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프로젝트 12/10
코로나 이후, 그리고 본격 육아의 길로 접어든 이후로 게임에 대한 갈증을 못 풀고 있다가, 작년부터 아레나에서 이를 풀 수 있다는 걸 발견하고, 최대한 많은 게임을 해보고 싶은데 방법이 없는 게 아니니... 그동안 게임을 많이 못 해본 걸 이제라도 만회해 보고자 올해는 최소한 100개의 게임을 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처음엔 안 해봤던 게임 100개를 해보자, 생각을 했었지만, 무리한 계획인데다, 어차피 해본 게임들도 기억이 가물가물한 게임이 많아서 그냥 100개도 충분히 의미가 있겠다 생각했어요. 다행히 아레나에 수많은 게임들이 있고, 올해는 오프모임도 종종 나갈 기회도 있고, 또 앱들까지 구매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기왕 플레이하는 거, 기록으로 남기는 게 의미가 있겠다 싶어, 10개 단위로 후기를 남겨볼까 합니다. 개인 메모장으로 남긴 글을 긁어오는 것이라, 리뷰 내용은 반말로 작성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게임 제목 (평점, 플레이 방식) 형태로 작성되었습니다.
111. 드래고노미노 (10, 가족들과)
드디어 이 게임이 등장한다. 딸과 함께 게임이 가능하겠다고 생각한 후, 어느 날 갑자기 이 생각이 들었다. 이 게임, 같이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게임은 작년 페스타에서 처음 만났는데, 당시에 아들과 함께 페스타에 가서 체험을 한 뒤에 바로 구매했던 게임이다. 킹도미노처럼 두 가지 색상이 있는 도미노 타일을 일반적인 드래프팅 규칙으로 가져와서 같은 색 타일을 연결하면 동일한 색상의 알을 뒤집어서 용 또는 깨진 알을 획득할 수 있다. 8턴을 해서 용이 많은 플레이어가 승리한다. 이 때 포인트는, 킹도미노와 동일하게 6종의 색상이 있는데, 알은 9, 10, 11, 12, 13, 14개가 있고, 알에 있는 용의 수는 모두 동일하게 7개이기 때문에, 용을 획득할 확률이 다르다. 물론 확률 높은 알의 타일은 수가 적다. 간명하고 직관적인 규칙에, 당시 다섯 살이던 아들도 콤보 - 4개의 타일 선택지 중, 어떤 타일은 잘 붙이면 2개, 3개의 알을 한꺼번에 깔 수 있는 상황이 올 수 있다. - 도 잘 터트리는 걸 보고 정말 잘 만든 게임이라고 생각했고, 확률이라는 개념을 체감할 수 있겠다는 게 마음에 들어 곧장 현장에서 구매했다. 그런데, 의외로 집에 들고 온 뒤에 아들은 다른 게임보다 이 게임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 했고, 결국 책꽂이 한 구석에 처박힌 채로 1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아무튼 겨울이 찾아오고, 딸도 이제 게임이란 걸 같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즈음, 이 게임 그냥 같은 색깔 맞추기만 할 수 있으면 되는 거 아냐?란 생각이 들어 딸과 함께 해보기로 했는데, 결과는 대성공. 처음 알려준 이후로 거의 매일 게임을 하고 있다. 게다가 묘하게 뽑기 운이 엄청나게 좋아서 모든 확률을 뚫어내고 용을 뽑아낸다.
한편, 아들이 이 게임을 싫어하는 이유도 알게 되었는데, 아들과 대화를 통해 알게 된 것은 “깨진 알을 뽑는 것이 싫어서”였다. 이것도 참 묘한데, 다섯 살 여섯 살 난 아이가 자기 실력이 아니라 운으로 승패가 결정되는 걸 싫어한다는 것도 신기했다. 딸이랑 달리 아들은 뽑기 운이 영 별로인 편이다. 게임을 만들 땐, 실력에 대한 차이를 보정하기 위해 운 요소가 들어가는 데, 아이들에게 그것이 상당히 불편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떤 운, 어떤 뽑기는 기분을 좋게 하고, 어떤 것은 기분을 나쁘게 만드는가? 어려운 문제다. 아들은 할아버지가 방문하신 날, 할아버지가 좋아서 같이 게임을 했지만 역시나 그날도 쏟아지는 깨진 알들에 좌절하고 눈물을 쏟았다. 그게 얼마나 속상했던지, 게임 후에 결국 알 타일들을 모아놓고 타일 뽑기 연습을 했다. 그러고는 타일들 숫자를 하나하나 다 세고는 빨간 색 타일 수가 가장 적어서 알을 뽑을 확률이 가장 높다는 사실까지 파악했다. 이럴 수가! 난 단순히 더 짙은 색일수록 확률이 좋아지는 줄 알고 세보지도 않고 검정색 확률이 제일 좋은 줄 알았는데! 음, 아무튼 당초 이 게임을 샀을 때 생각했던 확률 개념을 이해하는 데 정말 도움이 된 것인가… 생각하면 보람차야 하는데, 아들이 너무 슬퍼해서 마음이 복잡하다.
이제 딸은 주변의 도움 없이도 콤보를 잘 만들어내는데, 타일을 놓으면서 어떻게 하면 두 개를 받을까?라면서 타일을 휙휙 돌리며 맞추는 건 거의 진기명기를 보는 느낌이다. 그리고 어제, 단 한 번도 조언을 하지 않은 1:1 게임에서 3살 딸에게 패배했다. 사실 딸은 아직 숫자 개념도 없어서 게임 결과를 해석할 수 없다. 그냥 용을 뽑으면 좋은 거,라는 정도만 아는데, 이 게임의 과정 자체가 즐거운 듯 하다. 어제 저녁엔 아내도 패배했는데, 패배 후에 아내가 슬퍼하자, “괜찮아, 다음엔 이길 거야.”라고 말해줬다. 다음 판은 봐주겠다는 뜻이었을까? 이미 50판은 돌파한 느낌이고, 한 판에 10분도 안 걸리기 때문에 아마 100판 이상은 무조건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인 올해의 게임상을 줘야 한다면 딸을 보드게임의 세계에 확실하게 데리고 온 이 “용 게임”에게 줄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112. 야옹이는 돌돌돌 (5, 가족들과)
압도적인 비주얼에 끌려 출시 때 샀던 게임인데, 지금보다 더 어렸던 아들은 줄을 매는 데 어려움을 느껴 구매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만 차지했다. 드래고노미노의 압도적 데뷔 후, 여러 게임들을 시도해보는 중인데, 딸은 생각보다 줄을 매는 건 야무지게 해서 신기했지만 크게 재미를 느끼지는 못 했다. 그리고 아들과도 오랜만에 다시 게임을 했는데, 이젠 완전히 게임도 이해하지만 역시 썩 재밌게 느끼지는 못 했다. 이런 게임의 태생적인 문제가 하나 있는데, 줄이 점수 영역을 통과할 때의 판정 문제다.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겐 어느 정도 봐줌이 생기게 되는데, 이게 맞나 싶기도 하다. 왜냐하면 다른 게임들은 완전히 규칙을 지키면서도 봐줄 수 있는데, 이 게임은 선이 간당간당하게 붙은 걸 애들은 주고 나는 안 갖는 게, 뭔가 하면서도 이상한 느낌이 든다. 이런 면이 아이들과의 게임에서의 어떤 매력일 수도 있겠으나, 개인적으론 아, 이런 건 좀 이상하네, 란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113. 줄로레또 (8.5, 가족들과)
딸이 “팬다 게임”이라고 부르는 게임. 이제 4인 가족 게임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다양한 게임을 시도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무렵, 아이들이 둘다 팬다를 좋아하고, 어느 게시글에 후기를 보고 한 번 해보면 좋겠다 생각하고 큰 기대 없이 구매했던 게임이다. 사실 정말 기대가 없었어서, 한 번 정도 해보고 빠르게 처분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구입했다. 그런데… 이 게임도 딸에게 통한다. 주머니에서 타일을 뽑아서 트럭에 놓는다. 트럭에서 동물 타일들을 가져와 자기 동물원에 놓는다. 동물은 우리마다 같은 동물만 넣어야 한다. 여기까지의 규칙을 이해한다. 당연히 점수는 모른다. 하지만 이 과정을 즐기고, 게임에 들어와 순서를 기다린다. 처음엔 좋아하는 팬다를 모으려고 했지만 몇 번 하고부터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안에 맞게 넣어야 한다는 걸 이해한다. 이 정도까지 이해하고부터는 4인 가족 게임은 어느 정도 협력 게임 형태를 띄면서 부부만 경쟁 게임이 되는 묘한 게임이 된다. 게임을 어떻게 즐기는가는 결국 어느 정도 게이머의 몫으로 남게 되는데 협잡의 요소에 딱 이만큼의 자유도로 모두가 즐길 수 있는 판을 깔아준 데 박수를 쳐주고 싶다.
현재 드래고노미노와 함께 딸의 Top 2 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데 둘을 보면서 유아가 즐길 수 있는 게임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매 턴이 극도로 단순해야 한다. 그러나 매 턴 새로운 선택지가 있어야 하고, 그 선택지가 예뻐야 한다.
(T2R은 실패했는데, 매번 같은 걸 가져가는 게 흥미를 낮추는 걸로 느껴졌다.)
내 공간을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T2R이나 카르카손은 명예의 전당 급 가족게임이어서, 좋은 가족 게임은 공용 공간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 않았다.)
선택의 결과로 무엇이 얻어지는지를 바로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114. 티켓 투 라이드 (10, 가족들과)
우리 집엔 T2R 10주년 기념판, 15주년 기념판이 다 있다. 아내의 최애 게임 중 하나이고, 부부가 둘 다 바오밥에서 주최했던 게임 대회 4강 진출 기록을 갖고 있다. 줄로레또까지 딸에게 먹히는 걸 보고, 다같이 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아이들도 쉽게 할 수 있도록 카드 사이즈가 작은 일반판을 동네에서 저렴하게 하나 구입했다. 과감하게 시도해 보았으나, 딸은 사실 많이 힘들어 하는 느낌이라 미안했지만, 아들은 작년에 한 번 해봤을 때와 다르게 엄청나게 흥분하며 게임을 즐겼다. 계속 더 하고 싶어했지만 딸에게 아직은 좀 무리라 막 꺼내주기는 힘들다. 부부가 모두 좋아하는 이 게임을 다 같이 즐길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길.
115. 나나 (8, 오프모임)
잘 만들어진 메모리 게임. 메모리 게임 자체에 부담을 느끼는 성인들이 많지만 외워야 할 게 많지 않고 규칙이 깔끔해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듯 하다. 해외에선 “트리오”라는 이름으로 발표되어 소소하게 화제가 되는 듯해, 성적도 괜찮을 것 같다. 하지만 테마는 한국판의 냥냥이 테마가 훨씬 좋지.
116. 고피쉬 한자 (7.5, 가족들과)
요즘 첫째 아들이 빠져있는 것은 한국사와 한자다. 예전부터 행복한 바오밥 사의 기둥뿌리로 알려져 있는 고피쉬 시리즈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는데, 위에서 언급한 티켓 투 라이드 중고판과 함께 저렴하게 한꺼번에 들였다. 게임을 해본 감상은 역시 한 회사의 기둥뿌리가 괜히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느낌. 별 거 아닌 규칙인 거 같은데, 묘하게도 밸런스가 절묘하게 들어받는 느낌인 게 신기하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 카드를 요구할 때, 그 카드가 내 손에도 있다는 정보도 같이 얘기하기 때문에 게임 중에 다른 플레이어들의 액션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점이 좋았다. 또한, 내어줄 카드가 없을 땐 “고 피쉬(낚시 해!”라고 외치는 걸 아이가 엄청 신나 해서, 아 이런 걸 애들이 좋아하는구나, 하고 신기하게 느꼈다. 아들의 최애 게임으로 등극했다.
117. 타임라인 한국사 (5, 아들과)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아들이 빠져 있는 한국사에 관계된 게임을 해주고 싶어서 구했다. 사실 굉장히 큰 기대를 하고 게임을 열었는데, 이런 류의 게임의 태생적인 문제가 있어서 게임은 무척 아쉬웠다. 그 문제란 것은, 한국사 사건 연대의 난이도가 6살 아들에게도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는 점이다. 고대사는 사건들이 띄엄띄엄 있고, 현대사는 대통령을 기준으로 갈려서 개화기 정도의 사건들이 좀 헷갈리는 정도를 빼면 전체적으로 너무 쉽다. 아들은 그래도 이 게임 컨텐츠가 좋아서, 혼자서도 게임 카드를 연대 순으로 쭉 늘여놓으면서 가지고 놀긴 하지만, 게임으로서의 매력이 떨어진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118. 개구리 먹이주기 (5, 가족들과)
딸이 보드게이머가 되면서 잊혀졌던 게임들도 하나씩 들고 나오게 되었다. 정식으로 게임을 하는 일 보단 그냥 정말 먹이주기 놀이를 하는 완구 역할이 더 크다. 아이가 관심을 가질 만큼 어릴 땐 입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게 너무 어렵게 느껴지고, 아이가 좀 크면 너무 쉽게 느껴진다.
119. 개구리 잡기 (6.5, 오프모임)
도쿄게임마켓 신작. 비슷한 시기에 잘 만들어진 메모리 게임인 나나와 비교가 많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나이가 들수록 감퇴하는 기억력에 숫자가 아닌 색깔/아이콘을 기억하는 것, 손에서 최저/최고 숫자를 기억해야 한다는 제한이 있는 나나에 비해 전체 바닥에 깔린 카드를 기억해야 하는 무제한급의 기억력 게임을 보며 정신이 아득해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참신한 규칙은 돋보이지만, 메모리 게임의 극한급의 고통을 그대로 안고 있다.
120. 안갯속의 카르카손 (9.5, 가족들과)
지난 편에 정말 잘 만들었지만 매력없는 협력 게임인 스카이 팀이 있었다면, 여기에 매력 있는 협력 게임 안갯속의 카르카손이 있다. 아이들이 점점 게임을 같이 하게 되면서 협력 게임을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올라오면서 팬데믹도 갖췄는데, 룰북을 간만에 다시 읽어보고 이건 좀 어렵겠다는 판단에 책장에 박아둔 채 새로운 게임을 찾다가 걸려든 게임. 좀 더 테마틱한 걸 기대했기에 규칙이 일정 점수를 내는 게 목표라는 게 좀 아쉽게 느껴졌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유령을 막고 퇴치한다는 컨셉을 아이들이 좋아해서 좋았고, “무서워~”라고 하는 딸의 표정을 보는 건 보너스다. 아들은 숫자 개념이 있어서 점수를 내는 것도 좋아하고, 유령을 제때 처리해야 한다는 점도 알아서 게임이 잘 굴러가고, 딸은 유령을 물리치면 신나 한다. 일방적으로 좋은 타일도 있고, 일방적으로 안 좋은 타일도 있지만, 보통은 이걸로 점수를 치고 나갈지, 유령을 쳐내면서 안전한 게임을 만들어 나갈지를 선택하는 훌륭한 전략적 선택지가 정말 좋은 게임.
이것으로 올해 100 프로젝트를 마칩니다. 내년에도 도전해보려고 합니다. :)
그리고 올해는 마지막으로 "올해 처음 해본 게임 중 가장 인상적인 게임 Top 10"을 올려볼 예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