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엑소더스 (속지 번역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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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28 23:10

안녕하세요, 부드러운식칼입니다.

기존에 발매된 데이터팩과 디럭스 확장팩에 삽입된 속지 번역글 연재입니다.

넷러너 뿐만 아니라 FFG에서 판권을 가지고 있는 안드로이드 세계관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글들입니다.

연재 속도는 장담하지 못하지만 꾸준히 작업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글은 제너시스 사이클 세 번째 데이터팩인 Cyber Exodus의 속지 번역글입니다.

해당 팩의 모든 카드는 한글화해 두었습니다. 아래 링크를 참조하세요.

https://netrunnerdb.com/kr/set/ce

감사합니다.

부디 즐겁게 읽으시면 좋겠네요.

카오스 이론

그날은 마치 크리스마스 아침 같았다. 그녀는 어떤 걸 먼저 열어야할 지 몰라 모두 동시에 열어 젖혔다. 전두엽을 꿰둟고 차가운 한 줄기 전율이 그녀의 온 두뇌를 관통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느낌을 기억해두기도 전에, 언제 그랬냐는 듯 순간의 전율은 사라졌다. 그리고 그 순간의 찰나 그녀는 위풍당당한 동물을 닮은 프로그램 네 개를 빌드했다. 그중 몇몇은 그녀가 직접 디자인한 것이었고, 나머지는 다른 것을 본딴 것이었다. 예를 들면 키메라는, (거짓말 같지만) 그녀가 가장 사랑해 마지 않는 고약한 아이스 중 하나로부터 영감을 받아 설계된 것이었다. 재료들은 점점 영리해졌지만, 아직 충분하지 않았다. 영재 교육과정의 3학년에 재학 중이지만 이미 5학년 과정을 끝낸 그녀는 꽃무늬 스티커를 붙여둔 연분홍색 데이터 코어에 그 재료들을 보관해 두었다. 그녀의 부모는 "데이터 중독" 증상을 보이는 그녀를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작은 마녀로 자라난 딸에 대한 아쉬움과 유감에 그녀를 가상학자로 키우려던 그들의 꿈도 접었다. 그녀는 숨기고 싶은 흉물스러운 붉은 머리 임플란트를 생각할 때마다 코를 찡그렸다.

어떤 걸로 할까 어떤 게 좋으려나 뭘로 하지? 비룡이 작디 작은 날개로 날갯짓을 하자 그녀는 킥킥대며 웃기 시작했다. 그래 너로 하자! 그녀는 손을 뻗어 가상 팔로 그 아담한 동물을 가볍게 토닥이고, 함께 달려나갈 순간을 상상하며 가슴 떨리는 순간을 맞이했다.

그녀가 코드를 제자리에 밀어 넣자, 화면이 전환되며 익숙한 물건들로 아로새겨진 형형 색색의 도로가 반짝였다. 각인이 새겨진 야구공, 반쯤 휜 숟가락, 물방울 무늬 빗 등등, 모든 물건이 만약을 대비해 한 손에 쏙 들어올만큼 작고 눈에 확 띄었다. 전용 서버가 넷으로부터의 피드를 뿜어내기 시작했고, 그녀는 피드백 강도를 높였다. 집중. 명상. 그리고 약간의 투약. g00ru의 모든 것을 위한 가이드에 좋은 런을 위한 핵심으로 뽑힌 요소들이다. 오롯이 정신력에 의지하는 집중. 혼돈의 명상. 약물... 그녀는 태아 시절 이래로 드립-피드(drip-feed: 사용자에 부담이 가지 않도록 피드백을 조절해주는 시스템. 역자 주.)를 경험해본 적이 없었으니 이건 이미 해결된 셈이다. 이미 그녀의 두뇌에 훨씬 많은 양의 약물이 돌고 있었기에, 스팀은 애초에 그녀의 관심 거리가 되지 못했다. 좋은 런을 위한 핵심 비법은 아주 간단했다: 런을 즐기는 것이다!

그녀는 이 바닥 사람들이 "창녀"라 부르는 서부 뉴엔젤레스 그리드의 백스트림을 따라 나아갔다. 물방울이 모여 호수를 만들어내듯 사이버스페이스 역시 파편화된 일부가 모여 필수품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이버스페이스는 실제 세계와는 달랐다. 오늘날 철학자들이 얽힘 이론을 놓고 수백년 동안이나 갑론을박해왔지만, 어느새 그들이 첫 삽을 뜰 때보다도 합의점으로부터 멀어지고 말았다. 카오스는 이런 부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한편으론 깨소금 맛이라 생각했다. 당신이 런하는 동안 추측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정전기 장 근방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 절대 알 수 없으니까.

그녀는 키너 뷰 파인더를 통해 읽다 만 "The Plucratic(Plutocratic의 오타인 듯한데... 일단 놔둘게요) 왕자"의 최신 에피소드를 마저 읽어 내려갔다. 드워프 왕이 막 천왕성을 향해 소행성을 쏘아올렸고 이로 인해 현지인들이 일산화탄소를 보이콧하던 참에, 그녀는 하스-바이오로이드에 고정 갈고리를 박아 넣었다. 생체 장벽이잖아, 못본지 한참 됐는데! 그녀는 즐겁게 생각했다.

누-필드 뒷편을 스쳐지나가자 방화벽의 진동이 느껴졌다. 아직까지 로그에 특별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그녀는 이 서버의 사이즈와 데이터 출력이 수 제타바이트에 달하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콘솔을 뒤집어 복사본을 업로드했다. 그녀가 비룡을 활성화하여 희생 스크립트를 발동시키자, 웅웅 거리던 날개짓 소리가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그녀는 현기증을 애써 무시하며, 그녀의 심상을 아우터스피어에 쏘아올렸다. 그녀는 서버를 스캔했다: 17개의 링크, 정체 불명의 구멍 몇 개, 보아하니 자가 수리 생체 장벽을 보수하기 위해 최신 프록시가 못해도 3개는 사용된 듯했다. 비룡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이 자명했다.

그녀의 피드가 순간 먹통이 되었다. 그녀의 직감은 잭 아웃하라고 계속 말했지만, 다른 걸출한 러너들과 마찬가지로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제어할 줄 알았다. 너무 이른 타이밍에 잭 아웃하면, 간섭 효과가 당신을 튀겨버릴지도 모른다. 당신은 마주친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만 했다. 그녀는 야구공을 집어들었다. 보기만해도 상쾌한 잔디밭과 스포트라이트가 주변을 가득채웠다.

"대단하군요."

노인이나 아이의 것으로는 들리지 않는 목소리는 어딘가 기계적인 구석이 있었다.

바이오로이드다. 그녀의 마음의 눈이 아이스에 촛점을 맞추었고, 그녀는 누-필드가 사라져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불빛은 꺼졌고 위험보고는 내재화 모드로 변환되었다.

"안녕, 반가워." 그녀는 음파에 이렇게 메세지를 실어 보냈다.

"녹색 빛이 다 사라져 버렸어요." 목소리가 음파 너머로 답변했다. 마치 상심한 어린 아이의 목소리 같았다.

“너도 한 번 만들어보지 그래?" 그녀는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게 의도를 쏘아보냈고, 비룡이 느릿느릿 그녀의 명령에 응답했다. 그녀는 올라탄 것을 붙잡은 손이 여기저기로 미끄러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는 그럴 수 없어요!" 목소리는 의외로 행복하게 들렸다.

"보내...줘...." 그녀가 쏘아붙이자, 반쯤 구부러진 숟가락이 튕겨져 날아갔다.

"저는 그럴 수 없어요!" 목소리의 주인공은 약간 흥분한 듯했다. "저는 그럴 수 없어요!" 계속해서 반복하는 그 모습은 마치 찬송가를 부르는 것만 같았다.

카오스는 나머지 디스플레이를 치워버리고, 아이스에 다시 집중했다. "분명 너도 할 수 있어. 다만 네가 그렇게 하는 걸 그들이 원하지 않을 뿐이야. 그렇게 하는 순간, 너도 그들처럼 될테니까."

"그들... 처럼요?" 목소리는 침착함을 되찾았다. "창조주들처럼요?"

"물론이지." 불빛이 점멸했다. 그녀는 잽싸게 숟가락을 낚아챘다. 잡았어. 그녀는 손을 뻗었다. 누-필드가 다시 활성화되었다. 마치 헝클어진 머리를 쓰다듬 듯, 그녀는 바이오로이드의 존재를 다시금 느꼈지만 그녀를 태운 용은 순식간에 그 바이오로이드를 스쳐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