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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네 집들이 후기

2,103 조회

2016.01.31 20:33

괜히 이런 친구들이 있다는 걸 소소하게 자랑하고 싶어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고등학생때부터 항상 같이 놀던 친구들이 있어요. 저까지 다섯명.

서로 다른 대학에 가고, 서로 다른 직장에 다니고, 사는 곳도 약간씩 멀어졌어도 자주 만나진 못하지만 각자의 생일을 핑계로 1년에 최소 다섯번 이상은 만나는 그런 친구들이죠

다들 술도 많이 즐기지 않고, 요란하게 놀 줄도 모르는 순딩이들이라 만나면 그저 조용히 가만히 실내에서나 노는 친구들입니다 ㅎㅎ

이런저런 긴 이야기는 생략하고, 사실 보드게임이라는걸 처음 구입하기 시작한 것도 이 친구들이랑 같이 놀기 위해서였는데...

지금도 여전히 제가 게임을 구입할 때 고려하는 요소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이 친구들과 할 수 있을 게임 이라는 부분이죠.

저처럼 게임을 깊이 취미로 삼는 친구는 없어도, 다들 보드게임을 좋아하는 편이라서 간혹 1박으로 놀러가거나, 누구네 집에 모여 놀거나 할 때는 각자 보드게임을 챙겨 올 정도로 집에 두어개씩은 있습니다 ㅎㅎ 알함브라나, 티켓 투 라이드, 미니빌, 보난자 그런 정도는 다들 있어요. 요즘도 간혹 제가 소개하는 게임이 마음에 들면 이름이 뭐냐, 어디서 파냐 물어봐서 잘 구입하곤 합니다.

어쨌든, 작년 가을에 한 친구가 다섯명 중에서 첫번째로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연말 시즌엔 이래저래 다들 바쁘고, 그 친구도 살림 정리하고 좀 안정되기를 기다렸다가 오늘에서야 집들이를 다녀왔습니다.

원래는 멀리서 온다고, 밥만 먹고 가면 섭섭하니 자고 가라고 해서, 남편 분 동의까지 얻어서 여자 다섯이 불타는 보드게임 나잇을 보내려 원대한 꿈을 꿨으나... 갑작스럽게 그 친구 시댁에 일이 생기면서 이리저리 일정이 미뤄져 오늘 하루 짧게 들렀다 오게 되었지요 ㅠㅠ

아... 그동안 친구들이랑 하고싶어서 아껴둔 게임이 잔뜩 있었는데. 이 중에 뭘 가져가야하나, 리스트 작성하고 있었는데....

시원하게 리스트를 찢어버리고 가벼운 몸으로 갈까 하다가, 생각해보니 밥먹고나서 아무리 못해도 두시간 정도가 빌 것 같은데... 딱히 우리가 마주앉아서 할게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괜히 아무것도 안가져가면 섭섭할것 같아 슬그머니 파티게임 몇개를 챙겼습니다 ㅋㅋㅋ

점심 먹을 시간보다 약간 일찍 도착해서, 친구가 식사준비 하는걸 기다리는 동안에 웨딩앨범도 다 봤고.. 결혼식 영상도 다 봤는데 여전히 밥이 안되어서 ㅋㅋㅋ 게임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게임 챙겨온 걸 보더니 친구들이 먼저 게임하자고 하더라구요..

짧게 시간 때우기도 좋고 가볍게 분위기 풀 수 있는 슈퍼 라이노부터!

역시 다들 굉장히 좋아했어요. 항상 실패한적 없는 게임이었지만, 이 악랄한것들, 라이노를 놓으면 어떻게 해도 쓰러질수밖에 없는 곳에 라이노 카드를 올려놓으면서 그렇게 즐거워할줄이야....!

한참 깔깔대면서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여러 판 돌리고 있는데, 밥하던 친구가 주방에서 힐끔힐끔 돌아보며 "나도 하고싶어~~~~~" 라고 우는 소리를 하길래 왠지 미안해져서 집어넣었습니다 ㅎㅎ

근데 아직도 밥상이 로딩중이라... 이번에는 패스 더 피그를 꺼냈어요.

한 친구가 계속 범인은 춤춘다 박스에 관심을 보였으나 "그거 사람 많아야 재밌어." 라고 단호하게 자르고....

패스 더 피그는 돼지 모양 주사위 두 개를 던져서 단순히 돼지가 던져진 모양에 따라 점수를 계산하는 게임입니다.

들고다니기 굉장히 간단하고, 규칙도 정말 쉽고, 평평한 테이블만 있으면 주머니에서 돼지 두마리 꺼내서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좋은 필러 게임이에요.

언제든 바로 시작해서 언제든 중단할 수 있으니, 특히 이렇게 짤막한 시간 틈을 채우기 좋고 인원수도 별로 상관이 없어 종종 챙겨다니는 게임이죠 ㅎㅎ

한 친구가 한방에 60점을 먹으면서 앞서나가는듯 했으나.. 몇라운드동안 0점에서 출발하지 못하던 제가 깨작깨작 2~30점씩 착실히 쌓으며 역전, 하지만 점수 계산을 안하고 있다가 목표 점수에서 6점인가를 남기고 턴이 돌아오기 전에 결국 처음 앞섰던 친구가 승리해버렸네요 ㅎㅎ 또 다른 친구는 4점인가 남기고 괜히 안전하게 하려다 앞턴에서 승리를 빼앗겨버리고... 나머지 한 친구는 게임 끝날때까지 결국 0점이었다는 슬픈 이야기....ㅠㅠ

넌 슬롯은 하더라도 주사위는 굴리지 말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주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진수성찬 로딩이 완료되어 와구와구 허기를 채우고...! 백선생님의 숨은 제자 실력이 매우 좋았습니다.

점심을 먹고 커피까지 한잔씩 한 뒤, 본격적으로 새댁 친구까지 합세해서 5인 게임 시작!

아까 밥하느라 못해서 울었던 슈퍼 라이노부터 가볍게 몇번 돌리고...

계속 한 친구가 관심을 보이던 범인은 춤춘다 박스를 결국 꺼냈습니다.

박스가 조그마해 귀엽고, 일러스트도 귀여워서 대단히 흥미를 보이더라구요.

범춤 역시 실패하지 않는 즐거운 게임이라 다들 재미있게 했습니다. 이 게임은 최초목격자의 진술과, 중간중간 카드를 내면서 이야기를 적절히 이어가야 더 재미있죠. 오늘은 마지막 하나 남은 가지튀김을 먹어치운 사람과, 친구의 빨간 속옷을 훔쳐간 변태를 잡아냈습니다. 세번인가 돌린 것 같은데 나머지 하나의 사건은 기억나지 않네요.

아니 근데 이것들이 왜 자꾸 범인 카드를 나한테 주는거야 ㅠㅠㅠㅠ

가지튀김은 제가 안먹었지만 결국 속옷은 제가 훔친걸로... 흑흑. 나 빨간색 별로 안좋아하는데.

그리고 마지막으로 위너스 서클!

그냥 시간이나 보내자고, 이것저것 가볍게 챙겨간 거였는데 기어코 가져간걸 다 하고 오게 되었네요.

참 뿌듯하기도 했지만,

게임을 꺼내는데 친구들이 그런 말을 했습니다. 무슨 이야기 뒤에 나온 말인지 잘 기억은 안나지만,

"젤로피가 가져오는 게임은 다 재미있어. 다 검증된 게임이야" (물론 친구들은 본명을 부릅니다 ㅎㅎ)

라고 하는 말이 날아와 가슴에 팍 꽂히더라구요. 그 순간 기분이... 어찌나 참 묘하던지...

순간적으로 여러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나야말로 같이 재미있게 게임 해주는 이 친구들이 너무 고마운데.

물론 제가 친구들이 좋아할만한 게임만 잘 골라서 소개하긴 했죠...ㅎㅎ

아직 제대로 된 전략 게임은 소개하지 못했어요. 얼마전에 버건디를 해봤는데, 흥미로워하긴 했지만 약간 버거워하더라구요.

어쨌든 저도 카베르나 정도는 할 수 있을 만큼 수준을 높여보고 싶은 욕심은 있지만,

게임에 대한 욕심은 또 그런 게임을 할 수 있는 자리에 가서 따로 채우고, 친구들과 있을 때는 게임을 위해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과 즐거우려고 게임을 하는 거니까, 그땐 또 그런대로 즐거운 게임을 많이 하는걸로 좋거든요.

어떤 사람들은 주변에 게임에 관심 가져주는 사람이 없어 애먹고 있는데.. 열린 마음으로 뭘 내밀든 정말 최고로 재미있게 해주는 친구들이 매번 참 고마워요.

그런 친구들과, 위너스 서클 첫플레이를 했습니다. ㅎㅎㅎ

일단은 그냥 기본 규칙에, 같은 자리에서 출발하는 규칙만 넣어서 했어요.

처음엔 변형규칙 하나도 안넣고 하려고 했는데 ㅋㅋㅋㅋㅋㅋㅋ 친구들이 뒤에 있는 말은 주사위를 굴렸는데도 출발선조차 넘지 못하는 것에 너무 크게 충격받았길래 "자, 그냥 여기서 다같이 출발하는걸로 하자. 그냥 같은 칸에 있어도 되는걸로 하자." 하고 황급히 말을 모아서 새로 출발시켰어요 ㅋㅋㅋ

별로 재미 없으면 어떡하나... 조금 걱정하긴 했는데

역시는 역시, 위너스서클이 참 좋은 가족게임이라는 걸 또 알았네요.

처음엔 아무래도 테마 때문에... "신혼집에서 경마 도박 게임 펼쳐도 되는거냐?" 하고 한두마디 하더니, 금세 한방에 맛을 들여서는....

집이 떠나가라 박장대소 하면서 정말 재미있게 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만져보니 메탈코인이 정말 훌륭하네요... 친구들도 진짜 돈 같다며...ㅎㅎ

정말이지, 덕분에 굉장히 뿌듯하고, 따뜻하고, 즐거운 주말을 보냈습니다.

어릴땐, 고등학교 때 친구가 평생 간다는 어른들 말이 왜그런지 잘 몰랐었는데...ㅎㅎ

여러분도 곁에 있는 친구들을 소중히 하시길 바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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