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플체스] 보드게임 개발일지 (Designer"s note) #01

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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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2-15 오후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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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올린입니다.

드디어 오랜 개발기간을 거쳐 완성된 올린스튜디오의 신작, [미플체스]가 공개되었습니다. 미플체스는 보드게임 미플(Meeple)로 즐기는 미니멀 디자인 체스(Chess)입니다.

그동안 만월화투와 외부 프로젝트에 집중하느라 올린스튜디오 오리지널 신작 발표가 뜸했는데요, 간만에 이렇게 신작으로 인사드리게 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본격적인 런칭을 기념해 수많은 에피소드를 간직한 미플체스 개발일지(Designer's note)를 써보고자 합니다. 개발 기간이 길었던 만큼 이야기할 부분도 많을 것 같습니다.

일단 지금 생각으론 3부작(기획,디자인,제작)으로 연재할 생각이지만 상황에 따라 조금 더 길어지거나 짧아질 수도 있습니다.

부디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미플체스 개발일지(Designer's note) #01

1. 프로젝트의 시작

여러분은 '보드게임' 이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보드판, 카드, 타일, 주사위, 동전, 퍼즐 등등.. 이렇게 보드게임을 상징하는 수많은 컴포넌트들이 있지만 저는 특히 '미플'을 좋아했습니다.

앗, 미플이 뭔지 모르신다구요? '미플(Meeple)'은 2000년에 발매된 보드게임 카르카손(Carcassonne)에서 처음 등장했습니다.

(카르카손 보드게임)

카르카손은 타일놓기 보드게임의 대표주자이며 현재까지 수많은 확장이 출시되며 아직도 그 인기가 사그라들지 않고 있는 유명한 작품입니다.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들은 사람 모양의 목재 게임말인 '미플(Meeple)'을 가지고 게임을 진행하게 됩니다.(미플은 사람 모양의 목재 게임말을 뜻하며 'My'와 'People'의 합성어 입니다.)

타일을 하나 놓고, 미플을 그 위에 올려두며 이 땅이 자신의 영토임을 나타내죠. 카르카손에서 처음 등장한 미플은 그 이후로 발표된 수많은 보드게임 디자인에 영감을 주었고 지금까지 정말 각양각색의 다양한 미플들이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2022년에 발표된 JORAKU DELUXE 병사 미플들)

단순한 사람 모양에서 출발한 미플 디자인은 이제 전쟁을 하는 기마병과 무사부터 동물, 식물, 건물까지 아름답게 표현해내며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런 화려한 미플들은 보드게임을 조금 더 몰입해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요소로 많은 보드게이머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나무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손맛은 덤입니다!)

(목재 버전 카탄(구판) / 플라스틱 버전 카탄(신판))

최근에 제작되는 보드게임들은 플라스틱으로 성형한 피규어를 이용해 더욱 디테일한 표현을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지만 저는 아날로그 감성이 가득하고 풍부한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는 목재 미플이 왠지 더 정감이 갔습니다. 그래서 저는 카탄도 플라스틱 성형으로 만들어진 최신 버전보단 단순한 목재 컴포넌트가 사용된 옛 버전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아날로그 감성 가득한 목재 미플을 이용한 나만의 보드게임을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차에 우연히 한 드라마를 접하게 됩니다. 그 드라마는 바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퀸즈갬빗(The Queen's Gambit)'입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체스 드라마 '퀸즈갬빗)

'퀸즈갬빗'은 천재 체스기사 베스 하먼이 밑바닥부터 올라와 세계 챔피언에 등극하기까지의 여정을 다룬 본격 체스 드라마입니다. 체스는 어릴적에 많이 두었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는 자주 플레이하진 않았는데 이 드라마를 접하고 나선 매력적인 체스의 세계에 흠뻑 빠져들게 됩니다. 특히 체스의 기물들을 보며 그 아름다운 형태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다 문득 '체스 기물들을 미플로 만들면 어떨까?' 라는 생각에 이르렀고 [미플체스]의 기나긴 여정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이때는 이렇게 오래 개발하게 될줄은 몰랐습니다.. s t a y . . )

2. 체스에 대한 연구

모든 프로젝트는 언제나 해당 테마를 분석하고 연구하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자신이 이미 알고 있다는 고정관념을 벗어나 아예 처음 접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대상을 바라보면 새로운 시각이 열리기 때문이죠.

튤립홀릭을 만들땐 구근식물과 튤립, 네덜란드 튤립버블에 대해 공부했고 스시홀릭을 만들땐 초밥, 그릴홀릭을 만들땐 스테이크, 스윗홀릭을 만들땐 마카롱, 나스카를 만들땐 지상화에 대해 각각 연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재미있는 아이디어나 생각치 못했던 표현 방법 등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이런 연구는 며칠이 걸리기도 몇 달이 걸리기도 합니다.

(다양한 테마 연구로 탄생한 보드게임들)

이제 체스에 대해 공부해 봅니다.

혹시 체스는 서양 장기라는 표현을 들어보셨나요? 체스와 장기는 사실 형제와 같은 게임입니다.

체스의 유래에 대해선 많은 설이 있지만 고대 인도의 보드게임인 'चतुरङ्ग (산스크리트어)Chaturanga(차투랑가)'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차투랑가가 유럽쪽으로 전파되며 체스가 되었고 동양쪽으로 전파되며 장기, 샹치, 쇼기로 각각 발전했다고 합니다.

(동양의 체스, 장기(將棋))

동양으로 전파된 장기는 병사(卒·兵), 전차(車), 기마병(馬), 코끼리병(象), 대포(包), 신하(士), 궁전(宮)이 등장합니다.

동양에서 주로 보이는 정치, 사회적 맥락에 맞춰서 각 기물들의 종류가 정해진 것처럼 보입니다. 반면 서양으로 전파된 체스는 병사를 상징하는 폰(Pawn), 성채의 탑을 상징하는 룩(Rook), 기마병을 상징하는 나이트(Knight), 신관을 상징하는 비숍(Bishop), 여왕을 상징하는 퀸(Queen), 왕을 상징하는 킹(King)으로 각각 표현되는 특징을 보입니다. 동양 사회와 서양 사회의 헝태가 다르듯이 해당 세계관의 영향에 따라 각 기물의 형태나 부르는 이름등이 서로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장기와 체스의 차이점은 이 뿐만이 아닙니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보드판에도 차이가 있는데요, 보드판의 선을 따라 플레이하는 장기와 달리 체스는 보드판의 칸을 따라 플레이하는 특징을 보입니다. 선과 칸. 길목과 영토. 고대의 동양인과 서양인의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 공간을 바라보는 인식의 차이를 보드판을 통해 살짝 엿볼 수 있는게 아닐까요?

이제 미플로 만들 가장 중요한 요소인 체스 기물 디자인을 체크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체스의 기물은 6가지 종류입니다.

폰(Pawn)은 체스의 기본 기물입니다. 카르카손의 미플과 비슷하게 사람 형태로 디자인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룩(Rook)은 장기의 차(車)와 완벽하게 같은 행마법으로 움직이는 기물입니다. 형태는 성채의 망루와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나이트(Knight)는 말머리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나이트의 디자인은 체스마다 모두 다르기 때문에 체스의 얼굴이라고도 합니다.

비숍(Bishop)은 주교의 모자에서 형태를 따온 듯 합니다. 사선으로 홈이 파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퀸(Queen)과 킹(King)은 모두 왕관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퀸의 왕관은 머리 부분에 홈이 12개 파여 있고 킹의 왕관은 십자가 형태가 올라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제 기본적인 형태를 파악했으니 시중에 출시된 다양한 체스들의 레퍼런스들을 꼼꼼히 체크하며 각 기물의 특징을 미플의 형태로 단순화시켜보고자 합니다. 체스는 서양에서 주로 즐기기 때문에 영문으로 검색해 검색의 질을 높이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사실 웬만하면 검색은 영어로 하는게 대부분 검색 퀄리티가 좋긴 합니다.)

보드판 연구도 빠트릴 수 없습니다. 기물도 물론 중요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체스의 상징은 보드판의 체크무늬!

너무 뻔한 형태라고 리서치를 소홀히 하면 안됩니다. 더 예쁜 형태로 변형시킬 순 없을지, 보통 체스에서 사용하는 보드판의 사이즈는 얼마인지, 꼼꼼하게 리서치합니다. 이 과정은 생각보다 매우 중요한데요, 왜냐하면 보드판의 크기는 곧 패키지의 크기와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작게 만들 수 있는가 = 얼마나 통관료와 보관료를 적게 낼 수 있는가 = 얼마나 제작 단가를 낮출 수 있는가)

보드판을 살펴보니 외곽에 숫자가 쓰여 있는게 보입니다. 이 숫자는 바로 보드판의 좌표값 입니다. 체스와 같은 게임은 중계나 공부를 위해 기보를 작성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따라서 보드판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 수 있도록 좌표값이 존재합니다. 가로 8칸, 세로 8칸, 총 64칸으로 이루어진 체스 보드판은 오른쪽 하단에 흰색 칸(squre)이 오도록 배치해야 합니다. 이렇게 평소에 알고 있던 지식들도 제품화 하려면 꼼꼼하게 이중, 삼중으로 체크하는 버릇을 들여 놓는게 좋습니다. 보드게임은 출시 이후엔 패치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체스의 규칙 설명서도 작성해야 하기 때문에 자세한 용어나 규칙들도 꼼꼼하게 공부합니다. 또 체스를 더 쉽게 알려줄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기존 규칙 설명을 더 쉽게 풀어 쓸 수는 없는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당장 매뉴얼을 만들지는 않아도 우선 메모장에 텍스트로라도 체스 규칙을 정리해 놓기로 합니다.

어느 정도 체스에 대한 이해가 끝났다면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3. 제품 기획

앞선 연구로 알게된 체스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어떤 제품을 만들면 좋을지 본격적으로 기획합니다. 결국 보드게임도 하나의 제품이며 제품 기획은 판매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충분한 시간을 들여 전략을 세웁니다. 이 때, 제품을 구매할만한 타겟에 대한 분석, 제품의 판매 가격, 제품의 유통 채널 선택, 제품명 결정, 디자인 컨셉 등을 결정합니다. 굉장히 지루하고 힘든 과정이며 몇 번이나 포기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바로 이 부분이기도 합니다.

미플체스의 본질을 정의해봅니다. 미플체스는 미플(Meeple)로 이루어진 기물을 이용해 즐기는 체스(Chess)라는 정체성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보드게임 미플들은 손가락보다 작으며 엄지 손톱만한 크기도 많습니다. 평균적인 체스 기물보다 더 작게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됩니다. 작은 체스 기물로 즐기는 체스. 이 부분을 정리해 '작고 귀여운 디자인 체스' 라는 키워드를 도출합니다. 과연 이런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층이 있을까요? 체스의 전통은 엄격해 급진적인 변화에 거부감을 느끼지는 않을까요? 미니멀 디자인 체스에 대해 가능성이 있는지 찾아봅니다.

(Minimal chess - Google 검색)

구글 검색 결과 정말 많은 미니멀 체스가 존재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상품군이 이렇게 많다는 건 그만큼 수요가 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지난 만월화투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이미 집에 화투가 있더라도 더욱 예쁘고 가지고 싶은 화투를 제작하면 충분히 팔린다는 소중한 경험을 얻었고 더욱 예쁘고 귀여운 체스를 시장에 출시하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수도 있겠다는 가설을 세웁니다. (물론 이 가설은 틀릴수도 있지만 도전해볼만한 가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품의 판매가는 러프하게 잡아놓고 추후 디자인이 어느 정도 완성된 상태에서 확정하기로 합니다. 디자인이 별로라면 단 돈 만원에 팔아도 사람들은 사지 않을 것이며 디자인이 충분히 잘 나왔다면 100만원에 팔아도 팔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중에 많이 판매되는 체스 가격을 조사해보니 저렴하게는 8천원부터 비싸게는 3~4만원 정도로 판매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미플체스의 판매가는 러프하게 약 2만원 정도를 목표로 잡아 놓습니다.

제품의 첫 런칭은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을 이용하기로 합니다. 크라우드 펀딩이란, 자금을 모으기 위해 프로젝트를 인터넷에 공개하고 목표 금액과 모금 기간을 정하여 익명의 다수(crowd)로부터 투자를 받는 사업 자금 조달 방법을 말합니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제품을 런칭하면 제품의 수요를 미리 파악할 수 있고(최소 주문 수량의 조정으로 단가 절감 및 재고 조절 가능) 자금을 먼저 모으고 제품을 제작할 수 있기 때문에 사업 리스크를 줄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는 해외엔 킥스타터와 인디고고가 있으며 국내에선 와디즈와 텀블벅을 꼽을 수 있습니다.

와디즈에서 런칭할 것인가 vs 텀블벅에서 런칭할 것인가?

미플체스는 어떤 플랫폼에서 런칭하는게 좋을까요? 절대적이진 않지만 와디즈와 텀블벅의 이용자들은 성향이 조금 다르다는게 중론입니다. 보통 와디즈는 생활 제품이나 화장품, 전자기기에 대한 수요가 높고 텀블벅은 마이너한 감성의 프로젝트, 디자인 프로젝트에 대한 수요가 높다고 합니다. 창작 보드게임의 대부분이 텀블벅에서 런칭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러한 성향을 반증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오랜 고민 끝에 미플체스의 런칭은 만월화투를 성공적으로 펀딩했던 와디즈를 선택하기로 합니다. 미플체스는 보드게임이라고 하기엔 화투, 장기, 바둑과 같이 전통놀이에 가깝다고 보여지고 따라서 화투 프로젝트들의 평균 성공 금액이 조금 더 높았던 와디즈의 유저 성향이 미플체스와 같은 프로젝트와 더 잘 맞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크라우드 펀딩을 준비하며 알아야 할 점, 주의할 점 등을 정리해 포스팅 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기획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되었다면 이제 본격적인 디자인 개발에 착수합니다.

다음 미플체스 제작일지#02 에선 디자인 개발 과정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부디 귀차니즘의 압박을 딛고 끝까지 포스팅을 마무리할 수 있길 바라며..

긴 글 읽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귀여운 미니멀 디자인 체스, 미플체스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미플체스 펀딩이 궁금하다면? - 펀딩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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