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 여자사람들의 보드게임 인식

6,053 조회

2014.10.15 20:11

그런 말이 있었죠? 소개팅에서 보드게임 꺼내면 안된다는...

소개팅은 아니지만 일반인 여자사람들이 보드게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깨닫는 일이 최근 종종 있네요...

항상 주위사람들과 보드게임을 하고싶었기에 얼마 전 직장에서 마음 맞는 또래 남자사람들 3~4명에게 보드게임을 내밀어보았습니다.

사실 담배피며 노가리까거나 스맛폰 만지작거리거나, 공원에서 운동하는걸 즐기는 친구들이라 거부하진 않을까 고민도 했지만

같이 해보고싶다는 마음이 컸기에 큰맘 먹고 랜드로드가 배송 온 날 들고 가 보았지요.

다행히도 모두는 아니지만 게임을 돌릴 수 있을 정도의 인원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서 이런 모임에 필수적인 도박요소(꼴지가 아이스크림 쏘기)를 가미해

게임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아아.. 행복했어요... 첫 몇판은 흥미를 위해 져주고, 이후로는 실력으로 철저히 밟혔지만(시무룩) 그래도 재밌었어요!

덕분에 용기를 내어 미니빌도 한 판 해 보았고, 대망의 딕싯(여행+오리진 포함)도 소개할 수 있었습니다.

세 개 중에 딕싯을 제일 좋아하더군요.ㅎㅎ

예전에 남자사람들끼리 딕싯하면 이상하다는 말을 본 듯 하지만 어떻습니까 전 이 친구들이랑 보드게임 하고 있는 자체로 행복합니다.

아무래도 점심시간의 시간적 한계상, 그리고 일반인들의 보드게임 진입장벽 등으로 인해 다른 약간 더 복잡한 게임들은 내밀지 못하겠지만

점심시간에 짬내서 함께 보드게임하고 웃고 즐기는 요즘이 너무 행복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여기서부터가 본론이지요....)

옆 사무실의 나름 친분 있는 여직원이 어느 날 커피 한 잔을 하며, 저에게 말하길...

막 카드가지고 이리저리 노는게 유희왕 카드 가지고 노는 자기 사촌동생 같아 귀여웠답니다.

좋은 의미로만 얘기한게 아니라 뭔가 의미심장한 느낌이 있었지요. 약간 유치하게 보는듯한...

그 뒤로 같은 사무실의 여직원도 가세하여 제가 보드게임 하러 갈 때면 유희왕 하러 가냐고 묻고, 업무 복귀하면 유희왕 이겼냐고 묻는 등

자꾸 유희왕거리더라구요.. 주절대며 변명하는게 싫어 처음에 이건 유희황카드가 아니라고 한 뒤로는 별 말 없이 넘겼습니다.

좋은게 좋은거라고 그냥 서로 농담하며 웃어 넘기기도 하고 잘 넘겼지요.(매일 그렇게 말하지만 매일 웃으며 받아넘겨줬습니다.)

그런데 오늘 씁쓸한 기분을 받게 만드는 일이 있었지요.

여느때처럼 딕싯을 한 판 하고 1등으로 점심으로 먹은 닭값을 면제 받은 저는 기분좋게 사무실로 돌아왔지요.

근데 사무실의 여직원이 저보고 막 어린아이 얼래는듯한 말투로 어린이 어린이 거리는겁니다.

이 여직원이 저보다 4살이 많기는 합니다.(저는 27, 그쪽은 31)

보드게임 외적인 부분에선 서로 호감(이성으로서 말고.. 말 그대로 직장동료로서... 저 품절남입니다.)도 가지고 긍정적인 피드백도 해주고

굳이 필요하지 않은 칭찬도 서로 하며 사무실 분위기를 밝게 만드는 사이입니다.(우리 둘이 막내라..)

그래서 아마 "어린이"라고 한 표현이 뭐랄까 시비를 걸기 위한 건 아니었을거에요..(아마..)

그냥 평소에 서로 농담하듯이 장난 친거일텐데, 유독 보드게임에 관해서는 꼭 어린애들만 하는거라는 선입견이 보이더라구요.

평소에도 키덜트라고 하지만 사실 완전히 꼭 틀린 말은 아니라서 웃으며 얘기하지만

오늘 어린이 어린이 그러는데 저도 모르게 제 표정이 관리가 안되더군요...

목구멍까지 그럼 폰게임 하는 사람들은 뭐냐, 다 큰 어른들이 컴퓨터 게임 하는건 뭐냐, 하는 말이 넘어오려 했지만

앞서 얘기했듯 변명하는 듯한 양상이 싫었고, 굳이 변명할 필요도 없고, 관계가 어색해질까 해서 넘어갔지요.

새삼 아내를 만난게 참 다행이다 싶더군요...

룰 설명만 하면 잠깐만 누웠다가 다시하자고 하는 아내지만, 황투 끝까지 돌리려면 사진 9장과 열흘이라는 시간이 필요한 아내지만

함께 보드게임을 해주고, 나름 재미있어하고, 긍정적으로 봐주는 아내가 참 고맙네요..

아무튼 일반인 여자사람들이 보드게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뼈저리게 느끼는 요즘입니다.

한편으로 함께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 행복하지만, 한편으로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기도 하는 나날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참 싫어요..

카드가 어떻게 생겼는지 한 번 들여다 보지도 않고 남을 유희왕카드하는 초딩처럼 만드는 사람이나,

남이 가진 소중한 취미를 어린애들이나 하는 유치한 장난감으로 보는... 이까진 좋은데 그걸 대놓고 표현하는....

저는 어느날엔가 이 여직원이 업무시간에 컴퓨터로 판타지 소설 읽고 있는걸 보고도 별 말 없이 그저 "재밌겠네요"하고 넘어가줬는데...ㅋㅋ

보드게임 가져가기 전엔 참 친하고 잘 지냈던 사람들이라, 더 씁쓸한게 있어요.

이 사람들을 대할 때 벽을 쌓아놓고 대하는 제 자신이 보이기 때문이죠...

아무튼 여러분들, 소개팅에 보드게임은 절대로 들고가지 맙시다. ㅋㅋ 썸남에서 유희왕 하는 초딩 사촌동생으로 전락할 수 있어요..

그리고 함께 보드게임을 즐기고, 좋아하지 않더라도 함께 해주는 여자친구나 아내를 가지신 여러분, 우리 항상 감사하며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