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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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7 10:10

D016 번역의 힘

얼마전에 읽은 남종국 교수님의 '중세를 오해하는 현대인에게'라는 챕터의 소제목을 그대로 따왔다. 중세 역사를 잘 모르지만 관심이 많다 보니 내겐 어느 정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좋은 책이었고, 중세 시대를 현대에 투영 시켜서 통찰을 보여주어서 괜찮은 책이었다. 정말 쉽게 쓰여진 책이기도 하고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은 '번역의 힘'이라는 부분이다. 책의 일부를 발췌 또는 요약을 해보겠다.우리 보드게이머에게 중요한 영역인 번역에 대해 한번 쯤 생각해보면 좋겠다. 꽤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책은 교육부가 2023년 까지 세계적인 인문 고전 1000권을 선정해 번역을 지원하기로 했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오래 시간 동안 번역이 지식 발전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중세 세계로 인도한다.

이슬람 문명은 800년 부터 1300년 까지 세계 제일의 과학 지식을 보유했고 특히, 832년 아바스왕조는 수도 바그다드에 '지혜의 집'이라 불리는 도서관을 지어 기본 그리스 과학 철학 서적을 아랍어로 번역하는데 집중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 집대성>이 9세기에 번역되었지만, 유럽에 다시 번역된건 15세기가 되어야 이루어 졌다.

이런 아슬람의 지식 보존은 철학, 천문한, 기하학, 논리학, 형이상학, 점성학, 연금술,음악, 물리학, 동물학, 식물학, 의학, 약리학, 군사학 분야에서 번역 작업을 통해 더 학문적으로 발전 시키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11세기 이븐시나는 히포크라테스와 칼레노스의 의학을 발전 시켜 <의학 정전>을 저술했다. 이 의학서는 1600년대 까지 유럽의 대학의 교재로 사용될 만큼 기독교 사회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 묘사된 것 처럼, 아랍이 보존하고 발전 시킨 학문은 기독교 사회에 큰 반발을 불러 일으킬만한 내용이었지만', 11세기 부터 그럼 번역의 움직임과 지식에 대한 근원적인 인간의 갈망은 막을 수 없었던것 처럼 보였다. 이런 아랍어 서적을 라틴어로 번역하는 움직임을 '12세기 르네상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본의 이야기로 넘어가면 일본은 아시아 국가 중에서 일본이 일찍 근대화를 할 수 있었던 원인을 번역을 통한 서양 과학과 학문을 빠르게 흡수 했다는 점에 있다. 메이지 정부 초기에는 번역의 시대라고 불릴 정도로 번역이 활발 했다고 하며, 현제 일본에서 번역을 활발하며 중요한 학문적 업적으로 간주된다.

작가는 말한다. 지금 한국의 번역 현실은 암담하다. 한미디로 번역을 권장하는 사회가 아니다. 신문사등이 만든 대학 평가 지침에도 번역을 중요한 연구 업적으로 포함하지 않는다. 시간과 노력을 많이 들고 학문적 평가와 금전적 보상은 미미한 상황이고 활발한 번역을 기대하는건 미미한것 같다. 너무 늦긴 했지만 번역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지원하겠다는 교육부의 결정은 정말 환영할 일이라고 이 챕터를 마친다.

정말 와닿는 부분도 많았던 이유가 비이윤추구로 플랜태저넷 번역을 진행 중이었기 때문이다. 룰북은 멈추어 있는 상태지만, 카드와 요약표는 초벌 번역은 해서 업로드한 상태이다. 전문 번역가가 아니고 인문학이나 철학 원서를 읽는 입장도 아니기 때문에 저자의 말을 다 이해하는건 아니지만, 다양한 주제의 융합이 학문을 발전시킨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번역의 힘은 믿는 편이다. 내가 생각해도 우리나라의 번역 환경은 열악하고 커뮤니티에서도 그냥 해서 올리는구나 하는 경우도 많고, 반면 장시간 노력한 번역이 질타와 비꼼을 당하는 것도 많이 보았다. 한편 따뜻하게 이 부분은 잘못되었다고 검수 해주시는 분에게는 오히려 큰 고마움을 느꼈다. 이건 어감과 태도의 차이이다. 내가 지인들과 사용하기 위해 한 번역에서 다른 분들이 고마움을 느끼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올려봐야 좋은 소리 못듣는다고 그래서 번역 올리는 중지 하신 분도 꽤있다고 들었다.

완역을 해본적이 없는 분들이 짧은 지식으로 훈수질 하는 느낌으로 댓글을 적는게 정말 심하게 이야기 하면 꼴도 보기 싫다. 커뮤니티에서 사라지면 좋겠다. 오히려 완역을 해보신 분들은 그 어려움을 알아서 조심스럽게 이야기 한다.

나도 이용하는 다양한 번역 AI 툴이 있지만, 내가 느낀건 문장이라던지 단어 선택이 아직까지 전문적인 보드게임 영역에서는 형편없다. 정말 단어 맥락을 전혀 이해 못한다. 사실상 AI 번역이 학문적이고 전문적인 영역으로 넘어가기에는 사실상 요원해 보인다. 아무리 생각해도 100년은 이르다. 미묘한 단어 선택을 어떻게 캐치할것인가? 어짜피 다시 다봐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시간이 없어 번역기를 이용해 쓱 한번 읽으면서 수정을 해서 올린 경우도 있는다, 플레이 했을때 부끄러울 정도로 얼굴이 화끈해졌다 (공포의 깃발).

특히 워게임 번역은 고도의 집중을 요하고 정말 전두엽을 강타하는 일들이 너무 많다. 왜냐면 당시 역사와 맞물려 해석을 해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용어 하나에 어떻게 해야 하나 번역 방에 의견을 물어보고 그래도 결론이 안나는 경우도 있지만, 나보다 훨씬 언어적인 감각이 좋은 사람들이 세상에는 많아서 다행이라고 매번 느낀다. 그래서 요즘은 혼자 고민하지 않는 편이다. 근데 집요하게 혼자 고민해보고 싶은 용어도 있다.

플랜태저넷 변역시 가장 고민되는데, lieutenant이라는 단어이다. 뭐 이런 쉬운 단어를 고민하냐고 하겠지만,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중위'이다. 그러나 게임에서 보면 군을 지휘하는 느낌의 영주에게 부여되는 높은 직책임을 알 수 있는데, 영영 사전을 찾아보아도 그런 뉴양스를 제시하지 않는다. 아니면 영미권 사람은 당연히 군을 통솔 할 수 있는 높은 직책으로 생각하는건가 자연스럽게? 결국 이상하게 부관이라고 번역했는데 역시 이상하다. 이틀전에 또 생각이 나서 다시 찾아보자고 했다. lieutenant medieval term 이렇게 검색 해보니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영국에서만 사용되는 (주를 통치하는) 주지사의 개념이었다. 주시자와 총독의 단어중에 고민하다가, 총독은 아무래도 로마 시대 느낌이 나는것 같아서 주지사로 다시 바꾸어서 패치해서 보드라이프에 업로드를 했다.

단어 하나에 왜 이렇게 집착하는가? 계속 놔두었으면 읽었을때 '부관'이나 '중위'가 다른 영주도 이끌 수 있나, 의문점이 플레이 시 생겼을 것이다. 누가 보기에는 별거 아닐 수 있다고 말하는건 참 위험하다. 누가 보기에 그렇지 않다는 말은 항상 반대 급부로 누가 보기에도 그렇다는 말도 된다.

[교차 검수의 중요성, 사랑하는 아니고 Beloved라 사랑받는 워릭이 맞다.]

하나 더 이야기하면, 이 당시 역사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있는가 이다. 나도 '장미 전쟁'에 대해 전문적이 지식이 있는거 아니지만, 대략적인 역사라던지 다양한 에피소드를 알아서 정말 좋아하는 중세 끝물의 테마이다. 요즘 PC 문제로 번역을 순화해서 해야하는거 물어보면 난 번역은 그때 당시의 상황을 정말 잘 보여주는게 좋다고 생각한다. 가령 'She-Wolf of France'를 번역 할때 고심했다. '프랑스의 여자 늑대'라고 번역 해야 할지 '프랑스의 암늑대'라고 해야할지, 이건 어떻게 보면 역사적인 배경을 안다면 너무 간단하다. 지참금도 없고 성격도 강한'앙주의 마가렛'에 프랑스 여자를 영국인들은 경멸했다. (중세 시대때도 여자는 조신해야지 그런 풍조가 ㅠㅠ) 그래서 최대한 저속한 표현으로 쓰는게 맞다고 본다. 이런것 하나에도 고민하게 된다. 난 번역 짬도 별로 없고 맞춤법도 자주 틀려서 퀄러티가 뛰어나지는 않지만, 원문에 맞는 폰트 혹은 더 어울리는 폰트에 대해 고민도 많이 하게 된다.

배경 책자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어서 번역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어감이라던지 등등

뭐 이런걸 왜 고민하냐고, 이 보드게임에 대핸 애정이 깊으니깐, 좋아하니깐, 다른 사람들도 이 보드게임에 빠져 들면 좋겠다는 마음이 크니깐? 리뷰나 번역을 하는 목적도 이 게임을 나와 함께 해주면 좋겠다고 말하는 소심한 I형 인간의 외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유저 번역의 힘은 어느 정도 요즘 여러가지 이유로 사그라드렀다고 많은 분들이 말한다. 이유는 대한글화 시대에 유명 게임에 대한 기대감으로 유저 번역의 힘은 줄어든 측면이 가장 크다. 어떻게 보면 유저 입장에서는 전문적이고 상업적인 읽기 좋은 번역을 제공 받는 다는건 참 좋은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 만큼 번역 퀄러티가 뛰어난가 반문해보면 때론 유저가 선정한 폰트 보다 아니면 공개, 혹은 비공개적으로 여러 유저의 의견을 조율한 번역 보다 못한 경우 있다고 듣게 된다.

워게임에 비하면, 카드나 룰북에서 조차 텍스트량이 많지 않는 번역도 정말 안좋을때가 많다. 일단 보드게임은 전문 번역의 영역이라는걸 확실히 해두고 싶다. 업체 마다 인식은 다 다르겠지만, 우리가 하는 취미가 룰북을 보고 룰을 익히거나 판단할 때 영어 원문 조차 어려운 경우다 많다. 긱에 보면 원어민들 조차 룰 하나 가지고 엄청난 질문을 하는 거보면 ... 어떻게 보면 자체적으로 명료하지 않아서 문제인 경우도 있다. 근데 이런 문제는 게임을 어느 정도 해본다면 이런 모효함을 줄일 수 있다는게 나의 생각이다. 게임을 플레이 테스트 해볼 시간이 없는 업체라면,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찾아보면 그 게임을 찬양하고 수없이 플레이 하고 올해 최고의 게임으로 뽑는 분들을 몇몇 찾아볼 수 있다. 한분 뿐 아니라 그런 분들에게 검수를 의뢰하면 좋지 않을까? 그 만큼 애정과 시간을 들여 흔쾌히 해주실 꺼라고 본다. 엄청 나이브하고 이상적이라고 하시겠지만, 애정과 이윤이 만났을때 시너지가 좋은게 아닌가 한다.

좋은 번역은 게임을 정말 풍성하게 해준다. 플랜태저넷 초벌 번역을 끝내고 플레이 시 자연스럽지 않는게 또 보이고 뭔가 불만족스럽다는걸 또 한번 느꼈다. 매번 게임을 몰입을 해치는 요소를 줄여나가는 번역이 과정이 참 쉬운게 아니라고 느낀다. 개인적으로 번역하는데 너무 고퀄을 요구하는게 아니다. 번역하는 사람의 마음 애정을 인정해주고 지지해주고 좋은 말로 댓글이나 쪽지로 오역이나 오타가 있으면 알려주면 좋을것 같다.

아울러 양질의 좋은 번역이 많이 나와서 보드게임에 대한 이해가 넓어져 역으로 해외에서 우리 나라의 게임을 번역 하는 일이 일어나면 좋겠다. 정말 보드게임의 세계와 주제는 거의 무한하다. 그 다양성의 토양에서 좋은 게임이 나오는게 아닐까 한다. 우리 취미에서 번역 문화에 대해 한번 생각해봐야 할때가 아닌가 한다.

마지막으로 역사 보드게임 번역방을 이끄는 '화이트'님 그리고 정말 번역을 다양하게 열정적으로 아무 보상 없이 가장 많이 진행하시는 '하이텔슈리'님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상업과 비상업의 영역을 떠나 번역을 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