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아닌, 나의 페스타 후기
일요일 아침 7시쯤, 아파트 복도를 걸으며 파란하늘을 바라보며, 맑은 공기와 햇살을 느꼈다.
휴일의 조금 이른 시간이라 조금 머언 페스타에 가는 것이 조금 귀찮게 생각되었지만,
막상 차를 몰고 나서니, 뭔가 좋은 기분이 들었다.
일요일 오전에만 유일하게 느낄 수 있는 그 한적함이 가득한 도로를 따라 그곳으로 향했다.
여의도를 경유하는 올림픽대로를 막힘없이 만끽할 수 있는 것은 심야가 아니고서야
일요일 오전이 유일하다. 63빌딩 옆으로 하늘 가득한 갈매기를 닮은 가로등들도 오랫만이다.
1차선으로 차를 달리며, mp3를 랜덤으로 넘기다, 트레인스포팅 ost 마지막 곡이 흘러나왔다.
오랫만이다. 라이브 버전인데, 그런 날이 어울리는 신나고 멋진 좋은 곡이었다.
예전과 다르게 한강변으로 수십억하는 건물들을 좀더 낯설게 느끼며,
곡이 끝날 때쯤 페스타에 도달했다. (빠르다!)
페스타를 찾은 가장 큰 이유는 아캄호러 카드게임이었는데, 운좋게 곧바로 플레이 해볼 수 있었다.
아침에 먹은 감기약 때문인지, 제대로 몰입할 순 없었지만
흠뻑 그 분위기에 빠져들 수 있다면 매력적인 게임이라고 생각했다.
그 멋진 일러스트와 어딘가 매혹적인 테마는 결국 그 게임을 구매하게 만들었지만,
지난 수년간 방치되어있는 다른 게임들처럼, 언제 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조금 늦은 밤, 버드박스 ost라도 틀어놓고 함께 이런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런 친구들이 있다면 좋겠지만, 내게 별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난 그것에 굴하지 않고 광기의 저택과 엘드리치 호러 확장도 아무도, 보란듯이 구입한다.
생의 후반에 접어들어 잔존하는 욕망이 나를 지배한다.
그것은 내 순수한 의지보다는(그런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그동안 살면서 해 왔던 습성에 의해
내가 무의식적이고 맹목적으로 그 무언가를 반복적으로 행하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무의식적으로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나는,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계속 원하고,
그것을 행하지만, 막상 실제로 나는 더 행복해지지 않는다.
난 조금 더 행복하기 위해서 무언가를 선택하고, 구입하지만, 그 과정에서 잠깐 만족감을 느낄 뿐이다.
어쩌면 실제로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만, 현실적으로 그 실체에
전혀 접근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아마도, 어쩌면, 죽는 그 날까지.
어쩌면 이상과 현실이 괴리가 크다면 어쩌면 그것은 그저 망상에 불과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몇개월전 너무나 현실적인 친구는 내게 절교를 선언했다. 30년만에.
아캄호러 카드게임 체험을 한 것은 두번이었다.
정확히 두번째는 한 테이블에서 체험플레이하던 커플과 크루에게 동의를 얻어
구경을 한 것인데, 그들은 어딘가 유독 즐거워보였다.
커플은 낙천적인 사람들로 보였고, 아무 것도 아닌 작은 일에도 연신 웃었다.
게임을 설명하는 크루도 참 밝고, 유쾌하게 분위기를 유도하는 멋진 사람이었다.
나는 옆에 앉아 25분쯤 게임플레이를 지켜보았다.
행복한 마음, 그런 기분들은 유지하는 사람들을 보면, 결국 태생적 문제가 아닐까.
노력을 할 수도 있겠지만, (노력을 하고 싶다)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는(운명이라 할 수 있다) 부모의 성격과 부모의 양육방식, 태도.
어린 아기 때, 충족되지 못한 욕망에 울부짖을 때, 제때 제때 온전한 사랑과
보살핌을 받으면서 성장하였다면, 평생을 보다 행복한 사람의 그 기분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환경과 외적 요인은 둘째 문제고.
부모나 주위 사람들이 늘 긍정적인 말을 하고, 한결같이 안정적이고 평온하고 따스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었다면
(그것에 경제적 안정이나 좋은 환경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사람은 평생에 걸쳐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긍정적인 생각들만 하고 살 확률이 당연 높을 것이다. 곁에 좋은 친구도 많을 것이다.
그러고보면, 쇼펜 하우어 같은 이름따위, 모르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
이곳에서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나 혼자 뿐일지도 모른다.
지난 봄 행사때, 인상적이었던 푸드트럭 핫도그는 그 떄, 그 맛이 아니었다.
이번엔 다른 핫도그 트럭이였는데, 맛이 정말 별로였다. 양배추만 아삭하게 씹힐 뿐,
정확히 말해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아무런 가치도 의미도 없는 핫도그였다.
양동이에 담가놓고 파는 '시원한 콜라'는 하나도 시원하지도 않을 뿐더러
자판기 콜라보다 비싸고 양도 적었다. 속은 기분이었지만, 생각해보니 건강에는 좋다.
1시쯤 행사장을 빠져나와 수십억 하는 아파트 단지들 사이로 차를 몰아
잔존하는 나의 욕망을 의해 국전에 들렸고, 다행히 나는 빈손으로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나는 언제 하게 될지 모르는 아캄호러 카드게임, 광기의 저택들과 함께
다시 랜덤 mp3의 어떤 곡들을 들으며, 몽롱하게 온 몸에 퍼지는 감기약 기운을 느끼며
올림픽대로를 유유히 달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