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워게임 : 워룸 후기
#War room
한국어로는 전쟁 통제실 또는 지휘 통제실 정도가 될까요? 워 룸은 전 세계를 두고 다투는 2차 세계대전 배경의 워게임입니다. 플레이어는 연합국과 추축국으로 나뉘어 최소 2인 최대 6인의 플레이어가 2차 세계대전의 국가를 맡아 플레이 하게 됩니다. 워 룸은 이름처럼 실제 지휘 통제실의 느낌을 내려고 노력을 많이 했는데요, 실제 워 룸과 게임의 모습을 비교해서 보면 그럴 듯 합니다.
2차 대전 당시 영국의 워룸.
게임의 홍보 이미지. 웬만한 탁자급의 사이즈를 자랑하는 맵과 1000개 이상의 플라스틱 컴포넌트가 테마를 잘 살려줍니다.
어마어마하게 크고, 비싸고, 공간을 차지하고, 120분에서 720분을 소요하는 플레이타임 덕에 플레이하기 쉽지는 않지만, 친구를 잘 둔 덕에 게임 세션에 초대받아 플레이 할 수 있었습니다.
워 룸의 세부적인 룰 설명과 소개는 이미 보드라이프에 굉장히 좋은 글이 있어 다루지 않으려 하고,
(관심이 있으시다면 담쟁쿤님의 글에서 확인해주세요. : http://boardlife.co.kr/bbs_detail.php?bbs_num=14545&tb=community_post&id=&delivery=0&pg=1&game_id=11888&start=&b_category=&game_category=)
저는 게임의 진행과 감상을 적어보려고 합니다.
(*주의 : 게임의 리뷰에 앞서 본 게임은 2차 대전을 재현한 게임으로, 일본의 욱일기가 등장하는 사진이 많습니다.)
게임의 초기 세팅입니다.
게임에는 여러가지 시나리오가 있지만, 이번 세션에서는 2차 세계대전 시나리오를 플레이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의 중기를 플레이하며, 일본과 소련의 불가침조약은 아직 깨어지지 않은 상태이고, 동시에 일본은 태평양에서 미국과 날을 겨누고 있습니다.
한편, 유럽에서는 프랑스를 장악한 독일이 동부전선과 유럽 전선에서 연합국과 마주하고 있으며. 미국의 보급을 유보트로 열심히 방해해 보지만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 게임은 시작됩니다.
추축국의 입장에서 서술한 이유는 제가 주사위 굴림에서 져서 추축국으로 플레이했기 때문입니다...
게임은 총 7개의 페이즈로 나뉘어 진행하게 되고, 가장 중요한 페이즈는 계획과 실행 페이즈입니다. 나머지 5개의 페이즈는 전투의 결과를 확인하거나, 생산하거나 하는 페이즈이기 때문에, 어떻게 군사를 이동시킬 것인지 그리고 이동의 결과 무엇이 발생하는지를 따지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계획은 프로그래밍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국가에 따라 최대 9개의 행동칸에 이번에 어떤 부대를 (번호가 부대명 위에 써 있습니다.) 어디로 이동시킬 것인지를 적게 됩니다. 실행 단계에서 계획은 취소가 가능하며, 다른 국가의 움직임에 따라 실행이 불가능할 경우도 자동 취소되므로, 모든 국가는 상대국가들의 이동을 미리 예상해야합니다.
대충 어떤 느낌인지를 전달하기 위해 1턴에 일어났던 일을 간략이 써 보겠습니다.
첫 번째 턴 추축국의 상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독일은 서로는 영국과 미국의 압박을, 동으로는 소련과의 전선을 마주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특히 벨라루스를 되찾고 싶어하는 소련의 병력 집중을 견뎌내야 하는 모양새였습니다.
한편 아시아에서 일본은 국공합작 이후의 중국의 끝없는 소모전에 중국 대륙 지배에 실패했고, 영원할 것 같은 아시아의 패권확장은 영국의 오스트레일리아와 인도에 기를 못 피고 있었습니다.
대륙이냐 태평양이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와중, 미국의 함대는 대서양과 태평양을 건널 준비를 합니다.
웃긴건 중국의 국기인데, 중국에서 중화민국 국기 생산이 불가능해서 저모양일 거라고 그룹에서 결론을 내렸습니다. 홈페이지 들어가보니 따로 중화민국 국기버전을 PNP 로 인쇄할 수 있게는 해놓았습니다만, 뭐... 한국인 입장에서 욱일기는 있는데 중화민국 국기는 대체되어 있는게 영 웃기긴 했습니다.
추축국은 첫 번째 턴에 소련 진출과, 오스트레일리아 진출을 각자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를 접수하고, 영국과의 대치를 인도로 줄이면 일본이 쉽게 소련을 압박해, 소련과의 불가침 조약을 다른 연합국이 깨게 만들거나 인도를 양면에서 압박해서 아시아 전반을 노리고 결정한 것이었습니다만... 이는 후에 큰 문제를 야기합니다.
역사적으로도 나치독일과 일본제국은 비슷한 선택을 했습니다.
연합국도 전선을 딱히 다르게 보지 않았던 결과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에선 큰 소모전이 벌어졌습니다. 또한, 일본의 약소한 중국 진출과, 오스트레일리아 앞바다를 향한 진격은 영국을 위축하게 하는 효과는 있었지만, 중국과의 지긋지긋한 소모전과 영국으로 하여금 인도에 집중하게 하게끔 만듭니다.
또한 거대한 미국의 함대가 태평양을 건너오면서, 일본의 앞날이 딱히 밝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게임은 이렇게 세부적인 전투를 묘사한다기 보다, 부대단위 그리고 국가단위의 움직임과 전략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1턴을 진행하는데 3시간이 걸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그만큼 수 많은 경우의 수를 예상해야 하고 동맹국과 토론하며 수를 찾아야 합니다. 그 와중에 자연스레 몰입되는 테마는 말도 할 것 없습니다. 그리고 뭔가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세션을 진행해서 영어로 게임을 진행했는데 웃긴 말이지만 영어로 대화하는 것 뿐인데 더 현장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하간 이렇게 한 턴이 진행되면 추축국과 연합국은 서로 상대의 수도를 2개 점령하면 승리한다는 간단한 목표를 가지고 다시 새로운 턴을 진행하게 됩니다. 물론 절대 간단히 취할 수는 없겠지만요.
#감상 - 장점
1. 테마
전공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세계 2차 대전을 조금은 알고 있어 기대는 했습니다만, 이렇게나 게임에 푹 빠져들 줄은 몰랐습니다. 게임에서 다루는 것은 오로지 전쟁과 관련된 부분밖에 없지만 (좀 더 복잡한 외교적 문제와 자원갈등 그리고 정치적갈등은 아무래도 축소되거나 생략되어 있습니다.) 게임 내내 그런 것들을 신경 쓸 겨를이 없는 연합국 또는 추축국의 사령관으로써 고민하는 즐거움이 있었고, 한 턴에 소요되는 1시간 이상의 시간은 어떻게 보면 다운타임인데도 불고하고, 팀원과의 토론과 테마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전략에 대한 고민으로 단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밤을 새고 플레이하러 갔는데도 정말 초 집중 상태였어요. 테마적 경험은 거의 완벽하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거꾸로 말하면 테마에 관심이 거의 없다면 이 게임은 10시간짜리 지옥일 수도 있어요.
룰의 완성도 역시 나쁘지 않은데, 각 국가가 프로그래밍해서 행동을 실행한다는 점은 턴제 게임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전쟁을 잘 묘사한 것 같았습니다. 또한 프로그래밍을 실행하는 순서로 석유를 비딩하게 되는데 이러한 점은 자원을 많이 투자해 기동성을 확보한다 라는 테마로 와닿기도 했고요. 테마와 룰이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역사를 재현한 게임들이 가지는 장점중에 하나인 "만약에 이랬더라면..." 을 체험해 보기도 좋습니다. 다만 왜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알고 있는 역사를 수정하려고 해도 잘 안되더군요. 게임 플레이 중에 자연스레 알고 있던 지식들이 떠오르면서 "아 이래봤자 미국에게 일본은 질 수 밖에 없구나." "결국 소련과의 전선에서 잃는게 더 많은건 독일이구나." 라는 것들을 체감하기도 했습니다.
2. 심리전
플레이어들은 토론을 통해 행동을 결정합니다. 상대 국가가 어떤 행동을 할지도 모르고 그 행동이 언제 일어날지 역시 비공개 비딩으로 순서가 결정됩니다. 미국이 태평양 함대를 일본 본토로 진격시킬지, 오스트레일리아로 진격지실지 일본 플레이어는 끊임 없이 고민해야하며, 그 행동을 막기 위해 일본으로 모든 합대를 집결시킬지 아니면 높은 비딩으로 선제공격을 해야할지도 고민해야 합니다. 극단적으로 정보가 제한되어 있는 와중 토론하고 있는 동맹국은 저 지구 반대편 유럽에 있습니다. 도우러 가는 길도 도움을 받을 길도 멀고 험난합니다.
진짜 워룸에서 전략을 구상하고 있는 사령관들처럼 극한으로 몰린 심리상태와 심리전은 테마 몰입도를 올려주는 한편, 다른 게임과는 다른 훨 씬 더 다각적인 심리전 구도를 제공합니다. 그도 그럴게 게임이 다루는 것은 전 세계고 전선은 한 방향이 아니라 모든 곳이니까요.
일본만 해도 신경쓸 곳이... 버마전선, 중국, 소련의 극동, 태평양, 오스트레일리아, 태국 앞바다 등 한두곳이 아니네요.
(그와중에 독일과 이탈리아는 더 복잡한 전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감상 - 단점
1. 시간
워 룸의 플레이타임은 터무니없이 깁니다. 오전 10시 30분에 시작된 게임은 오후 8시 30분까지 이어졌고, 그마저도 게임을 종료하지 못한 채로 각자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어 종료된 게임이었습니다. 총 플레이한 턴은 5턴이었습니다. 단순하게 나누면 2시간당 1턴이었지만, 실제로는 마지막 턴에 다들 돌아가야할 시간이 되어 다른 턴에 비해 매우 빠르게 플레이한 결과입니다. 아무리 게임이 즐겁더라도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다면 쉽게 플레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실제로 게임의 주인인 친구도 이번 세션이 첫 게임이라고 했고요. 그리고 지치기도 굉장히 지치게 됩니다.
또한 위에서 시간에 비해 지루하지 않다고 서술해 놓은 것이 있는데, 물론 거짓말은 아닙니다만은 토론과 계획 과정은 매우매우 즐겁지만 결과를 확인하는 판정 과정은 지루하진 않아도 좀 따분한 감이 없지 않습니다. 주사위 수십개를 굴려가며 판정하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고, 주사위에 갈리는 희비는 매우 소중하지만 그것에 걸리는 시간이 터무니 없이 깁니다. 취향을 좀 타겠지만, 테마에 대한 몰입이 훨씬 중요하다면, 어플리케이션등으로 빠르게 해결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감상 - 취향
1. 언밸런스
한 판 밖에 플레이 하지 않아 밸런스를 말하기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전원이 추축국이 불리하다에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이 부분은 좀 더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실제로 추축국이 진 역사를 게임으로 구현해 놓은 것이니 어느정도 불리해야 하는 것이 맞지 않나 생각을 해 봅니다. 어디까지나 워게임은 전쟁의 재구현이니까요. 미국의 압도적인 생산력이 어디 가는 것 아니고, 이탈리아의 삽질이 게임에서는 달리 작용하지 않습니다. 게임 내에 원자폭탄이 없는 정도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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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즐겁게 플레이했지만 뭔가 2020년 새해에 다시 할 수 있을거란 확신이 전혀 안서는 게임입니다.
그래도 아마 한국에서 100분도 못 해보셨을 것 같은 귀한 게임과 함께 마무리 하게 되어 뿌듯하네요. 좀 이상한 말이지만요.
워게임 매니아분들께는 강력 추천드립니다. 어마어마한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는 게임이에요. 만약 2차 대전에 대한 공부를 하셨던 분이라면 특히 중기 2차 대전에 대해 지식이 있으시다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하실겁니다. 시간의 제약이 없으시다면 그 때 그들처럼 낮밤없이 플레이 해보시길 바라요.
신년입니다. 2019년 여러분들의 한해가 인생에서 가장 의미있는 한 해 이셨길 바라면서, 새해는 올해보다 더욱 의미있고 행복한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