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카페 도전하는 아저씨 이야기(8) 인생이 보드게임
저는 보드게임을 할 때 한 판 한 판 최선을 다해서 치열하게 합니다. 물론 버라지를 할 때와 킹수리갓치싸움 할 때 마음가짐은 당연히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전 항상 그 보드게임의 목적에 맞게 열심히 해요.
그런데 그렇다고 막 이기려고 게임하는 건 절대 아니에요. 이겼다고 승리감에 도취되지도, 꼴찌했다고 패배감에 열이 받치지도 않습니다. 제가 보드게임을 열심히 하는 건 순수하게 즐기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거든요.
게다가 보드게임은 계속 할 수 있잖아요. 같은 게임을 다음에 또 할 수도 있고, 내가 못하는 게임이 있으면 잘하는 게임도 있고, 운 요소 하나도 없이 큰 그림 안에서 모든 액션을 전략적으로 해야할 때도 있고, 운에 모든 걸 걸고 되는 대로 해야하는 경우도 있고. 그 순간 순간 즐겁고 행복한 게 보드게임의 목적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리고 전 인생도 그런 게 아닐까 합니다. 전 원대한 꿈이 있는 거도 아니고 불멸의 이름을 남기기 위해 사는 거도 아니거든요. 그냥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운 인생일 것 같습니다.
브라스 버밍엄을 처음 플레이했던 2018년도 이래로 제 인생 최고의 게임은 항상 브라스 버밍엄이었는데, 어떻게 보면 전 이제 철도 시대를 시작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지난 38년간 운하 시대에서 만들어 놓은 기반을 바탕으로 새 시대를 시작하면서, 게 중에 못 뒤집고 버린 1레벨 타일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리고 그간 닦아놓은 안정적인 네트워크를 다 갈아 엎어야겠지만, 그게 다 헛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여기 저기에 박아 남겨놓은 기반부터 다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면 되고, 운좋게 1시대에 남겨둔 맥주 한 개, 석탄 철 몇 덩이로 다시 시작해보는 거죠.
맡은 일에 치열해야할 때도 있고, 큰 목표 속에서 하나 하나 충실하게 준비해야 할 때도 있지만, 동시에 순간의 타이밍과 운이 맞아야 하기도 하고 가끔은 무모한 선택과 도전을 해야 하는 게 인생이잖아요. 게임에서 1등을 못해도 재미있는 것처럼, 많은 돈을 벌지 못하고 교과서에 이름을 남기지 못하더라도 전 좋습니다.
멀리 보고 돌다리를 두드려야할 때는 1라부터 6라 미션까지 바라보는 가이아처럼, 용기가 필요할 때는 해적 두 장쯤 쥐고 있어도 부르는 스컬킹 10라 0비딩처럼, 시련이 닥칠 땐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이 고민해 치료제 만들고 큐브 제거하는 팬데믹처럼 문제를 풀어가야죠.
하나 하나의 상황에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서 하고, 진 것 같다고 던지지 말고 끝까지 1점이라도 더 내려고 노력하고, 앞 사람 끌어내리겠다고 트롤짓 하지 않고, 사기 안 치고 거짓말 안 하고 정정당당하게.
회사에 퇴사 의사를 밝혔고, 마지막 출근 날짜까지 잡았으니 이제 롤백이 안됩니다ㅎㅎ 한 손엔 작고 소중한 퇴직금이라는 자원을, 한 손엔 내 몸뚱이라는 일꾼을 들고 이제 주사위의 신과 카드뽑기의 신에게 기도를 해보려고 합니다. 매장 상권 후보는 고심해서 추려놨으니, 제발 마음에 드는 상가 나오게 해주세요!
2분기 오픈이 목표에요. 차리게 될 카페의 이름은 "인생이 보드게임"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