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의 지적재산권에 관해 (2) 도덕적 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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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7 14:54

(줄 바꿈을 하니 PC에서는 깔끔한데, 모바일로는 오히려 읽기 불편하더군요. 그래서 이번에는 끊지 않고 이어서 썼습니다.)

지난 번에 법 얘기를 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합법이냐, 위법이냐"가 아니라 그래서 이것이 "옳은가, 그른가" 그리고 이것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일 것입니다. 법은 이런 판단을 위한 하나의 근거가 되어야지 그 자체가 판단을 결정해서는 안 됩니다.

"악법도 법이다"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겠지만 위법성 여부와 도덕적인 옳고 그름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불법이지만 옳고, 합법이지만 그른 행위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글을 어떻게 쓸지 고민하다가 제 입장을 밝히는 것은 특별히 도움될 것이 없고 불필요한 논란을 부추길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이번에도 역시 다른 분들의 판단과 토론에 최대한 도움이 될 방법을 찾아봤습니다.

도덕적 판단의 근거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개인은 이런 근거들을 토대로 자신의 윤리관에 따라 결론을 내릴 것입니다. 물론 똑같은 행위에 대해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처럼 일관적이지 않은 잣대를 들이미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에 대해서는 굳이 논할 가치가 없겠죠.

윤리관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합법인 것은 해도 되고, 불법인 것은 하면 안 된다." (형식적 법치주의)

"정직, 겸손, 친절, 용기 같은 선한 덕목을 추구해야 한다." (덕 윤리론)

"각자가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윤리적 이기주의)

"사회 전체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행동해야 한다." (공리주의)

"최소 수혜자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행동해야 한다." (계약주의)

"거룩하신 신의 뜻(자연의 섭리)을 따라야 한다." (신명령론/자연법론)

이중 어느 하나의 기준에 따라 윤리적 판단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고, 대부분 여러 판단 기준을 조합하여 윤리관을 형성할 것입니다. 아무튼 어떤 윤리관을 채택할지는 절대적인 답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각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있는 사항을 정리해봤습니다.

1. 위법성과 처벌 가능성

위법성에 대해서는 지난 번 글을 참고해주세요. 하지만 위법성과 처벌 가능성, 형벌의 정도는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상황에 따라 많이 변할 수 있기 때문에 단정 짓기 어렵지만, 대체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2) 테마 요소가 없는 (부분)한글화 자료의 배포는 처벌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3) 완전한 리테마의 무상 배포도 처벌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판매를 하게 되면 (특히 게임 규칙에 특허가 있는 경우)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4) 핸드메이드가 가능한 스캔본, 이미지 등이 포함된 (전체)한글화 자료의 배포는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공개하지 않고 메일로 배포하거나, 정품 인증 절차를 거치면 위험을 줄이고, 문제가 되더라도 참작해서 가볍게 넘어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5) 핸드메이드/복제품의 배포는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작비만 받아 이윤을 남기지 않거나, 대가를 아예 받지 않아도 그렇습니다. 판매해서 이윤을 남기는 것은 처벌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런 것을 해적판이라고 하죠.

결론은 "팔지만 않으면 웬만하면 괜찮다"입니다. 다만, 처벌 가능성이 희박해도 (심지어 합법적인 행위라도!) 작정하고 문제 삼으면 경찰 조사, 고소/기소, 민/형사 재판까지 매우 피곤한 상황을 겪게 될 수 있습니다.

2. 사용자/공유자/커뮤니티에 미치는 영향

사용자 입장에서는 핸드메이드든, 리테마든, 한글화든 누군가에게는 무척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자료 공유가 많아지면 커뮤니티도 활성화될 것입니다. 공유자 입장에서는 뿌듯합니다. (농담이 아니고 실제로 매우 중요한 동기입니다.)

판매할 경우 금전적인 이득이 생깁니다. 제작비만 받아 이윤을 남기지 않을 경우 어쩌면 사람마다 다르게 볼 여지도 있겠네요. 누구는 돈 주고 샀는데 누구는 공짜로 하면 형평성 차원에서 커뮤니티 내 분쟁이 야기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업계 입장에서도 리테마, 한글화 자료가 사람들이 게임에 더 관심 갖게 해서 유명도를 높이고 매출을 촉진할 수 있습니다. 한글화 자료가 없으면 외국어판을 아예 사지 않을 사람도 많습니다. 특히 룰북은 하드코어 게이머일수록 구매를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칩니다. 리테마는 새로운 게임의 모티프가 될 때도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이런 자료가 핸드메이드에 활용되어 매출을 저해할 수 있습니다. 정식 라이센스판 수입 혹은 한국어판 제작 계약 체결에 방해가 될 수도 있고요. 특히 핸드메이드/복제품의 배포와 판매는 업계에 직접적인 피해를 줍니다.

경우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돈 주고 사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쪽도 있고, "만들든 배포하든 알아서 하라"는 쪽도 있을 테니까요. (이렇게 이용권이 열린 게임 혹은 판본을 PnP라고 부르죠.) 물론 디자이너는 원하지 않지만 제작사의 입장에 따라 막는 경우도 많습니다. 어쨌든 확인하는 방법은 직접 물어보는 수밖에 없겠네요.

5. 신의 뜻과 자연의 섭리

이 부분은 제가 문외한이라 뭐라 말할 수가 없군요. 역시 직접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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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이야기는 아니고 그동안 논의된 것을 정리한 것에 가깝습니다. 위의 내용도 제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된 것이기에 누군가는 동의하지 않을 수 있고,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항도 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의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모쪼록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