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직넘버일레븐 재밌습니다(글만 있는 간단후기).

816 조회

2024.07.25 16:00

원래 게임하면서 사진도 안 찍고, 후기 같은 거 좀 어색해해서 보라에는 한줄평만 남기고 있는데요.

한줄평에는 글자 제한이 있는데 그 이상으로 하고싶은 말이 있는 게임을 만나서 후기글을 쓰게 되었네요 ㅋ

매직넘버일레븐 정말 재밌습니다.

펀딩도 꽤 성공적이었던 걸로 기억해서 아마 갖고 계신 분도 어느 정도 있을 걸로 보이는데, 의외로 후기는 많지 않네요.

제 초4아들이 보드게임에는 크게 관심이 없고 축구에 빠져 있는데 이걸로 요새 정말 재밌게 놀고 있습니다.

자세한 규칙은 플레이 영상을 참고하시면 될 것 같고요. 저는 주저리주저리 좋았던 부분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일단 게임하면서 강하게 받은 인상은, 작가 분들이 축구와 보드게임 양쪽에 대한 이해가 매우 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격력, 수비력, 주도권, 연계(조직력) 이 네 가지 개념을 사용해서 축구를 표현했는데요.

그 '적당함'에 감탄했습니다. 의욕이 넘쳐서 더 많은 개념들을 포함시키면 축구의 디테일은 더 잘 표현될 것이고 현실감은 높아지겠지만 웨이트3을 훌쩍 넘는 게이머스게임이 되겠지요.

더 욕심을 내면, 웨이트4가 넘는 비딸축구게임(?), 크바틸축구게임(?)이 되겠지요^^;;

하지만 딱 매직넘버일레븐 정도가 대중성에 초점을 맞추면서 전략성도 어느 정도 만족시키는 절묘한 지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임은 플레이어들이 자기 차례에 경기장에 선수를 배치하면서 아이콘 완성을 통해 위 네가지 지수(공격, 수비, 주도권, 연계)를 조금씩 높여가며 진행됩니다.

연계 지수를 높이면 조직력이 좋아지는 걸 의미하는데, 나중에 공격력이나 수비력에 추가시킬 수 있는 시너지카드를 뽑아 가지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주도권은 두 플레이어간의 트랙 줄다리기인데 주도권이 높으면 슈팅할 때 공격력에 더해지는 시너지카드를 더 여러 장 놓을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집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 슈팅이 일어나는데, 공격 측은 "슈팅하는 선수의 공격력 + 시너지카드의 별 갯수"를 합산하고, 수비 측은 "팀 전체의 수비력 + 시너지카드의 별 갯수"를 합산합니다.

그래서 공격 측 숫자가 높으면 득점, 같거나 적으면 득점 실패인 거죠. 어찌보면 단순히 숫자 비교로 이뤄지는 간단한 게임입니다^^

하지만 조직력과 주도권이라는 두 개념을 통해서 내 숫자를 높게 만드는 발판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이 게임의 전략적인 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거기다가 무조건 한정없이 누가 높으냐를 따지는게 아니라 11이라는 리미트를 둔 지점이 또 절묘합니다^^

공격 쪽이 딱 11을 만들면 수비력에 관계없이 무조건 득점성공(반칙 태클로 저지하는 경우만 예외). 그래서 제목이 매직넘버일레븐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12를 넘으면 똥볼이 되어 무조건 득점 실패라는 것도 재밌습니다.

페널티킥을 감수하고 반칙으로만 저지할 수 있는 무적의 슛(숫자11)이 있지만 거기서 1만 높으면 힘이 너무 들어가 똥볼이 된다. 테마적으로 얼마나 절묘합니까 ㅋㅋ

그럼 득점하려면 무조건 11에만 맞추면 될 거 같지만, 공격 수비 양쪽 모두 최소 한장의 시너지 카드는 덱에서 히든으로 드로우하기 때문에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히든드로우가 한장만 있어도 최종숫자를 통제할 수 없게 되니 결국 운빨망겜 같지만, 그렇게 안 하면 다들 철저히 계산해서 공격시 11을 만드는 플레이만 하려고 할 것이고 재미가 더 떨어질 겁니다.

스포츠의 의외성을 히든으로 뽑은 시너지 카드로 표현한 부분이 저는 더 좋았습니다.

그래서 카드 뒤집는 순서에 팁을 드리자면, 한꺼번에 다 뒤집어놓고 더하지 말고 마지막 히든카드 전까지 뒤집어 숫자를 합산한 후 잠깐 뜸을 들이다가 마지막 히든 카드를 뒤집습니다. 이게 더 쫄깃하고 재밌습니다.^^

"자. 여기까지가 8이다. 마지막 이 카드가 3이면 11이다." "얍"(뒤집으니 4가 나옴). "아. 똥뽈이다ㅠㅠㅠㅠ" 이런 식으로요.

페널티킥은 골대의 다섯위치가 그려져 있는 슈팅카드와 골키퍼카드에서 각각 한장씩을 선택해서 내는 방식입니다.

키퍼가 몸을 날린 방향이 맞았으면 막아내고 틀렸으면 실점하는 단순한 방식인데, 이게 아주 쫄깃하고 짜릿하고 원초적인 재미가 있습니다.

그냥 말없이 카드를 선택해 내도 되지만, 나는 어디로 찰거다, 나는 어디로 뛸거다 하면서 말로 심리전을 걸어볼 수도 있습니다.

가운데로 차서 성공시키면 파넨카킥 드립도 날리고, 암튼 패널티킥에서 테마적으로 입털고 함께 웃을수 있는 요소들이 꽤 있습니다.

시너지카드 덱이 한번 다 소진되면 전반전 끝, 또 한번 소진되면 후반전 끝이라는 요소도 축구의 시간개념을 잘 표현한 것 같습니다.

깨알같은 디테일로, 추가시간이라는 요소도 있습니다(이 후반 추가시간에 극장골이 터져서 아들에게 3:2로 지기도 했습니다ㅋㅋ).

작가들이 보드게임에 대한 이해가 높은거 같다고 생각한게 이 부분인데요.

정해진 턴 수를 마치면 게임이 끝나는 라운드 방식을 택하지 않고 덱 소진 방식을 채택하니, 이기고 있는 쪽은 시너지 카드 덱을 빨리 소진시키는 방식으로 경기를 빨리 끝내려고 하기도 하고, 지고 있는 쪽은 덱이 줄어드는 걸 보며 초조해집니다. 그런 것도 축구에서 일어나는 심리적 역동을 라운드 방식보다 테마적으로 더 잘 표현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선수 카드 수가 적어서 리플레이성이 떨어질 것 같지만, 그 선수 카드를 놓는 방식에 따라 다양한 전략이 가능한 점도 좋았습니다.

수비 무시하고 공격적으로 나가서 선제득점을 한 후 수비를 보강해 걸어잠그는 방식, 수비력부터 올려놓고 실점가능성을 줄인 뒤에 안정적으로 공격으로 진행해가는 방식, 극단적 수비 전략으로 가다가 상대 시너지카드가 소진되면 역습하는 방식 등, 축구의 전술들이 이 게임에 (엄청 다양한 건 아니지만) 제법 큼직큼직하게는 특징있게 표현된 것도 놀라웠습니다.

매 게임마다 주어지는 고작 13장의 선수카드로 말이지요.

너무 흥분해서 사진 한장 없는 후기로 많은 말들을 쏟아냈는데요.

보드게임 좋아하시고 축구 좋아하시면 꼭 해보세요^^ 제가 왜 이렇게 흥분했는지 아실 겁니다.

제작사와 디자이너와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순수한 내돈내산 후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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