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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자연을 품은 추상전략, 광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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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7 18:45

0. Photosynthesis
생명은 끊임없이 순환합니다.
작은 씨앗 안에는 한 생명의 무한한 우주가 있고, 이 우주는 싹이라는 형태로 그 가능성을 틔워 나무라는 모양으로 팽창합니다.

때로는 이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다른 생명의 가능성을 짓밟는 일도 있을겁니다. 반대로 강자에 의해 자신이 도태되는 일도 있겠죠.

이러한 개체와 개체 사이의 투쟁의 역사를 거쳐 생명은 다시 씨앗이라는 형태로 그 삶을 마감하고 또다른 순환으로의 다리가 되어줍니다.

오늘 이야기 해 볼 게임은 이러한 생명의 순환을 담은 아름답고도 ~~빡빡한~~잔혹한 게임, 광합성입니다.

1. 어떤 게임인가?

▲ 테마를 잘 품고있는 아름다운 메인보드에 속아 피눈물을 흘리는 유저가 한둘이 아닙니다.

게임은 라운드 방식을 따릅니다.
라운드가 시작되면 태양이 움직이고, 태양의 위치에 따라 각자 수입을 받습니다.

그리고 돌아가면서
1. 씨앗 뿌리기 : 나무의 크기에 따라 적절한 위치에 씨앗을 뿌립니다.
2. 싹 틔우기 : 뿌린 씨앗에서 싹을 틔웁니다.
3. 나무 성장 : 나무를 성장시킵니다.
4. 벌목 : 최대치까지 성장한 나무를 베어냅니다.
네 가지의 행동 중 하나를 골라서 진행합니다.

더 이상 할 행동이 없는 플레이어는 패스를 선언하고, 모든 플레이어가 패스선언을 하면 해당 라운드가 종료됩니다.

이러한 라운드를 육각형의 메인보드의 꼭지점을 움직이며 태양이 3바퀴 도는 동안, 즉 18번을 반복한 후 승점이 가장 높은 사람이 승리합니다.

요약하자면 그래요. 돌아가면서 씨뿌리고, 싹을 틔우고, 나무를 성장시켜 점수를 버는 게임입니다. 간단하죠?

2. 게임의 특징
광합성을 플레이하며 인상깊었던 부분은 세 가지가 있는데요,

이 게임의 화폐라고도 할 수 있는 에너지의 획득 방식과 독특한 자원관리 시스템, 마지막으로 액션 위치에 있어서의 제한이죠. 하나하나 이야기 해 볼까요?

광합성의 게임판은 한 변이 4칸인 육각의 헥스타일 형태로 구성되어있으며, 각 라운드마다 태양이 육각형의 꼭지점을 따라 일정한 방향으로 이동합니다.

이른바 지구의 자전(혹은 공전)의 개념이에요. 재미있는건 자원획득 방식인데, 광합성에 존재하는 소, 중, 대 사이즈의 나무는 각각 태양빛이 들어오는 반대방향으로 1, 2, 3칸의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해당 그림자에 가려진 나무들 중 크기가 그림자를 만드는 나무 이하인 나무들은 자원을 획득할 수가 없죠.

▲.말로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림으로 본다면 이해가 쉽습니다.

간단히 예를든다면, 크기가 중인 나무는 태양의 반대방향으로 2칸짜리 가상의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위 그림의 상단의 녹색 나무와 파란색 나무, 좌측의 주황색 나무와 노란색 나무가 중 크기의 나무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그림자가 드리운 영역에 있는 다른 나무들은 태양빛, 즉 에너지를 충분히 받지 못합니다. 위 그림에서는 11시 방향의 조그마한 나무가 그렇죠.

하지만 크기가 대인 나무는 이 그림자에 가려져 있어도 에너지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림자가 진다 한들 해당 나무보다 높이가 월등히 높으니까요.

말로 설명하니까 길지만 사실 너무나 [자연]스러운 기믹이기 때문에 한 번만 설명을 들으면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 쉬운 구조에요.

재미있는 것은 게임 내내 태양의 위치는 지속적으로 변한다는겁니다.

이번 턴에 상대의 나무로 인해 에너지를 받지 못하였더라도 다음턴에는 태양이 이동할테니 위치에 따라서 충분히 다음번에는 에너지를 받을 수도 있어요.

심지어 3턴 후에는 태양의 방향이 반대쪽이 될테니 상대의 나무에 그림자를 드리울 수 있는 기회가 저에게 오죠. 복수의 순간이 오는겁니다.

이러한 게임 구조 때문에 자연스럽게 광합성은 플레이 내내 상호작용이 강하게 발생합니다.

태양의 위치는 지속적으로 바뀌고, 어느정도 안전자산이라 생각하고 공들여 키워올린 나무가 상대의 비장의 한 수에 의해 몇턴동안 햇빛 하나 받지 못하고 빌빌대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플레이하는 동안 끊임없이 다음턴, 가능하다면 다다음 턴 까지의 태양의 흐름을 보고 조금이라도 자원을 더 얻을 수 있는 방법, 조금이라도 방해를 덜 받을 수 있는 방법을 고려하고 고려한 한 발자국을 내딛어야 한다는 이미지가 강해요.

▲위에 올라가 있는건 우리거가 아닙니다. 저기있는 에너지를 지불하고 바깥쪽으로 빼야 우리거죠.

두 번째로 기물관리 방식인데요, 광합성의 기물 배치는 구입과 배치가 분리되어있습니다.

다시 말해 특정 기물(나무가 되었든 씨앗이 되었든)을 사용할 때, 바로 개인판에서 꺼내서 사용하는게 아니라 표시된 비용을 지불한 후 해당 기물을 바깥으로 꺼내고(구입), 그 후에 배치(사용)를 할 수 있어요.
재미있는 점은 기물의 활성화는 아래에서 위 방향으로 순차적으로 가능하며, 위로 갈 수록 가격이 조금씩 더 비싸진다는 부분이에요. 두 번째 나무는 2원으로 꺼낼 수 있지만 세 번째 나무는 같은 크기더라도 3원으로 꺼내야 한다거나 하는 방식입니다. 당연히 두 번째 나무를 꺼내어 메인보드에 배치한 후 해당 나무를 성장시키거나 하면 개인판으로 돌아오고, 다시 2원에 구매할 수 있게되고요. 보통은 공용의 자원을 활용하는 게임에서 자주 차용되는 방식인데 광합성은 개인 보드에서 이를 활용한다는게 특이했어요.

그래서 기물 하나를 보드에 배치를 하려 할 때마다,
1) 특정 기물을 성장시켜 개인보드로 반환한 후 더 저렴하게 다시 꺼낼것인가
2) 조금 비싸게 주고서라도 남들보다 빠르게 메인보드에 자신의 세를 넓힐것인가
3) 배치를 조금 늦추는 대신 기물을 몇 개 더 꺼내놓아서 다른 플레이어들의 배치에 기민하게 반응할것인가
등등의 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마지막으로 같은 칸에서 액션을 연속으로 할 수 없다는 규칙인데요, 예를들어 어떤 칸의 씨앗을 싹틔웠다면 같은 라운드에서 해당 칸의 나무를 성장시킬 수는 없다. 는 규칙이에요.

이 시스템을 통해 광합성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여러군데에 분산해서 투자"하는 것을 유도합니다. 근데 이 게임이 또 메인보드가 그렇게 넓은게 아니에요. 한 판만 해 봐도 느낄 수 있지만, 싫어도 상대 옆에 들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 해, 한 개의 잘 큰 나무를 중심으로 플레이 하는게 아니라 끊임없이 다른 나무들과의 생존경쟁을 부추기고 그 과정에서 활발한 인터액션을 유발하죠. 어찌보면 생태계를 잘 담아놓은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처음 규칙서를 봤을 때에는 라운드 진행 내내 본인이 액션을 수행한 칸을 체크해야 하니 번거롭지 않을까 걱정되었는데,

막상 진행해보면 본인이 깜빡해도 상대방이 상기시켜줍니다.(어 거기 방금 씨앗 뿌린 나무에요/으아니 챠! 그럴리가 없쒀!!)

3. 게임에 대한 이미지

▲ 여러분들의 테이블 위에 <숲>이 피어납니다.

시각적 만족감을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겠죠? 처음에 자그마한 나무 몇 그루로 시작했던 메인보드는 게임이 지나면 지날수록 숲이 되어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자연을 테마로 하는 게임은 적잖이 있죠? 떨어지는 낙엽으로 보드를 가득 채우는 보스크도 있고, 넓은 초원에서 동물들이 뛰노는 세렝게티도 있네요.

하지만 그런 적잖은 게임들이 그런 테마를 시각적으로 구현할 때 주로 2차원 평면에 약간의 3차원 요소를 가미하는 반면, 광합성의 메인보드는 3차원이 게임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그 존재감을 과시합니다.

나무 컴포넌트 자체가 두 장의 토큰을 교차해서 만드는 형태라 퀄리티가 뛰어난 편은 아닙니다만 장담할 수 있어요. 아마 게임이 중후반으로 들어서는 시점 여러분은 필연적으로 카메라를 꺼내어 들 거라고요.

더불어 배우기도 크게 어렵지 않다는 것 역시 플러스 포인트.

규칙 자체도 어지간한 추상전략 정도의 규칙을 큰 골조로 하되, 기물을 배치하는데 소모되는 자원을 얻는 매커니즘을 추가 한 정도인데다가, 대부분의 액션이 테마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 쉬운 구조라서 쉽게 배울 수 있어요.

왜 첫 게임 하다보면 "그래서 이걸 하려면 어떻게 하죠?" 이런 질문이 자주나오잖아요? 광합성을 하면서 그런 질문을 받아본 적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습니다. 테마와 규칙의 결합을 잘 해놓은 게임이에요.

그러다보니 초보자에게 들이밀기도 좋습니다. 예쁘고 쉬운 게임이다? 일단 관심 200% 증가죠.

아, 그리고 자리 선정 개념이 꽤 재미있다는것도 좋은 느낌이었어요.
한 번 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부분인데, 이 게임은 외곽의 나무일수록 인터액션이 적고, 가운데로 갈 수록 인터액션이 강해집니다.

육각형의 꼭지점에 나무를 배치한다면 적어도 3턴, 즉 태양이 반바퀴 도는 동안은 절대로 다른 사람으로부터 방해를 받지 않습니다. 동시에 그 다음 3턴동안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지 않죠.
하지만 정 가운데에 나무를 위치시킨다면 그 나무는 6방향 내내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6턴 내내 내 뒤의 나무에게는 그림자를 드리우고 내 앞의 나무로부터 그림자를 받죠. 그것도 3칸이나요.

재미있는 부분은 이와 연결된 승점부여 방식인데, 이 게임의 득점방법은 "3단계로 성장시킨 나무를 벌목"하는겁니다. 그러면 그 나무의 위치에 따른 승점타일을 받게돼요.

당연히 가운데로 갈 수록 견제를 심하게 받기 때문에 가운데 승점칩의 경우 최대 22점이며, 반대로 가장 바깥쪽의 승점칩은 최대 14점밖에 되지 않습니다. 보통 벌목을 4~5회 하게 되므로 이 차이는 생각보다 커요.

그러니 플레이 하는 내내 플레이어는 고민해야 합니다.

바깥쪽에서 안정적으로 자원을 수급하다가 주춤하는 반바퀴에서 그 나무를 베어낼 것인가, 안쪽에서 키우더라도 고득점을 노릴것인가. 이런 고민이 저는 정말 즐거웠습니다. 취향저격이에요.

▲ 판때기가 이렇게 요동치는 와중에 다다음 턴을 읽는 사람이 1원이라도 더 받아갑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게임이 만만하냐, 그게 또 그렇지가 않습니다. 접근성만 좋지 게임 자체는 꽤나 매운맛이에요.

일단 시각적인 만족감으로 힐링게임인 양 페이크를 치고 있기는 하지만 광합성은 추상전략 장르에 가깝습니다. 그것도 깊프 시리즈같은 게임에서 사용하는 육각 구조의 추상전략이죠.

규칙은 쉽습니다. 배우기도 쉬워요. 하지만 막상 게임을 해 보면 그다지 만만하지 않다는걸 금방 깨닫게 됩니다. 굉장히 빡빡하게 돌아가거든요.

게임의 승점루트가 하나로 한정되어있고, 한 수 한 수의 인터액션이 큰 추상전략의 특징을 그대로 따르기 때문에 초심자와 숙련자의 격차가 꽤 크거든요.

상대의 한 수가 생각치도 못하게 나의 여러가지 수를 막아버릴 때, 초보 플레이어는 벽을 느끼게 됩니다.

그와 동시에 다인플이 가능하기 때문에 인터액션이 강한 게임의 단점 역시 그대로 가져옵니다. 본의 아니게 누군가를 밟게되고, 예상치 못하게 밟히는 상황이 자주 발생해요.

워낙에 치고받는 게임이라 그게 불합리하다...라는 생각 보다는 "아 내가 한 수 앞을 더 봤어야했구나" 라는 생각이 주로 들긴 하지만, 사실 저런 부분을 꺼리는 플레이어라면 볼멘소리가 절로 나올법한 구조입니다. 이런부분은 사실 마이너스.

▲펀칭타일 두개만 더 만들어주지.

게임 내의 화폐가 트랙으로 제공된다는 점도 소소하게 마음에 안들었어요.

개인적인 불호 요소인데, 저는 개인판에 트랙의 형태로 자원을 기록하는 게임은 전체적인 현황을 파악하기 힘들어서 좋아하지 않아요. (예를 들면 가이아 프로젝트의 자원 기록 방식같은거요) 굳이 트랙으로 할거라면 공용 보드에 표시해서 다른 플레이어의 현황을 파악하기 쉽게 만들거나, 토큰 형식의 주화로 표현하여 조금 더 직관적으로 많고 적음을 나타내는 쪽이 더 좋더라고요. 저 같은 경우는 광합성 발매 직후에 샀는데 그 때에는 특전으로 종이 토큰 형태의 주화를 제공했었습니다.

4. 마치며
솔직히 이 게임을 자주 돌리냐 묻는다면 그렇진 않아요. 그도 그럴것이, 이거 꽤 정신적 피로도가 심하거든요.

생각보다 사고의 영역이 더 좁고 깊어서, 남의 한 수를 읽기도 쉽고 내 한 수도 읽히기가 쉽다보니 지속적인 브레인버닝을 하게 되는 게임이라서요.

그래도 이 게임을 방출할 수 없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이 게임은 2022년 8월 제 시점에서는 대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에요.

간결한 규칙, 깊이있는 수싸움, 수려한 하드웨어. 이 모두를 만족시키는 게임은 글쎄요, 일단 제 책장에는 그런 게임이 없습니다.

아마 당분간 플레이 할 일은 없어보이지만, 앞으로도 제 책장 한구석을 차지하며 누군가 하고싶다고 할때만을 기다리는 게임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추상전략은 좋아하지만 테마가 없어서 즐겨하지 않으시는 분들이라면, 단언컨대 지출이 아깝지 않을거에요.

광합성이었습니다 :)

덧)

게임과는 조금 동떨어진 취향인데, 광합성은 기승전결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게임 시작시 파릇파릇하게 틔우는 새싹들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울창한 숲을 이루고,

게임의 불꽃이 사그러들 무렵 모두가 득점을 위해 벌목을 하게 되면 나무가 사라져 숲이 움츠러들거든요.

그래서 게임을 할 때마다 마무리할 때 심적으로 대단원이라는 느낌을 받는 부분도 저에게는 큰 플러스요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