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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보드라이프에 올린 자료는 모두 직접 작업한 비공식 한국어 규칙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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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S 게임즈 제공] "달빛 아래에서 수를" 톺아보기
게임을 톺아보기 전에
■ 디자이너: Peter Burley (대표작: 테이크 잇 이지! Take it Easy!)
펀딩 페이지, 상품 페이지, 비즈니스 메일, 번역, 디지털 편집 등...
종종 생각날 때 한줄평 정도 남기는 것 빼고는 업무적인 목적 외의 개인적인 디지털 활자 활동을 멈춘지 꽤 된 것 같습니다. 심지어 정확히 1년 전에 업로드한 톺아보기마저 아쿠아 가든 펀딩에 맞춰 특별히 아크틱에 대한 업무적인 목적이 강한 톺아보기였네요.
그리고, 1년만에 쓰는 톺아보기도 결국 그 궤는 비슷한 것 같네요.
이렇게 오랜만에 쓰는 톺아보기의 주인공은, 한국에서는 MTS 게임즈에서 소개하고 있는 달빛 아래에서 수를, 원제 카미사도(Kamisado)입니다.
엄연히 따지면 직접적인 부탁을 받은 건 아니고, 다른 분께서 저에게 "개인 목적의 활자 활동을 절필하게 된지 오래되었으니 다시 좀 활동해 달라..."라는 의미도 있고, 진짜 이 게임이 마음에 드셨기 때문에 강력히 밀어주고 싶으셔서 저에게 강제 소매넣기...를 하신 것이랄까... 어쨌든 그 현장에 MTS 게임즈의 대표님도 계시긴 했으니...
그런데 왜 하필 저에게... 라는 생각도 들지만, 어쨌든, 추상 전략 게임에는 기본적으로 호감을 가지고 있었고 궁금했던 게임이었기 때문에 나쁘지 않은 딜인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실물의 달빛 아래에서 수를을 보니, 과연 이 게임에 엄청 과감한 투자를 하셨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플레이까지 몇 번 해보니 여러 가지 의미로(물론 긍정적인 의미입니다) 감탄스러운 게임이었습니다.
일단 게임에 대한 평가는 나중으로 미루고, 도대체 이 게임의 원래 제목의 어원이 무엇인지 정말 궁금했는데요.
이 의미를 알아보기 위해 참 여기저기 뒤져봤네요.
BGG에서는 '일본어, 또는 한국어, 또는 중국어일 것이다', '바빌론어로 분노의 으르렁거림이다' 등의 말이 있어서 진지하게 찾아봤습니다. 게임 내에서 등장하는 개념 중 하나인 Sumo가 일본의 스모와 강력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가설을 세우고 나니 자연스럽게 일본어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상(上, 일본어 훈독으로는 KAMI라고 발음), 작동(作動, 일본어 음독으로는 SADOU라고 발음하고 표기). 이 두 가지를 합치면 자연스럽게 KAMISADO가 되니까요. 특히나 이 게임에서는 말을 움직일 때 후진을 할 수 없이 무조건 위(앞)로만 올라갈 수 있다는 시스템과도 딱 맞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꽤 허무하게도 작가님 본인피셜로는 사실 Kamisado는 야간 기습 전술을 일컫는 스페인어인 Camisado를 조금 더 검색이 잘 되게 하기위해 C를 K로 바꾼 것이라고 합니다. Sumo에 대해서는 따로 전해들은 바가 없긴 하지만, 일본의 스모에서 따온 것이 맞을 것 같다...는 의견은 있었네요.
...뭔가 알아두셔봤자, 한국에서는 달빛 아래에서 수를이라는 아주 감각적인 이름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아무짝에도 쓸데 없는 정보였습니다만, 혹시나 저처럼 궁금해 하시는 분들의 시간을 좀 덜어드릴까 해서 적어봤습니다.
갑자기 떠올라서 쓱 적어보는데, 이 게임 탄생비화도 꽤 흥미롭습니다.
화장실 타일에 어떤 문양이 있는 걸 보고, 이걸로 게임을 만들 수 있겠다 생각하다가, 꿈속에서 게임의 규칙을 확정짓는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튀어나왔다...라는... 어쩐지 군대에서 침상을 닦다가 손수건을 접는 게임을 떠올렸다는 국내의 모 작가님의 보드게임 탄생비화보다도 더 신기롭고 극적인 비하인드 스토리였습니다.
아무튼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 오랜만에 톺아보기를 시작합니다.
게임의 목표
플레이어는 자신의 기물을 상대방 진영의 시작줄까지 침투시켜야 합니다. 다선승제를 적용한다면 정해진 횟수만큼 먼저 승리한 플레이어가 승리하며, 특수 규칙으로 한 번 상대방 진영의 시작줄까지 침투시켜서 원형 고리 문양으로 뒤집은 기물을 다시 한 번 상대방 진영의 시작줄까지 침투시킬 수 있었다면 그 플레이어가 즉시 승리합니다.
게임 구성물
달빛 아래에서 수를과 원제인 Kamisado가 병기되어 있는 박스 아트입니다.
달토끼와 도깨비 문양, 그리고 캘리그라피까지는 어느 정도 운치있다 싶다가도 떡하니 중앙에 들어간 Kamisado 타이틀이 흥을 깨는 느낌이네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는데...
조금 특이한 내용물로써, 기물 움직임 예시를 보여주는 책자가 들어있습니다.
처음에는, 최근에 구매한 신판 베니스 커넥션에 들어있던 1인용 퍼즐처럼 최적의 한수를 찾아내는 그런 퍼즐 책자인가 했는데, 그냥 그림으로만 설명하는 이동 설명서였더라고요.
규칙서는 두 가지 언어(한국어, 영어)로 제공됩니다.
겉박스에 홈이 파져있는 경우를 많이 보는데, 이건 간만에 밑박스에 홈이 파져있네요.
덕분에 게임판을 빼내는데 훨씬 수월합니다.
진짜 이 홈이 뭐라고, 이 홈 하나 추가하는데 은근 비용이 들어간단 말이죠.
게임판은 양면 구성입니다.
각 면의 차이는 칸에 기물의 문양이 그려져 있느냐 없느냐 정도네요.
각 문양은 양반탈, 고려청자, 삼태극 부채, 달토끼, 무궁화, 도깨비, 광화문, 호랑이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보기에는 역시 기물 문양이 있는 쪽이 훨씬 그럴싸해 보입니다.
편의성 면에서도 기물 문양이 있는 쪽이 더 뛰어날 텐데... 실제로 이 게임을 해보시면 있든 없든 헷갈릴 수 밖에 없어요.
달빛 아래에서 수를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기물, 그리고 다선승제 게임에서 사용하는 기물 배치 결정용 타일입니다.
흡사 장기말을 떠오르게 하는 8각형 모양의 기물에는 음각 처리 뿐만 아니라 컬러 인쇄까지 되어 있어요.
이렇게 만들려면, 금형 제작이 필수인데... 금형 값을 생각하면...
정말 이 게임에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위 사진에 보면, 트레이에까지 어떤 기물을 놓아야 하는지 문양까지 표현되어 있어요. 친절해...
아래는 Kamisado의 모습입니다.
출처: 위키페디아
원래 오리지널 Kamisado는 더 해괴한데... 일단 이 모습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표면적으로 '용이 습격한다'는 테마를 입혀놨기 때문에 게임판에 용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기물은 탑(Dragon Tower)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탑에는 각자 담당하고 있는 색깔을 표현하기 위해 그 색깔에 맞는 한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Kamisado Pocket, 출처: http://www.burleygames.com/
그런데 이 탑을 따라가지 않고 달빛 아래에서 수를은 Kamisado Pocket의 디자인을 차용하였습니다. 좋은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게임의 준비
그냥 기본 게임에서는 갈색, 초록, 빨강, 노랑, 분홍, 보라, 파랑, 주황을 기준으로 그 칸의 색깔에 맞게 기물을 배치하고 즐깁니다만, 다선승제를 진행하기로 했다면, 배치 타일을 뽑아서 기물 타일을 배치하게 됩니다.
게임 설명서에 어떻게 배치를 해야하는지 그 목록표가 정리되어 있습니다.
아래는 1번과 25번을 배치한 예시입니다.
첫 게임의 경우, 원형 고리가 없는 면으로 보이도록 배치해야 합니다.
그 후, 첫 게임에서는 검정을 담당하는 플레이어가 먼저 차례를 진행합니다.
다선승제 게임에서는, 첫 차례는 번갈아가면서 진행합니다.
차례가 되면
첫 차례를 진행하는 경우에는, 원하는 자신의 기물을 일직선, 또는 대각선으로 원하는 칸만큼 전진시킵니다.
자신의 기물을 움직이고나면 상대방에게 차례가 넘어갑니다.
이때부터가 매우 중요해지는 부분인데요.
현재 차례가 된 플레이어는, 상대방이 직전에 자신의 기물 이동을 끝마친 칸의 색깔과 일치하는 색깔 문양의 기물을 반드시 움직여야만 합니다.
일직선, 또는 대각선으로 원하는 칸만큼 전진시킬 수 있지만, 도중에 자신의 기물이나 상대방의 기물을 뛰어넘을 수는 없습니다.
이동할 수 없는 경우에는, 자동으로 상대방에게 차례가 넘어갑니다. 단, 상대방은 방금 내가 움직이지 못한 기물이 밟고 있는 칸에 해당하는 색깔 문양의 기물을 움직여야 합니다.
위 사진의 경우, 하얀 플레이어가 도깨비를 움직여 파랑 칸에 멈추었다면, 검정 플레이어는 반드시 파랑색 광화문 문양이 그려진 기물(사진 상으로 오른쪽 상단 끝)을 움직여야만 합니다.
게임의 종료
어느 한 플레이어가 상대방 진영의 시작줄에 도달하면 해당 플레이어의 승리로 게임이 끝납니다. 또한, 매우 드물게 서로 기물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게 되면, 마지막으로 기물을 이동시켜서 교착상태에 빠지게 만든 플레이어가 패배합니다.
다선승제 게임에서는, 이번에 도달한 기물을 뒤집어 원형 고리 기물로 표시합니다. 그리고 그 원형 고리 기물을 유지한 채 다음 게임의 준비를 합니다. 그 후, 서로 합의된 횟수만큼 승리를 먼저 가져간 플레이어가 최종 승리합니다.
도중에 원형 고리 기물이 상대방 진영의 시작줄에 도달하게 된다면 합의된 횟수에 관계없이 즉시 그 플레이어가 승리합니다.
※원형 고리 기물이 되면, 한 번에 이동할 수 있는 칸 수가 최대 5칸으로 줄어듭니다. 또한, 특수 이동으로 상대방의 일반 기물이 바로 위칸에 있을 때, 그 기물을 한 칸 밀어낼 수 있는 기능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움직이는 나의 기물은, 밀려난 상대방 기물이 밟는 칸에 해당하는 색깔 문양의 기물입니다.
달빛 아래에서 수를 이해하기
다음은 다선승제 게임을 진행하는 예시입니다.
중간 과정은 생략하고, 하양 플레이어가 초록 고려청자 기물을 움직여 빨간 칸에 도달한 것에서 이어집니다.
하양 플레이어가 도착한 칸이 빨간 칸이기 때문에 검정 플레이어는 자신의 빨간 부채 기물을 움직여야 합니다.
검정 플레이어는 자신의 빨간 부채 기물을 (검정 플레이어가 바라보는 방향 기준) 대각선 왼쪽 위로 한 칸 전진시켜 갈색 칸을 밟았습니다. 따라서 하양 플레이어는 자신의 갈색 양반탈 기물을 움직여야 합니다.
그런데 하양 플레이어의 갈색 양반탈 기물은 검정 플레이어의 기물들에 막혀서 전진을 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이때의 판정은 겉보기에는 자동으로 검정 플레이어에게 차례가 넘어간 것처럼도 보일 수 있습니다만, 하양 플레이어가 갈색 양반탈 기물을 움직이지 못하여 다시 한 번 보라 칸을 밟은 것으로 간주합니다. 따라서, 검정 플레이어는 자신의 보라색 도깨비 기물을 움직여야 합니다.
검정 플레이어는 자신의 보라 도깨비 기물을 상대방 진영의 시작줄로 옮길 수 있었습니다.
검정 플레이어는 이번 게임에서 승리하며, 보라 도깨비 기물을 뒤집어 원형 고리 기물로 만듭니다.
인상적인 부분
1. 추상 전략이 무엇인지 가장 간결하고 깔끔하게 표현하는 작품
이 게임이 출시된지 벌써 13~14년 째에 접어든다는 것은 충격이네요. 이런 게임이 존재했다니, 세상을 보는 눈이 참 좁았구나 싶습니다. 정확히는 제가 보드게임에 썩 관심이 없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려나요.
본의 아니게 직전에 톺아보기를 작성했던 아크틱도 추상 전략 게임입니다만, 전통의 장기나 체스, 바둑처럼 클래식한 느낌보다는 무언가 현대적인 감각이라고 해야할지, 기물 이외에 카드 등이 등장하여 외적인 구성물로 시스템을 완성시킨, 일종의 퓨전 느낌이 있었다면, 달빛 아래에서 수를은 하마터면 옛날 옛적부터 작자 미상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 추상 전략 게임이라고 소개했어도 믿어버릴 것 같은 원초적이고 직관적이지만 깊은 수 싸움이 가능한, 정석의 추상 전략 게임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충분히 장기나 체스, 바둑을 대체할 수 있을만한, 진정 대회 게임에 어울리는 그런 추상 전략 게임이었습니다.
괜히 이 게임이 주렁주렁 이런저런 수상 이력을 박스에 넣는 게 아니었어요.
특히나, 멘사 셀렉트이기도 한데, 개인적으로는 멘사 셀렉트 게임 중에는 '이게 왜?'라는 의문을 갖게 하는 보드게임들도 많았기 때문에 괜히 눈여겨 보지 않게 되는 경향이 생겼었는데, 이 게임은 '그래, 이런 게임을 셀렉트했어야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덧붙여, 장기나 체스는 각 말들의 이동 방법을 외워야 한다거나, 서로 잡아먹지 못하는 말이 존재한다거나 하는 등 잔룰이 심심찮게 있는데, 달빛 아래에서 수를은 내 말을 일직선, 또는 대각선으로 원하는 칸만큼 전진, 그리고 상대방이 멈춘 칸에 해당하는 내 색깔의 말을 이동... 그리고 상대방 진영의 시작줄에 먼저 도달하면 승리라는 매우 심플한 규칙으로 규칙의 간결함면에서는 장기나 체스를 넘어 바둑에 견줄만한 레벨이라고 생각합니다.
2. 전혀 다른 형태의 수 싸움
달빛 아래에서 수를은 겉보기에는 장기나 체스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매우 다릅니다. 내가 내 기물을 움직이는 것은 맞지만, 오히려 내가 상대방을 조종한다는 느낌으로 게임에 임해야 한달까요?
적시적소에 내가 원하는 말을 움직일 수 있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마지막으로 멈추는 칸에 해당하는 색깔의 내 말을 움직여야 한다는 제약 때문에 이것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굉장히 답답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실 제가 그랬습니다. 지금도 그래요.
내가 내 말을 어디로 움직이느냐도 물론 중요하지만, '내가 저 색깔의 상대 말을 움직이게 할텐데 과연 상대가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서 다음에 내가 움직이고 싶은 말을 움직여줄까?'를 고민하는 자연스럽게 몇 수 앞을 내다봐야 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장기나 체스가 플레이어 본인이 선호하는 루틴으로 진검 싸움을 하는 전술적인 요소가 강하다면, 달빛 아래에서 수를은 전술보다는 전략적인 요소를 강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게임을 진행하다보면 본인만의 루틴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겠습니다만, 내가 한수를 두었을 때 상대방이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에 대한 가능성이, 계산조차 어려울 정도로 너무 방대합니다. 그렇다고 임기응변으로만 대응하는 것도 명확한 한계가 있고요.
결국, 상대방 말의 움직임을 최소화할 수 있는 덫을 짜서 내가 원하는 말을 이동시킬 수 밖에 없도록 몰아넣어야 하는데... 이 전략을 짜내는 스트레스가 상당합니다.
이렇게만 쓰면 상당히 부정적으로 서술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극찬입니다.
아쉬웠던 부분
1. 몰입감 없는 테마
이것은 사실 오리지널 Kamisado 자체가 가진, 어쩌면 모든 추상 전략류의 게임이 가진 문제입니다만, 시스템, 그러니까 승리조건이나 왜 말을 이렇게 움직여야 하는지, 개연성이 너무 없다랄까요.
애초에 용이 나오고, 탑이 나오고... 그리고 그 탑이 움직이고... 상대 진영의 시작줄까지 가면 그 탑에 고리가 생기고... 그렇게 고리가 생긴 말은 Sumo라고 불리며 특수한 능력이 생기고... 그런데 게임 이름은 Kamisado이고...
그런데 한국어판이 되면서, 달빛 아래에서 수를이라는 이름이 되고, 단순하게 탑에 색깔 한자가 적혀있던 것은 한국을 상징하는 문양이 되었으니 더더욱 테마와 시스템의 조화가 더더욱 멀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저라도 이 규칙에 어울리는 테마를 찾아서 녹여낼 자신은 없네요.
아마 같은 고민을 하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어울리는 테마를 녹여내지 못할 것이라면, 차라리 완전히 다른 방식의 접근을 선택한다...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시사하는 바가 상당히 큽니다.
마무리
추상 전략을 좋아한다면 너무 진지해질 수 밖에 없는, 웃음끼 쫙 빠져 재미가 없지만, 오히려 이 점 때문에 재미있는 게임.
최근에 즐겨본 보드게임이 별로 없지만, 어쨌든 근래 몇년을 통틀어 처음 접해본 게임들 중 가장 추상 전략다운 게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2008년 게임이라니요. 세상은 정말 넓은 것 같네요.
실제로 게임을 즐겨보면, 자꾸 내가 원하는 말을 움직이려는 손버릇이 나와서 곤혹스럽습니다만, 이건 게임의 문제가 아니라 기존의 장기나 체스 류의 추상 전략 게임에 익숙해져버린 본인의 탓이겠죠. 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동안에는 '앗!'하는 사이, 자신이 둔 수가 자충수가 되어 순식간에 패배해 버리는 상황도 자주 겪으실 겁니다. 제가 그랬거든요. 이것 저것 몇 수를 생각하더니만... 결국 즐기는 사람을 못이기는 것일까요...? ㅎ
실제 얼마 되지 않는 코어 규칙에 미리 머리속에 새기기도 어려운 무수한 가능성의 수들... 이보다 더 추상 전략에 어울리는 게임이 있을까 싶습니다.
비록 테마는... 특히나 달빛 아래에서 수를은 공항 면세점 기념품 코너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시스템적으로는 가히 으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현지화를 진행한 것은, 굳이 시스템과 테마의 조화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노력이 반드시 상업적인 성공을 불러오지 않는다는 것, 전혀 다른 방식으로 좋은 게임을 널리 알리는 새로운 형태의 현지화겠지요.
또한 달빛 아래에서 수를은 영국에서도 판매가 되며 한국과 영국을 이어줄 새로운 교량이 되어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마 저는 이 게임을 자주 즐기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 게임에 진심이 될 것 같거든요.
즐기고 싶지만 즐길 수 없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치열한 수 싸움이 가능한 달빛 아래에서 수를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