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스카] 보드게임 제작일지 1부 - 게임의 구상
안녕하세요? 올린입니다.
오늘은 드로잉 보드게임 [나스카]의 제작일지(Designer's note)를 써볼까합니다.
스토리가 길어 총 3부작으로 연재될 예정입니다. 부디 재밌게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
나스카 보드게임 제작일지 1부 - 게임의 구상
나스카는 현재 텀블벅 플랫폼에서 펀딩중이며 저에게 있어선 5번째 보드게임 작품이 됩니다.
(튤립홀릭 -> 스시홀릭 -> 그릴홀릭 -> 스윗홀릭 -> 나스카)
그리고 '홀릭 시리즈' 이후의 첫 번째 작품이기도 하죠.
나스카의 첫 구상은 스윗홀릭의 펀딩이 시작되기 전, 이른 봄에 시작되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보드게임 아이디어는 불현듯 떠오르기 마련이고 저는 이렇게 떠오른 아이디어를 핸드폰 메모장에 적어놓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렇게 적어놓은 아이디어들을 시간이 조금 지난 뒤 꺼내보면 발전 가능성이 있는 아이디어가 있기도 합니다. (물론 그렇지 못한 녀석들이 더 많습니다.)
<나스카 초기 아이디어 메모>
나스카는 이렇게 적어 놓았던 여러 아이디어 중 하나였습니다. 조금 더 발전시킨다면 보드게임으로 만들기 좋을 것 같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죠.
저는 보드게임의 규칙과 테마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걸 좋아하는데 나스카의 장르인 '드로잉'과 '퀴즈'가 가진 특성이 게임의 메인 테마인 '나스카 지상화(Nazca lines)'로 풀기 아주 적절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부연 설명을 드리자면 '나스카 지상화(Nazca lines)'는 페루의 나스카 평원에 있는 거대한 그림들입니다. 페루의 나스카 평원은 날씨 변화가 거의 없기 때문에 풍화 현상이 매우 적었으며 때문에 오랜 기간 이 그림들이 보존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림의 크기가 매우 커서 이 선(가까이서 보면 선이라기보단 매우 큰 구덩이처럼 보인다.)이 그림인지도 몰랐었다고 합니다. 근대가 되면서 나스카 평원 위를 비행기를 타고 지나가던 사람이 이 그림들을 처음 발견하게 되었고 그 후 이 거대한 그림들은 누가 그렸는지, 무엇을 의미하는지,언제부터 존재했는지 밝혀내기 위해 많은 고고학자들이 연구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나스카 지상화는 인류 최대의 미스테리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현재는 유명한 관광지로 나스카 평원 비행기 투어가 큰 인기리에 운영되고 있다고 하네요. :)
<나스카 지상화(Nazca lines)>
제가 이 나스카 지상화를 처음 알게 된 건 초등학교때로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이 당시 즐겨 읽었던 세계대백과사전에 이 거대한 그림들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어린 나이었던 저에게 세계 곳곳에 존재하는 미스테리들은 매우 큰 흥미를 불러 일으켰고 당시에 나스카 지상화를 비롯해 투탕카멘 무덤의 비밀, 잃어버린 대륙 아틀란티스, 모아이섬의 석상 등의 미스테리들을 섭렵하며 일명 미스테리 덕질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결국 이때 접했던 내용이 2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꽃을 피운 걸 보면 아웃풋에는 이렇게 오래 전에 접했던 인풋들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중에 자식을 낳는다면 책을 많이 사줘야겠다는 생각이..)
나스카의 구상 초기에 만들었던 룰은 매우 간단했습니다.
1.누군가가 고대인(혹은 외계인이라는 설도 있다.)이 되어 거대화(그림)를 그린다.
2.나머지 플레이어들은 이 그림이 무엇인지 맞춘다.
3.그림을 맞춘 플레이어는 점수를 얻는다.
하지만 그림을 그냥 그리고 그것을 보고 맞춘다면 누구나 정답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림을 너무 못그리는 사람이 그린게 아니라면 말이죠. 따라서 그림의 정체를 바로 맞출 수 없게 하는 요소가 필요했습니다.
따라서 이런 룰이 추가됩니다.
'여러 개의 가림 타일로 그림을 가리고 하나씩 공개한다.'
이 규칙을 만드는데도 테마성이 밀접하게 적용됩니다. 위에서 설명했다시피 나스카 지상화는 너무나 거대하기 때문에 한 눈에 그림의 전체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실제로 비행기를 타고 매우 높이 올라가야 한 눈에 그림의 전체 모습을 감상할 수 있죠. 나스카 보드게임에선 이런 요소를 차용해 타일 하나를 오픈해 그 부분(지역)을 보고(탐사하고) 그 일부분을 통해 얻은 힌트로 그림을 맞추게끔 구상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가림 타일은 총 몇 개가 되어야 할까요?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6개로 결정되었습니다. 6개가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정육면체 주사위를 사용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나스카가 원하는 타일을 마음대로 공개할 수 있다는 룰이라면 당연히 가운데 부분의 타일을 제거하는게 유리합니다. 그림의 주요 정보는 중앙쪽에 존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죠.(물론 절대적이진 않습니다.) 이런 규칙에선 가운데부터 그림을 공개하는 플레이가 고착화되기 마련이고 저는 이런 플레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타일이 랜덤하게 공개되게 하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게임에 랜덤성을 부여하기 위해 주사위라는 요소를 차용하게 되었고 12면, 24면 주사위도 있지만 너무 과한 확률이라고 생각해 정육면체 주사위로 확정하게 됩니다. (또, 단가 부분을 무시할 수 없기도 합니다. 특수한 주사위는 그만큼 비싸니까요.)
우선 이렇게 룰을 확정하고 빠르게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테스트 플레이를 진행하였습니다. (초기 가림 타일의 형태를 보시면 그래서 주사위 모양의 아이콘이 들어갑니다.)
<초기 테스트 플레이 사진 - 프로토타입의 디자인은 언제나 이렇게 비루하다>
테스트 플레이를 거치며 게임의 가능성은 확인했습니다. 실제로 게임 중 빵빵 터지기도 했구요. 테스트 플레이가 끝난 뒤 여러 피드백을 받게 됩니다. 재미 요소는 있지만 불완전한(다듬어지지 않은) 규칙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나온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 입니다.
첫 번째 문제점, 무엇을 그려야 하는지 불명확하다.
게임의 큰 개요는 한 플레이어가 '무언가'를 그리고 그것을 맞추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무언가의 범위가 너무 넓어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필요하게 많은 고민을 안기게 됩니다. 물론 자신이 그리고 싶은게 명확한 사람도 분명히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당혹감을 느끼기 마련이고 어느 정도 그림 주제에 대한 가이드가 주어지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정답을 맞춰야 하는 사람도 가이드가 있으면 정답에 접근하기 좋을 것 같기도 했구요.
그래서 이 부분을 개선해 카테고리 카드를 추가하게 됩니다. 텔레스트레이션이나 이매진 같은 게임에서 사용하는 직접적인 단어카드가 아닌 카테고리 카드를 고안한 이유는 그래도 조금 더 주제 선정의 자유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큰 틀의 카테고리만 주어지고 그 안의 세부 주제를 자신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장점은 크게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어떤 그림을 그려야 상대방에게 혼란을 줄 수 있을지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써 고민하는 재미를 줄 수 있으며, 두 번째는 직접적인 단어 카드로 그릴 그림을 확정해주는 단점(그 단어를 모르거나 못그림)을 방지할 수 있다는 점 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보드게임 나스카에 6장의 카테고리 카드가 추가되게 됩니다. 카드가 6장인 이유는 나스카의 최대 인원수가 6명이기 때문입니다. 플레이어들이 각자 겹치지 않는 카테고리 카드를 미리 받고 게임을 할 수 있도록 6장의 카드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각 카드별로 6개의 카테고리가 들어가게 되는데 이렇게 구성한 이유는 주사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주사위를 통해 카테고리를 선정하는 방식을 차용해 랜덤성과 리플레이성을 더하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추가된 카테고리 카드로 인해 그림 주제의 방향을 가이드해줌으로써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당혹스런 상황에 빠지는걸 미연에 방지하게 되었고 리플레이성 또한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문제점, 보상 체계의 부재.
나스카의 규칙상으론 보상 체계가 아직 불명확합니다. 1차원적으론 '정답을 맞춘 사람'이 점수를 얻는 방식이 되는데 그렇다면 상대방에게 점수를 주기 싫어 출제자가 그림을 아주 어렵게 그리게 됩니다.(게임이 성립 안됨) 그렇다면 이 개선 방안으로 '정답을 맞춘 사람'과 '정답을 맞추게 그림을 잘 그려준 출제자' 모두에게 점수를 주는 방식을 도입하면 어떨까요? 하지만 이렇게 된다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합니다. 출제자 플레이어가 그냥 그림을 매우 쉽게 그려서 출제하는 것이죠. 상대방에게 점수를 주더라도 자신의 드로잉 차례에 무조건 점수를 버는게 유리하기 때문에 문제를 쉽게 내서 1점을 100% 확보하는 플레이가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럼 게임 자체가 그냥 스피드 퀴즈처럼 되어 너무 밋밋해지게 됩니다.
그럼 어떻게 구성을 해야 게임에 적절한 긴장감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요? 이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많은 테스트를 거치게 됩니다. 보상 체계에 따라서 '출제자가 그림을 어떤 마음으로 그리게 되는가'가 결정되기 때문에 생각보다 이 요소는 게임에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나스카의 보상 체계가 확정되는데 약 3개월이 시간이 흐르게 됩니다. 보상 체계를 수정하며 게임의 총 라운드 수도 정해졌는데 게임은 6개의 타일 중 3개가 오픈되는 3라운드 까지 진행하는 것으로 확정되었고 라운드별 보상 정산 방법은 아래와 같습니다.
[최종적으로 수정된 보상 체계]
1. 출제자는 1,2,3라운드 안에 플레이어에게 그림을 맞추도록 하면 무조건 1점을 얻는다.
2. 정답을 맞추는 플레이어는 1라운드(1개의 타일이 오픈되었을 때,)에 정답을 맞추면 3점, 2라운드(2개의 타일이 오픈되었을 때,)에 정답을 맞추면 2점, 3라운드(3개의 타일이 오픈되었을 때,)에 정답을 맞추면 1점의 점수를 얻는다. (빨리 맞출수록 고득점)
3. 3라운드 안에 정답자가 나오지 않으면 아무도 점수를 얻지 못한다.
<최종 수정된 보상 체계>
이렇게 구성된 보상 체계로 얻을 수 있는 이점은 이렇습니다. 우선 출제자 플레이어는 다른 플레이어들이 그림을 맞출 수 있도록 너무 어렵지 않게 그리게 됩니다. 자신이 1점을 얻으려면 누군가는 3라운드 안에 정답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너무 쉽게 그리는것도 안됩니다. 너무 쉽게 낸 나머지 다른 플레이어들이 1라운드만에 정답을 맞추게 된다면 해당 플레이어에게 3점을 헌납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3라운드에 맞출 수 있는 난이도로 그림을 그린다"
출제자는 이런 딜레마 속에서 어떻게 그림을 그리면 자신에게 유리할지 고민하면서 그림을 그리게 됩니다.
그렇다면 정답을 맞추는 플레이어들은 어떻게 플레이하게 될까요? 최대한 집중해 1라운드, 혹은 2라운드 안에 맞추려고 할 것입니다. 3라운드에 맞추는것도 좋지만 출제자 플레이어와 각각 1개씩 사이좋게 나눠가지게 되기 때문에 기왕이면 더 많은 승점을 얻기 위해서 빠르게 맞추는걸 선호하게 됩니다.
이렇게 정리된 보상 체계로 인해 게임은 더욱 원활하게 돌아가기 시작했고 결국 출제자(고대인)와 발견자(고고학자)간의 미묘한 관계도 잘 정리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지속적인 테스트 플레이로 세부적인 규칙들을 어느 정도 개선했지만 나스카 프로젝트는 또 다른 커다란 난관에 부딪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게임의 UX(User Experience:사용자경험)적인 부분입니다.
- 2부에 계속됩니다 -
(2부 - UX의 개선 / 3부 - 아트웍 및 편집디자인)
<보드게임 나스카 펀딩 링크(D-5)>
- 나스카의 자세한 룰북이 첨부되어 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