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톡스(Boardgame Talks) 토론에 참가하고 왔습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습니까?”
이 말이 이번 주만큼 “보톡스”에 와 닿은 적이 있었을까요?
저는 이번 주 토요일인 어제 보톡스 토론에 참석하고 온 타이밍입니다.
적지 않은 분들이 이번 토론에 참석 또는 방청을 원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운 좋게도(몇 주전 방송이 재미없다고 신랄하게 댓글을 남겼음에도) 이번 토론 참석자의 한 사람으로 당첨되어 토론에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토론은 몇몇 분들의 우려와 걱정을 무색하게 할 만큼 잘 진행되었습니다. 솔직히 개인적으로 無 편집본을 올려주셨으면 할 만큼 토론은 뜨거웠고, 활발했으며 보톡스 팬 분들이라면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112화를 꼭 시청하시길 권해드립니다.
아래 글은 보드라이프의 회원으로써 이번 사건을 지켜본 한 명의 관찰자이자, 이번 토론에 직접 참가한 참석자로써 느낀 저의 개인적인 생각과
소회입니다.
1. 토론 사회자의 중립성과 의제설정 프레임의 문제점
몇몇 분들이 지적하셨던 토론의 중립성을 위한 제3의 사회자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회자의 역할은 극히 제한되었고, 그마저도 대 부분 주어진 텍스트를 읽는 수준에 불과하였습니다. (하지만 무척 잘 읽으셨습니다. ^-^) 또 설정된 의제가 가져올 프레임의 문제점 또한 걱정을 무색할 만큼 발생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참석자 분들은 의제가 갖는 단어의 모호성과 부적절함이 있을 경우 기탄없이 말씀해줬고, 심지어 의제에서 다소 벗어난 질문과 그에 따른 토론도 매우 자연스럽고 활발하게 진행되었습니다.
2. 토론의 참가자들
너무나 당연하지만, “역시 우리들이 맞았어” 따위의 친목은 있을 수도 없었고, 그럴 수도 없었습니다. 많은 부분에서 참가자들은 서로의 의견에 공감을 하였지만, 그 만큼 많은 부분에서 서로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상대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성인(Saint)들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상대의 의견을 경청할 수 있는 성인(grown-up)들이었습니다.
3. 민주주의와 댓글
게시판과 댓글에서 “이 딴 사건에 민주주의를 들먹일 필요가 있냐” 혹은 “이런 커뮤니티는 민주주의와 아무 상관 없다”는 식의 글을 몇 개 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민감한 글에 댓글을 달았을 때, 건전한 토론보다는 감정적인 키보드 배틀로 가기 십상이라는 것을 오래 전 몸소 체험했던 탓에 보드라이프의 수 많은 관찰자 중 한 명으로 지내왔지만, 이번 토론에 꼭 참가해 다른 분들의 생각을 듣고 싶었습니다.
토론을 마치고 제가 들은 생각은 “민주주의는 아무데서나 언급하면 안될 만큼 대단한 것도 아니고, 마치 공기처럼 우리를 감싸고 있는 우리와 결코 뗄 수 없는 일상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이것은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어떠한 문제가 발생되었을 때, 돈을 배제하고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다 생각합니다.
4. 불편함 VS 불편함
누군가 자신의 불편한 심경을 말했을 때 우리는 그 불편한 심경을 이해하고 다독여주는 것이 어쩌면 정답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서로 다른 두 사람 혹은 두 집단이 상반된 부분에서 불편함을 동시에 토로할 경우 누군가의 응원과 동조는 다른 한쪽에게는 더 큰 상처와 불편함이 될 수 있기에 많은 보드라이프 회원들이 이 사건을 저와 같은 관찰자(혹은 방관자)의 입장으로 계셨다고 생각됩니다.
실제 토론자 분들은 그 사건으로 최근까지 발생된 여러 불편함에 대해 단순히 좋다, 싫다, 틀렸다, 맞았다 가 아닌 자신만의 생각과 의견이 있었고, 거기에는 미묘한 생각의 차이가 존재하였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가 흔히 애용하는 “흑백논리”와도 굉장히 밀접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의견에 반대하였다고, 당신의 주장이 다 틀렸다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의 의견에 찬성하였다고, 당신의 주장이 다 옮았다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우리는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을 뿐이고, 어쩌면 그 다름은 매우 작을 수도 있습니다.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당연한 “틀렸다가 아니라 다르다” 라는 이 말이 안타깝게도 글로만 소통되는 게시판의 댓글과 대댓글을 통해서는 알면서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 생각됩니다.
5. 나는 이 토론에 왜 참석했는가?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지만 저도 한 때 다른 커뮤니티의 토론게시판에서 반쯤은 재미 삼아 또 반쯤은 나의 가치관에 상반되는 것을 못 이겨 불특정의 네티즌들과 속칭 “키보드 배틀”(키배)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상대의 글에 빈 틈을 찾아 철저히 반박했고, 나의 논리를 도와주는 댓글이 있다면 대댓글로 지원사격을 하는 식으로 상대를 몰아갔습니다.
내 글을 옹호해주고, 나의 상대를 비난하는 댓글이 쌓이는 것을 보면서 스스로 이겼다고 생각했고, 나는 굉장히 논리적이고 토론을 잘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 아니 착각을 하였습니다. 저는 토론의 본질인 생각의 차이와 다름의 인정을 받아들일 생각은 못한 체 그저 상대를 누르기에 급급했었습니다.
아쉽게도, 학교나 회사에서 흔한 말로 계급장 떼고 토론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굉장히 부족합니다. 때문에 머리로는 나의 상식이 타인의 상식이 반드시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실제로는 나의 상식이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상식인 것마냥 타인에게 강요하곤 합니다.
토론의 주제가 민주주의든 뭐든 솔직히 저에게 그런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또 이러한 토론을 하는데 무슨 거창한 이유가 꼭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토론 그까짓 것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저는 에퀴녹스님의 늘지 않는 방송 개그는 정엉말 싫어하지만, 이러한 자리와 기회를 만들어 주신 점은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 흔치 않은 보드게임 방송 하신다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토론이 끝난 후 참석자 분들과 보드게임을 하면서 웃고 떠든 기억까지 정말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참석해주신 여러분 모두 다음 보드게임에서 건승하시길 빌겠습니다. :)
PS1 : “늑대야” 게임 꽤 괜찮은 것 같습니다.
PS2 : 보드게임 만큼은 이긴 사람 말이 왕 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