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카페 도전하는 아저씨 이야기(1)
전 38살입니다. 아직 젊다 우기면 젊다 할 수 있는 나이일 것 같기도 하고, 이제 삶의 자리를 안정적으로 잡았을 법한 나이이기도 한 것 같아요. 실제로 지금의 제 삶은 안정적인 것 같긴 합니다. 결혼도 비교적 일찍 했고, 아이를 낳을 계획은 없고, 부부가 회사 다니며 열심히 남은 대출만 잘 갚아 나가면 되니까요.
제 마음가짐도 회사에서는 돈만 벌고 행복은 퇴근하고 찾자 였습니다. 실제로 회사 일은 재미도, 보람도, 성취감도 없고 매일 매일의 출근이 스트레스일 뿐이니까요. 그냥 그 시간을 팔아 돈을 번다밖에 없죠.
그런데 곧 마흔이 된다 생각이 들어서인지, 내가 일에서도 행복을 느낄 순 없을까, 이렇게 재미없는 남의 일만 하다 얼마 안 남은 젊음을 다 소비해도 괜찮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특히 지금 회사에서 이제 만 12년을 다닌 게 되었는데, 내 인생의 3분의1을 이렇게 소모했다는 게 좀 충격적이더라구요.
내가 좋아하는 일, 그러니까 보드게임을 업으로 해서 살면 돈은 지금보다 못 벌어도 행복할 텐데, 라는 생각은 그 동안 쭉 해왔었습니다. 하지만 용기가 없어서 생각으로만 그쳐왔었죠. 특히 보드라이프에서 발로님이나 챨스님이 보드게임카페 창업기, 운영기 같은 글 써주셨을 때 보면서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 그런 생각 많이 했었어요.
그러다 몇 달 전 곰잼님 유튜브에서 보드게임을 업으로 삼는 여러 분들의 인터뷰를 보면서부터, 그러니까 한곰님, 보드엠 사장님, 엠티에스 사장님, 특히 대학 때 카페를 창업해서 운영 중이신 현진님을 보면서 와 나는 왜 이렇게 용기 없이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너무 크게 들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과도 이야기를 해보고, 배우자와도 진지하게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배우자는 언제나 제편을 들어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기 혼자 벌게 되어도 아껴 쓰면 되니까 하고 싶은 거 하라는 진심 어린 말을 해주었고, 그래서 용기를 얻었습니다.
아직까지 나는 젊다고 억지로 우겨보려구요. 보드게임 카페를 차리려 합니다.
하지만 전 자영업 경험도 없고, 당연히 카페나 보드게임카페 운영 경험도 없고, 심지어 대학 때 아이들 가르치는 것 말고는 서비스업을 경험해본 적도 없었습니다.
막연한 자신감은 있었습니다. 저도 제가 손님 응대나 가게 운영을 잘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주변에서도 그렇게 이야기해주었거든요.
그래도 현장 경험은 꼭 필요하다는 생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알바몬과 알바천국을 설치하고 보드게임 카페들에 아르바이트를 지원해 봤어요. 여전히 풀타임 회사원이긴 하지만 다행히도 5시30분에 항상 정시 퇴근이라 평일 저녁 6시부터 마감을 맡는 가까운 카페 아르바이트는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너무 많이 하면 본업에 무리일 거고, 일주일에 이틀 정도면 딱 좋겠다 싶었는데 정말 운명처럼 카페 한 곳을 찾았습니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딱 이제 한 달이 되었네요.
일을 일단 해보고 너무 생각과 다르다거나 너무 힘들면 그냥 다시 회사 열심히 다녀야지 생각했는데, 웬걸, 일하는 모든 순간이 너무 행복합니다. 심지어 퇴근하고 보드게임카페에 일하러 가는 게 기대되고 설레요.
얼마전 토요일 오후에 열 몇 개 되는 테이블이 가득 차서 너무 너무 정신 없었습니다. 음료 만들고 게임 룰 설명도 해드리고 자리 안내도 해드리고 하다 바쁜 게 탁 끝나서 숨을 좀 돌리는데, 손님들이 하하호호 즐겁게 게임하고 이야기 나누고 있는 걸 보니 갑자기 확 울컥하더라구요. 너무 행복해서요. 아, 난 보드게임 할 때 행복하지만 그냥 사람들이 즐겁게 게임하는 거만 봐도 이렇게 행복하구나, 몰랐던 나를 깨닫는 느낌이었어요.
내년 2분기 오픈으로 목표 일정은 쭉 짜놨고 그를 따라가려 노력 중인데, 지금 마음 같아서는 그냥 지금 바로 퇴사해버리고 풀타임으로 카페 준비를 하고 싶네요.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돌다리 두드리며 차근차근 해야겠죠. 퇴사도 현실, 창업도 현실이니까요.
길면 6개월까지 경험을 쌓고 배우고 하면서 차근차근 하나씩 준비를 해보려 합니다. 준비 중에 생각을 바꿀 수도 있고, 현실적인 어려움에 포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뜁니다. 현실로 닥치면 직원 월급에 가게 월세에 안 오르는 매출에 힘들 일이 수두룩 하겠지만, 지금은 일단 행복한 상상만 해보려구요.
어휴 글이 이렇게까지 길어질 줄은 몰랐네요. 준비하며서 풀고 싶은 썰이 있을 때 하나씩 글도 써보겠습니다. 아주 가까운 친구들 말고는 주변에도 이야기를 거의 안 했다보니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네요 ㅎㅎ
금요일, 주말 모두 즐겁게 보내세요. 모든 보드게이머분들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