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와 싸우지 않는다’가 대세가 된다면 보드게이머는 패배할 수밖에 없습니다
#1. 1950년 이후 세계 최강국으로 발돋움한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패배합니다. 패배 원인으로 많은 사항들이 지목됐지만 그 중 하나는 당시 적이었던 북 베트남으로 지상군 진입을 금지한 조치였습니다. 미군이 북베트남을 직접 공격하면 소련이나 중국이 참전해 제3차 세계대전이 발생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베트남에 파병된 미군 등은 방어만 하고 공격은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결국 상대방의 공세에 끌려 다니는 수동적인 입장을 넘어서지 못해 패배했습니다.
#2. 국내에서 수양대군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는 쿠데타를 계유정난이라고 합니다. 중국에서 비슷한 시기 이와 유사한 일이 벌어지는데, 훗날 명 태종이 되는 주체가 반란을 일으켜 조카였던 건문제의 제위를 찬탈하는 ‘정난의 변’이 발생합니다. 정난의 변 과정에서 격렬한 전투가 몇 번이고 있었는데, 그 중 한 사례를 눈여겨 볼만합니다.
당시 주체는 적군(명 중앙군)에 포위당한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군사 몇 명을 거느리지 않고 포위를 돌파하는데 성공합니다. 주체가 무술이 뛰어나서가 가능한 것이 아니라 적군 군사들이 손발이 묶였기에 가능했습니다.
이는 황제였던 건문제가 명 중앙군에 '짐이 숙부를 죽였다는 책임을 지게 하지 마라'는 내용의 조서를 내린 결과였습니다. 이에 포위한 명 중앙군에서는 주체한테 화살 한 발도 쏠 수 없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당시 주체를 죽였다면 역사가 크게 바뀌었겠지요.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포위를 돌파한 주체는 명 중앙군을 가혹하게 공격했고 결국 조카인 건문제를 난전 중 화재로 태워 죽인 후 황제가 됩니다.
최근 게시판의 몇몇 글을 보고 역사적 일화가 떠올랐습니다. 모두 싸움 중에 어떤 정치적·도덕적 이유로 같은 편의 손발을 묶은 결과 패배한 사례입니다.
최근 보드게이머는 페미와 싸우지 않고 코보게와 싸운다. 이런 주장이 많습니다만 저는 이런 방식으로 간다면 결국 보드게이머가 패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페미가 이번 논란에서 상당한 목소리를 내는 상황에서 그들의 주장을 제대로 반박하지 못한다면 결국 ‘상대측의 옳은 이야기를 해서 반박을 못한다’고 인식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코보게가 명백한 오역을 했다는 것은 현 상황에서는 보드게이머의 주장이고 코보게는 아직 어떠한 인정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페미 쪽에서는 완경이 오역이 아니라 제대로 된 번역이라는 논리를 끊임없이 확대·재생산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페미 측의 주장과 제대로 맞서지 않는다면 명백한 오역이라는 주장이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 명백한 오역이라면서 논리적으로 반박하지 않은지 제3자 입장에서는 이해하기가 어렵고, 코보게 입장에서도 페미의 논리가 대세처럼 보인다면 보드게이머들이 목소리 높이는 명백한 오역 지적을 수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결국 코보게의 명백한 오역을 지적하려면 페미와 싸울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싸움을 피하는 보드게이머가 많아진다면 상대방에 패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그리고 논란이 이렇게까지 지속된 상황이면 보드게이머는 지금까지 상황을 몰랐던 제3자에게 이번 사태를 이해시키고 왜 이런 일이 문제인지 다시 재발하면 안 되는지 이해시키는 것도 필수적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보드게이머가 공격당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페미와 싸우지 않는 방향에서 이번 일을 단순화 시키면 ‘한 기업이 제품(보드게임)에 한 단어가 오역이 발생했다. 이에 몇몇 고객들이 항의했는데 묵묵부답한다’ 이런 방식으로 밖에 설명할 수가 없고, 제3자가 보드게이머의 정당성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오히려 제3자들이 본다면 보드게임 덕후들이 기업 하나를 조진다 이런 식으로 인식될지 가능성이 높을지도 모릅니다. 보드게이머가 진상 고객처럼 비춰질 수 있는 거죠.
하지만 슬프게도 보드게임에 페미가 묻었다 극성 페미가 쓰는 용어가 보드게임에 오역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돼야 많은 제3자들이 보드게이머의 정당성을 제대로 이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로 인해서 페미를 옹호하는 많은 사람과 부딪칠 수밖에 없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이미 그들은 시작부터 페미 쪽이었고, 보드게이머가 페미와 싸우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번 일에서 보드게이머를 지지해줄 일은 없습니다.
물론 가입일이 얼마 지나지 않은 사람과 싸우지 않는다 소위 말하는 ‘병먹금’을 하지 말자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단순히 오역이 문제다 코보게의 묵묵부답이 문제다 이런 태도와 논리라면 제3자가 봤을 때 보드게이머의 지지기반과 정당성이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페미를 보드게임 판에서 척결하기 위해 그들의 잘못과 그들의 악행을 지적하고 공격하는 일을 늦춰서는 안 됩니다. 페미와 싸우지 말자는 이유로 같은 입장을 가진 사람들의 손발을 묶는다면 결국 보드게이머의 손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요약하자면
1. 현재 논란은 페미가 오역이 아니다고 싸움을 걸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보드게이머가 페미와 싸우지 않는다 반박하지 않는다 이런다면 보드게이머의 정당성과 논리만 약해질 뿐입니다.
2. 보드게이머들이 페미 등 젠더 관련 논란은 보드게임계에 다시 반복되면 안 된다는 단호한 입장을 분명히 보여줘야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페미와 싸우지 않는다는 유화적인 모습은 같은 입장의 사람들의 손발을 묶어 결국 장기적으로나 단기적으로나 패배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