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설)비보드게이머와의 대담: 승점제가 싫은 이유
친구는 보드게이머가 아니다. 절대로 스스로 보드게이머로 칭하지 않고, 취미가 보드게임이라고 하지도 않는다. 단 한 개의 보드게임도 없다. 근데 필자 때문에 생각보다 즐긴 게임이 많다. 최소 70가지는 하지 않았을까. 얼마 전 어떤 분이 테마게임의 정의에 대해 고민하는 글을 올리신 걸 보고 친구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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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승점제는 정말 극혐이야. 게임 같이 해주는 것만해도 감사히 여기고 재미있는 걸 가져오란 말이야.
필자: 요즘엔 이런 게 인기가 많아서 이런 게임들이 많아. 근데 승점제가 싫다면서 티켓 투 라이드는 재밌있어 하지 않았냐? 승점트랙있고 딱 승점제인데.
친구: 그건 그래도 내가 마지막에 길을 얼마나 놨는지 표시해주는 용도의 승점이잖아. 그런 건 괜찮아. 근데 게임 내에서 쓰잘데기 없는 승점을 준다고 하니까 게임에 몰입이 안 돼.
필자: 요즘 사람들은 그것도 당장의 이득이냐 미래의 승리냐를 고르게 해주는 재미가 있다고들 하던데.
친구: 물건을 어디다가 팔았어. 그럼 돈을 주고 돈을 많이 벌었으니까 어떤 성취를 나타내는 지표로 동시에 승점이 올라간다면 괜찮지만 돈이냐 승점이냐 고르는 게 전혀 현실성이 없고 몰입이 깨진다고. 자, 너한테 지금 승점 1점 줄테니까 아이스크림 사와. 경영 게임이면 돈을 많이 벌면 이기고, 전쟁 게임이면 수도를 점령하던가, 땅을 많이 먹으면 이기고 그래야지. 그래서 여명의 제국 별로야 별것도 없는 조그만 함선 뽑아서 저 은하 구석탱이 빈 곳에 쳐박아두고! 자 내가 이제 승점 1점이다! 이러는 게 뭐하자는 건지 모르겠어.
필자: 근데 축구도 결국 골대에 골 넣으라고 하고 넣으면 1점 주잖아. 근데 그건 왜 좋아하냐. 별로 아니냐?
친구: 그래도 그건 목적성을 준달까? 하나의 지향점을 향해서 계속 노력하고 그게 경기 중간에 이상한 방해를 준다거나 하지 않잖아.
필자: 도미니언처럼 승점이랍시고 게임 중간에 아무 쓸모 없이 방해만 하고 그러는 게 별로구나. 근데 그렇다면 사람들이 골대가 하나만 있어서 매번 똑같으니까 좀 다채롭게 하기 위해서 골대를 하늘에도 만들어 놓고 지하에도 만들고 그렇게 바꿔나간 게 아닐까?
친구: 그럴 수 있지. 근데 유로 게임이라는 것들이 짜증나는 건 거기 새로 만든 골대에 넣는 것도 아니고 무슨 특정한 포메이션을 딱 잡으면 아 1점입니다 이런 느낌이야. 공 차서 골대에 넣는 건 어디가고 내가 왜 이짓을 해야하는지 모르겠다는 느낌.
필자: 게임들이 결국 하늘에 있는 골대를 노리려면 시작하자마자 제트팩 매야하고 그렇게 되버린 건가. 결국 이런 포메이션을 잡으면 절대로 막을 수 없기 때문에 뒷 과정 생략하고 포메이션만 잡으면 1점 주고 시간을 줄인 거 같기도 하다.
친구: 그런 의미에서 스타크래프트 보드게임이 최악이었어. 자원 지역을 먹거나 상대방을 부수면 되는 걸 꼭 승점 땅을 먹어야돼.
필자: 승점제가 밸런스를 맞추기 쉬운 시스템이라 그래. 결국 디자이너가 게으른 건지도 모르겠네. 나는 테마가 짙은 걸 좋아하지만 그래도 뭐 그런 유로게임도 너처럼 싫다까지는 아니라서.
친구: 그런 의미에서 아임 더 보스!랑 팬데믹이 정말 잘 만든 게임 같다. 일단 내가 턴제 별로 안 좋아하는데 내 차례 아니라고 그냥 멍하니 있는 것도 아니고, 상대방 차례에도 계속 참여하게 되고, 목표가 딱 돈 많이 벌기, 치료제 만들기로 분명하잖아.
필자: 그래서 내가 협력 게임들 많이 가져왔었잖아.
친구: 반지의 제왕 가운데 땅 여정 같은 것도 괜찮았지. 좀비사이드도 괜찮았고 협력게임 하면서 딱 다 같이 한 목표를 향해 가는 게 제일 몰입하기 좋은 거 같아. 저번에 그 영상이 진짜 재밌었는데 X같은 승점제의 특징을 정말 잘 캐치한 거 같아.
게임이란건 주사위도 굴리고 말이야 신나게 해야지! 그러니까 뭐하는지 모르겠는 유로 말고 미국쓰레기나 해.
(전에 올라온 적 있는 ProZD님의 유로게임 vs 미국쓰레기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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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있던 대화를 정리하여 기록하였습니다. 저기서 테마 게임과 유로 게임에 대해 친구와 더 이야기했었는데 그 과정에서 포인트 샐러드처럼 여기저기 퍼진 승점을 잘 모으라고 목표 카드 같은 게 주어지는 게임이 아닌 분명한 게임 목표를 지정해주는 편인 게임이 테마 게임이라는 결론을 같이 내렸습니다.
저도 게임의 세계에 빠져서 즐기는 것(간접경험)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유로보단 테마 게임이 좋네요 ㅎㅎㅎ 친구의 말에 어느정도 공감이 됐습니다.
유로게임이 없어져야한다거나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고, 유로를 안 좋아하는 사람은 왜 그럴까 떠든 거니 그냥 시시껄렁한 이야기로 흘러들으시고, 제 말에 반박하실 시에는 유로게임이 보드게임 1등입니다.
여담으로... 저 친구 항상 보드게임 별로 안 좋아한다고 말합니다. 저만 만나면 보드게임 지옥이라고 이야기하고 그래요... (돈 따로 안 드니 그냥 카페 가서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가성비가 좋아서 하는 것뿐이라고 합니다.) 지옥이 너무 어감이 안 좋아서 '보드게임 락원'으로 지칭하는 것으로 합의봤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