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으로 사람과 사람을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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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07 13:17

안녕하세요, 아내와 함께 한 아이를 열심히 키우고 있는 보드게이머입니다
그간 보라 눈팅만 하며 여러 정보를 얻고 취미생활 잘 즐겼던 것, 보드라이프에 감사하며 몇 자 적어봅니다

(몇 자라 해놓곤 적어놓고 보니 장문이네요 세줄요약 없어서 죄송하고 귀찮으면 넘기셔도...ㅎㅎ)

한국 보드게임업계 1위 기업(맞죠?) 코리아보드게임즈의 행보를 보면서, 큰 실망감을 느끼고 이 취미를 그만 두기로 했습니다

타인을 지극히 혐오하는 사상을 가진 집단이 왜곡된 시각에서 만들어내 사용을 유도하는 단어를 보드게임에 사용하고,
보란듯이 상품 설명 페이지에 교묘히 노출시키고, 이에 항의하고 질문하는 것에 대해 일절 무대응함으로써
오히려 해당 혐오 사상에 대한 동조와 지지를 보내는 듯 한 모습에 실망했습니다

제작 과정에서 어떻게 그 단어가 쓰였는지, 해당 혐오 사상에 대해 코리아보드게임즈는 어떤 입장인지 알 수라도 있다면

모르죠, 납득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어쩌겠습니까 사람 맘이란게- 정 떨어지면 그만인 것을

개인적으로, 근래 몇 년간 득세하고 있는 혐오 사상에 대해 큰 반감을 가지고 있으며,
제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 이런 반사회적 요소가 더 커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데
코리아보드게임즈는 거기에 전혀 신경쓰지 않고 오히려 동조하고 지지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이젠 믿고 구매하고 즐길 수가 없다' 라고 할 수 있겠네요

번역하며 생긴 한 단어의 작은 문제점 가지고 보드게임 접니 마니 오바 아니냐, 하실 지 모르겠으나..
거꾸로 생각해보면,

단순한 번역/오역 이슈였다면 코리아보드게임즈에서도 굉장히 신속하고 간결하게 대처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 작은 한 단어에 회사 차원에서 나름의 신념을 갖고 있기에 '강력한 무대응'으로 대처하는 것이겠지요

아닐까요? ㅎㅎ

보드게임이라는 세계에 발을 들이고, 책장에 게임이 하나 둘 늘어가고 카드 한장 한장 슬리브를 끼우고 아껴 플레이하며
아이에게 이게 재밌다 저게 재밌다 해보자해보자 열심히 영업하던 기억들도 있고
마트에 장보러 갔다가도 꼭 보드게임 코너에 들러 하나씩 들춰보고 카트에 넣어 오기도 했고
명절에 모이면 늘 보드게임 들고가서 조카들과도 좋은 시간 보냈었고
보드게임 페스타와 콘, 코리아보드게임즈 관에서 이것저것 체험하고 즐거웠던 기억들도 있고
파주슈필에서 땀흘리며 열심히 박스를 옮기던 직원들의 모습.. 덕분에 행사 잘 즐겼던 기억들도 있고
크로키놀 앞에서 서성거리던 제 등을 떠밀며 하나 가져가라던 아내의 배려에 감격했던 것 하며
대형 그래비트랙스의 구슬들이 움직일 때 우리 아이가 질렀던 탄성 하며... 너무 즐거웠던 시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즐거웠어도, 보드게임의 여러 순기능을 가지고 아이에게 게임하자고 말할 논리가 제게는 없어졌습니다
혐오 사상이 조금이라도 묻은/묻을 것들은 더는 즐기고 싶지 않습니다, 기업 차원에서 태도와 철학이 그러하다면 더욱요
아이에게는 좋은 것만 주고 싶습니다, 19세 영화가 아이에게 해로울까봐 보여주지 않는 것처럼요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해가 될 여지가 있는 취미를 권하는 아빠가 어딨겠습니까

이 게임 하나만 그러겠습니까, 앞으로 나올 게임들은 어떨까요- 상상만 해도, 지지 더러우니까 만지지 마 라고 말할 것 같습니다
이 업체 하나만 그러겠습니까, 업계 1위기업(맞죠?)인데! -다른 업체의 게임들도 일단은 흐린 눈으로 보게 되겠지요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 비뚤어진 혐오가 조금이라도 더 줄었으면 좋겠는데, 저 혼자 이런다고 뭐 달라지는 것 없다 할지언정
그래도 저는 혐오만은 혐오하고, 잘못된 건 잘못되었다고 가르치며 살아야겠다 생각합니다
쓰레기 문제가 해결되기 힘들다지만 개인 차원에서 분리수거는 열심히 해야지요

그러기에 참 어려운 세상이지만.. 다른 취미에서 즐거움을 찾으며 충분히 재밌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이 취미를 접기에 매우 좋은 시기가 되었습니다
책장에는 아이가 대여섯살 때 부터 정말 많이 가지고 놀았던 루핑루이가 잔고장 하나 없이 꽂혀 있고
코코너츠 코코넛 알 하나 잃어버리지 않고 잘 보관해두고 있습니다만
이제 아이는, 아빠는 보드게임이 그렇게 좋냐며 핀잔을 줄 정도로 머리가 굵어졌네요
세상에는 재미있는게 참 많은데! 라면서요

아이가 원하는, 혐오사상이 묻을 여지가 덜한 그런 취미가 많을 겁니다

이젠 그거 말고 보드게임하자, 가 아니라 그래 그거 하자, 라고 말할 수 있어서 좋네요

크로키놀 사라며 등 떠밀어주던 아내였는데, 이번 사태 얘기를 했더니 뭔 그런 X신같은 회사가?! 라는 반응입니다만
아마 제가 책장을 정리하길 바라기에 또 등 떠미는 것이겠지요

잘 되었습니다, 보드게임 책장이 비워지기 시작하면 아내도 좋아할 테니

또 다른 즐거움으로 빈 책장을 채워가려 합니다

저 하나 취미 접는다고 누가 눈 깜박하겠냐마는, 어찌됐건 이제 보드게임에는 정이 떨어졌고...
아이에게, 아이의 친구들이나 친구 학부모들에게도 열심히 영업했었지만 이젠 다른 취미를 권할 것 같습니다
다음주 페스타도 아내와 아이에게 가자고 가자고 졸라 약속을 받아뒀지만

그냥 더 추워지기 전에 아이와 축구를 하거나 자전거를 탈 생각입니다

네이버에서 코리아보드게임즈를 검색하면 스마트스토어 링크와 함께 나오는
보드게임으로 사람과 사람을 잇다, 라는 슬로건이 저는 정말 좋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게임을 통해 사람과 사람을 가르는 데에 일조하는 코리아보드게임의 행보를 보니

그건 그냥 번지르르한 말 뿐이었던 건가요?
당장 오늘내일이라도 뭐 입장에 대한 얘기가 나올 수 있겠으나

이 며칠간 이럴까 저럴까 간 보고 있었을 지 모른다 생각하면 정떨어지는 것엔 변함이 없을 듯 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냥 그러든가 말든가 하며 나 혼자 접으면 되는데 이렇게 말이 많은 것은

이삼년이나마 이 취미에 애정을 많이 쏟았던 반작용인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