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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 vs 추리: 미크로 마크로 첫인상 후기

4,878 조회

2020.12.21 22:52

라이트게이머 무이입니다.

평소, 보드게임에 대해 글을 쓸 때는 5회 이상 플레이하는 걸

나름의 원칙으로 삼고 있지만, 미크로 마크로는 첫인상이

너무 좋아 초회플임에도 불구하고 후기를 써보고자 합니다.

(약간 흥분한 상태에서 글을 쓴다는 걸 미리 말씀드립니다;)

예전에 미크로 마크로의 데모버젼을 플레이해 보니,

보드게임이라기보다 ‘월리를 찾아라’와 같은 숨은그림찾기의

느낌이 강하더군요.

미크로 마크로 데모버젼 플레이

하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어필이 된 건지, 같이 플레이했던

(비보드게이머인) 아내가 좋아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게임을

주문했습니다.

(근데, 제가 이 게임에 기대한 것은, 가볍게 얘기를 나누며

기분 좋게 시간을 보낼 킬링타임용 게임이었기 때문에,

2만원대 중반의 가격은 약간 부담스럽긴 했습니다;)

게임을 플레이한 날, 아내는 무척 바빴던지

“가끔, 일이 몰릴 때가 있지? 그게 오늘이야.”

라고 말하더라구요. 그래서 점심을 같이 먹은 뒤, 눈치를 보다

‘맛보기 사건’만 해볼 겸

“10분만 같이 게임할까?;”

라는 말로 (겨우) 플레이를 시작했는데, 아내가 이내 게임에

몰두하면서

“다음 거 가져와!”, “뭐해, 빨리 다음 거 가져와!”

를 연발하는 겁니다. 솔직히 저는 게임도 파악할 겸 좀 더

천천히 즐기고 싶었는데, 아내가 너무 몰아붙이는 데다 약간

걱정도 돼서

“오늘... 바쁘다고 안 그랬어?;”

라며 조심스레 물어봤는데,

“됐어! 빨랑 갖고 와!”

라는 대답이 돌아와서 어쩔 수 없이 아내의 페이스에 맞춰

달렸습니다.

결국, 미룰 수 없는 일정 때문에 1시간 40분만에 플레이를

멈춰야 했는데, 16개의 사건 중에 9개를 해결했더라구요;

이제 게임에 대한 소감을 써보려고 하는데... 너무 급하게

플레이하느라, 차분하게 게임을 돌아볼 수 없었기 때문에,

몇 가지 인상적이었던 것만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숨은그림찾기 게임?

초반에 난이도가 낮은 사건들을 플레이하다 보니,

(숨은그림찾기가 쉬워서 그랬겠지만) 숨은그림찾기보다는

다른 요소가 돋보이더라구요.

‘이 게임... 의외로 추리 게임 아냐?’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처음에 주어지는 사건 현장을 보면

‘피해자는 어떤 사람일까?’,

‘사건 현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용의자는 누구일까?’ 등등

여러 가지 의문점이 생기는데, 여기에 대해 다양한 추측을

해보고, 거기에 대한 단서나 해답을 (지도의) 사건 현장

근처를 살피면서 찾게 되니까요.

근데 사건을 진행하면 할수록, 진짜로 추리 게임의 성격이

강해지는 겁니다;

(2) 숙련자 규칙

이런 추리 요소는, 숙련자 규칙을 적용하니 명확히 드러났습니다.

기본규칙으로 플레이할 때는, 그때그때 사건 카드에 적힌

문제를 풀게 되는데, 그 문제 자체가 사건 해결에 대한

중요한 힌트가 되고, 그 덕분에 플레이어들은 사건 해결을

위해 숨은그림찾기만 하면 됩니다.

하지만 숙련자 규칙의 경우엔, 시작 카드에 적힌 사건의 개요만

읽고 (다른 사건 카드는 읽지 않은 채) 나머지는 모두

플레이들이 알아서 하게 됩니다. 그래서, 플레이어들이 눈알을

굴리며 지도 여기저기에서 단서를 찾는 것이 ‘수사’가 되고,

여러 가지 가설을 세운 뒤 찾아낸 단서들로 이런 가설을

검증하는 것이 ‘추리’가 되어, 의외로 추리 게임의 형태를

갖추는 겁니다.

(3) 추리 vs 숨은그림찾기

덕분에, 게임이 잘 풀리면 깔끔한 추리를 경험하지만, 반대의

경우엔 수사에 치중하느라 눈이 아프게 되더라구요.

(4) 난이도 조절

근데, 지도가 넓다 보니 막연히 여기저기 뚫어져라 쳐다보면,

쉽게 피곤해지고 재밌을 리도 없어서, 좀 막힐라치면 숙련자

규칙을 고집하지 않고, 다음 사건 카드의 문제를 읽었습니다.

플레이어 스스로 난이도를 조절한다고나 할까요? 덕분에

답답하지 않았고, 아주 경쾌하게 게임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5) 개연성

제가 이 게임을 추리 게임으로 본다고 말씀드렸는데, 그러면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선 당연히 이 게임의 논리적 개연성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실 텐데요... 제가 느끼기엔 매우 매우

높았습니다. 게임을 진행하다 문제 두 개를 틀렸는데, 둘 다

너무 성급해서 실수를 저질렀을 뿐, 해답을 읽으면서 의문이

들었던 문제는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정말 너무 명백했습니다!)

(6) 관찰력

이 게임엔 추리와 숨은그림찾기 외에도 한 가지 요소가

더 들어가는데, 바로 관찰력입니다. 그림 하나하나를 자세히

들여다봐야 된다는 건데, 아무래도 텍스트가 아닌 그림을

보면서 진행하는 게임이다 보니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7) 단점

이 게임을 무척 재밌게 플레이했고, 굉장히 좋은 첫인상을

받았지만, 단점도 있었습니다.

먼저, 숨은그림찾기와 관찰력이 중요한 게임임에도, 그림이

너~무 작아서 잘 안 보이더라구요. 게임에 돋보기가 들어있는

이유일 텐데요... 저는 돋보기 대신에, 핸드폰으로 지도의

일부분을 찍고 그걸 확대해서 보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두 번째 단점도 지도에서 비롯되는데요...

지도가 엄청 큼에도 플레이어들이 같은 곳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경우가 많아서, 세 명 이상의 플레이어가 있다면 상당히

피곤할 거 같더라구요. (저의 경험으로는, 지도를 거꾸로

보는 건 도움이 안 돼서, 나란히 앉아서 지도를 봐야 했거든요.)

제 생각에 2인 베스트인데... 보드게임긱에서도 압도적인

2인 베스트에, 4인은 비추가 상당히 많더라구요. 즉, 플레이

인원수에 제약이 많다는 것이 단점으로 여겨집니다.

(8) 마무리

미크로 마크로는, 월리를 찾아라와 같은 숨은그림찾기 게임일

거라는 예상과 달리, 의외로 추리 게임으로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반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게임을 엄청 즐겁게

플레이한 이유는, 단순히 추리 게임이기 때문도 아니고

반전이 있었기 때문도 아닐 겁니다.

그건 아마도, 추리 게임의 재미를 굉장히 경쾌하고 시원시원하게

즐겼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하나의 사건을 해결하는데

20분이 채 안 걸렸고, 조금이라도 늘어진다 싶으면 다음 문제를

힌트 삼아 보면 됐으니까요.

하지만, 아홉 개의 사건 중에 마지막에 플레이했던 세 사건은

난이도가 살짝 있었고, 그만큼 플레이 시간이 길어지면서

눈도 좀 아팠는데, 남은 사건들에서도 부디

추리, 숨은그림찾기, 관찰력

이렇게 세 가지 요소가 균형을 잘 이뤄서 경쾌하게 추리를

즐길 수 있으면 좋겠네요.

수사 추리 게임을 좋아하는 분들 중에 미크로 마크로의

데모버젼만 플레이해보시고, 시시한 숨은그림찾기일까봐

이 게임을 패스하신 분이 계시다면, 꼭 한 번 플레이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경쾌한 맛이 일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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