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시타델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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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1 00:21

일곱 번째 시타델은 1-4인을 위한 협력 탐험 게임입니다.

보호령의 주도권을 잡고 있던 켈, 거기에 반기를 든 가달록. 두 도시국가 간의 전쟁이 한참이던 무렵, 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새로운 위협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땅에서 솟아난 버로워들입니다.

베일에 싸인 마스터의 명령을 받는 이 거대한 벌레들은 끊임없이 지하 터널을 파내어 대륙의 각지가 붕괴하기 시작했습니다. 켈과 반란 도시들은 어쩔 수 없이 정전협정을 맺고 버로워에 대항하기 시작했지만, 켈의 군단병도, 가달록의 마법사들도, “계획과 장치”길드의 공학자들도, 버로워 앞에서는 무력했고 모든 것이 끝장인 것만 같았습니다.

실낱 같은 희망은 고대의 드루이드 클랜으로부터 등장했습니다. 그들은 신성한 맹약을 어기고 금지된 혈마법을 사용하여 흉물스러운 식물 창조물을 만들어냈습니다. 오직 이들만이 땅속에서 접근하는 버로워에 대항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했으며, 새로이 탄생한 네크로-드루이드들이 이 땅의 지배권을 거머쥐기 시작했습니다.

이 “벌레 전쟁”이 지속된지 50년. 온 세상은 황폐화되었고 끊임없는 전투와 투쟁으로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강력했던 도시국가들은 쇠퇴하여 껍데기만 남았고,아직도 웜 마스터의 정체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네크로드루이드들은 각자의 성을 쌓아 시타델이라 일컬으며 노예 정원사들을 부려 흉물스러운 식물 피조물을 길러내어 간신히 벌레들에게 대항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네크로드루이드 ‘니니다지르’의 시타델에서 일하고 있는 노예 정원사 중 한 명입니다. 끝없는 고통과 노동으로 가득한 삶을 살고 있던 어느 날, 원인을 알 수 없는 엄청난 지진과 함께 시타델이 붕괴했고, 당신은 허허벌판 위에 동료였던 노예 정원사들과 함께 작은 공동체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황량한 대지에서, 당신과 동료들은 과연 닥쳐오는 위협 앞에 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옛 사람들의 지식과는 너무도 달라진 이 땅을 탐험하여 물자와 정보를 구하고, 공동체의 번영을 구가할 수 있을까요? 모든 것은 당신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일곱 번째 시타델”은 한때 보드게임계를 들썩이게 했던 “일곱번째 대륙”의 후속작입니다. 동일한 회사, 동일한 디자이너, 그리고 거의 동일한 메커니즘을 계승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전혀 다른 배경과 많은 차이점도 존재하는데요. 저도 7대륙을 너무나 재미있게 했기 때문에, 후속작 소식이 들리자마자 킥스타터에 들어갔는데 그게 2020년이었죠. 이걸 받는데 4년이나 걸릴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ㅋㅋㅋㅋ 그래도 결국 잘 받았고 조금씩 플레이를 진행하여 얼마 전에 위협(메인 시나리오) 1개를 클리어 했는데요, 요즘 다시 레이트 플렛지도 열리는 것 같고 궁금해하실 분들도 있을 것 같아 진행하면서 느낀 점, 그리고 7대륙과의 차이점 위주로 후기를 써보려 합니다.

우선 7대륙의 경우 “저주”가 하나의 시나리오이며 아주 커다란 맵에서 탐험하며 저주를 풀어 나가는 게임이었죠. 선택에 따라 여러 개의 저주를 동시에 진행하는 것도 가능했고 저주당 시간은 최소 10시간 이상 걸리는 큰 스케일의 게임이었습니다. 7타델도 스케일은 전혀 뒤지지 않습니다. 커다란 박스를 가득 채운 수많은 카드들, 100페이지에 육박하는 스토리북, 장대한 스케일의 맵까지… 그래도 바뀐 점이 있다면, 전작의 호흡이 너무 길다고 생각했는지 7대륙에서는 하나의 시나리오(위협)을 세부적인 여러 개의 세션으로 나누어 놓았습니다.

제가 받은 코어박스에는 1개의 튜토리얼 위협과 3개의 메인 위협이 포함되어 있고, 튜토리얼을 제외한 위협들은 각자 5~10개 (진행분기에 따라 달라지는듯)의 미니 세션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각의 세션마다 해결해야 할 목표가 있으며 완수 또는 실패하더라도 세션이 종료되고 결과에 따라 다음 세션으로 넘어갑니다. 각 세션은 2~3시간가량 소요되었습니다. 7대륙 플레이하면서 대체 언제 끊어야 할지 애매했던 것을 생각하면 굉장히 좋은 변화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방식으로는 여러 개의 시나리오를 동시에 진행할 수 없고, 탐험하다가 호기심이 생기는 곳이 있더라도 그것보다는 현재의 목표를 완수해야된다는 압박이 강하기 때문에 자유도 측면에서는 7대륙보다 감소한 것이 사실입니다. 반복사냥과 아이템의 효율적인 사용, 세이브로드 신공으로 무한파밍이 가능했던 7대륙과는 달리, 7타델은 한 세션 내에 HP의 형태로 어느 정도 타임리밋이 걸려있습니다. HP를 회복할 수단도 확보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또 한 가지의 특징으로는 전혀 미지의 세계를 탐험해 나갔던 7대륙과는 달리, 7타델은 무려 세계지도를 제공합니다!

그러나 사실 이 지도는 버로워들이 등장하기 전 세계의 지도이기 때문에, 현재의 지형은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대지에 거대한 크레바스가 생겨 건너가지 못하는 곳도 있고, 강과 호수의 위치가 변하고, 숲이 모두 불탔거나, 바다가 내륙 깊숙이 침식해 들어오는 등, 지도만 믿고 전진했다가는 위험에 빠질 우려가 큽니다. 그러므로 인게임에서는 따로 정찰대를 보내 지역을 확인하고, 새롭게 알게 된 정보를 업데이트하여 지도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위 지도 사진을 자세히 보시면 슬롯이 나뉘어져 있어서 각 슬롯에 새 카드를 끼워서 지도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이 시스템 역시 저에게 몹시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예를 들면 특정 정보를 얻기 위해 예전에 존재했던 도시의 도서관을 찾아가야 할 때, 지도를 참조하여 그 도시의 대략적인 위치는 알 수 있지만 거기까지 도달하는 경로는 직접 탐험해 나가며 몸으로 부딪혀야 하는 식입니다.

그리고 7타델에서 우리는 단순히 몇 명의 모험가 무리가 아닌, 수십 수백명으로 구성된 공동체의 리더 집단입니다. 따라서 탐험에만 집중할 수 없으며 우리 마을의 보급과 방비, 평판, 정보에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탐험 중에 이런 수치들을 올릴 수 있으며 별도로 ‘희망’이라는 일종의 경험치를 모아 마을을 진보시키고, 새로운 건물을 건설하여 보너스를 얻고, 상위 스킬카드를 얻고, 미지의 땅으로 정찰대를 보낼 수 있습니다. 세션 사이사이에 이런 업그레이드와 해금요소가 이 게임의 큰 매력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제가 느낀 단점에 대해 풀어보겠습니다. 7대륙과 유사한 단점이 있고 오히려 더 안 좋아진 점이 있는데요

우선 7대륙과 마찬가지로, 위와 같은 수많은 액션들이 있습니다. 물론 아이콘만 다를 뿐 해결법은 똑같기 때문에 룰상 어려운 점은 전혀 없는데요. 문제는 대부분의 상급 스킬 카드, 아이템 카드는 특정 액션을 할 때만 유용하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카드는 치료를 할 때 큰 보너스를 주어서 매우 어려운 치료액션이라도 성공할 수 있도록 해주는데요. 문제는 치료액션을 언제 하게 될 지 예상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입니다. 핸드에 들고 있을 수 있는 스킬 카드 수에는 제한이 있는데, 이 카드를 내가 계속 붙들고 있어야 할지, 아니면 빨리 버리고 당장 필요할 것 같은 다른 카드를 찾아야 할지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7대륙에서는 그나마 아이템을 조합하거나 범용성 있는 카드를 챙기는 식으로 대응이 가능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7타델에서는 뭔가 액션 종류도 더 많아진 것 같고 꼭 들고있는 카드와 맞지 않는 액션을 맞닥뜨리는 경우, 오래 들고 있다 결국 못참고 버렸는데 그 액션을 하게 되는 경우가 체감상 매우매우 많아 답답한 느낌이었습니다. 범용성 있는 좋은 카드의 수도 줄어든 것 같구요.

또 다른 답답한 점은 “0XX번 카드”(스포방지) 시스템입니다.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0XX번 카드를 뽑아 당신의 운을 시험하세요 라는 지시사항이 종종 나옵니다. 0XX번 카드는 여러 장인데 대성공, 성공, 실패, 대실패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즉 주사위를 굴려 성공/실패를 판정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죠. 문제는 이 시스템이 게임 중에 너무도 자주 등장하고, 이를 보정할 수 있는 수단은 극히 적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아주 어려운 테스트에 많은 자원을 소모하여 성공적으로 마치고 나서도, 추가로 카드를 뽑아 운이 나쁘면 실패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7타델은 협력 탐험 게임이고, 이 게임의 주된 재미는 새로운 요소와 스토리를 발견하고 앞으로 진행해 나가는 것에 있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의 난관이 있는 것이 좋지만 단순히 운이 나빠서 같은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는 것은 유쾌하지 못한 경험입니다. 저는 앞으로는 뽑기에서 실패가 나올 시 특정 페널티를 받고 성공으로 바꾸는 하우스룰을 적용할 예정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마지막 단점은 이 게임의 보상체계입니다. 위에서 탐험 중에 일종의 경험치인 ‘희망’을 얻어 여러 요소를 해금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죠? 그런데 한 세션에서 얻을 수 있는 희망에는 최대 개수 제한이 있습니다. 플레이어가 경험치를 너무 빨리 모을 경우 오버파워가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소프트캡으로 생각되는데, 문제는 한 세션 내에서 이 캡에 도달하는 것이 매우 쉽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저희 파티는 첫 세션을 제외한 모든 세션에서 이 제한을 꽉 채워 희망을 받았습니다. 즉, 더 이상의 목표나 사이드퀘스트를 달성하더라도 추가적인 보상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이 게임에는 세션의 주요 목표 외에도 수많은 사이드퀘스트들이 있습니다. 마을 사람의 사소한 부탁에서부터, 우연히 찾은 보물지도, 위험한 범죄현장의 흔적 등 스토리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요소들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이 사이드퀘스트를 완수했을 때 받게 되는 보상은 거의 언제나, 추가적인 ‘희망’이며, 이미 충분한 개수의 희망을 모은 파티에게는 결국 아무 보상이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흥미로운 사이드퀘스트를 시작하게 되더라도,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게 되곤 합니다. 이점은 희망을 더 모으기 어렵게 하거나, 보상을 재미있는 (너무 강하지 않은) 아이템으로 대체하는 식으로 충분히 개선 가능했을 것 같은데 아쉬움이 남습니다.

쓰고 나니 게임의 단점이 매우 긴데, 사실 저는 7타델을 엄청나게 재미있게 즐겼습니다. ㅋㅋㅋ

재미있었던 만큼, 게임 중에 아쉬웠던 점이 더 크게 느껴진 거겠죠... 위협 하나를 끝냈는데도 아직 지도의 1/3 정도밖에 밝히지 못했고, 해금해야 할 요소들도 아직 산더미입니다. 거의 모든 카드가 스포요소이다 보니 사진을 거의 올리지 못한 점도 아쉽네요.

보라나 부갤에 간간히 플레이하시는 분들이 계시는 것 같던데, 그분들의 이야기는 또 어땠을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한글판 출시는 매우 어렵겠지만… 언젠간 가능해지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