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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콰이어, 나와 잘 맞을까?

2,067 조회

2024.05.09 14:30

안녕하세요? skeil입니다.

지난 주에 어콰이어 신판의 한국어판이 발매되어서

그 게임이 어떤 게임인지 소개하려고 합니다.

저의 이 연재글은, 해당 업체로부터 뭔가를 받은 건 아니고,

제가 그 게임을 좋아해서 팬심으로 쓰는 글임을 미리 밝힙니다.

바쁘신 분들을 위해서 이 게임과 맞지 않는 분들을 먼저 적어 보겠습니다.

1. 1인플이나 2인플만 하시는 분

공식적으로 어콰이어는 2인부터 6인까지 가능합니다만 4인이 최적입니다.

인원이 적어지면 뭔가 잘 안 생겨나고,

반대로 많아지면 내 턴이 돌아올 때까지 너무 많은 일들이 발생해 버립니다.

규칙서 뒷부분에 2인용 규칙이 따로 있는데,

경쟁할 가상의 중립 플레이어가 보유한 주식 수를

랜덤으로 뽑은 타일에 적힌 숫자로 결정하거든요.

그러니 어콰이어를 굳이 2인으로 하실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2. 운 요소를 싫어하는 분

어콰이어는 건물 타일 운이 매우 크게 작용합니다.

108개의 건물 타일 중에서 내가 필요한 게 늦기 전에 뽑혀야 쉽게 풀리는데요.

모든 플레이어가 타일 풀에서 랜덤으로 뽑고, 무얼 뽑았는지 무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전략적으로 큰 그림을 그리면서 플레이하는 게 쉽지 않고,

어디서 기업이 만들어질 것 같다, 어느 기업이 인수될 것 같다는 감과 눈치가 중요합니다.

3. 단순한 게임을 싫어하는 분

이 게임은 긱에서 1963년 작품이라 등록이 되어 있는데요.

검색해 보니까 출판된 건 64년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올해가 60주년이 되는 해인 걸로 보입니다.)

보드게임 커뮤니티에서 소위 '고전 게임'이라면서 언급되는 작품들도

어콰이어보다는 한참 아래 후배들입니다. ㅎㅎ

당시대를 감안하면 어콰이어는 정말 잘 만들어진 작품임에는 분명하지만

최근 게임들에 익숙한 분들에게는 구조와 흐름이 너무 단순해 보일 겁니다.

이제 덜 바쁘신 분들을 위해 어콰이어에 대한 얘기를 더 해 보겠습니다.

잠깐 옛날 이야기를 하자면,

네덜란드가 인도와 동남아시아로 진출하기 위해 1602년에 세운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주식을 발행한 최초의 주식회사라고 합니다.

네덜란드는 1567년부터 1648년까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전쟁을 하고 있어서

국가가 상단을 직접 조직할 여력이 없었는데요.

상인들이 알아서 하게 놔뒀더니 향신료를 과잉공급해서

가격이 폭락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의회를 거쳐, 관련된 여러 무역회사를 하나로 통합시켰는데,

그게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입니다.

이 회사는 1800여 명의 네덜란드 시민으로부터 모금했고,

몇 년 후에 상선이 돌아와 수익을 내면

원금과 수익금을 투자자들에게 돌려 주는 방식으로 운영했습니다.

그래서 돈을 투자한 사람들에게 이 회사의 투자자임을 증명하는 문서를 주었는데요.

그게 오늘날의 주식입니다.

어콰이어가 주식 보드게임의 대표작이긴 하지만

실제로 플레이해 보면 예상하던 느낌이 아닐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게임은 주식을 매매하는 게임이 아니라

기업 지분을 확보하는 게임이기 때문이죠.

플레이어들은 주식을 자유롭게 매도할 수 없어서

게임 중 대부분의 시간은 주식을 매수하는 데에 씁니다.

한글판 제목인 "어콰이어"는 영어 제목인 "Acquire"를 그대로 독음한 것인데요.

기업 경영에서 자주 나오는 'M&A'라는 용어는

합병을 뜻하는 'merger [머저]'와 인수를 뜻하는 'acquisition [애퀴지션]'을

붙여서 부르는 것입니다. (acquisition의 동사형이 acquire입니다.)

그러니까 제목에서 이미

'이건 기업간 인수합병을 다루는 게임이다'

라고 대놓고 알려 주고 있는 것이죠.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들은 소액 투자자가 아니고 거대 자본을 가진 투자자입니다.

호텔 업계에서 기업을 일으키고 합병시킬 정도로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이요.

이들의 주요 목적은 주가가 낮을 때에 사 두었다가 팔아서 차익을 남기는 게 아닙니다.

대주주 보너스를 받기 위해 그 기업에 대한 지분율을 높이는 겁니다.

어콰이어는 타일 놓기 메커니즘을 사용합니다.

플레이어는 건물 타일 6개를 가진 채로 게임을 시작하고,

자신의 턴에 건물 타일 1개를 놓고 타일 풀에서 보충받는 식으로요.

타일은 저마다 고유한 넘버링이 있어서 일치하는 칸에만 놓입니다.

타일이 놓이면 그게 새로운 기업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기업간 합병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이 게임이 호텔 체인 업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게임 보드를 그 업계의 전체 시장으로 받아들이면 이해하시기 쉽습니다.

게임 보드에 새로운 기업이 세워지면 그 기업이 이 시장에 진입한 것이고,

기업이 타일을 연결시키면서 크기를 키우면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것이겠죠.

게임 보드 위에서 둘 이상의 기업이 서로 연결되려고 하면

그게 인수합병의 순간이 됩니다.

이처럼, 우리가 실제 기업 경영에 대해 전혀 모르더라도

크기가 제한된 2차원 평면 위에 타일들을 놓는 것을 통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플레이어들은 시작 자금으로 $6,000나 받아서 가진 돈이 많은 것 같지만

매턴 주식을 구입하기 때문에 몇 라운드 돌면 돈이 슬슬 떨어집니다.

이 게임에서, 돈이 필요하다고 해서 주식을 내 마음대로 팔 수도 없고,

대출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플레이어들에게 돈이 나올 구멍은 딱 하나입니다.

기업이 인수될 때뿐이죠.

합병 시에 규모가 작은 기업이 큰 기업에 인수되는데요.

인수되는 기업의 주주들에게만 돈을 얻을 기회를 줍니다.

돈은 다음 두 가지에 대해 받습니다.

하나는 상위 주주로서 보너스를 받는 것이고,

나머지는 보유한 주식을 매도하는 것이죠.

인수되는 기업의 상위 주주들은 (클래식 모드: 2대 주주까지, 타이쿤 모드: 3대 주주까지)

차등적으로 주주 보너스를 받는데요.

1대 주주 보너스는 항상 그 기업의 현재 주가의 10배입니다.

아무리 작은 기업이라도 인수되면

1대 주주는 보너스로 최소 $2,000를 받습니다.

시작 돈이 $6,000이라고 위에서 얘기했죠?

예를 들어서, 초반에 내가 1대 주주인 기업 3개를 인수시키면

시작 돈 이상의 수익을 낼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초중반에 상위 주주들의 돈잔치 (?)에 초대받지 못하면 매우 힘들어지죠. ㅠ

기업은 확장하거나 합병에서 살아남으면 덩치가 커집니다.

크기가 커지면 당연히 주가도 오르죠.

그런데 주가는 기업의 크기가 커질수록 느리게 상승합니다.

그러니까 주가가 낮을 때에 매수했다가 높을 때에 매도하려면

꽤 오래 묵혀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이에 비하면, 기업들을 창립하고 빠르게 인수시켜서 받는 상위 주주 보너스는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고,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도 않아 보이는데요.

그러면 상위 주주가 되는 게 쉬울까요?

플레이어들은 자신의 턴에 활성 기업들의 주식을 원하는 조합으로

최대 3주까지 매수할 수 있습니다. (활성 기업마다 최대 3주가 아닙니다.)

한 번 활성 기업이 되면 시장에서 사라지기 전까지

돈이 있는 누구나 그 기업의 주식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각 기업의 주식은 총 25주로 제한되어 있어서

주주들이 주식을 주식 시장에 반납하지 않는 한

주식 시장의 주식은 계속 줄어듭니다.

또한 플레이어 턴에서 건물 타일 놓는 것이 주식 매수보다 먼저이기 때문에

내가 합병 타일을 놓아 버리면 그 턴에는 인수되는 기업의 주식을 못 삽니다. ㅠ

그러니까 내가 상위 주주라는 확신이 있을 때에 인수시켜야 하겠죠.

그래서 기업의 창립자에게 주는 보너스 주식 1주가

크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남들이 주식을 똑같이 매수하면서 따라와도

창립자인 플레이어는 항상 최소 1주는 더 많거든요.

하지만 창립자도 거대 자본 앞에서는 약해질 수 있습니다.

작전 세력들이 달라 붙어서 그 기업의 덩치를 일부러 키우면 주가가 오릅니다.

주식을 이전처럼 3주를 매수하지만

자본력이 약한 플레이어에게는 점점 오르는 주가는 꽤나 부담이 되고요.

주가를 계속 올리면서 각자 가진 자본력으로 대결하면

결국 돈이 적은 플레이어가 나가 떨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건물 타일이 11개 이상이 되면

그 활성 기업은 인수될 수 없는 문제도 있습니다.

게임에서는 이걸 '안전 기업'이라 부르는데요.

인수시켜서 상위 주주 보너스를 먹으려고 했지만

너무 간을 보다가 또는 원하는 건물 타일이 안 나와서 합병 타이밍을 놓치면

그 기업이 안전 기업이 되어 버리면서

게임이 끝날 때까지 그 기업으로부터 돈을 못 받게 됩니다. (돈 필요할 때에 최악의 시나리오죠.)

뜬금없는 질문입니다만,

어콰이어에서 주가는 왜 떨어지지 않을까요?

실제 주식시장에서, 주가지수는 단기간에 등락이 있지만

장기간에 걸쳐서 보면 계속 오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떨어지기 직전에 들어가서 그렇지...~~

제 생각엔, 아마도 어콰이어는 상당히 장기적인 관점에서 시장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단기간에 있을지 모르는 주가 하락이 (상대적으로 너무 작아서) 무시된 게 아닌가 싶네요.

그리고 위에서 설명했습니다만,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들이 거대 자본가이기 때문에

주가가 좀 떨어지는 건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 그런 게 아닌가 싶기도...

이번 글을 쓰면서, 어쩌면 현실에서 우리가 아직 빨간약을 먹지 않아서

주식 차트 뒤에 있는 거대 자본가들을 못 알아차리고 있는 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주식을 팔아서 얼마 먹었다며 좋아하고 있는데,

누군가는 기업을 팔아서 천문학적인 돈을 벌고 있고...

나는 바다 위의 작은 고깃배에서 낚시하는 어부 1에 불과하고

내 뒤로는 집채만한 파도들이 치고 있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ㅠㅠ

크툴루 신화를 코스믹 호러 (우주적 공포) 장르라고 하는데,

어콰이어는, 이런 용어가 없겠지만

'캐피털 호러 (자본적 공포)'를 깨닫게 하는 게임이 아닐까 싶네요.

어린이들이 즐겨하는 보드게임들 중에 "인생 게임"이 있습니다.

대학 다니고 취업하고 결혼하고 출산하고...

다수의 어른들은 이미 겪었을 경험들을

아이들이 게임을 통해 미리 경험하는 건데요.

어쩌면 어콰이어는 주식 부자를 꿈꾸는 어른들을 위한 "인생 게임"인 것 같습니다.

이번 생에서는 불가능하니까 게임에서라도 경험해 보자. ㅠㅠ

제가 이런 얘기 저런 얘기로 글을 꽤나 길게 썼습니다만

어콰이어의 느낌과 단점까지 다 다뤘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옛날 게임이라 요즘 게임과 직접 비교하는 게 좀 이상한데요. ~~60세 노인공격 ㄴㄴ~~

옛날 게임일수록 구조나 흐름이 직관적이기 때문에

보드게이머가 아닌 부모님이나 친구가 집에 왔을 때에

주식 게임 한 번 하자면서 꺼내기에 놓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캐주얼한 게임을 주로 하는 모임에서도 좋고요.

한때 아발론힐에서 나왔던 1999년 판본이 절판된 후에 중고가가 폭등했지만

(이번 한글판이 기반으로 하고 있는) 2023년 판본이 나왔거든요.

솔직하게 말하면, 1999년 판본에는 좀 못 미치는 감이 있지만

최대한 가깝게 잘 나온 것 같습니다. (저는 2023년 판본을 영어판으로 가지고 있어요.)

40년 후면 어콰이어 100주년인 해가 될 텐데요.

제가 그걸 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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