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크: 이집트의 신들 -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제 닉네임에서 알 수 있듯 저는 이집트 신화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앙크를 보자마자 이집트 테마에 호루스 신이 나온다? 바로 구매를 했죠. 웅장한 피규어만큼 큰 기대를 했었던 앙크를 리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게임 요약
배경
이집트 신들이 유일신의 자리를 두고 싸움을 벌입니다. 당신은 이집트의 신이 되어 추종자들을 이끌고 경쟁자들을 물리쳐야 합니다.
플레이
:strip_icc()/pic6411931.jpg)
돌아가며 4가지 행동 중 2가지를 선택해 수행하고 해당 행동 트랙을 전진합니다.
- 이동: 자신의 모든 피규어(신+병사)를 이동합니다.
- 생산: 병사를 1개 생산합니다.
- 추종자: 자신이 점령한 기념물에서 추종자(돈)을 얻습니다.
- 앙크 개방: 돈을 내고 신의 능력을 강화합니다.
:strip_icc()/pic6203389.jpg)
만약 어느 행동이 트랙의 끝에 도달하면 이벤트 트랙이 전진하며 해당 이벤트가 발생합니다. 다음과 같은 이벤트들이 있습니다.
- 점령: 이벤트를 야기한 플레이어가 기념물을 하나 점령합니다.
- 전투: 여러 세력의 피규어가 있는 모든 지역에서 전투가 발생하며 전투 후 점령하고 있는 기념물에 따라 득점을 합니다.
- 지역 분할: 한 지역을 둘로 나눕니다. 이로 인해 득점할 수 있는 지역이 늘어나며 전투 구도를 바꿀 수 있습니다.
- 합병: 하위 두 플레이어는 합병하여 하나의 신을 운용합니다.
- 탈락: 특정 점수에 도달하지 못한 플레이어들은 즉시 탈락합니다.
종료
앙크에는 목표 점수 달성, 탈락 여부에 따라 다양한 결말이 존재합니다.
- 한 플레이어가 목표 점수를 달성하면 즉시 승리합니다.
- 탈락 이벤트에서 한 플레이어를 제외하고 모두 탈락하면 살아남은 플레이어의 승리입니다. 혹은 모두가 탈락하면 승자가 없습니다. (이 경우 이집트는 무교가 된답니다)
- 마지막으로 정해진 시간이 다 되어도 결말이 안나면 점수가 가장 높은 플레이어가 승리합니다.
@ 감상
행동 선택
앙크의 차례 진행은 4가지 행동 중 2개를 고르는 이보다 더 간단할 수 없는 규칙이지만 고민할 거리는 정말 풍성합니다. 이 시스템은 정말 잘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물론 잔룰이 있긴 하지만 메인 시스템이 굉장히 직관적이기에 룰을 설명하기도 쉽고 처음하는 사람들도 빠르게 몰입할 수 있습니다.
또 2개밖에 안되는 적은 행동은 앙크의 수 싸움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어줍니다. 피규어가 많이 주어지지 않기에 하나하나의 배치와 역할이 중요하고, 이 피규어들을 한수한수 옮기다보면 마치 체스를 두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게임을 알아갈수록 테크를 정하고 이벤트 발생을 고려하는 등 파고들 거리가 많아 수가 뻔해지지 않고 깊이감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행동을 선택하기 위해 생각해야할 게 너무 많습니다. 모든 정보가 공개되어 있기 때문에 정보량이 너무 많고, 내 행동으로 인해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할지도 생각해야 합니다. 만약 이득을 주는 많은 수 중에 하나를 고르는 것이라면 최선이 아닌 수에서 만족해도 괜찮겠죠. 하지만 앙크는 한번에 망할 수 있는 최악의 수들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수를 피해기 위해선 장고가 필요합니다.
또 한가지 치명적인 것은 한수한수 중요한 액션과 이벤트 발생이 앞사람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2인 게임이라면 다른 사람을 예측하는 심리 싸움이 될 수도 있지만 다인 게임에서 중요 액션/이벤트를 앞사람이 퍼준다? 그러면 자리빨망겜 소리가 저절로 나옵니다.
전투
:strip_icc()/pic5347047.jpg)
앙크의 전투는 상대 유닛을 없애고 승점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이벤트입니다. 전투에서는 해당 지역의 피규어 수 + 전투 카드를 비공개로 고르는 심리전을 통해 승자를 가리게 됩니다. 처음에는 비공개 카드 선택 시스템이 전투에 변수를 가져오는 좋은 시스템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면 할수록 불리한 상황에서 심리전을 통한 역전 따위는 없고 서로 안정적인 뻔한 카드만 내게 되더군요. 상대가 '정답' 카드를 내면 카운터 칠 방법이 없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비공개 선택을 하는 반지의 제왕 대결이나 사이드 같이 쫄깃거리는 맛이 없습니다.
또 전투 양상이 이동 행동 한번에 의해 너무 많이 바뀝니다. 이는 이동 행동으로 모든 피규어를 이동시킬 수 있고 이동에 크게 제약이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데, 아무리 전투를 대비해 유닛을 배치해 놓아도 결국 마지막 이동을 하는 사람이 전투 양상을 주도하게 되어 불합리함이 느껴집니다.
합병
게임 후반부에 하위 두 플레이어는 신을 합병하여 하나의 신을 운용합니다. 두 신의 능력이 합쳐지고 행동 선택의 제약이 줄어들어서 합병한 신은 더 강력해집니다. 대신 점수는 낮은쪽을 따라가게 되죠. 이런 식으로 꼴지를 하고 있는 두 플레이어에게 역전의 가능성을 쥐여주게 됩니다.
이 합병 시스템은 나름 신선한 재미를 주었습니다. 한 게임에서는 처음에 서로 합체해서 다 부숴버리자고 하다가 꼴지의 점수가 너무 차이나니까 다들 합병 당하지 않으려고 슬슬 눈치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2등이 3등과 합병을 당했지만 1등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져 모두가 탈락하는 행복한(?) 결말을 맞았습니다. 보통의 헤비게임에서는 나올 수 없고 예능 프로그램에서나 볼법한 상황이 펼쳐졌죠.
하지만 합병 시스템 자체가 좋다고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합병을 한 하위 플레이어는 자신의 유닛과 건물이 모두 없어지기 때문에 사실상 엘리에 가깝습니다. 물론 합병한 플레이어끼리 으쌰으쌰 역전해내며 월드컵 16강에 버금가는 쾌거를 이룰 수도 있지만 저는 본인의 유닛이 없어지는게 별로였고 전투를 함께 상의해야 하는 것도 번거로웠습니다.
스노우볼
앙크에는 합병을 제외하면 캐치업 요소가 없습니다. 이말인 즉슨 초반에 말린 플레이어는 자력으로 따라가기가 힘들고 게임에서 방치된 느낌을 받습니다. 매운 맛이 일상 다반사인 옛날 게임에서 낙오된 플레이어는 평범한 일이지만 게임이 정교해진 요즘에는 시스템이 커버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몇시간 걸리는 긴 게임에서는 말이죠. 합병 외에도 협잡을 통해 선두를 견제할 수도 있지만 추상전략스러운 게임에서 협잡은 안어울리는 느낌이었고, 심지어 2인 게임에서는 협잡/합병 둘 다 불가능해서 초반에 크게 차이가 나면 게임이 그대로 끝나버립니다.
고유 능력
:strip_icc()/pic6232750.jpg)
앙크의 신들은 고유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신의 능력을 활용하는 것은 앙크가 주는 재미의 큰 부분이죠. 그런데 각 능력의 밸런스가 맞냐하면 선뜻 대답하기 힘듭니다. 더 심각한 것은 신 사이에 상성이 존재해서 특정 신의 능력이 아예 지워져 버릴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상대 유닛을 죽여야 강해지는 신이 있는데, 전투에서 지더라도 주변 유닛의 죽음을 막아주는 다른 신이 있으면 능력을 거의 활용하지 못합니다. 또 신의 피규어는 거대하지만 전투력과 능력은 은근 소소해서 뽕맛이 느껴지지 않는게 마치 거대한 솜방망이를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피규어
:strip_icc()/pic6427605.jpg)
앙크만의 거대하고 정교한 피규어 퀄리티는 더 말할 필요가 없죠. 처음 앙크를 꺼내면 피규어들이 모두의 이목을 끌지만 사실 피규어가 굳이 없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앙크는 전쟁게임보다는 추상전략에 가까워서 피규어들이 그렇게 많이 생산되지 않습니다. 또 신 피규어가 큼지막해서 보는 맛은 있지만 게임판에 놓으면 너무 큰 느낌이고 피규어들 때문에 박스만 많아져서 정리/세팅 지옥이 펼쳐집니다. 원래 저는 피규어 게임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번에 CMON의 피규어 장사로 돈벌려는 속셈이 너무 느껴져서 더욱 기피하게 되었습니다.
@ 마치며
앙크에는 흥미로운 요소가 많았지만 이를 다 살리지 못하고 완성도가 살짝 떨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조금만 더 가다듬어 나왔다면 비대칭 능력물 추상전략 심리전 피규어 전쟁 갓겜이 될 수도 있었는데 상당히 아쉬움이 남는 게임이었습니다.
(사진은 보드게임긱에서 가져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