노와 마린을 삼촌으로 부르고 있었다. 브루노와 마린은 그를 조카처럼 대했다. 소중한 가족이었다. 파블은 그렇게 3일을 내내 수집을 다녀왔지만 의약품을 구하지 못했다.
#6
파블은 저택의 빈 공간에 멍하니 앉아 생각했다.
더이상 총성은 울리지 않았고 거리의 반란군들도 본지 오래되었다. 허나 그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질병은 더욱 심해져 침대에서 편히 잘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다. 마린과 함께 작은 아파트를 갔을 때를 생각했다.
파블은 그곳에서 거대한 뱀을 기르는 테라리움을 보았다.
"저 뱀을 풀어주면 나쁜 녀석들을 잡아먹어 주지 않을까요?"
마린은 아무말 없이 가지고 다니던 몽키스패너를 들어 유리면을 깨 부쉈다.
어떤 의미였을까.
구석에 앉아 브루노가 자주 읽던 책을 집어 들었다.
아마 파블은 그랬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뜬 눈은 영원히 감기지 않고 책의 첫 번째 장을 읽었다.
'겪어보지 못한 자에게 있어서 전쟁은 달콤한 것이다'
#7.
저택의 마지막 사람까지 영혼을 잃은 그 다음날
전쟁은 끝이 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