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보드게이머와의 모임시 멘탈유지 요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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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3-12 오전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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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올라오는 보드게임 모임을 볼 때마다 부럽기도 하고 가 보고 싶기도 하고 나도 저런 모임을 키우고 싶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비보드게이머와의 모임만을 이끌고 있는 어려움 및 나름의 대처법을 이야기 해 보고자 합니다.

여기서 비보드게이머 모임이라 하면, 보드게이머들이 보드게임을 목적으로 모인 모임이 아닌,

다른 여러 이유로, 주로 친목이겠죠, 모이는 모임에 보드게임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명절에 친척들이 모인 자리도 이에 해당 되겠네요.

많은 분들이 겪어 보셨겠지만, 이런 경우 많은 어려움이 있죠.

룰 설명하느라 목 아픈 건 둘째치고,

게임에 집중 안 하고, 난 안 하겠다고 빠지고, 열심히 준비해 간 게임 하나도 못 하기도 하고,

여러가지로 멘탈붕괴 위험요소가 많습니다. 지치고 화 날 때도 많죠.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싶을 때도 있고요.

지금은 많은 시행착오 끝에 저만의 관리요령을 습득한 것 같습니다.

이 기회에 다른 분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듣고 싶기도 하네요.

1. 가능성 없는 모임은 진작 포기하자.

제 첫번째 규칙입니다.

이 무리들과는 게임을 안 하는게 정신건강에 차라리 낫겠다 싶은 모임이 있습니다.

모인 사람의 인격이나 교양 문제가 아니라, 그냥 보드게임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다고나 할까요?

(1) 모여서 수다 떠는게 즐거운 모임 : 이런 모임은 서로 친하고 즐거워서 모이면 먹고 떠들고 놀기에 정신 없습니다.

저만 게임은 언제 시작하나 시간만 확인하게 되고, 보드게임 이미지 나빠질까바 먼저 나서서 하자고도 못하고,

그러다 보면 이야기에는 집중 못하고 초조해져만 가다가 급기야는 화가 나고

간혹 모여있는 사람들이 싫어지기도 합니다.

(2) "일단 가져와봐" 타입: 보드게임을 재미있어는 하지만 이게 주된 놀이는 아닌 사람들입니다.

이외에도 놀게 많은데 그 중에 하나로 보드게임도 우선 준비해 보자, 이런 마인드죠.

아시다시피 그런 마인드로는 제대로된 게임 하기 힘듭니다.

(3) "같이 해 드릴게요" 타입: 저리 가라고 하고 싶군요.

이런 가능성 없는 모임은 애진작에 포기하고 그냥 그 모임에 맞춰 노는 게 나은것 같습니다.

그 모임 성격이 안 맞으면 그냥 안 가면 되고요.

사람들 모이는 모임이 이것밖에 없으니까 여기라도 붙잡고 게임을 전파하자, 이런 마음으로 고군분투 했었는데, 결국 남는건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한 번은 집들이에 게임을 가져오라 해서 가져갔었는데, 게임 할 분위기가 잡히려는 즈음에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서 못 하게 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제가 삼국지 비밀결사를 하려고 꺼냈던 참이라 이야기 하면서 손이 심심해서 게임박스를 만지작 거렸었죠.

나중에 한 분이 "그 때 게임 너무 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는데 못 해서 어떻해요? 나중에 꼭 같이 해요" 이러더군요.

뭔가 기분이 별로였지만, 거기다 "아니오, 그렇게 하고 싶었던 건 아닌데 그냥 손이 심심해서 들고 있던거 만지작 거린 거에요."

이러기도 뭐해서 냅뒀습니다.

내가 무슨 너무 게임 하고 싶어서 그러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 같아서 그 모임에선 그 이후로 게임을 하지 않았습니다.

근데 자꾸 모일 때마다 하지도 않을 게임은 가져오라고 하더군요.

오래전 일인데도 쓰면서 기분이 안 좋군요.

애당초 한 두 번 소개해서 반응이 별로다, 취미에 대한 존중이 없다 싶으면 접는게 정신건강에 좋은 것 같습니다.

2. 함께 하는 시간에 충실하자. 얼마나 많은 게임을 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제가 처음 게임을 시작한 건 사람들이 모여서 노는 문화가 너무 없어서

학생들과 어른들에게 건전하고 사람 냄새나는 놀이 문화를 소개해 보자 라는 마음이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게임 자체에도 큰 흥미와 매력을 느끼는 (초보) 보드게이머가 되었지요.

처음 마음이 더 많은 게임을 해야되 라는 생각으로 바뀐건 아마도 보드게임긱에 플레이 횟수를 기록하기 시작한 이후일 듯 합니다.

보유게임을 등록하고 플레이 횟수를 간단한 후기와 함께 기록하는 게 재미있었죠.

그러다가 한 달 기록을 보면, "이번달은 8회 밖에 못했어? 분발해야겠군" 이런 마음이 생기고,

그러다 보니 제가 모임에서 다양한 게임을 빠르게 돌려가며 하기를 강요하고 있더군요.

(저는 한 자리에서 같은 멤버로 여러번 돌린 게임을 다 1회로 기록하기 때문에, 같은 멤버라면 여러 게임을 겉핥기로 맛보는게 많은 횟수로 기록됩니다. )

게임을 진행하는 중에도 다음에는 무슨 게임을 하지를 궁리하느라 집중을 못하게 되고, 다른 사람 플레이에 반응을 못 주게 되더군요.

그러다가 내가 왜 게임을 하나, 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서로 더 친해지고 플레이를 통해 교감하고, 얼굴을 맞대고 시간을 보내기 위해 시작한 게임이, 이제는 게임을 위한 게임이 되어 버린 것이죠.

이 때부터 횟수에 대한 집착을 버리기로 하고, 그래서 1인플 기록을 전부 지웠습니다.

생각해보니 1인플도 재미있게 한 적도 있지만, 횟수를 늘리기 위해 한 적도 있더라고요. 완벽한 주객전도.

한 개의 게임을 하더라고 충실하게 하자, 라는 마음을 먹고 나니, 새로운 게임을 사려는 마음도 많이 줄어들더군요.

지금 있는 게임도 아직 충실히 못해 본 게 많으니까요.

함께 하는 시간에 충실하자는 2번 목표는 아래 3번 4번 으로 연결되게 됩니다.

3. 빠른 레벨업을 기대하지 말자.

네, 그렇죠. 맞습니다.

마음같아선 얼릉 이 사람들이 빌리지 촐킨 아콜 섭렵해서 확장을 외치고,

누군가 카베르나를 사 오고 또 다른 누군가는 아를의 평원을 사 오는 그림,

절대 불가능한 이 그림을 마음속에서 지우는 것 또한 불가능하죠.

파티게임 어느 정도 했으면 이제 전략게임에 관심 좀 가져줬으면 좋겠고,

알아서 게임을 검색해서 궁금해 했으면 좋겠고,

스스로 게임을 사서 가지고 오면 더 좋겠죠.

너무 앞서가지 않기로 했습니다.

1번 같은 유형의 사람들이 아니고 나와 함께 게임을 하는 것을 즐거워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사람들 입니다.

그래서 다음 요령이 파생되어 나왔습니다.

3-1. 했던 게임을 또 하자.

했던 게임을 또 하는 것에 많은 장점이 있습니다.

우선 게임에 대한 거부감이 적고요,

설명을 안 하거나 짧게 기억을 되살려 주기만 하면 되니 내 목도 덜 아픕니다.

설명시간이 줄어드니 게임 집중도도 높아지고요,

한 번 했던 게임이기 때문에 전보다 더 잘 합니다.

새로운 게임을 사지 않아도 되니 돈도 굳는군요.

요새는 이게 진정한 보드게임 레벨업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다양한 게임을 많이 아는 것보다 하나의 게임을 깊이 플레이 하는 것.

카르카손을 처음 할 때는 눕는 게 어떤건지 이해를 잘 못했다면, 다시 할 때는 눕기도 잘 누울 뿐 아니라 남의 성을 나눠먹는 것.

티투알을 처음 할 땐 지명 찾느라 고생했다면, 다시 할 땐 짧은 루트 알박기로 시작하는 것.

원나잇을 처음 할 땐 각자 역할이 뭔지 기억하기에도 힘들어 했는데, 다시 할 때는 기억 못하는 척 블러핑을 하는 것.

이런 레벨업을 기대하며 익숙한 게임을 반복하려 하고 있습니다.

4. 게임을 그냥 던져주는 것은 금물.

아무리 쉬운 게임이어도, 알아서들 하라고 룰 설명만 한 후에 던져주는 것은 위험하더군요.

제가 지금보다 더 초보였을 때 티투알을 알려주고 도미니언을 하러 갔었는데,

티투알 팀이 조금 하다가 재미없어서 게임을 접었던 기억이 납니다.

경험자, 혹은 보드게이머가 같이 플레이 하면서 게임 요령을 보여주고,

플레이에 반응해 주고, 분위기를 맞춰주는 것이 게임의 게임성 자체보다 중요한 것 같습니다.

반대의 경우로, 몇 주 전에 킹스오브이스라엘을 처음 플레이 할 때는 제가 게임 진행을 하고 처음 하는 4명이 플레이 했습니다.

우려와는 달리 게임에 잘 적응하고 서로 어떻게 할지 의논해 가면서 재미있게 플레이 하더군요.

쉬운 게임, 입문 게임이랍시고 설명만 해 놓고 던져준 후에 반응이 별로여서 실망하는 일이 있으면 안 되겠습니다.

아까운 미래의 게이머를 좌절시키는 일이 될 수도 있고, 나는 나대로 지칠 수 있는 상황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또 다음 원칙이 파생됩니다.

4-1. 굳이 팀을 나눌 필요는 없다.

많은 인원 모임에서 제가 했던 실수이고, 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뻔도 했습니다.

보통 인원이 많은 후기를 보면 초반에 파티게임으로 다 같이 게임을 하다가, 두 세 팀으로 나눠서 전략게임을 하다가,

혹시 시간이 남으면 다시 파티게임 혹은 단체게임으로 마무리 하죠.

저도 주로 그런 식으로 짜서 갑니다.

문제는, 가끔 다 같이 모였는데 그냥 다 같이 게임하지 왜 나눠서 하느냐,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게임보다는 친목을 더 중시하는 사람이죠.

저는 제가 생각해 온 흐름도 있고, 더 깊은 게임을 소개시켜 주고 싶은 욕심도 있기 때문에 의견을 관철시켜 나누곤 하는데요,

뭐 그러다가 파티게임을 한 두번 더 하고 나누기도 하고요.

지금은 굳이 나눌 필요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물론 너무 파티게임만 하면 다른 게임으로 전환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전략게임은 소수 인원이 모였을 때 각개격파로 알려기로 하고,

굳이 준비가 안 된 많은 인원을 무리해서 쪼갤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보드게이머 양성보다 내 멘탈 지키는 게 모임을 길게 끌고 가기 위해 더 중요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런 거 다 떠나서, 내 정신건강 해치면서 게임하지는 말자라는 취지의 글이니까요.

지금 가지고 있는 원칙은, 팀을 쪼갠다면 내가 속하지 않은 팀은 대부분의 팀원이 이미 해 본적이 있는 게임으로 하기, 입니다.

그러면 그 팀은 나름의 게임을 즐기고, 제가 속한 팀에는 새로운 게임을 소개할 수 있겠죠.

하지만, 꼭 팀을 나눠서 하는 것을 무리해서 밀고 나가지는 않아야 겠다는 생각입니다.

비보드게이머 모임을 힘겹게 이끌고 있는 모든 분들, 지치지 말고 천천히 즐겁게 게임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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