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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보드게임 영업의 역사

1,492 조회

2022.09.26 11:06

갑분 보겜 영업에 관한 이야기가 많은 것 같아 저도 숟가락 한번 얹어봅니다.

큰 아이가 여덟살, 작은 아이가 다섯살 즈음부터 보드게임을 시작한 것 같아요.

애들 엄마가 한국 다녀오면서 친구에게 선물 받은 우봉고(3디 아님)가 보드게임에 관해 눈뜨기 시작한 처음이었어요.

애들이 너무 좋아했거든요.

그 후, 교회 학생부 활동에 어떤 특별활동을 할까 찾아보다가, 눈에 들어온 게임이 토바고 였습니다.

당시에 김태희 게임으로 유명했다던데, 저는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토바고를 약간 변형시켜서, 힌트를 제가 직접 다 만들고 하나씩 던져 주면서, 먼저 보물 위치를 찾는 팀이 이기는 그런 게임을 했습니다.

그리고, 카탄과 확장들, 도미니언 빅박스, 카르카손 빅박스, 티켓 투 라이드 등을 샀습니다.

가족들이 너무 좋아했어요. 아내, 아이둘, 저희 어머니, 누나. 다들 재밌다고 너무 잘 샀다고 칭찬하고요.

아마 보드게임을 더 사고, 하고 싶어하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이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한 기억, 누구가와 함께 즐거웠던 기억.

여기까지는 즐거웠던 기억입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큰 잘못을 하게 됩니다.

1. 가족들에게 너무 어려운 심지어 저마저도 감당하지 못할 어려운 게임을 제시하게 됩니다.

무려 아그리콜라. 사실, 저조차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게임을 내밀었고, 다들 기겁을 하게 됩니다.

제 아내가 보드게임을 꺼리게 만든 첫번째 공신입니다.

그리고, 갤러리스트. 룰설명을 듣다가 15분 만에 포기합니다.

사실, 문제는 저도 이런 게임들 룰을 정확히 숙지하지 못했어요.

그래도, 제 다른 게시글에 있지만, 그레이트 웨스턴 트레일 같은 게임도 에러플로 초플 하고도 재밌어서

여러번 다시 하기도 합니다. 비슷한 류로 알케미스트도 있구요. 그 게임도 참 좋아하고 잘 햇어요.

제가 말을 재밌고 조리있게 잘 하는 편인데, 룰설명할 때, 아내 앞에서는 이내 머리 속이 엉망이 되면서 긴장으로 버벅거립니다.

룰마스터 여러분들이 제일 싫어하실 타입이거든요. 됐으니까, 일단 시작하자! 이런 타입. ㅠㅠ

문제는 아이들은 엄마가 좋아하면, 자기들도 좋아하고, 엄마가 싫어하면 자기들도 귀찮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가 얼마나 각고의 노력으로 얼마나 재밌게, 요점을 짚어서, 얼마나 짧게 룰설명을 하려고 연습을 했는지 몰라요.

그리고, 사실 그 노력들은,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습니다.

에버델, 윙스팬, 사이쓰, 클오칼 같은 게임을 최대한 잘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두 좋아 즐기게 되었습니다.

세븐 원더스(듀얼 아님)도 처음 배우고, 재미 없다고 외면 당한 게임인데, 다시 배울 때는 다들 처음 하는 게임 아니야? 할 정도였습니다.

너무 재밌게 했고, 이제는 가족들 최애 게임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룰마스터가 얼마나 게임을 잘 알고 잘 이해하는 가, 그리고 잘 설명하는가는 너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배우는 사람의 수준도 반드시 반드시 반드시 고려해야 하구요.

카탄, 도미니언, 카르카손, 티투알 같은 1세대 게임과 달리 그 이후 게임들은 사실 저에게도 버거웠으니, 듣는 사람들을 어땠을까 생각이 듭니다.

2. 두번째 실수는 커뮤니티에서 재밌다는 이야기만 듣고 다들 좋아할 거라고 생각해 자꾸 새로운 것을 들이미는 경솔함이었습니다.

가족들은 같은 게임을 여러번 하고 싶어하더라구요.

새로운 게임은, 내가 설명 잘 할 자신이 있고, 본인들이 하고 싶을 때만 꺼내야 합니다.

게임을 즐겨야 하는데, 또 배워야 해 라는 부담감을 느꼈다고 하더라구요. 그게 게임이 싫어지게 된 이유라고.

사실은, 재밌어보여서, 제가 하고 싶어서 그렇게 한 거지만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라버린 기분이었다 랄까요?

지금은, 어쩌다 본인들이 원할 때만 하자고 하는데, 다들 바쁘게 사니, 그럴 시간도 없네요.

큰애는 올해 대학을 갔고, 작은 애는 이제 공부 많이 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저나 애들 엄마도 어느새 몸이 예전 같지 않아요. 이제 오십이라는 나이를 바라보고 있네요.

애들 뒤바라지 하고, 그냥 바쁘게 살다보니, 앉아서 게임하는 게 쉽지 않게 됩니다.

그래도, 좋아하는 건 어떻게든 하게 되잖아요.

제가 잘했으면, 그냥 티비 보는 것 말고, 간단한 게임 하면서 애들 바쁜 저녁 시간을 같이 보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드게임을 싫어하는 사람은 절대 싫어하더라구요.

친구들이나 교회 청년, 또는 교사들 붙잡고 게임 하자고 할 때, 선입견으로 그냥 안하겠다는 사람 많아요.

보드게임에 대한 인식이 결국은 애들이나 하는 게임 정도, 컴퓨터 게임과 다를 바 없다는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 사실 대부분입니다.

그럼에도, 정작 같이 게임을 하게 되면 솔직히 대부분은 게임들 재밌어하고 정말 좋아합니다.

그런 사람들도 정기적으로 모이기 힘든 이유는 바쁘고 힘드니까요.

시간도 많이 들고, 쉴 때 극한 두뇌 노동 하는 것보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어하니까요. 너무 지쳐있을 때는. 물론 성향 차이도 있구요.

처음에는 해보지도 않고 거절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이 상하고 서운하고 그랬는데, 이제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예전에 서운한 마음 가진 게 저의 또 다른 실수 였던거죠.

이제는 몇 번 할 시간도 없지만, 유명한 게임을 사고 가끔 좋아하는 친구들과 하는 정도입니다.

수집과 룰 공부가 취미가 되어버렸네요.

아, 휴가 때, 가족 여행가면, 그때는 다들 즐겁게 게임을 합니다.

뭔가는 확실히 남기는 했네요.

지난 금요일 두어달 만에 게임 좋아하는 친구네 집에 놀러가 그집 아들 둘과 저와 4인플 듄과 확장을 플레이 했습니다.

아는 동생과 2인플 이후, 4인 풀파티는 처음이었는데, 정말 최고더군요. 그 친구도 너무 재밌었다고 나중에 또 하자고 하더라구요.

이거죠. 이 벅차고 황홀한 기분으로 또 한두달 지내는 겁니다. 모두들 행복한 보드라이프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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