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타 작가존 작가후기] 누구에게나 그럴싸한 계획은 있다...맞기 전 까지는
안녕하세요. 이번 보드게임페스타 작가존에 참여한 스위트게임즈 손영익입니다.
월화 이틀 내내 제정신 못차리다가 이제서야 정신이 돌아와서 작가존 운영 후기를 작성해봅니다.
아직도 잠이 좀 부족한 상태이니 의식의 흐름대로 걍 써보겠습니다...ㅎㅎ
1. 작가존 참여 신청 계기
늘 페스타나 콘은 관람객으로 가보기만 했었는데, 이번에 만든 "럼샷"은 플레이 타임도 짧고 일반인 플레이어 분들의 실제 반응이 많이 궁금했습니다.
작가존 모집 공고가 올라온 후 한동안 계속 고민을 하다가 신청서 작성 메일이 온 것을 뒤늦게 발견했죠.
메일 서비스를 바꾸던 타이밍에 생겼던 문제라 "아 이번엔 참여 못하겠구나" 하고 말았습니다.
예전에 듣기로는 작가존 모집 시작을 하면 몇분만에 선착순 마감이 끝난다는 이야기를 들었었거든요.
그러다가 보드게임 인디마켓에서 한니발렉터님을 만나서 인사를 드렸습니다.
"이번에 작가존 참여하세요?" 라는 질문에 "메일을 늦게 봐서 선착순 못들어갔어요." 라고 했더니 하시는 말씀이
"그거 월요일부터 신청 접수에요. 메일 다시 읽어봐요. 선착순이니까 오픈시간에 바로 넣으면 돼요." 라는 답변을!
그래서 신청시간 5분 전 부터 알람 맞춰두고, 네이버 시계 켜두고 만반의 준비를 한 다음, 열심히 갈고 닦아둔 클릭질을 사용해서 신청했습니다.
역시나 작가존 신청은 경쟁률이 치열했나봐요.
10시 오픈이라 치면, 딜레이시간 고려해서 10시 05초에 접수 버튼을 눌렀는데, 선착순 기준 토요일에 14번에 선정되었습니다.
제 앞에 무려 13분이 저보다 빠르게 접수하셨다는 것이죠.
5초만에 절반 이상의 신청이...
그렇게 작가존 신청을 끝내고 나니 두려움이 생깁니다.
"이대로 작가존에 나가도 되는 것일까?"
2. 무한 업그레이드
이제 작가존 일정은 정해졌으니, 나갈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준비 가능한 기간이 상상 이상으로 빠듯했었어요.
그보다 문제는 게임을 대거 손봐야 한다는 것이었죠.
지금 생각해도 아찔합니다. 구버전 가지고 작가존 신청부터 접수 해버리다니.
18일에 작가존 오픈인데... 여러 테스트 모임을 거치면서 게임을 수정해나가다 최종 수정이 13일 새벽 1시에 끝납니다.
그리고 그에 맞춰서 일러스트도 대폭 수정해야 했구요.
그래도 페스타에서 플레이 했을 때 많은 분들이 재미있어 해주셔서 수정하기를 잘했다 싶었습니다.
공개공간의 특성상 실제로 반영하지 못한 규칙도 있었는데, 그걸 짚어내신 분도 계셔서 팀원에게 혼났습니다.
팀원이 그 규칙 적용하자 그랬는데, 오픈된 공간에서 하기 좀 그럴테니 제가 하지 말자 그랬었거든요...
3. 준비하고 다시 준비하고
이제 본격적인 부스 준비같은 테이블 준비를 합니다.
크게 두가지 영역으로 나눠서 준비했는데요.
(1)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것
(2) 남이 만들어줘야 하는것 으로 나눠서 플랜을 짰습니다.
자연스럽게 제작기간, 배송기간을 고려해서 준비할 것들을 가장 먼저, 밤새서 만들 생각으로 준비할 것들을 나중에 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초기 계획은 포토카드나 명함집을 통해서 샘플 카드를 만들 계획이었습니다.
실은 거의 극 초기 계획은 크라우드 펀딩이랑 연계해서 진행할 계획까지 있었지만, 게임이 대폭 수정되면서 해당 계획은 전부 어그러졌죠.
남은 4일 이내에 충분한 퀄리티로 카드를 만들 수 있는 업체를 찾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직접 인쇄해서 잘라내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었습니다.
한 패키지당 108장, 그리고 코보게 피칭데이와 혹시 모를 사태를 생각해 총 3세트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마침 가지고 있는 프린터는 엡손 L8180 제품으로 두꺼운 A3 용지도 인쇄가 가능한데요.
잉크젯용 280g 짜리 용지를 사와서 전부 출력했습니다.
용지가 두껍다보니 걸리는 증상이 자주 생겨서 수동급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게 문제였지만요...
자르는건 책도 자를 수 있는 절단기가 있어서 그나마 편하게 해결했습니다.
잘못 자른 것들 다시 인쇄하고 다시 자르는 일의 반복이었습니다.
럼샷을 플레이 해보신 분들은 모든 카드에 슬리브가 씌워져 있는 것을 아실거에요.
코너라운드 처리 후에 일일이 슬리브를 씌워줬는데요.
아무래도 잉크젯 인쇄다 보니 일반적인 게임 카드와 손에 쥐었을 때 촉감이 너무 다르고
카드끼리도 자꾸 달라붙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카드 보호 차원에서도 슬리브를 씌우는게 좋을 것 같아 작가존에서는 이렇게 시연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작가존 전체 이벤트로 여권 스티커 수집 이벤트가 있었는데요.
저희는 여권이라는 아이디어에 착안해서 "보딩패스" 증정을 하기로 했습니다.
럼샷 소개 페이지로 연결되는 QR 코드를 넣어서 궁금하신 분들이 방문하실 수 있도록 만들어봤습니다.
QR 코드 말고 바코드는 읽어보면 저희 회사 홈페이지가 나오는 이스터에그도 있어요. 일반적으로는 잘 모르시겠지만요.
카드 뽑고 남은 용지에 인쇄해서 대강 잘라서 사용했습니다.
이제 남이 만들어 줘야하는것들을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대부분 빠르게 구매 가능한 아이템 위주로 골랐습니다.
쿠팡 로켓배송 되는 것들로만요.
대표적인게 해적 소품 (안대, 깃발, 두건, 모자) 와 선물용 금화 초콜릿, 비타민 사탕인데요.
소품들이 해적 분위기를 더 잘 살려줘서 좋은 평가를 많이 받았습니다.
3관 입구 들어오자마자 해적깃발을 보신 적 있으시다면...네 저희 자리입니다.
토요일엔 더 안쪽 자리라서 안보였지만, 일요일엔 바깥쪽으로 이동하게 되면서 깃발이 더 잘보이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다들 한눈에 빡 들어온다고 재미있어 하시더라구요.
특히 지인들에게 설명해줄때도 3관 해적깃발요. 라고 하면 찰떡같이 알아서 오셨습니다.
다른 작가님들 중에는 저희가 어그로 끌어서 사람들 불러오는 효과에 긍정적인 반응을 해주신 분도 계셔서 다행이다 싶었네요.
다만 포토프레임의 경우 토요일에는 무사히 넘어갔지만, 일요일에는 문제가 좀 있었습니다.
저희가 규정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준비한 잘못입니다.
테이블 위로 뭔가 올려서 다른 팀을 가리는 홍보물은 사용하면 안되거든요.
토요일은 가장자리 자리인데다가 저희 자리를 가리는 위치에 배치했는데, 일요일에는 여러 테이블들의 중간 자리다 보니 어디에 놓아도 시야를 막아버리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결국 일요일에는 바닥에 놓고 써야 했습니다.
아 깃발은 다른 테이블 가려지지 않게 높이 올려놔서 괜찮은 듯 했습니다. 초짜가 열심히 한다고 봐주신 것이라 생각해요.
4. 행사
제 시간에 행사장에 도착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이동했습니다. 실제 거리는 40분 정도면 되는데, 주말 오전이니 길이 막힐거 같아서 부리나케 움직였지만 가는데 거의 한시간 걸렸네요.
역시 서울 교통상황은 영 좋지가 못합니다.
업체 부스들의 신제품 오픈런 줄은 엄청 길고 붐비는데, 저희는 한산해서 "아 작가존은 원래 이런가보다 하고 있었습니다만..."
아이고....
업체들 주요 행사가 끝나서 그런가 이제 작가존에 엄청 많은 분들이 몰리기 시작하는데요..
토요일엔 저를 제외한 다른 팀원들이 거의 논스톱으로 번갈아가면서 손님들에게 럼샷 시연을 했습니다.
일요일엔 저와 팀원 한명이 번갈아가면서 계속 했었구요. 안그래도 플레이타임이 짧은 게임이라, 한 시간에 빠르면 세팀에서 네팀 정도 플레이를 하더라구요.
3인플 이상 게임이라 혼자오신 분이 계시면, 저와 팀원 포함해서 총 3명이 진행하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손님 많은 포차에서 하는 것 처럼 서로 다른 팀들 합석도 시켜가면서 플레이 하고 그랬네요.
정말 다행인 점은 플레이 해보신 많은 분들이 저희 의도대로 웃으며 플레이 해주셨다는 점입니다.
지인들 지목해서 마구잡이로 공격하고, 일찍 만취상태가 되었지만 킹메이커가 되기도 하고 그랬죠.
QR 코드를 이용해서 피드백을 받았는데, 그 중에서 너무 웃긴 것들 몇줄 가져와봤습니다.
"다 같이 흡연타임이 없어요!" - [한 대 필까?] 카드 보면서 빵 터졌던 분으로 기억합니다.
"테마는 매우 좋고, 게임에 잘 어우러져 있다."
"파티게임으로 합격"
"방어카드가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실제로 방어카드 비율이 좀 낮긴 하지만, 아마 집중 공격을 받으셨던건 아닐지 ㅎㅎ
"테마(해적 + 음주)에 비해 정직한 느낌" - 저는 이 글 보고 빵터졌습니다. 아무래도 술취한 해적이면 뭔가 더 공격적이고 거칠거나 배신같은게 있길 원하신거 같은데 테마가 마음에 드셨던 모양입니다.
아무튼 플레이 하신 분들이 잘 즐겨주신 것 같아 내심 만족했습니다.
5. 작가존 참여해보고 나니...
끝나고 이틀간 거의 시체처럼 먹고자고만 했는데, 수요일에 사무실 나갔더니 이틀새 살이 빠졌다는 소리까지 들어보게 되네요.
실수로 바지를 한 치수 작게 주문했는데 허벅지 부분에 여유가 많아졌으니 진짜 빠졌나 싶긴 합니다.
행사 전 준비하는 것과 행사중의 에너지 소모가 상당하긴 합니다.
선물용으로 준비한 초코렛이지만 저희도 엄청 먹었던거 같네요.
대학생, 20대 초중반 작가님들은 뭔 꼰대소리냐 하시겠지만.
여러분 나이때 먹어둔 영양제들이 30대때 힘을 발휘합니다.
체력 후달리는 느낌 없어도 미리미리 먹어두세요.
그리고 30대 후반 작가님들은 영양제 먹으면서 미리 체력 비축해두세요.
행사때 완전 기빨립니다...
아 겸사겸사 지인중에 극 E 성향이신 분들 계시면 게임 시연때 설명 담당으로 붙박이 해두시면 좋습니다.
토요일에 함께 했던 팀원이 극E 라서 완전 신나게 게임 시연하고, 끝나고 너무 재미있었다 다음에 또 불러달라 그러더라구요.
오랜만에 신나는 재미있는거 했다고 에너지 충전하고 집에 가는거 보고 경악했습니다.
저는 I 성향이라......기진맥진 하고 들어가는데 말이죠...
다른 작가님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서 남기는 부분이지만, 이번 작가존 처럼 누군가가 공동으로 이벤트 하자고 할 때 같이 하시면 참 좋습니다.
작가존에 참여한다는건 아무래도 자신의 브랜드나 게임, 혹은 제품의 판매, 크라우드 펀딩 등 다양한 목적으로 참여를 하게 되는데요.
인지도가 낮은 분들이라면 공동 이벤트 덕분에 얻어걸리는 홍보효과가 컸다고 느껴집니다. 실제로 스티커만 받고 싶어서 기웃거리시던 분 상당히 많았고,
플레이 타임이 짧은 저희 게임 특성상 구경하다가 금방 자리나서 플레이 짧게 하고 스티커 받아갈 수 있으니까요.
저희에게는 홍보기회이니 저희도 좋고, 스티커도 받아가시니 서로 윈윈 아닐까 싶네요.
그냥 이벤트 없이 멀뚱히 있었다면 아마 해적테마나 파티게임을 좋아하시는 분들만 지나가다 구경 잠깐 하고 가버리시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리고 처음 준비단계에서 경고성으로 많은 분들이 상상 이상으로 진상 손님들이 있을 수 있다고 경고 했었어요. 마음 굳게 먹으라구요.
물론 대형 푸드코트의 매니저로 몇년간 일해본 입장에서 어지간한 진상은 진상으로도 보이지 않기에 그래봤자 얼마나 진상이겠어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제 예상대로 딱히 뭐 문제가 될만한 손님들은 없으셨죠.
저희 게임에 대해 생각한 바를 이야기 해주시는 분들의 태도는 상당히 젠틀했고,
첫 인상부터 시작해 개선하면 좋은 부분을 말씀 하시다가 저희 입장에서 고려하시기까지 하시는 것을 보며 "진짜 진심으로 저희가 만드는 게임이 발전하길 원하시나보다"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개인적인 소감은 전반적으로 보드게이머들은 일단 젠틀한 편이다. 라는게 최종 감상이었습니다.
다른 테이블들이나 대기업 부스들 지나다녀봐도 흔히 "진상"이라고 부르는 분들 저는 거의 안보이더라구요.
물론 제 역치가 높아서 그럴수도 있겠습니다만, 이정도 고객들만 방문하는 식당이라면 거긴 평화로운 곳일거에요.
몇가지 아쉬운점은 작가존에 작가로 참여하는 것은 구경할 기회가 거의 전무하다는 점입니다.
여러명이 함께 운영하는 저희 팀 조차 구경할 시간이 부족했는데, 1인팀이시면 뭐 테이블을 비우실 수가 없었겠죠.
그나만 잠시 화장실 다녀오며 잠깐 구경할 수 있는 짬이 나긴 하지만 둘러보는게 전부입니다.
다른 작가님들의 작품들 플레이를 하나도 못해본게 아쉽네요.
거기에 더해 대학부존과 작가존이 아예 다른 관에 배치된것도 같은 이유로 아쉽더라구요. 대기업 제품과 달리 이런 행사를 해야 만날 수 있는 작품들인데
거리가 멀고 시간이 부족하다보니 대학부존은 아예 구경조차 못했습니다.
처음이라 준비도 어설프고, 부족한게 많았는데
방문하셔서 좋은 반응해주신 분들께 이번 글로 감사 인사를 올립니다.
조만간 럼샷 제작기와 출시 계획 가지고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작가존 참여하신 작가님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