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드게임의 세계로 안내한 작품 둘.
얼핏 생각해보니 보드게임 취미를 갖게 된지 10년이 넘은 것 같습니다. 훨씬 이전부터 즐겼던 분들도 있겠지만, 초기에 제가 보드게임 세계에 발을 들여놓을 때만 해도 상당히 마이너한 취미였고, 소수의 몇몇 사람들에 의해 자료와 후기들이 공유되었던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후로 점점 보드게임의 신작의 발매속도가 매년 빨라지고, 이전보다 게임시스템의 혁신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케일러스로 대변되는 일꾼놓기와 덱빌딩으로 대변되는 도미니언도 입문한지 얼마지나지 않아 나오면서 새로운 게임플레이에 열광하고 그랬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매년 기발한 게임들이 수시로 등장하고, 이러한 메커니즘의 엑기스를 결합한 여러게임들도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조만간 긱 등록 보드게임은 10만개를 넘을 것 같구요.
여기 있는 많은 분들도 보드게임의 세계로 안내한 입문작이 있을 겁니다. 또 대부분은 그러한 입문작들의 effect가 상당히 매혹적이었기에 이러한 취미에 빠지게 되었을 거구요. 문득 위의 사진을 긱에서 보면서 저를 보드게임 세상으로 안내한 게임들을 살짝 언급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입문 당시 사실 무료함을 달랠 수 있는 모임이 있을까 하고 인터넷을 뒤져보다가 마침 강남에 보드게임 모임이 있다는 것을 알아내고, 대학 때 우후죽순 생겼던 보드게임방의 할리갈리와 젠가, 버켓킹, 핏등의 시끌벅적한 즐거움의 기억이 있었기에 참석을 했었죠.
근데 이 모임이 제 취미를 완전히 바꿔놓은 계기가 되었죠. 로보 77과 할리갈리를 생각하고 갔던 저에게 모임장이 처음 들이밀었던 게임은 뇌 변연계 깊숙한 곳 잠자고 있던 저의 쾌감에 대한 신경세포를 자극하고야 말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파워그리드!
이렇게 재밌는 게임이 다 있을까 할정도로 그날 푹 빠져버려서 다음날 바로 다다에서 한글판으로 팔고 있길래 바로 구매를 했다죠. 당시 한글판이 나올정도면 어느정도 게임성이 보장된다는 이야기이기도 했죠. 부루마불과 졸리게임이 전부였던 보드게임 세상에 파워그리드의 임팩트는 강렬했습니다.
그날 5인플로 채워서 돌렸으니 경매게임의 참맛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느꼈습니다. 경매도 있고, 경제도 있고, 수싸움도 모두 갖췄던 이 게임은 당시에 사서 친척, 지인들 모임등 틈만 나면 돌려보려고 노력했습니다.
파워그리드는 발전소 경매와 자원 획득의 두가지 핵심의 눈치싸움을 얼마나 잘하느냐가 관건인데 이를 위해서는 결국 돈이 필요합니다. 또 이 돈은 자신이 획득한 발전소를 획득한 자원으로 돌려서 벌어야 되죠. 결국 돈과 자원의 순환속에서 발전소 업그레이드를 통하여 점점 전기 보급을 늘리고, 더 많은 돈을 벌어 우승에 다가가는 게임입니다. 프리드만 프리제의 최고의 역작이 아닐까 합니다.
암튼 이 게임 때문에 갑자기 보드게임에 급관심을 갖게 되고, 보드게임방에 가서는 그동안 지나쳤던 난이도 상의 게임들을 하나씩 접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보드게임 콜렉팅을 가속화 시키는 게임이 등장하죠. 바로
샤를 마뉴 대제!
저에게는 아직도 영향력 게임의 최고봉인 게임입니다. 플레이어는 샤를 마뉴를 맞이하는 한 영주가 되는데, 샤를 마뉴를 맞이할 때 나의 영향력이 가장 커야 샤를 마뉴의 후광을 입게되고, 영토의 영향력을 넓혀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영토를 병합 확장하여 자신의 기사단으로 무장하여 영토를 공고히 하여 우승을 일궈가는 게임이죠.
처음 설명을 들을 때 영향력 게임을 처음 접해본지라 무슨 이야기인지 감이 잡히지를 않았는데 당시 알바생이 극친절하게 플레이 중간중간 계속 설명해주면서 감을 잡았던 게임이고, 내리 2~3판을 했던것 같네요.
참 단순한 룰이고, 주사위를 통한 랜덤성과 운이 꽤 작용하는 게임인데 이를 통한 수싸움이 오묘하게 재미있습니다. 보드게임 접한 그날로 바로 주문을 해서 남정네 셋이 엄청나게 불타오르면서 했던 기억이 납니다. 2~3인플 및 4인 팀플(2:2)전이 가능한 게임입니다.
각 플레이어는 5가지의 특색있는 용병(기사단)을 주사위를 통하여 3명씩 보급받게 되는 데 이 배치 방법이 기가막힌 게임이죠. 기사를 영토에 놓을 수도 있고, 자신의 각각의 기사단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시키는(지배하는) 자신의 개인판에 배치할 수도 있습니다.
이 두가지의 밸런스를 잘 맞춰야하는데요. 영토에만 놓으면 기사들이 쉽게 배신하고 남좋은 일만 시킬 가능성이 높고, 자신의 영향력 강화에만 신경쓰면, 막상 영토를 점령하는 기사들의 힘이 약해져 영토자체를 점령을 못하는 경우도 생기죠.
따라서 이 둘을 적절히 배분해서 놓아야 하는데 문제는 주사위가 내가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래서 승리를 눈앞에서 놓치거나 심지어는 내가 한 행동이 다음사람의 주사위에 의해 남 좋은일 해주는 경우도 빈번합니다. 근데 또 이게 재미포인트입니다. 너무 전략적이면 중반이후에는 역전의 가능성이 없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게임은 마지막 승리전까지 자신의 손이나 남의 주사위 던지는 손을 향해 기도하고, 손에 땀을 쥐게하는 경우가 꽤 됩니다.
가끔은 말도 안되게 한가지 색이 너무 잘나와서 나의 충신이 되는 용병단이 영토 전역을 들끓게 만들어 샤를마뉴 대제의 귀에 그 소식이 전파되기도 하죠. 특히 샤를마뉴 대제의 행차 때 자신의 영향력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는 선을 제대로 잡아야하기 때문에 이 선싸움도 꽤 치열합니다. 요즘 절판되서 구하기 힘든 게임중에 하나인데 주위에 접할 기회가 있으면 꼭 한번 해보십시오. 영향력 게임은 남자끼리 할 때 가장 불타오르는 것 같습니다. 남을 밟아야 내가 사는 그런 게임이거든요.
둘 다 해본지 오래되었는데 써보고 나니 조만간 다시 돌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제 여러분의 입문작을 말할 차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