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링 머신 리뷰 - 근데 이제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을 곁들인
※ 본 리뷰에서는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의 일부 장면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께는 스포일러라고 생각될 수 있으니 민감하신 분께서는 뒤로 가기를 눌러 주시기 바랍니다.
튜링 머신은 1부터 5까지로 구성된 세 자리의 암호를 찾아내는 게임입니다. 어렸을 때 자주 했던 ‘숫자 야구’를 생각하면 쉬운데요, 숫자 야구라는 단순한 게임에서, 조금 더 복잡한 논리를 가지고 남들보다 더 빨리 최적의 해를 찾아 내며 정답을 질의하는 과정에서 촉감과 기계적인 재미를 자극하는 보드게임으로 진화했습니다.
튜링 머신은 4개에서 6개의 분류기를 가지고 있고, 플레이어들은 이 분류기에게 자신이 정한 숫자의 조합을 물어보아서 정답을 맞추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흔히 말하는 ‘디덕션’ 장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존 ‘디덕션’ 같은 경우에는 테마를 입혀서 ‘오리엔트 익스프레스’나 ‘클루’와 같이 범인을 찾아내거나, ‘크립티드’, ‘행성 X를 찾아서’와 같이 조건에 맞는 장소 혹은 미지의 행성을 찾는 게임이었다면, 튜링 머신은 조금 더 ‘디덕션’ 자체의 메커니즘에 집중된 게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기에 위 게임들보다는 훨씬 적은 플레이타임으로 논리를 파헤쳐 나가는 디덕션, 그리고 ‘묘수풀이’의 정수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테마라고는 1도 없는 단순한 게임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튜링 머신 자체로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튜링 머신은 상품 설명 페이지에서와 같이 일반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오늘날의 컴퓨터를 의미하지만,
사실 이 게임에서 말하는 ‘튜링 머신’은 암호를 해독한다는 점에서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에 등장했던, 2차 대전 시절의 독일군 암호를 나타내는 에니그마 해독기인 ‘봄베 - bombe(영화에서는 ‘크리스토퍼’라 불림)를 따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에서 말하는 튜링 머신은 어떤 모습일까요?
지금부터 제가 영화를 통해 드리는 ‘튜링 머신’ 이야기를 같이 즐겨 보시기 바랍니다. 이번 리뷰에서는 튜링 머신의 규칙보다는 그냥 순전히 제 감상만을 영화의 장면들을 이용해 늘어놓을 예정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앨런 튜링”, 튜링 머신, 그리고 봄브를 만든 사람이죠.
그리고 여러분이 해독해야 할 에니그마입니다.
바로 이 튜링 머신, 봄브로 말이죠(이 역시 튜링이 만든 기계니 앞으로는 튜링 머신으로 지칭하겠습니다). 영화에서 이 모습 게임에서도 본 것 같지 않나요?
저 가운데 있는 분류기를 놓는 육각형 모양의 구성물에서 말이죠. 게임 전체적인 UI를 보더라도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에서 등장했던 개념들과 모습을 일부 따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암호문을 해독하는 것 역시 일종의 게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게임에서 우리는 그저 1부터 5로 구성된 세 가지의 숫자를 제시하면 돼요. 그러면 암호 해독에 성공하고 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이 너무 즐거울 뿐입니다. 저는 이런 논리적인 문제를 파악하고 풀어나가는 걸 좋아하거든요. ‘튜링 머신’에서는 이 논리적인 해를 찾아 나가는 과정을 아주 적절히 구성하고 재미있게 만들어 냈습니다.
물론 쉽지만은 않습니다. 처음 접하면 어려울 수도 있어요. 하지만 조금만 적응되면 어느새 다른 사람들보다 심지어는 기계보다 빠르게 해독하실 수 있습니다.
게임 방법은 단순합니다.
1. 자신이 물어보고 싶은 1부터 5까지 구성된 세자리 숫자를 정한다.
2. 물어보고 싶은 분류기에 질문한다.
3. 분류기가 뱉은 답을 기록하고, 그에 따라 논리를 정리한다.
4. 2번을 최대 세 번까지 반복한다.
5. 한 라운드가 종료되고 플레이어들끼리 답을 맞출 플레이어가 있는지 확인한다.
6. 맞춘 플레이어가 없다면 다음 라운드를 진행한다.
이 정도가 게임의 규칙이 전부일 정도로 매우 간단합니다.
물론, 이렇게 풀어도 됩니다.
이 게임에서는 고작 5^3 = 125가지뿐이니까 도전해볼만도 하겠군요.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요. 여러분들은 경쟁해야 하거든요. 기계, 혹은 사람과요.
다른 플레이어들은 모두 방해꾼입니다(물론 협력 모드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다른 플레이어보다 더 빨리 암호를 해독해야 합니다.
이 게임의 묘미는 단순히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최적의 해’를 찾는 것이죠. 이 게임은 튜링 머신에 적게 질문해서 정답을 맞춘 사람이 승리하는 게임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쓸데없는 질문은 줄이고, 4개에서 6개의 분류기가 가지고 있는 논리를 간파할 수 있는 필요한 숫자를 최소한으로 제시해야 합니다.
이렇게 정확히 구분할 수 있는 숫자를 제시한다면 정말 좋겠죠? 하지만 분류기는 4개에서 6개나 된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운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분류기를 적절히 구분할 수 있는 필요한 숫자를 찾아낸다면 남들보다 암호 해독에 근접했다는 뜻이니까요.
하지만,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면 이 게임은 무지 어려운 게임이 될 수 있습니다. 정확히 각 분류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먼저 파악해야 해요. 각 분류기가 X를 내놓았을 때 어떤 경우를 소거할 수 있고, V를 내놓았을 때 어떤 경우를 소거할 수 있는 지 그 규칙부터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이걸 100% 이해하셔야 이 튜링 머신이 재밌어지기 시작하실 겁니다.
한 번 시험삼아 간단한 거부터 해볼까요?
튜링 머신에서는 세자리 숫자를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
예를 들어 여러분이 123(△=1, □=2, ○=3)이라는 숫자를 다음과 같은 분류기에 넣어봤다고 가정해봅시다.
이 분류기가 ‘V(맞음)’ 결과를 뱉었다면 어떤 뜻일까요? 여러분은 □=2, 즉 짝수로 가정하고 넣었는데 분류기가 맞다는 결과를 뱉었으니 □는 짝수가 되겠죠. 그럼 이제 □의 후보에서 1,3,5는 지우셔도 되겠습니다. 반대로 ‘X(틀림)’이라는 결과를 뱉었다면 어떤 뜻일까요? □가 짝수가 아니라는 뜻이겠습니다.
아주 간단하죠?
혹시라도 이렇게 말하고 싶은 분들이 계신다면, 워워... 금방 적응하실 겁니다.
‘디덕션’이나 ‘논리’에 익숙하신 분들은 이 ‘튜링머신’이 다소 쉽게 느껴질 수 있으나, ‘나이트메어’ 난이도에 들어서면 다른 생각이 드실 수도 있을 겁니다. 1인플에서 상대해야 하는 ‘기계’를 이기기는 상당히 어렵거든요.
‘나이트메어’ 난이도에 들어서면 이때는 단순히 튜링 머신에 질의를 하는 것 외에 분류기 간의 ‘모순’을 찾아내서 미리 필요 없는 논리들을 사전 정리해 나가야 합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지금은 이해하지 않으셔도 전혀 관계없습니다.
튜링 머신은 도전정신을 불러옵니다. 나보다 더 빨리 정답을 맞춘 상대가 있다면 어떤 방법을 썼는지 너무 궁금하고, 1인플을 했을 때 기계를 이길 수 없다면 다른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희열을 느끼게 되죠.
그러다가 정답을 누구보다 빨리 찾게 되면, 너무 기뻐 뛰쳐나가고 싶을 수도 있겠습니다.
더군다나 웹사이트에 수백만개의 추가 퍼즐이 있어 끊임없는 재미를 선사합니다.
튜링 머신은 어찌보면 테마라고는 1도 없는 낱말풀이, 스도쿠 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암호를 해독한다는 테마를 느끼면서 논리를 간파하는 것에 재미만 찾을 수 있다면, 최고의 게임이 될 것 같습니다.
‘디덕션’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축복 같은 게임이 아닐 수가 없네요. 물론 ‘행성 X를 찾아서’나 ‘오리엔트 익스프레스’와 같이 테마를 입힌 ‘디덕션’도 매우 좋아하지만, 짧은 시간에 간단하게 부담없이 브레인버닝을 할 수 있는 게임이거든요.
‘튜링 머신’ 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