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좋은 게임은 많다 (2)
세상에 좋은 게임은 많다. 그렇기에 인상이 좋지 않은 게임은 바로바로 손절하자.
많은 성원에 힘입어 2편을 작성해봅니다. 사실 게임을 까는 내용이다보니 1편을 쓸 때 두려움이 살짝 있었는데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셔서 안심이었습니다.
시작에 앞서 저희 취향을 말씀 드리는 편이 좋겠더군요. 우선 저는 보드게임의 가장 큰 매력이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인터액션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옛날부터 게임을 했어서 매운 맛의 인터액션도 싫지는 않아요.
두번째는 성장하는 맛을 좋아합니다. 평소 게임이나 스포츠에서도 누군가를 이기겠다는 승부욕보단 어제보단 나아지자는 게 저의 원동력이었습니다. 이것 때문인지 몰라도 나의 세력이 성장하고 보드판이 발전하는 게임들이 끌리더라구요.
따라서 좋아하는 시스템으로는
- 엔진빌딩, 덱빌딩: 성장 그 자체.
- 일꾼놓기: 개인적으로 딱 적당한 인터액션이라 생각합니다. 어느 칸에 먼저 들어가야하는지 순서를 고민하는 것을 정말 좋아해요.
- 영향력, 드래프트: 버릴건 버리고 먹을 건 확실히 먹고! 이 과정에서 오는 눈치싸움도 짜릿하죠.
꺼리는 시스템으로는
- 퍼즐: 성장하는 요소도 없고 다 같이 같은 문제를 푸는게 아닌 이상 인터액션도 적어서 아쉽습니다.
- 포인트샐러드: 견제의 비중이 적어서 그런가 어느 것을 먼저 먹을지 순서가 중요하지 않아서 그런가 저에게는 영 설레임이 없네요.
이런 취향을 가진 사람의 개인적인 의견이라는 것을 고려해서 글을 읽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출발 하겠습니다.
도미니언
덱빌딩의 시초이자 덱빌딩 그 자체인 게임입니다. 설명에 5분도 안 걸리는 간단한 룰과 뛰어난 리플레이성에 더해 심오한 전략성까지 가지고 있는 게임입니다. 확장에 따라 베스킨라빈스처럼 다양한 맛을 즐길 수도 있죠.
그러나…
룰이 보드게임을 처음하는 사람도 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해서 저는 주로 초보자들과 돌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카드로만 진행되는 도미니언 식 덱빌딩은 직관적이지가 않아서 흐름이나 득점 방향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경우가 더러 있더라구요. 요즘에는 스타렐름이나 엘도라도 같이 직관적이면서도 재미있는 덱빌딩이 많아서 굳이 도미니언으로 덱빌딩 입문을 안해도 되죠.
물론 도미니언은 입문용이 아니라 숙련자들이 파고들만큼 깊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숨막힐듯 조여오는 세팅의 압박입니다. 게임을 하려면 우선 카드 조합을 골라야하고 이를 각 확장 박스에서 하나씩 꺼내야합니다. 보통 세팅이 편한 게임은 정리가 힘들고 정리가 편한 게임은 세팅이 힘든데 도미니언은 카드를 하나씩 넣어야 하기에 둘다 힘듭니다.
또한 확장 하나당 박스 하나를 차지하기에 '도미니언 좀 제대로 즐겨볼까?'하면 최소 세 박스가 됩니다. 때문에 풀세트를 어디 가져가서 하는건 불가능에 가깝고 책장 차지도 엄청나죠. 물론 진정한 도미니언 러버분들은 카드를 따로 정리해놓으시지만 저는 그정도까진 아니었나봅니다.
도미니언의 탄생을 실시간으로 보았기에 근본 덱빌딩 게임으로 간직하고 있었으나 최근에 앱으로 플레이 한 뒤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오프라인적인 불편함을 모두 해소시켜 주더군요. 육체의 구속에서 해방된 정신은 이런 느낌일까요? 앞으로 도미니언 욕구가 들더라도 이걸로 충족시키면 되겠다 싶어서 모두 방출해버렸습니다.
랩터
공룡과 과학자의 사투라는 아주 흥미로운 테마의 비대칭 게임 랩터입니다. 2인 게임 장인 브루노 카탈라답게 재미있는 액션 선택 시스템을 넣어놨습니다. 착한 가격에 적당한 웨이트와 사이즈까지 아주 부담이 없는 게임입니다.
그러나…
웨이트에 비해 '이 경우는 되지만 이 경우는 안되고' 같은 잔룰이 조금 많습니다. 또 룰북에 명확히 명시되어 있지 않은 경우도 있어서 진행이 버벅거렸던 적이 있습니다.
또 전반적으로 게임 템포가 쫀쫀하지는 않은 느낌입니다. 특히 엔드게임(후반부에 말이 얼마 남았을 때)에서 교착상태가 되며 게임이 늘어지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 경험이 별로였습니다.
영리한 여우
근본 롤앤라이트 게임이죠. 주사위 하나를 골라 칸 하나를 지우는 단순한 규칙에서 나오는 왐보콤보의 뽕맛은 한번 맛보면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인터액션이 거의 없고 테마도 없는 게임을 굳이 오프라인에서 같이 해야하나 싶더군요.
혼자서 앱으로 하면 충분할 듯 하여 방출!
글래스로드
2인 게임으로 호평이 많아서 할인 행사로 저렴하게 구입했던 글래스로드입니다. 재료가 갖춰지면 자동으로 상위 자원을 생산하는 독특한 자원 시스템과 심리전을 통한 행동 선택이 인상적이었습니다. 30분 정도 되는 짧은 플레이타임에 있을 요소는 다 들어가 있어서 가볍게 즐기기에 아주 좋습니다.
그러나…
게임에 빌드업이라든지 점수 짜내기라든지 있을 건 다 있어서 심심하다는 느낌은 아닌데 조이는 맛이 없습니다. 득점 루트가 워낙 다양해서 포인트샐러드 같은 느낌이라 그런 걸수도 있겠네요.
게다가 게임이 너무 빨리 끝납니다. 기승전도 아니고 기승에서 끝나는 느낌이에요. 룰북에 너무 빨리 끝나는 것 같으면 라운드를 늘리면 된다고 써있는데 그럴거면 애초에 게임 템포를 조절했으면 어떨까 싶네요. 앞의 단점과 합쳐져서 게임을 하고 나면 '뭐야 끝이야?' 소리가 나옵니다. 그리고 뭔가를 했다는 성취감이 하나도 안들어요.
또 가이아도 그렇고 이 아티스트의 일러스트는 정말 취향이 아니네요. 기호나 글자들도 뭔가뭔가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처음엔 저렴한 가격에 구성물이 풍성해서 좋아라 했습니다. 하지만 웨이트 대비 구성물이 많아서 세팅/정리가 번거롭다는 단점으로 바뀌었네요.
캘리코
우선 이쁘고 고양이가 나온다? 말 다했습니다. 캘리코도 행사 때 싸게 샀었는데 구성물을 보고 감탄했던 게임이었습니다. 게임이 간단하지만 생각할게 많아서 영업용으로 아주 훌륭합니다.
그러나…
게임이 빡빡한게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캘리코처럼 못 먹을 가능성이 높거나 기대치가 낮은 경우를 쳐내는 흐름을 좋아하거든요. 하지만 아무리 욕심을 버리고 가지를 쳐내도 결국 타일이 안나오면 말짱꽝이었습니다. 타일운이 너무 심하게 작용하는 것 같아서 한번에 볼 수 있는 타일수를 늘렸으면 어떨까 싶네요.
또 다른 단점은 제가 색약이라 파란색과 보라색 타일을 구분하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색마다 다른 모양을 표시 해주긴 했지만 작아서 효과적이진 않았네요. 색에 문양까지 합쳐지면 타일을 완벽히 인식하기 위해 한참을 쳐다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윙스팬
아름다운 입문전략게임 윙스팬입니다. 구성물을 처음 봤을 때 캘리코가 감탄이었다면 윙스팬은 감동이었습니다. 잘 구성된 트레이나 다이스타워, 룰북의 고급진 재질은 십몇년 보드게임 인생에서 처음 느껴보는 거였죠. 아름다운 컴포들을 감상하며 새들을 데려오고 알을 낳고 하다보면 승패와 상관없이 힐링이 되는 느낌입니다.
그러나…
한국인은 동물의 숲도 '누가누가 더 힐링하나'하는 경쟁 게임이 된다고 하죠. 저도 참된 한국인인가 봅니다.
처음 플레이를 모임에서 전략 게이머 분들과 했었는데 감흥이 1도 없었습니다. 친하지 않은 분들이라 새를 보고 잡담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게임을 즐기기에도 다들 심심한 느낌이었습니다. 더 어려운 게임을 한 입장에서는 게임을 풀어나가는게 어렵지가 않고 그렇다고 인터액션이 많은 편이 아니라 그랬던 것 같네요.
많은 시간이 흐른 뒤 짝꿍과 함께 즐기게 되었는데 이때는 훨씬 인상이 낫더군요. 새 그림도 감상하고 이 새는 이렇다 저 새는 이렇다 이야기하는 맛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게임은 여전히 심심했습니다. 전략 입문용으로 남겨뒀었는데 짝꿍도 심심함에 동의를 한 순간 바로 윙스팬과 헤어질 결심을 하였습니다.
지도제작자들 콜렉터즈
히어로즈 확장과 지도 확장들이 포함된 지도제작자들 빅박스입니다. 다양한 변주가 있어서 본판을 재밌게 했던 사람들은 싫어할 수가 없죠. 특히 히어로즈 확장의 잡으면 금화를 주는 등의 추가 효과가 있는 새로운 몬스터들이 매우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추가되는 요소 중 번거로운게 조금 있었었습니다. 특히 이미 그린 타일에 X 표시를 하거나 덧붙이는 효과들은 잘 보이지도 않고 이미 그린 그림을 망치는 것 같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모든 확장과 지도를 해본 결과, 지도제작자들을 자주 하는 거 아니면 본판만으로 충분하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추가 몬스터 팩만 따로 팔았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가장 크리티컬 했던건 박스가 너무 큽니다. 감히 파티게임이 책장 한칸을 차지해? 결국 본판만 남기고 콜렉터즈 에디션은 떠나가 버렸습니다.
크베들린부르크의 돌팔이 약장수
빵빵 터지는 시스템에 게임 웨이트도 초보자가 할 수 있을 정도지만 생각할 것도 있는 좋은 파티? 전략? 게임입니다. 코인캡슐 혹은 긱업빗을 쓰면 주머니속을 휘젖는 맛이 끝내주죠!
그러나...
재료를 뽑는 진행이 조금 애매했습니다. 다같이 동시 진행을 하면 서로의 것을 안보고 다들 자기 것만 하고 있는데 이러면 파티성이 전혀 없습니다. 그렇다고 서로 뽑는 것을 구경하기엔 시간도 오래걸리고 매번 빵빵 터지지도 않구요.
또 푸쉬유어럭 게임인만큼 모두가 사리거나 승부에 집착하면 재미가 없어집니다. 같이 하는 멤버가 야수들이면 좋겠지만 아니라면? 나라도 일부러 분위기를 올리는 억텐이 필요하겠죠.
포지션이 너무 좋아서 간직하고 싶었으나 한끗이 아쉬웠던 게임이었습니다.
클랭크!
용의 보물을 털어 도망치는 흥미로운 테마의 클랭크입니다. 윙스팬 정도의 좋은 입문전략 추천 게임이에요. 게임에 전형적인 RPG 요소가 많아서 친숙한 사람들은 카드보는 맛도 있습니다.
그러나...
죄목: 억텐인 두번째 게임입니다. 서로 안정성을 추구하면서 게임을 하면 텐션이 영 안오르더라구요. 그래서 빨리 나가서 브레스로 쫄리게하던가 최대한 파밍을 하며 던전에 주구장창 버티며 생존게임을 하는 사람이 꼭 필요합니다. 아무래도 영업하는 입장인 제가 그 역할을 많이 하다보니 원하는 플레이도 못하고 현타가 와서 방출하게 되었습니다.
골드앤실크 확장을 끼면 조금 흥미로워지긴 했지만 역시나 클랭크는 클랭크였습니다. 아, 클랭크 레거시는 다양한 퀘스트나 스토리를 통해 이러한 텐션을 잡아주어서 재밌게 했습니다!
로빈슨크루소
무인도에서 살아남기! 로빈슨크루소입니다. 이 게임 테마만큼은 정말 일품입니다. 세팅을 하고 첫 턴을 시작하면 바로 몰입되어 시간이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무인도 테마라 그런지 1인플도 자연스러운 느낌이었어요.
그러나...
룰마 입장에서 로빈슨크루소는 진짜 지옥이었습니다. 한 라운드에 세부 단계가 많아서 기본적으로 설명할 것도 많은데 잔룰도 덕지덕지 도배되어 있습니다. 몇판 돌릴때까지 룰북을 끼고 살았던 것 같네요. 세팅/정리 또한 잔룰 못지 않았습니다.
이 게임을 하다보면 진짜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캐릭터가 어떻게된게 뭐만 하면 아프고 일을 보내면 부정적인 토큰을 덕지덕지 달고 돌아옵니다. 희소식은 가뭄에 콩나듯 들려오죠. 아무래도 무인도니까 이것도 테마성이라면 테마성인데 이렇게까지 게임을 해야하나 싶었습니다.
이렇게 고생고생을 해도 클리어 하냐마냐는 결국 주사위에 의해 결정되었습니다. 운을 보정하는 요소가 아쉬웠네요.
구매했을 당시와 플레이 초반에는 나름 애정했던 게임인데 나중에는 쳐다보기도 싫어서 방출하게 되었습니다.
제 게임의 사망(방출)은 자연사와 사고사 두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자연사는 게임을 돌릴만큼 돌려서 수명이 다 된 방출이고 사고사는 저와 취향이 부딛혀서 사라진 경우입니다. 이제 사고사한 게임들은 거의 다룬 것 같아서 다음편은 언제 나올지 모르겠네요.
마지막으로 한번 더, 이 게임들은 제 취향에 안 맞을 뿐 모두 매력 있는 게임들이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