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리티

블로그

쪽지

사진 없는 노스포 후기

1,523 조회

2016.01.17 11:12

6월을 진행 중인 상황인데 워낙 할 말도 많고 생각도 좀 정리하고 싶고 해서 리뷰를 남깁니다. 전적은 끔찍합니다. 4승 4패;;

게임을 끝까지 하지 않아 나중에 의견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만, 지금 진행되는 것을 봤을 때 그렇진 않을 것 같습니다.

미리 말씀 드리자면 제가 주고 싶은 점수는 10점입니다.

룰북 및 박스를 뜯자마자 나오는 내용물에 대한 선까지만 설명을 하겠습니다만, 혹여나 이 마저도 스포로 생각하실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뒤로 가기를 눌러 주세요.

======================================================================================================================

1.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의 의미

이름은 팬데믹이고 게임플레이 자체는 팬데믹과 동일하나, 원작과는 완전히 다른 게임입니다.

팬데믹에서 어떤 특정 선택을 하는 이유는 "이번 판을 깨기 위함"입니다.

그 선택이 옳고 그른 것은 이번 판 내에서 결정이 되고, 설령 잘못된 선택을 했다 하더라도 게임을 이기지 못하여 아쉬울 뿐, 마음을 다잡고 다시 하거나 다른 게임을 하면 됩니다.

하지만 팬데믹 레거시에선 옳거나 그른 선택을 할 때마다 앞으로 할 모든 게임에 영향을 미칩니다.

함부로 도박을 할 수가 없습니다.

카드를 받는 데 두 턴을 소모하면 모든 질병의 치료제를 개발하고 이번 월을 끝낼 수 있지만, 그 동안 질병 확산이 두 번 정도 터질 예정이라고 가정하면,

팬데믹이라면 당연히 확산을 무시하고 치료제를 개발하겠지만,

팬데믹 레거시에선 그 질병 확산으로 인해 도시가 붕괴되고 연구소가 파괴됩니다.

즉 진행을 일부러 늦춰서라도 게임 승리를 미뤄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이지선다가 끝없이 강요됩니다.

손해를 감수하고 게임을 끝낼 것이냐, 전염병이 터지는 리스크를 감수하고 질병 정리부터 할 것이냐.

여기서의 잘못된 선택 한 번이 게임의 진행을 송두리채 바꿔 놓습니다.

실제로 저희는 한 번의 도박이 실패하면서 스노우볼이 굴러가 3연패를 달성했고 그로 인해 수많은 도시들이 초토화되었습니다.

앞으로 한 판이라도 더 깰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합니다.

2. 레거시

카드를 찢는 쾌감이 끝내줍니다.

게임을 디자인할 때 카드를 찢지 말고 앞으로의 게임에서도 제거하도록 만들 수도 충분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카드를 찢게 만든 선택이 제일 잘 한 선택 중 하나라고 봅니다.

쎄게 말하자면, 스티커 안 붙이고 카드를 안 찢을 거면 게임 자체를 안 하느니만 못 한 것 같습니다.

우리만의 게임, 우리만의 보드와 캐릭터들과 카드들이 완성되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엄청난 만족감이 듭니다.

3. 감정 소모

게임의 핵심 요소입니다.

매 월마다 새로운 요소와 상황이 주어지고 하나같이 충격적으로 다가옵니다.

뒷통수를 시도 때도 없이 때리죠.

정신을 차려보면 이미 밥상은 엎어졌고 사태는 발생했습니다.

플레이어들은 닥친 사태를 풀어나가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고 있는데, 내러티브가 때로는 비장하게, 때로는 담담하게 상황을 읊어줍니다.

얄밉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리고 이 감정을 같이 플레이하는 모두가 공유한다는 것이 정말 다시 있을 수 없는 소중한 경험입니다.

한 번은 드로우한 카드를 읽고 너무나 당황스러워 같이 플레이하는 친구들에게 무슨 내용인지 설명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영어 해석 담당이었고, 써 있는 글귀를 해석을 못해서가 아니라, 너무 어안이 벙벙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카드를 떨궜습니다.

게임에다 대고 "왜죠? 도대체 어쩌라는 거죠?"라고 묻고 싶었지만 게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4. "그 무엇도 이 게임과 비교될 수 없어요."

이런 경험은 처음입니다.

일반적인 다른 보드 게임들과는 비교 대상 자체가 될 수가 없습니다.

어느쪽이 우월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잘 쓰여진 책과 잘 만든 음악 중 무엇이 더 훌륭한 작품인지는 아무도 대답할 수 없을 것입니다.

팬데믹 레거시와, 예를 들어 푸에르토 리코나 아그리콜라를 비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이러한 스토리 드리븐 게임은 보드 게임보단 비디오 게임에서 훨씬 시도가 많이 되어왔습니다.

하프라이프, 바이오쇼크, 라스트 오브 어스 같은 FPS에서부터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 크로노 트리거 등의 RPG, 브레이드, 언더테일 등의 인디 게임까지.

하지만 이건 비디오 게임들과도 다릅니다.

실제로 여러 사람들이 얼굴을 맞대고 선택지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며 상의하고 말을 움직이고 큐브를 옮기고 새 카드를 뒤집고 마커들을 조절하고 스티커를 붙이고 카드를 찢고 미션에 성공하면 다같이 환호하고 하이파이브를 하고 실패하면 다같이 좌절하고 우울해지는 이 경험.

이런 건 나이 서른 하나 먹고 처음입니다.

저는 많은 분들이 이를 한 번쯤 경험해보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협력 게임에 대한 호불호는 차치하고서라도 말이죠.

5. 그럼에도...

팬데믹은 팬데믹입니다. 시스템적으로는 "카드를 공개하고 플레이한다"는 것만 제외하면 100% 동일합니다.

개인적으로 AP 시스템을 좋아하지 않는데, 이러한 AP 시스템의 고질적인 문제는 여전히 안고 있습니다. 다운타임이 엄청나죠.

심지어 위에서 언급했던 각 선택의 중요성 때문에 한 플레이어의 턴을 할 때마다 몇 분씩 고민하기도 합니다.

물론 다같이 고민하긴 하지만 결정은 본인이 내리니까요.

그리고 월이 지날 수록 스토리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해진다는 느낌은 받았습니다.

아직 6월 진행 중이라 앞으로 어떤 스토리로 뒷통수를 때릴 진 모르겠지만, 예상한 대로 흘러가는 부분도 없잖아 있습니다.

그리고 월의 진행이 비슷한 형태로 반복됩니다. 기대했던 것 보다 좀 뻔합니다. 스포가 될까봐 자세히는 못 쓰는게 안타깝습니다만...

그리고 한글화는 필수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사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에게 지금의 상황에선 강력하게는 추천을 못 하겠습니다.

텍스트가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집니다.

영어를 아는 멤버가 해석을 해 준다고 하더라도 원어의 뉘앙스를 100프로 전달하기가 힘들고, 그 멤버는 결국 지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좀 안타깝습니다... 개인이 한글화하기엔 컴포넌트의 형태 등을 고려했을 때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어디서 나서서 한글화 제품을 발매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보드게임긱 1위도 했는데 말이죠!

설령 12월까지 다 깨더라도 한글화 제품이 나온다면 하나 더 살 의향이 있습니다.

반전을 알고 해도 충분히 재미있을 것 같거든요. 유쥬얼 서스펙트나 식스 센스 같이 잘 만든 영화는 스포 당하고 봐도 재미있듯이 말이죠.

6. 결론

하고 싶은 말이 아직도 산더미 같지만 죄다 스포일러라 손이 (?) 근질근질합니다.

그래도 정리 하자면...

여러 가지로 잘 만든 훌륭한 "레거시" 게임입니다.

모든 보드 게이머들의 취향에 맞을 지는 조금 의문이 듭니다만, 그럼에도 이 글을 보시는 모든 분들이 기회가 된다면 한 번쯤은 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같이 플레이하는 분들끼리 이 경험을 공유해보셨으면 좋겠어요.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는 게임입니다.

그리고 그 가치를 많은 사람들이 소중하게 생각했기에, 최단 시간 안에 보드게임긱 1위를 달성할 수 있지 않았나는 생각이 듭니다.

길고 사진 없이 불친절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이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을 눌러주세요!

내용 보기

팔로우

피드

저장

클래리티

님에게 댓글 작성

댓글 등록

후기

[스카이 팀] 비행일지 스포일러 포함.- 솔플 게임 후기 - 에러 플레이 관...

9월 22일 서산 보드게임 모임 늦은 후기

의정부 토요 정기(?)모임 곰곰 후기(2024.09.28.)

[강서구 보드게임 모임] 다이나믹 24.09.25 수요일 모임 후기 (시계탑에흐...

[성남] BGG 모임 8월 ~ 9월 모임 후기!!!

[보드포웰]모임 후기#40(24.9.25)

(동해 보동보동) 동해시 보드게임 동호회 3월 23일 모임후기

[강서구 보드게임 모임] 다이나믹 24.09.24 화요일 모임 후기 (시계탑에흐...

[영등포] 24년 9월 셋째 주 에레 보드게임 모임 기록

오라파 마인 보드게임 리뷰 - 디덕션계의 수작, 과학쌤 최애겜?

대전 워게임 모임 (HSRAD) 2023~24년 후기 (09/27 업데이트)

최근에 한 머더 미스터리 (기억 되살리기) 리뷰

[강서구 보드게임 모임] 다이나믹 24.09.23 월요일 모임 후기 (가이아프로...

오늘은 딸아이와 양탄자의 손맛이 있는 마라케시를 플레이했습니다.

(동해 보동보동) 동해시 보드게임 동호회 3월 19일 모임후기

29일 오프라인 아발론 하실분 1~2명 급구 (현재 7인)

2020.11.12(목) 평일 모임(280번째) 후기 in 위치스브루

블로거 초청, 체험회 2회차를 맞이하며...

[강서구 보드게임 모임] 다이나믹 24.09.22 일요일 모임 후기 (액시스앤얼...

D043 21개 원더의 앙상블을 보고 싶은 게임 (부록: 보드게임 목재 컴포넌트...

아컴호러 카드게임 : 잊힌 시대 간단 후기 입니다(스포주의! 돌아온 포함)

1 2 3 4 5 6 7 8 9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