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풀 월드의 드래프트 방식
안녕하세요, 익퓨입니다.
현재 한국어판 선주문 진행 중인 [원더풀 월드]의 번역을 맡았습니다.
MTS Games 사에서 리뷰를 부탁하였기에, 번역자이기도 해서 리뷰를 쓰기로 결정했습니다.
1. 게임의 뼈대
[원더풀 월드]는 카드 드래프트와 자원 관리를 주요한 메카니즘으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A. 드래프트 방식을 통해서 카드를 가져오고
B. 가져온 카드를 건설하여 얻는 자원을 관리하여, 더 많은 카드를 건설해서
C. 높은 점수를 획득한다
라는 직관적인 흐름을 가지고 있는 게임입니다.
[원더풀 월드]의 특징을 살펴보기 위해, 유명한 카드 드래프트 게임인 [7 원더스], [테라포밍 마스]와 비교하면서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2. 카드 드래프트 방식
먼저 [7 원더스]의 방식을 생각해 봅시다.
한 번에 한 장씩, 고른 카드를 플레이합니다.
'플레이한다'는 것은, 고른 카드를 지금 당장 건설할 수 없다면 다른 방식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웃한 플레이어에게서 필요한 자원을 돈을 주고 구입할 수 있는 요소가 필수적입니다.
조금이라도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게임성이 확보되기 때문이죠.
[7 원더스]에서 단순히 내가 확보한 자원으로만 건설이 가능하다면 게임의 재미가 크게 떨어질 것입니다.
다음으로 [테라포밍 마스]는 라운드마다 카드를 드래프트 하여 4장의 카드를 모두 선택한 뒤,
최종적으로 선택한 카드를 한 장씩 구매할지 말지 결정합니다.
구매한 카드는 손에 들게 되는데, 손에 든 카드들은 원할 때 건설할 수 있습니다.
방금 선택한 카드를 당장 건설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고, 이것은 곧 테포마 특유의 '큰 그림'을 그리는 플레이와 직결됩니다.
선택하지 않은 카드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없지만 카드 구매 금액이 3원이라는 사실에서부터 관점을 약간 달리 해서 보면,
원래 카드 1장당 3원씩 내야 하는데, 3원의 이득을 본다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원더풀 월드]는 [테라포밍 마스]의 방식을 따릅니다.
라운드마다 7장을 선택한 뒤, 선택한 카드를 어떻게 처리할지 결정합니다.
앞으로 건설할 카드를 [테라포밍 마스]에서는 손에 들어서 상대방에게 공개하지 않지만,
[원더풀 월드]에서는 '건설 중' 영역에 배치하여 모두가 볼 수 있게 공개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그리고 [테라포밍 마스]에서는 카드를 선택하지 않았을 때 3원의 기회비용이 생기는 반면,
[원더풀 월드]에서는 선택하지 않은 카드의 '재활용 보너스'라는 자원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3. 헤이트 드래프트
모든 카드 드래프트 게임의 뜨거운 감자, '헤이트 드래프트'입니다.
카드 드래프트 게임에 익숙하지 않으신 분들을 위해 설명 드리자면 '헤이트 드래프트'란,
'나에게 필요 없는 카드지만, 다른 플레이어의 중요 카드를 끊는 견제 행위'를 뜻합니다.
[7 원더스]는 의외로 본판부터 이 헤이트 드래프트를 꽤나 장려하던 게임이었습니다.
'원더를 건설하는 행위'를 통해 상대방의 중요 카드를 아예 찾을 수 없게 만드는 행위가 3번씩이나 가능했으니까요.
그리고 일반적으로 이 원더를 건설하는 행위는, 웬만한 카드를 건설하는 행위보다 더 큰 이득을 주는 행위였기 때문에
사실상 헤이트 드래프트 특화 도구라고 볼 수 있었죠.
물론 상황에 따라서는 라운드 후반의 정말 의미 없는 카드들을 처리하는 용으로도 사용하긴 합니다.
이것 이외에도, 한두 번쯤은 오는 돈이 부족한 경우를 대비하여 카드를 버리고 3원을 받는 액션 또한 있습니다.
이 요소 역시 헤이트 드래프트 장려책이죠.
한편, [테라포밍 마스]는 헤이트 드래프트 자체의 요소는 약한 편입니다.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카드를 택했을 때 내가 볼 수 있는 이득이 없죠.
대신 '소행성' 류의 이벤트 카드를 비롯한 견제 카드들이 많습니다.
'에코라인'으로 플레이 해보셨다면 오히려 이런 식물 자원을 태우는 카드를 울며 겨자 먹기로 선택하셨던 경험이 다들 있으실 겁니다.
목성 태그로 드래곤볼을 모으는 플레이어를 견제하느라 필요 없는 목성 카드를 일단 자른 경험도 다들 있으실 거구요.
개인적으로는 [테라포밍 마스]라는 게임 자체가, '누가 더 사기를 많이 쳐서 더 강한 엔진을 만드느냐'의 재미가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헤이트 드래프트의 요소가 약한 게 아닌가.. 뭐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원더풀 월드] 에서는 두 게임의 중간 정도의 입장을 취합니다.
[원더풀 월드]에서는 총 5가지의 자원이 존재하는데 대개 1종류나 2종류의 자원을 집중적으로 생산하고,
필요한 소수의 나머지 자원들은 카드의 '재활용 보너스'로 충당하는 것이 대다수의 플레이어들이 선택하는 전략입니다.
의외로 '재활용 보너스'를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다른 플레이어에게 필요한 카드를 재활용 보너스 용으로 짬처리 해버릴 수 있다는 것이죠.
4. 엔진 빌딩
카드 드래프트 게임들은 기본적으로 '엔진 빌딩' 게임인 경우가 많습니다.
초반에는 자원들을 모으는 카드들을 건설해서 충분한 생산량을 확보하고,
후반부에는 확보한 생산량을 기반으로 점수를 뽑아내는 플레이를 하게 되죠.
점수를 뽑아내는 '뽕맛'이 이런 엔진 빌딩 게임을 하게 되는 주된 원인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7 원더스]는 위의 플레이 방식의 대표적 게임입니다.
초반에 해당하는 1시대에는 주로 자원 카드나 자신이 타고 있는 테크트리의 카드 위주로 건설하다가,
3시대가 되면 대부분 점수카드만 건설하여 점수를 뽑아내는 플레이를 합니다.
몇몇 카드를 제외하면, 카드들은 자원생산/점수획득 카드로 이원화되어 있습니다.
[테라포밍 마스]는 다들 아시다시피, 엔진빌딩 '뽕맛'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게임이죠.
지금 다루고 있는 3가지 게임 중, 호흡이 가장 깁니다.
4인플 기준 보통 7-8라운드는 하게 되는데요.
[7 원더스]는 3라운드, [원더풀 월드]는 4라운드에 불과하죠. 사실 체급이 다른 게임입니다.
다만 [테라포밍 마스]에서 주목해야할 점은, TR이라고 하는 점수에 가까운 지표를 올리다 보면 수입이 증가한다는 점입니다.
또한 초반에 마냥 생산량을 올리는 것보다 비용대비 큰 점수를 주는 '마일스톤' 등을 획득하는 플레이도 한 가지 옵션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일단 생산량 올리고 나중에 생각하는' 플레이보다는 좀 더 다양한 차원에서 고민할 수 있다는 점도 이 게임의 장점 중 하나입니다.
[원더풀 월드]는 초반부터 한 가지 자원을 집중적으로 생산하는 플레이가 좋습니다.
왜냐면 자원마다 생산력 우위 보너스를 체크해서, 가장 많은 생산량을 가진 플레이어에게 '군인'/'기업가' 토큰을 1개씩 주기 때문인데요.
이 토큰은 게임이 끝났을 때 기본적으로 승점 1점의 가치가 있고, 점수 카드를 통해 더 많은 점수를 획득할 수도 있습니다.
[원더풀 월드] 본판만으로 플레이할 때는, 생각보다 점수를 뽑아내는 뽕맛을 느끼기가 어려운데요.
승점을 대폭 상승시켜주는 카드가 그렇게 많지 않을 뿐더러, 게임이 4라운드로 짧고, 카드를 추가로 뽑을 수 있는 수단이 전무하기 때문입니다.
자원생산량은 신나게 올려 놓았는데, 점수를 터뜨리지는 못하는 상황이 발생해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초반부터 점수 카드를 좀 챙겨놓아야 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확장을 넣으면 이러한 상황은 좀 나아집니다. 이른바 '뽕맛'용 카드들이 추가되기 때문이죠.
5. 자원 관리
[원더풀 월드]는 은근히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게임입니다.
겨우 7장의 카드를 선택해서 플레이하는 것을 4번만 하면 되는 게임임에도 그렇습니다.
이렇게 되는 원인 중 하나가 '자원 생산 체인'인데요.
5가지 자원이 동시에 생산되는 것이 아니고, 생산되는 순서가 정해져 있습니다.
생산된 자원은 즉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생산된 자원으로 다른 자원을 생산하는 카드를 건설했다면,
건설된 카드는 그 라운드부터 바로 생산을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카드를 건설하는 '서순'이 중요한 게임이라는 거죠.
이 순서를 최적화하기 위해 기존의 건설 중이던 카드와, 새롭게 받은 7장으로 어떤 조합을 만드는 것이 최선인지 고민하는 것이 이 게임에서 얻을 수 있는 재미 요소입니다.
장기나 바둑의 묘수풀이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딱 자원으로 건설을 완료했을 때의 쾌감, 다들 아시죠?
[원더풀 월드]에서 생산된 자원들은 즉시 건설 중인 카드들에 올려야 합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자원의 가치가 대폭 하락하기 때문인데요.
나중에 아무 자원 5개를 와일드 카드로 쓸 수 있는 '크리스탈리움' 자원 1개로 교환할 수 있기는 하지만, 사실 5:1의 비율이니 꽤 효율이 안 좋습니다.
아까 언급한 '체인'요소와 이 가치하락 요소가 결합하여 자원 관리의 재미를 느끼게 해줍니다.
거기에, 처음부터 어느 정도 큰 그림을 그려야 할지를 고민해야 하는 요소가 추가되어 [원더풀 월드]의 게임성을 만듭니다.
6. 단점
[원더풀 월드]의 단점은 우선, 불편한 시인성입니다.
게임의 특성상 자원 생산량을 상대방과 비교해야할 경우가 많은데, 이게 꽤 보기 불편합니다.
게임을 하다 보면 혼자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이 불편한 시인성이 한몫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어떤 플레이어가 정확히 어떤 자원을 몇 개 생산한다.' 는 느낌을 받지 못하고,
'아.. 쟤는 그냥 저 색깔 모으는구나' 정도의 느낌만 받을 수 있다는 얘기죠.
이게 그래서 자기와 겹치지 않으면 크게 상관은 없는데, 겹쳤을 때 꽤나 불편한 요소가 됩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단점은 전략의 다양성이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기본적으로 '1~2가지 색깔을 위주로 모으고 나머지는 재활용한다'는 전략 이외의 전략은 경쟁력이 없기 때문에
게임마다 모으는 색깔이 달라질 뿐, 전략이 다양한가? 라는 의문이 듭니다.
점수를 대량으로 주는 카드들이 본판에는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에, 점수를 폭발시키는 뽕맛도 느끼기 어렵습니다.
7. 확장
두 가지 확장이 있는데요.
'부패와 진보' 확장은 본판의 부족한 카드풀을 대폭 늘려 줍니다.
계속 언급하고 있는 '점수 뽕맛'을 볼 수 있는 카드들이 꽤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승점을 뽑는 카드만 있는 것이 아니고, 생산량을 대폭 늘려주는 카드도 있습니다.
거기에 '부패'라는 개념도 도입되며, 오히려 생산량을 감소시키는 경우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카드 게임에서든, 쓸만한 카드가 많이 들어다는 것은 확장의 필구 요소가 되죠.
이 확장이 정말 특이한 점은, 카드 뒷면이 본판과 전혀 다르다는 점입니다.
아예 구분이 되게 해놨는데요. 본판 카드들과 특정 비율로 섞어 쓰라는 의도입니다.
본판에 있었던 '승점 카드 부족'현상을 보완하기 위한 대책인 거죠.
그리고 또 하나의 확장, '전쟁 혹은 평화'는 제 생각에는 테마를 중요시하는 분들이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사실 게임의 테마에 대해 말씀드리지 않았지만, 요 게임은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게임입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세계 대전이 일어나서 기존의 국가들이 쫄딱 망해버리고 대륙별로 새로운 제국들이 떨쳐 일어난.. 그런 지구가 배경입니다.
'전쟁 혹은 평화'는 '캠페인'이라고 부르는 레거시 모드를 도입한 게임입니다.
총 6가지 시나리오가 있는데, 이 중에 5개의 시나리오를 순서대로 플레이하게 됩니다.
레거시 모드이다 보니, 조금 더 세계관에 몰입하게 됩니다.
플레이어들의 선택으로 지구의 운명이 전쟁이나 평화 쪽으로 기울어지게 되는데요.
이게 나름 테마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먹히지 않을까? 싶은 요소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솔로 모드로는 플레이해보지 않았는데, 솔로 모드의 텍스트들이 꽤나 재밌습니다.
자의식 과잉의 똘끼 넘치는 제국의 리더와, 그 리더를 지켜보는 비서의 티키타카가 웃음을 자아냅니다.
디스토피아적인 근미래 테마를 좋아하시는 분들께서는 재밌게 즐기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