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좋은 게임은 많다
세상에 좋은 게임은 많다
네, 모두가 눈치 채셨듯 이 글의 제목은 물천사님의 '세상에 나쁜 겜은 없다'를 오마주 했습니다. 세상의 좋은 게임은 많다. 그렇기에 인상이 좋지 않은 게임은 바로바로 손절하자는 모토로 디뽐 전문 글을 작성해보고자 합니다.
이 글에 소개된 게임들 중에서 리뷰로 적고 싶은 게임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하지만 리뷰 작성을 위해 게임의 모든 면을 파악하려면 여러 번의 플레이가 필요한데, 재미없는 게임을 리뷰를 위해 다시 한다는게 쉽지가 않습니다. 사실 한 게임을 여러 번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게임이 재미와 리플레이성을 보장한다는 증거입니다. 따라서 리뷰가 있는 게임은 적어도 글쓴이에게는 좋은 게임들인 것이죠. 보통 리뷰를 보고 뽐이 오는 것이 이러한 이유라 생각합니다.
한두번한 게임들은 깊이 알아갈 수 없고, 그렇다고 인상이 안좋은 게임을 여러번을 하고 리뷰까지 하기엔 그만한 정성이 없고, 그 시간에 다른 재밌는 게임들을 하는게 좋다고 생각하기에 짧은 후기 모음 글로 리뷰를 대신하고자 합니다.
아무래도 게임의 단면만 보고 작성하는 후기이니만큼 옳지 못한 내용들이 있을수도 있으며 이견은 항상 환영입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다섯 부족
다섯 부족은 우선 이쁜 아트워크가 이목을 끕니다. 색감이 알록달록 다양하고 그림체도 딱 제 취향이었죠. 컴포넌트들도 아기자기하니 훌륭해서 플레이 사진을 대충 찍기만 해도 한 폭의 그림이 나옵니다. 게임 내적으로도 초보자들이 할만한 쉬운 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전통적인 형태에서 벗어난 만칼라 시스템을 가지고 있어 다섯 부족만의 색깔을 확연히 드러냅니다.
그러나...
다섯 부족을 하고 있으면 그냥 단편적인 퍼즐을 계속 푸는 느낌입니다. 게임의 기승전결이 전혀 느껴지지 않더군요. 퍼즐 게임이라면 상대보다 먼저 좋은 수를 찾아내야하는 긴장감이 있어야하죠. 하지만 다섯 부족은 한눈에 누가 이기고 있는지 알기 힘들고, 각 수마다 크게 점수차이가 나지 않고, 한두번의 플레이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회가 많다는 세 가지 이유 때문에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아 한수한수 그냥 대충 플레이하게 됐습니다.
차례 경매의 경우 마음에 드는 시스템이었지만 게임에서 의미 있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특히 2인의 경우 자기 차례가 금방금방 오기에 선을 잡는데 크게 메리트가 안느껴집니다. 진짜 뺏기면 안되는 최적의 수가 있다 혹은 연속 턴을 잡아서 해야하는 계획이 있다하면 경매가 중요하겠지만 대부분 기대값이 비슷해서 그런 경우가 별로 없었습니다.
기본적인 룰은 입문자가 할만큼 쉽지만 참조해야할 효과(특히 정령)가 많다는 자잘한 단점도 있었네요.
장인 확장을 끼면 조금 더 전략적이 된다는 평이 많은데 게임성 자체가 변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절벽이랑 산맥을 통해 이동에 제약을 둔 것 만큼은 상당히 색다르게 다가왔네요.
이 게임을 통해 저는 확실한 취향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 수 중에서 최적의 수를 찾는 횡적인 수찾기보단 미래를 그리는 종적인 수찾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이죠. 기존의 저는 긱 랭킹 신봉자에 다수가 좋아하는 게임들은 무조건 구매하고 소장했었는데 다섯 부족을 판 이후로 굵직한 게임들을 쳐내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의미있는 게임이 되었죠.
트라야누스
트라야누스는 다섯 부족과 더불어 몇 없는 만칼라 수작입니다. 그만큼 다른 게임에서 맛보기 힘든 유니크한 경험을 제공하죠. 다양한 미니게임 규칙들이 있긴 하지만 코어 메커니즘은 정말 간단하고 직관적입니다. 혹자들은 테마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는데 저는 의외로 정복하랴, 건설하랴, 시민들 행복하게 해주랴 하면서 집정관이 된 테마가 잘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역시나 만칼라는 제 취향이 아니었습니다. 만칼라는 결국 퍼즐 요소인데, 경쟁 퍼즐게임은 사고력이 비슷하다는 가정하에 귀차니즘을 극복하고 더 많은 수를 더 오래 생각하는 사람이 이긴다고 생각해서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만칼라에 어느정도 장고가 필요하기도 하고 선점을 제외하면 인터액션이 크게 없어서 게임을 하면 모두가 모여서 자기 보드판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물론 만칼라가 익숙해지면 다른 사람의 상황을 보는 여유와 이에 따른 깊이가 생기겠지만 그걸 위해 익숙해질때까지 해야할까요?
저는 퍼즐 요소와 더불어 포인트 샐러드도 선호하지 않습니다. 뭘 먹어도 점수를 준다는 건 제게 뭘 먹어도 맛있는게 없다고 느껴지기 때문이죠. 이와 같이 만칼라 + 포인트 샐러드 콤보로 게임이 나쁘진 않았지만 제게는 설레임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 밖에도 세팅이 조금 번거롭다거나 시간 트랙 옮기는걸 자주 까먹는다는 불편함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만칼라 특유의 유니크함과 여러 타일을 모으고 행동을 강화하는 흐름이 좋아 다섯 부족보다는 미련을 가진채 보내준 게임입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완전히 새로운 감각의 트릭테이킹 게임입니다. 고양이가 나오는 것만으로도 이미 구매 이유는 충분하죠. 거기에 귀여운 토큰들은 만족감을 주기에 충분하고 게임성도 색 전환과 보드판, 패러독스 시스템으로 기존의 트릭테이킹과는 다른 신선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하는 게임을 하면 신선한 물음표가 머릿속에 가득찹니다. 오 이 새로운 맛은 뭐지?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지? 하는 물음표들이죠. 다른 게임에서는 이 물음표들을 지워가며 발전하는 자신에 만족감을 느끼게 됩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처음에 강렬한 물음표를 주었지만 여러 번 플레이해도 물음표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게임이 나의 능력으로 온전히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없고 결국 다른 사람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트릭 수를 맞추거나 토큰을 많이 연결하기 위해서는 색을 한번 꺾어야 합니다. 하지만 처음 색을 바꾸는 사람이 모두의 타겟이 되면 패러독스를 피하기 힘듭니다. 그렇다고 패러독스를 최대한 피하면서 플레이를 하면 트릭 수를 맞추는 것은 내 플레이가 아닌 다른 사람에 의해 좌우됩니다. 또 모두가 패러독스를 피하는 안정적인 플레이를 하면 정해진대로 흘러가 게임의 재미가 없죠.
컨셉과 컴포넌트가 귀여워 살려보려고 여러 방법을 생각했었지만 결국 나의 잘못이 아님을 결론 짓고 보내준 게임이었습니다.
스키티아의 침략자
스티키아의 침략자는 쉬운 규칙에 컴팩트하게 구성된 일꾼놓기 게임입니다. 호불호가 갈리는 아트웍이랑 테마지만 저의 취향에는 잘 맞았습니다. 북해의 침략자보다는 스키티아쪽이 훨씬 낫더군요. 제가 좋아하는 게임인 다키스트 던전처럼 사람을 고용하고 아이템(동물)을 주며 스쿼드를 성장시키는 맛은 아주 좋았습니다.
그러나...
게임이 전반적으로 심심했습니다. "침략 드가자!!!!!!!!!!!!" 하면서 주사위를 굴려 대박 아니면 와장창을 기대했는데 이 게임은 결과가 어느정도 정해져 있습니다. 침략에 실패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성공을 못하더라도 그냥 상처 몇개 더 받고 끝입니다. 대 역전의 극적인 전투 이런건 기대할 수 없고 그냥 열심히 사람/자원 모아서 침략하고 퀘스트를 깨는 사람이 이깁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반복적인 느낌이 들죠.
칸 별로 일꾼 색을 맞춰 하나를 놓고 하나를 뽑아오면서 행동을 하는 일꾼놓기 시스템은 신선했습니다. 하지만 원하는 행동을 대부분 할 수 있기 때문에 일꾼놓기 특유의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아 이 부분에서도 심심했습니다.
전반적인 게임 양상은 마음에 들었지만 심심한 부분이 아쉬워서 북해 풀확을 해보고 싶어졌는데, 둘이 비슷하다는 의견도 많아서 고민중입니다. 북해 풀확은 느낌이 어떤가요??
이스탄불 주사위 게임
주사위로 하는 간단한 이스탄불입니다. 게임이 빠르고 쉽고 알록달록 이뻐서 남녀노소 언제나 즐기기 좋습니다.
그러나...
이스탄불 주사위도 스키티아의 침략자와 비슷한 죄목으로 제 품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바로 심심한 게임성이죠. 주사위 게임인데 빵빵 터지는 맛이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주사위 게임이라면 대박 아니면 쪽박이 있어야 하는데 이 게임에서는 차선책이 너무 많이 존재해서 뭐가 나와도 감흥이 없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게임성에 비해 박스가 큰 것 때문에 공간 창출 시즌에 가버렸네요.
QE
QE는 백지 수표를 갖고 금액을 마음껏 입찰할 수 있는 경매게임입니다. 내가 원하는 금액을 적는 새로운 방식이 전에는 겪어보지 못한 강렬한 경험을 줍니다.
그러나...
어느정도 필승 전략이 있다는 것은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죠. 처음하는 분들과 하면 괜찮지만 모두가 그걸 알면 경매 게임이 아니라 큰수 적기 게임으로 바뀌는데 이 경험이 매우 별로였습니다.
참신한 방식 때문에 아쉬워서 한판은 더 해보고 싶었는데 위와 같은 상황이 다시 발생할 걸 생각하니 아찔해져서 판매하게 되었습니다.
베런파크
베런파크는 테트리스로 동물원을 만드는 게임입니다. 테트리스에 동물원? 이미 무척이나 친근한 이미지죠. 너굴님이 테트리스 게임계의 모범생으로 표현했을 만큼 큰 단점이 없는 좋은 게임입니다.
그러나...
큰 단점이 없는 만큼 큰 재미도 없었습니다. 그냥 한턴한턴 맞는 타일을 찾아 놓는 심심한 재미였죠. 게임이 끝났을 때 자신이 만든 동물원의 테마를 설명해서 제일 그럴듯한 사람에게 몇점 더주는 하우스룰을 했었는데 오히려 이거 말하는게 더 재밌었습니다. 확장을 넣어야 진짜라는 말에 해구까지 했었으나 베런파크는 베런파크였습니다.
사실 베런파크는 소소잼 정도로 가볍게 즐기는 게임으로 소장할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조차 막아버린 큰 단점이 있었으니 세팅/정리가 매우 불편하다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타일을 분류해야 하는데 트레이도 없어서 게임을 하려면 아주 큰 노오력이 필요합니다. 오거나이저가 있으면 편해보이기는 하는데 가뜩이나 저렴하지 않은 게임에 오거나이저, 그리고 확장까지 구매하면 10만원이 넘어버리죠. 이게 맞나 싶어서 방출하게 되었습니다.
팔때는 나름 아쉬움이 남았었는데 요즘에 좋은 테트리스 게임이 많이 나오다보니 더 이상 생각나진 않네요.
티칼/쿠스코
클래식. 그러나 지금해도 재밌는 가면 3부작입니다. 쉬운 규칙, 적당한 인터액션에 고민거리는 많은 게임들이죠. 신판은 일러스트와 컴포가 개선돼서 비주얼 탑급의 게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액션 포인트 시스템은 놓아줘야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액션포인트는 룰이 간단하고 설명하기 편한 장점이 있지만 장고가 많아져서 게임이 루즈해집니다. 특히 티칼의 10 액션 포인트는 세기도 번거롭고 롤백하기도 너무 힘들었습니다.
또한 웨이트에 비해 게임 시간이 길다거나 점수가 한번 밀리면 역전이 어렵다는 옛 게임들의 특징이 물씬 느껴졌습니다.
타르기
옛날부터 높은 순위에 있길래 해보고 싶었던 게임입니다. 작년에 한번 해보니 긱 순위가 높은게 이해 되더군요. 참신한 일꾼놓기를 기반으로 자원을 모아 점수로 바꾸는 시스템이며, 상호 견제에 엔진 빌딩에 퍼즐 요소까지 있는데도 깔끔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나...
스플랜더만큼이나 건조한 게임에 스플랜더보다도 생소한 테마와 일러스트 때문에 '게임 잘 만들었네' 외에 특별한 인상이 전혀 없었습니다. 진짜 사막과도 같은 퍽퍽함이었죠.
게임성도 딱 둔더더기 없는 정석적인 느낌이었으나, 요즘엔 정석에 자극적인 맛까지 더한 게임들이 많이 나오기에 타르기만의 강점이 확 다가오지는 않았습니다.
글을 쓰고보니 제 취향이 확 드러나는 것 같네요ㅋㅋㅋ
여러 게임을 하면서 자신의 취향을 찾아가는 것도 보드게임의 또 다른 재미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은 재밌는 게임만 즐기시길 바라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