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사후, 후계자 쟁탈전
지난 주, "후계자들"을 드디어 플레이할 수 있었습니다. 상대는 산본 "노는 사람들" 모임의 종광님. 사실 종광님과 연락이 닿은 것은 몇 개월 전, 제가 보라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무거운 에픽 게임 상대를 찾는 글을 올렸을 때였는데요. 그 동안 오직 "글룸헤이븐"만 함께 하다가 드디어 짬을 내어 에픽 게임을 하게 되었네요.
이 게임은 알렉산더 사후 그가 남긴 대제국의 후계자가 되기 위해 벌이는 장군들의 충돌을 다룹니다. 익숙한 이름인 마크 시모나치 옹과 리차드 보그님이 디자인한 했다네요. 두 거장의 게임답게 테마를 굉장히 잘 구현하고 있는데 몇 가지 예를 들어볼게요.
(게임의 무대가 되는 지도, 그리스 지역과, 이집트 북부 일부, 중동 지역을 다룬다.)
일단 플레이어들은 총 8명의 주요 장군 중 일부를 받고 시작합니다. 일종의 파벌인 셈이죠. 그리고 게임 첫 시작할 때 플레이어의 지위는 "정당한 왕위 계승자(heir)의 수호자(champion)"입니다. 즉, 대놓고 내가 후계자야 하고 나서지 못하고 있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플레이어들끼리 전투를 제한시킵니다. 만약 누군가를 공격하면 그 사람은 그 때부터 수호자 자격을 잃고, 정통성 3점 잃습니다.
이 정통성 점수는 승점과 더불어 주요한 승리 조건 중 하나 입니다. 말 그대로 왕위 계승의 정통성을 얼마나 확보했는가의 척도입니다. 왕족(클레오파트라, 테살로니카)와 결혼하거나 왕위 계승권이 있는 남성 왕족을 확보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올릴 수 있습니다.
워 게임인데 전투를 너무 제한시키는 거 아니냐구요? 전투를 유도하기 위해 찬탈자 지정 단계가 있습니다. 매 턴 시작 시 승점 1위는 찬탈자로 지정됩니다. 너무 세력이 커서 너 딴 맘 품은 거 아니냐고 모는 거죠. 이 찬탈자에 대해서는 자유롭게 공격할 수 있습니다.
(찬탈자 카드, 이 사람에 대한 공격엔 아무 페널티가 없다.)
종광님과 저는 2인플로 4명의 장군씩을 나눠 갖고 플레이를 시작했습니다. 대체로 동쪽엔 저의 세력에 서쪽엔 종광님의 세력이 분포가 되었는데, 하필 가장 서쪽의 마케도니아 지방에 저의 장군 하나만 뚝 떨어져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저기 장군이 있는 지방이 마케도니아 입니다. 사진은 긱에서 퍼왔습니다.)
게임 초반 제가 어버버하는 동안 종광님의 장군이 급습하여 순식간에 마케도니아를 잃게되었습니다. 거기다 그곳에 있던 알렉산더 대왕의 누이, 테살로니카와의 결혼 이벤트 발동시켜 챔피언 지위 상실로 인한 정통성 하락을 매꾸셨죠. 이와 동시에 6점짜리 알짜배기 땅인 이집트에서 시작하는 장군인 프톨레마이오스를 북진시켜 지금의 이스라엘 쪽을 다 점령하게 되었습니다.
그후 주요 장군들을 서서히 동진, 저도 코끼리 부대를 포함한 가장 강력한 부대를 이끄는 페르디카스를 필두로 남은 장군들을 모아 중앙 쪽에 자리 잡았습니다. 페르디카스로는 마케도니아 쪽 장군들을 견제하고 남은 두 장군으로는 이집트 쪽 프톨레마이오스를 견제하며 서로 눈치보고 있었지요.
(긱에서 퍼온 그림, 이 그림의 중앙의 Phrygia 까지 종광님이 먹은 상태였고 제 군대는 카파토키아, 시리아로 나뉘어 있었음)
이 게임에는 "차단"이라는 특수한 방어 행동이 있습니다. 이는 적의 군대가 제 군대 인접 칸으로 이동할 때 차단을 시도하여 전투를 걸 수 있는 룰인데, 이 규칙에 익숙하지 못했던 종광님이 쉽게 이동하시다가 제 코끼리 부대와 근위병으로 무장한 페르디카스 군단에 차단당해 패했고 다시 흐름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하필 그 장군이 테살로니카와 결혼했던 장군이었고, 저는 이 승리로 강제 이혼까지 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 흐름을 잡고 Phrygia의 주도의 공성을 성공하여 Phrygia를 점령할 수 있었습니다.
(Phrygia 재탈환을 위해 군대를 모으시는 종광님(빨강), 저 위에 이집트 공략 중인 저의 장군들)
종광님은 이 페르디카스를 잡기 위해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까지 유럽쪽으로 빼서 한타 병력을 모으셨고 저도 모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냥 이집트를 먹기 위해 분산을 했는데 이것이 치명적이었습니다. 이집트까지 먹는 데는 성공했지만 페르디카스는 중앙에서 버티지 못하고 결국 패배했습니다. 페르디카스가 운반 중이던 알렉산더의 관은 마케도니아의 지방까지 가져가 정식으로 매장하면 무려 10 점의 정통성 점수를 주기에 적들에게 빼앗기기 전 이곳에 매장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사실 상 여기서 승부가 기울었죠.
(바빌론에서 등장한 셀레우코스)
설상가상 게임 중에 랜덤으로 뽑히는 셀레우코스가 종광님 손으로 가게되었는데 이 장군이 하필 저의 본거지인 바빌론에서 등장하는 승세가 급격히 기울어졌고, 거기다 두 번째 랜덤 장군인 에우메네스까지 종광님 손에 들어가 유린당하다, 메소포타미아에서의 전투를 마지막으로 서렌을 날렸습니다.
(이 전투에서의 패배를 끝으로 항복을 선언했습니다.)
게임 소감을 조금 적어보면 일단 테마가 매우 정교하게 작동합니다. 테마가 정교하다는 것은 그만큼 잔룰이 많다는 것기도 하죠. 이에 대해 잘 숙지하고 상대에게 쉽게 설명해줄 수 있다면 게임 플레이는 빠르고 쾌적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복잡도가 5인데 진행이 쉬운 편인 황투가 4였던 것과 생각해보면 대략적인 난이도를 상상해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잔룰은 황투보다 상당히 많습니다. 황투도 어려운데 하시는 분들도 계실텐데 독학은 몰라도 룰마에게 배운다면 상당히 쉽게 플레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절대로 이길 수는 없을 겁니다.) 이 게임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또하나의 장점은 팀플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공식적인 룰은 아닙니다만, 4인룰로 장군을 배분하고, 승점과 정통성을 팀끼리 합산하여 2인 조건으로 가져가면 그리 어렵지 않게 팀플을 즐길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게임 중에 팀플이 가능한 것이 상당히 드물기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게임성에 대해 애기해보자면 아주 정교하게 짜여진 게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4인까지 가능한 인터액션이 강한 게임이므로 정교함은 이 정도면 되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런 게임은 정교함보다는 하나 하나 강력한 카드를 사용하고 또 뭐가 나올지 모르는 상대의 카드를 대비하면서 운영해 나가는 것을 즐길 수 있어야 할 겁니다. 이제 첫 판을 하면서 룰을 몸으로 익혔으니 다음 판을 얼른 한 번 더 하고 싶네요. 언제 할 수 있을 지 모르겠네요ㅜ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