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르 이야기 ⑰ - 폭풍 방패 I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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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8 18:43

폭풍 방패 II

다음날 아침, 실드 드워프의 제후 할바르트는 4 명의 신하 만을 거느리고 "동굴"을 떠나 하드리아 바다 쪽, 북부를 향한 여정에 올랐습니다. 동행자 중에는 젊은 나이에 대머리 난쟁이 라단도 함꼐였습니다. 라단은 "동굴"의 드워프 중에서 가장 기민하고 강한 전사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라단이 곁에 있어 준 것을 할바르트는 기뻐했습니다. 왕자의 사촌인 굴드와 깊은 광산에서 온 두 명의 드워프도 함께 동행했습니다.

<갈대의 나라>(Rietland)의 여행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어쨌든 할바르트, 라단, 굴드와 다른 두 드워프는 안도르의 해안에 도착하였고, 북쪽으로 가는 배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잊을 수 없는 사건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배는 북부 최대의 환적지인 베르프트하임에서 건조된 오래된 상용 코그선이었습니다. 선장은 ‘야리 도르’라는 이름의 마른 체형의 남자였습니다. 뺨은 움푹패여 좁아보였고, 눈동자는 서늘한 푸른색을 띄고 있었습니다. 드워프들이 배에 올라 탈때, 그는 방패를 차분히 관찰했습니다. 젊은 드워프 라단에게는 그 시선이 굉장히 불쾌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는 선장을 향해 날카롭게 말했습니다.

"어이 바다 쥐새끼, 어딜 쳐다봐. 우리는 네놈에게 충분히 지불했어. 우리 전하께서 명하시는 곳으로 가는 것만 생각해."

선장은 웃으며 답했습니다.

"이것 참 미안하게 됐습니다. 드워프 양반. 이게 그 유명한 네 개의 방패중 하나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소문에 워낙 유명하다 보니까, 무심코 눈이 가버려서 ......"

라단은 화를 내듯이 쏘아붙였습니다.

"눈을 다른 곳으로 돌려. 그리고, 손가락 하나라도 건들 생각은 마라. 네가 생각한 것처럼, 확실히 이것은 4개의 방패 중 하나인 ‘파멸의 방패’이다."

물론 이건 거짓말이었습니다. 그는 야리 도르를 믿지 않았고, 겁을 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실드 드워프가 아닌 자가 방패에 닿으면 번개가 내려칠 것이다. 알았는가?!"

선장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없이 갑판에서 선실로 사라졌습니다.

"이제 말귀를 알아들었겠지."

라단은 나지막히 중얼거렸습니다.

잠시 후, 불어온 남풍으로 인해 돛은 펴졌고, 코그선은 안도르 북쪽 해안을 떠났습니다.

할바르트는 뱃머리에 서서 인생 처음으로, 그의 얼굴에 스쳐 지나가는 거친 바람을 즐겼습니다. 굴드 또한 멋진 경치와 눈 아래로 펼쳐지는 바다를 보며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라단과 2 명의 수행원은 심한 뱃멀미때문에 대부분을 선실에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던 중, 3 일째에 모든 상황을 바꿔놓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큰 충격이 배를 덮쳤고, 라단은 침대에서 굴러 떨어졌습니다. 간신히 일어나자마자, 갑판 쪽에서 큰 비명소리가 들렸습니다. 즉시 바깥으로 뛰어나가 보니, 크게 흥분하고 있는 선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라단의 눈에 거칠고 높은 파도 사이로 날카롭게 튀어 나온 바위가 보였습니다. 선장의 목소리가 거센 바람을 뚫고, 진로를 바꾸도록 조타수에게 명령했습니다.

할바르트와 굴드는 여전히 뱃머리쪽에 있었으며, 갑판에서 바다로 떨어지지 않게 힘껏 매달려 있었습니다. 이윽고, 배는 충돌 직전에 어떻게든 방향을 바꾼 것처럼 보였습니다. 암초는 우현에서 훨씬 후방으로 멀어져 있었고, 라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러나 순간, 이번에는 아무것도 없었던 배의 앞에 새로운 바위절벽들이 나타났습니다.

"조심해! 또 바위가 나타났다!"

라단은 외쳤습니다.

그러자, 선장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습니다.

"이건 바위따위가 아니야"

"뭐라고?"

라단은 눈앞에 나타난 것을 자세히 확인했습니다. 바위는 점점 커지더니, 물위로 높이 솟아올랐습니다.

"아로그다! 모두 무장하고, 발리스타를 준비해!"

선장이 외쳤습니다.

라단이 상황파악을 하기도 전에, 갑작스레 또 다른 바위가 바다 위로 부상했습니다. 그리고 노랗게 빛나는 두개의 눈동자가 나타났습니다. 라단은 살면서 이런 생물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울퉁불퉁한 바위로 덮인 피부에는 조개나 해초가 달라 붙어 있었습니다.

거대한 돌 손톱의 일격에 앞돛대가 부러졌고, 망루 절반이 비틀려 떨어져 나갔습니다. 강한 물보라가 몰아치며 배는 뒤집힐 뻔했습니다. 잠시 후, 배의 기울기가 돌아왔을 때, 라단은 마치 보이지 않는 끈에 묶인 것처럼 공중으로 딸려 날아가는 선원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는 커다랗고 노란 송곳니가 빽빽이 돋아난 아로그의 입으로 사라졌습니다. 이윽고, 또 다른 아로그 한 마리가, 좌현쪽에서 떠올랐습니다. 라단의 뒤에서, 선미에 설치된 발리스타의 발사소리가 들렸습니다. 강철의 거대한 화살은 굉음소리를 내며 날아갔지만, 괴물을 맞추지 못했습니다. 괴물은 이내 팔을 치켜 배를 향해 더욱 강한 일격을 내려쳤습니다. 나무파편이 공중으로 흩날리는 혼란의 와중에, 라단은 한 손으로 밧줄을 잡고 버티고 있는 할바르트를 보았습니다. 잘 보이지 않지만, 그의 다른 팔에는 뭔가를 장착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윽고,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실버 방패>였습니다. 곧 하늘이 어두워졌고, 왕이 방패를 힘껏 치켜들자, 마치 어두운 밤하늘의 기라성처럼 강하게 빛났습니다. 돌풍이 거세지며, 큰 파도가 아로그의 찡그린 얼굴 위를 덮쳤습니다.

간신히 무사했던 또 하나의 돛은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처럼 요란하게 요동쳤고, 바람을 타며 배는 밀려나듯이 빠르게 전진을 시작했습니다. 그 엄청난 추진력에, 라단은 굴러 넘어졌습니다. 괴물의 울부짖는 소리에 바로 일어서려고 했지만 헛된 노력이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괴물들의 포효는 멀어졌고, 선박의 삐걱 거리는 소리와 바람의 신음 소리, 그리고 뱃머리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